경인(庚寅)년의 해가 저물고 신묘(辛卯)년의 해가 밝았다. 어수선한 연말의 분위기는 대부분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새해로 이월되어 황사 탓인지 스모그 탓인지 우울한 정가의 분위기 탓인지 날씨마저 시무룩하다. 올해 예산도 관례(?)대로 법정 시한을 넘기고 난투극(활극)을 거쳐 확정되었지만 템플스테이 예산 등 약속된 예산을 빠뜨리고 누더기가 되어 나왔다.
애써 지난해 나라 안의 밝은 모습을 찾아보지만 ‘G20정상회의’와 ‘광저우 아시안 게임’ 정도라고나 할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야 수도 없이 많지만 몇 가지만 들어본다면 ‘4대강 사업, 천안함 사건, 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 권력형 비리, 세종시 사건, 한미 FTA, 연평도 사건’ 등이 생각난다. 대개가 폐쇄적인 국정 운영이나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이기식으로 처리했거나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 사건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정치의 모습이 연말에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에서 ‘장두노미(藏頭露尾)’로 나타난 것 같다. 여러 사건과 의혹들이 있었지만 제기된 의혹의 어느 하나도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문제와 의혹을 감추고 진실을 규명하지 않은 정부의 태도를 비유한 글귀다. ‘장두노미(藏頭露尾)’의 뜻인즉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하고 드러낸 모습’을 가리킨다.
머리가 썩 좋지 않은 타조는 쫓기면 머리를 덤불 속에 처박고서 꼬리는 미처 다 숨기지 못한 채 쩔쩔맨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행여 드러난 꼬리를 붙들고서 몸통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이 있으면 곧 국가가 나서서 의혹을 차단하고 무마하는 데만 급급할 뿐 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모체는 구성원들의 의사를 수렴하고 처리하는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는데 있다. 물론 진실과 정의를 바탕으로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처럼 예산안의 처리나 의혹만 증폭시킨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정치인들이 무엇보다 앞서 ‘법’을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법이나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무엇을 근거로 사업이 시행되고 예산이 집행될 수 있는가. 특히 국회의원의 경우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차라리 만들지 않는 것이 낫지 않는가. 법을 만드는 사람은 법을 지키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할 수 있는가.
다음으로 정치인에 대한 걱정은 폭력문제다. 정치인들이 국회 안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죄가 성립되지 않고, 일반 국민들의 사소한 폭력은 엄격히 처벌받아야 한다면 누가 법을 신뢰하고 정치인을 믿겠는가. 이유인즉 ‘날치기를 하려고’ 폭력을 행사하고, ‘날치기를 막으려고’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상대 쪽에서 원인 제공을 하여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사한다고 한다. 거기다가 더 안타까운 것은 국회의원 보좌관들의 동원이다. 폭력사태의 조연으로 동원되는 이들이 딱해 보이지 않던가. 이들이 국회의원들로부터 무엇을 배우겠는가. 제발 새해엔 폭력 없는 민의의 전당이 되어주길 바란다.
다음으로 국회와 정치인들은 국내외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갈등과 충돌의 난맥상만 보여 왔다. 민주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갖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면서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무엇인지 따져서 합의를 찾으려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바꾸어 말하면 합의를 도출해내는 정치력을 말한다. 현재의 정치구도로 본다면 국민이 여당에게 절대 다수의석을 할애하여 주었고, 거기다 제3당이라 할 수 있는 정당이 보수 성향을 띠고 있으니 웬만큼 정치력만 발휘한다면 국회 내에서 합의 도출은 어렵지 않으리라 본다.
이제 우리나라도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시행한지 60년이 지났다. 지난 10년간의 각종 선거 결과를 종합해 보면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은 우리의 국격에 걸맞게 향상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 정치는 아직도 아쉬움이 많다. 정말 새해엔 우리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게 되길 바란다.
김형춘 교수님 글. 월간 반야 2011년 1월 1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