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 (12)잡아함경

이 무아론(無我論)은 불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교리라고 할 수 있다. 영혼, 자아 또는 브라만의 아트만(Atman)과 같은 존재를 부정하고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인연에 의하여 임시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무아(無我, anatman)이론이 자칫 잘못 오해되면, 있는 그대로의 우리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같이 생각되기 쉬우나 그것은 아니다. 무아란 있는 현상을 일방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영원하고 불변하는 실체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삶에서의 나, 개인의 존재는 인연에 의한 한시적인 존재로서는 있는 것이다. 이것을 속제(俗諦), 즉 세속의 일반 이치로 보는 진리라 한다. 그러나 무상 속에 속해 있는 가상의 존재는 진실한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실체가 공하여 없다는 뜻으로, 이것을 승의제(勝義諦)라 하는데 본질적 실체적 의미의 존재라는 뜻이다. 이것은 곧 무아로 존재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 무아설의 이론은 연기법(緣起法)으로써 설명되면서 연기는 고립·독존할 수 없는 조건에 의하여 이것과 저것이 상대하면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역시 실체가 없다는 것으로 다시 설명된다. 연기(緣起, pratitya-samutpada)라는 말은 산스크리트 어인 프라키트야(pratitya)와 삼무트파다(samutpada)라는 두 개의 말로 이루어진 말인데 ‘pratitya’는 ‘… 때문에 …에 의해서’라는 뜻이고 ‘samutpada’는 ‘태어남, 생산’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조건에 의한 생겨남’이라는 뜻이다.

연기설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혼자서 생긴다든지 혼자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존재들은 원인들과 그 원인들의 관계에 의해서 발생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잡아함경』(12권)의 갈대단의 비유에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세 갈대가 빈 땅에 세워지려면 서로 의지하여야 서게 되는 것처럼 모든 사물은 서로 의지하는 상의성(相依性)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흔히 연기법을 정의하여 하는 말에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라고 되어 있다. 말하자면 연기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연기의 공식을 가지고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데 결국 연기는 현상의 실체를 부정하고 공(空)한 이치를 드러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무아설이 공사상으로 발전된다. 공의 상태를 주관쪽과 객관쪽으로 나누어 아공(我空)·법공(法空)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인무아(人無我)·법무아(法無我)라고도 한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무아를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또 사리불이 야마카 비구에게 인간 존재를 설명하는 오온(五蘊)에 대하여 “그것은 병(病)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가시와 같고 죽음과 같으며 무상하고 괴로우며 공(空)이요, 내가 아니며 내 것이 아니라고 관찰하라. 그래서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고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말라”고 가르치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 무아설을 타고 있는 불에 비유하여 말한다. 왜냐하면 불이 모든 초목을 태워 버리듯이 무아가 욕망과 고통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마치 불을 태우면 모든 초목이 타 없어지는 것처럼 만일 무상하고 무아라는 것을 생각하여 닦으면 일체의 번뇌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 하나의 사실이 있다면 내가 없다는 사실뿐”이라고 5세기의 불교 사상가 아상가(Asanga)는 말했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3년 8월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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