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무위(智者無爲)어늘 우인자박(愚人自縛)이로다
지혜로운 사람은 함이 없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미 도에 나아가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도 없어 마음이 자유자재하므로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자나깨나 취하고 버리려는 마음 때문에 스스로 묶이어 고생을 자초한다.
무위란 함이 없다는 뜻이지만 아무런 동작이 없다는 말은 아니며, 마음에 의도된 집착이 없는 무심행(無心行)의 자유를 말하는 것으로 본자무위(本自無爲)라 하여 본래 스스로 함이 없다고 말한다.
영가永嘉스님의 ‘증도가(證道歌)’ 첫머리에서는, “그대 보지 못했는가(君不見)? 배움을 끊고 할 게 없는 한가로운 도인은(絶學無爲閑道人) 망상을 제거하지도 않고 진리를 찾지도 않네(不陣妄想不求眞)”라고 하였다. 즉 범부는 자신의 마음이 스스로의 마음을 속박하지만, 도인은 어디에도 얽매임이 없는 것으로 영원한 자유를 얻은 사람만이 인생의 참가치를 알고 사는 사람일 것이다.
법무이법(法無異法)이거늘 망자애착(妄自愛着)하야
법은 다른 법이 없거늘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야
법은 법일 뿐 인간의 집착을 요구하지는 않으며, 진리는 친소(親疎)와 피차(彼此)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법은 무심한 법일 뿐, 달리 가타부타할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중생이 망견을 내어 애착하고 있으니 잘못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법은 실체가 공하여 어떤 개념에도 묶이지 않는데, 가령 얼음은 차고 불은 뜨겁다고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인식에 고정된 관념이 있기 때문에 그러할 뿐, 인식이 일어나는 주관과 얼음이나 불 사이에 주객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얼음과 불 자체에는 차다고 하거나 뜨겁다고 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중생은 망견을 내어 차다고 하거나 뜨겁다고 하여 끊임없이 분별을 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