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명(20)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을 어겨 혼침해져 좋지를 못하니라.

계념괴진繫念乖眞하여 혼침불호昏沈不好니라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을 어겨 혼침해져 좋지를 못하니라.

생각에 얽매이면 진여자성, 즉 도를 어기는 것이 되며, 또한 마음이 혼침에 빠지면 구름 낀 날씨는 좋은 날씨가 아니듯이 마음의 참모습이 사라져 좋은 것이 못 된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생각은 일반적인 객진 번뇌가 아니라 부처며 도라고 하는 공부분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목적의식의 생각을 말한다. 즉, 수행을 하는 사람은 수행을 한다는 생각을 앞세워 두지 말하는 것으로, 도는 능소能所의 마음이 끊어져야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체의 사념을 통한 분별의식이 있어서는 안 되며, 성성적적惺惺寂寂하여 초롱초롱한 맑은 마음 상태가 유지되어야 도에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없다고 하여 목석처럼 바보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참선 수행에 있어서도 선정을 방해하는 것은 혼침과 산란인데 정신이 흐려진 것은 혼침이고, 온갖 생각이 어지러워진 것은 산란이다.

불호노신不好勞神커든 하용소친何用疎親가

정신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 어찌 성글고 친함을 쓰랴.

도란 무위심無爲心에서 얻어지는 것이므로 억지로 마음을 내어 정신을 쓴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신을 써서 생각을 앞세울수록 점점 더 멀어진다. 마음에 친밀하거나 사이가 뜬 친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도심道心이다. 말하자면 좋아할 것도 없고 싫어할 것도 없는 무심無心이라야 도에 합치되는 마음이며,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한다든가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려 하면 양변兩邊에 떨어지는 것이다.

‘한래한현 호래호현漢來漢現 胡來胡現’ 이라는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의 어록語錄에 나오는 말이 있다. 즉, 붉은 것이 오면 붉게 나타내 주고 검은 것이 오면 검게 나타내 준다는 말인데, 원래 한漢과 호胡는 인종人種에 따른 사람의 피부색을 뜻하는 말이다. 거울이 모양과 색깔 그대로 물체를 비추어 주면서 일체의 분별이 없는 것처럼, 무분별심으로 객관의 경계를 있는 그대로 응한다는 뜻이다.

지안 스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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