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지자연(放之自然)이니 체무거주(體無去住)라
놓아 버리면 자연히 본래 그대로라 본체는 가거나 머무름이 없느니라.
집착을 놓아 버리면 본래대로 되어 도에 합해 질 수 있다. 본래 도의 바탕인 본체는 가고 머무는 것도 없다. ‘수궁삼제(竪窮三際) 횡변시방(橫匯十方)’이라는 말이 있는데, 시간적으로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을 다하고 공간적으로 시방의 허공에 없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도의 본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고금古今과 동서(東西)가 없다.
그런데 마음에 한 생각이 일어나 집착이 생기면, 언제 어디였다는 시공의 개념에 묶여 버리며 변견에 떨어져 관념적 고집에 속박됨으로써 시제는 물론 여기저기에 걸리어 본체를 떠나버리는 것이다.
임성합도(任性合道)하야 소요절뇌(逍遙絶惱)하고
자성에 맡기면 도에 합하여 슬슬 노닐면서 번뇌가 끊기고
집착이 없으면 자신의 본래 성품자리로 돌아가 도에 합해지며, 마음에 아무런 걸림이 남아 있지 않아 여유자적하여 일체의 번뇌가 사라진다. 일찍이 중국의 방거사(龐居士)가 설한 게송(偈頌)이 있다.
十方同聚會(시방동취회) 온 곳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모여
箇箇學無爲(개개학무위) 낱낱이 무위를 배우니
此是選佛場(차시선불장) 여기가 부처를 뽑는 과거장이라
心空及第歸( 심공급제귀) 마음이 공해지면 급제해 돌아가네
이 4구 중 “마음이 공해지면 급제하여 돌아간다.”라는 말이 중요한데, 부처에 합격하려면 마음이 공해진 사람이어야 가능하다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는 묘하다. 공해진 사람은 걸림이 없어 일체 객관의 경계에서 오는 장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공이 만상을 포함하되 장애를 받지 않는 것처럼,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사람, 즉 대자유인(大自由人)인 사람이 부처에 뽑힌다.
원효스님이 즐겨 쓴 말 중에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사람이라야, 곧장 자기 운명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원래 이것은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得人 一道出生死)’라는 구절을 의역한 말인데, 초기 경전인 숫다니파타에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라.”는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