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믿음, 바른 이해, 바른 실천 올바른 신행생활은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이해와 올바른 실천에서 비롯된다고 하겠습니다. 요즈음에는 그런 운동의 일환으로 법회도 많이 열리고, 경전 강의와 교양대학 등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법회 가 강의를 통하여 불교를 이론적으로 정확하게 알고자 하는 것은 불자로서 부처님을 믿고 그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높고 훌륭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올바로 믿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올바로 알지 못했지 때문입니다. 불교에 대한 올바른 지식은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실천을 하기 위한 주춧돌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불교 지식의 함양은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실천의 밑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경전공부를 통하여 올바른 불교 지식을 습득함은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항상 공부하는 불자의 자세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불자들의 신행생활은 좀 막연하고 맹목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순수한 신심이긴 하지만 거기서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좋은 불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좋은 불자란 바로 공부하는 불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공부함으로써 불교를 올바르게 믿을 수 있고,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또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듯이 진 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인생의 밤길은 멀고 험하다. 우리의 신행생활은 바로 그와 같습니다. 올바른 진리의 가르침을 가장 정확히 바로 아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보다 잘 가꾸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계를 하나 샀을 때 그 기계의 조작법을 모른다면 그것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보잘것없는 물건이라도 그 조작법을 환히 안다면 거기에는 엄청난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불제자로서 불교 교리에 대해서 올바로 알고 있다면 더욱 신심이 날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간혹 신도 교육을 하지 않는 종파도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진정한 신심은 올바로 앎으로써 우러나는 것입니다. 올바로 아는 일은 바람직한 불자의 모습을 형성하는 근본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불교의 이상인 상구보리上求菩提이며 자리행自利行의 실현입니다. 올바른 불자란 결국 이 세상에서 모범적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올바로 아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이롭게 하는 일이며, 나아가서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처럼 자비행을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혼자 알고 있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전법사傳法師의 역할까지 욕심을 부려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불교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우리가 좀더 신경을 쓰고 공부하여 그런 사람들에게 법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한다면 큰 공덕을 짓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만 내면 가능한 일입니다. 흔히 방생이나 기도에 대한 포교는 쉽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그 정도의 포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처님의 말씀까지 전하는 좀더 적극적인 포교사의 역할도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이타행利他行도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교의 최종 목적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지향하는 평화와 행복이 각 가정과 사회에서 넘쳐날 때, 궁극적으로 불국토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불교인으로서 이 사회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고 보탬이 되는 일이란 다름 아린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자리이타행의 실천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처한 가정에서부터 이웃과 사회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믿고, 바르게 알고, 바르게 실천함으로써 보다 밝아지고 맑아진다면 그것이 진정한 불국토 건설인 것입니다. ‘행지구비行知俱備는 여거이륜如車二輪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신행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는 것이 합쳐져 올바른 이해가 밑받침된다면, 마치 수레의 두 바퀴가 균형을 이뤄 굴러가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수레가 하나의 바퀴로 굴러가기는 힘이 들지만 두 바퀴가 균형을 이루면 쉽게 굴러갈 수 있습니다. 완전한 신앙인이 되려면 기도하고 불공드리는 그 믿음의 바닥에 불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깔려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