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경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너무나 많은 경전, 뭐부터 읽어야 할지 몰라 답답한 심정, 잘 압니다. 그나마 안심이라면, 지금으로부터 천 년도 더 이전의, 경 좀 읽어봤다는 스님들도 딱 이런 고민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교상판석’ 아니겠습니까? 자, 두 가지는 대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경전을 다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팔만대장경을 다 읽고 이해해야 불교를 아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꼭 읽어야 할 경전들은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순서대로 경전들을 선택하면 좋을까요? 이제 이 물음과 관련해서 내 개인적인 생각을 펼쳐 보이겠습니다. 비교적 수긍할 만하다 싶으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먼저 읽어야 할 경은, ‘아함경(니까야)’입니다. 두 말 하면 잔소리! 세 말 하면 헛소리입니다. 아함경이 붓다의 원음이다, 아니다 라며 학자들 사이에서는 민감하게 논쟁을 벌이기도 하는 모양인데, 어찌되었거나 아함경(니까야)에는 불교세계로 들어서게 하는 모든 이야기가 다 담겨 있습니다. 치밀하게 교리를 따져가며 읽자면 평생 이 아함경 하나만 읽어도 못 다 읽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함경은 인간이 왜 번뇌를 일으키는지, 어떻게 하면 그런 번뇌를 없애고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아함경을 ‘진짜로’ 읽고 싶다면 “색수상행식이 오온이란 말이지? 자, 그러면 그 다음엔?”라는 식으로 읽어갈 것이 아니라 “대체 이 몸뚱아리에서 무엇을 색이라고 하고 무엇을 수, 상…이라 하는가? 부처님이 말한 저 내용에 나는 진심으로 내 이성을 가지고 공감하고 동의하는가?”라고 의심하고 사색하면서 읽어가야 합니다. 이런 자세로 읽어 내려가면, 아함경에 등장하는 교리에 대해 해박해지고, 아함경에 정통해지면 독자(불자)는 아라한이 됩니다. “설마 부처님이 나를 엉뚱한 데로 끌고 가시겠어? 그 분이 제시한 길이라면 틀림없을 거야.”라며 안심하되, 경을 읽으며 끝까지 의심을 내려놓지는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읽어야 할 경은, ‘반야’라는 이름이 붙은 경전들입니다. 대표적인 경전으로는, 금강경, 반야심경, 팔천송반야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번뇌를 없애기에 급급하며 읽었던 아함경 때와는 달리 ‘반야부’ 경전을 읽을 때는 자신의 번뇌를 없애겠다는 목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없앴다는 생각”마저도 비워내야 합니다. “이 정도 공부했으면 됐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사람은 ‘나’라는 생각, ‘이 만큼’이라는 생각, ‘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으니 얼른 그 생각을 비워야 합니다. 산 너머 또 산입니다. 금강경에 무슨 특별한 교리가 있을까요? 오직 비워 내고 비워 내고 또 비워내라고 재촉하는 경입니다.

하지만 금강경만 읽다보면 자칫 반야부경전이 품고 있는 풍부하고 감동적인 맛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품반야경(팔천송 반야경)’은 꼭 읽으셨으면 합니다. 반야바라밀다를 둘러싼 향기롭고 그윽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마음 흐뭇해집니다.

반야부경전을 읽는 사람은 ‘어리석은 중생’이 아니라 ‘부처가 되려는 보살’입니다. 사소한 번뇌에 끄달리지 않고 이웃을 위하는 일이 바로 내 공부를 무르익히는 지름길임을 알아서 통 크게 살아가는 사람-이런 사람이 바로 ‘보살’입니다. 그렇다면 보살은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여기에 초점을 맞춘 경이 ‘화엄경’입니다. 화엄경을 읽고 싶다면 한글로 번역된 80화엄경을 쭉쭉 읽어내려 가시기를 권합니다. 한문으로 된 논서로 화엄학을 공부하는 분은 그 가슴 뜨거운 보살의 인생을 만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려운 한문용어에 발목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화엄경을 공부하는 것이 보살로서 살아가려는 인생공부인지, 한문공부인지 모호해집니다. ‘80화엄’이 너무 두꺼워 질린다면, ‘보현행원품’을 진지하게 읽어보면 어떨까요? 보살이라면 꼭 실천해야 할 열 가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보살의 마음으로 읽어가는 것이 화엄경이라면, ‘법화경’은 차원이 또 다릅니다. 법화경 즉 ‘묘법연화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당신의 속내를 드러낸 경입니다. 그 속내란, 바로 “내가 왜 부처가 된 줄 아십니까? 당신도 나랑 똑같은 수준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그런 겁니다.”라는 겁니다.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 중생인 내가 부처라니요, 언감생심….”

이렇게 말하며 “당신이 바로 부처입니다”라고 말하는 부처님에게 두 손을 휘휘 내젓는 사람이 많습니다. 언뜻 보면 겸손한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중생의 이런 마음가짐이야 말로 교만 중에 가장 큰 교만이라고 하십니다. 중생 당신이 바로 부처라고 아무리 말해도 “오케이!”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니 온갖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게 됩니다. 바로 ‘법화 7유’가 이것입니다. 그러니 법화경은 그런 부처님의 간절한 마음가짐으로 읽어야 하는 경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 만큼 공부한 것도 얼마나 힘든데 다시 부처가 되려고 마음먹어야 해? 난 싫어, 그냥 여기서 만족할래!’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유마경’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틀에 갇힌 부처님의 제자들 그중에서도 사리불 존자가 얼마나 비참하게 깨지는지를 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전으로 뭔가를 공부하고 사색하는 자체가 부담스럽다면 ‘나무아미타불’에 전념해도 좋습니다. 그런 분을 위해 ‘불설무량수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을 권합니다. 이번 생은 수행하기에 진작부터 틀렸다고 해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을 기약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관세음보살님의 지혜에 슬며시 기대라는 ‘편법’을 일러주는 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두 권은 희망의 경입니다.

▲이미령
경을 읽을 때는 완고하게 팔짱을 끼고 “이봐, 경! 어디 나한테 한 번 진리를 보여줘 봐!”라는 자세보다는 자신을 싹 비우고 경전 속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선재동자가 되어 아픈 다리를 주물러가며 53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내가 사리불이 되어 하늘의 여인에게 봉변을 당하면서 내 견고한 아집과 아상이 와장창 깨지는 일도 당해보고, 심지어 내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음이 되어서 법화경을 느껴보는 겁니다. 그래서 한 권의 경을 읽고 나면 나는 어느 사이 부처님의 회상에서 법열을 만끽하며 그 기쁨으로 일상을 기운차게 살아갈 수 있겠지요.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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