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부처님의 생애
제3장 교화에서 열반까지
- 사캬족의 귀의
카필라의 슛도다나왕은 태자가 마가다의 서울에서 위대한 부처님으로 존경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태자가 도를 이루어 부처님이 되었다는 소식은 슛도다나왕도 벌써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슛도다나왕은 하루라도 빨리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라자가하까지 와 계시면서도 고향인 카필라에는 아직도 가려 하지 않으셨다. 슛도다나왕은 기다리다 못해 여러 번 사신을 보내어 자신의 뜻을 부처님께 알렸다. 그런데 그때마다 찾아간 사신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해 버리고 말았다. 한번 출가해 버린 그들은 수행에만 힘 쓸 뿐 왕의 사신으로서의 임무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왕은 이번에는 가장 신임하는 우다인 대신을 특사로 보내게 되었다. 왕의 심정을 잘 알고 있는 우다인은 다음과 같이 맹세하고 길을 떠났다.
“제가 부처님을 만나 혹시 출가하게 되더라도 대왕의 간절하신 뜻은 꼭 전하여 모시고 오겠습니다.”
우다인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곧 출가하였다. 그러나 그는 왕에게 맹세한 일만은 잊지 않았다. 몇 달을 두고 기회를 살피던 우다인은 부처님 곁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 지금 카필라에서는 슛도다나왕과 사캬족들이 부처님이 오시기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카필라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의외에도 선뜻 동의하셨다.
“나도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그 때가 되었나 보다. 그럼 떠날 준비를 하여라.”
우다인은 너무나 기뻐서 먼저 카필라로 떠났다. 카필라에서는 왕을 비롯하여 온 나라 안이 부처님을 맞을 준비에 바빴다. 다들 옛날의 태자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덧 정든 카필라를 떠난 지 열두 해가 되었다. 부처님의 나이도 이제는 마흔이 넘었다. 부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라자가하를 떠난 지 두 달 만에 카필라에 이르렀다.
그러나 카필라에 도착한 부처님께서는 궁전에 들지 않고 출가 사문의 습관에 따라 이집 저집 밥을 빌며 다녔다.
왕은 부처님께 “가문을 욕되게 하는 일을 그만 두고 어서 들어와 궁전에 머물도록 하오.” 하고 권했다.
왕의 머리속에는 아직도 옛날의 싯다르타가 뚜렷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것은 출가 사문이 옛날부터 지켜온 법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궁중에서 설법하시기 전에 이모와 야쇼다라 그리고 라훌라와도 만났다. 열 두 해 만에 친족들과 대하는 감회가 새로웠다. 마음 착한 여인들은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부처님께서는 부왕과 그들을 위해 설법하셨다. 설법을 듣고 난 그들은 출가 사문의 길을 이해하게 되었고 난 그들은 출가 사문의 길을 이해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카필라에 오신 지 며칠 안 되어 사캬족 출신의 청년들은 앞을 다투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카필라는 또 한번 뒤집히게 되었다. 옛날 슛도다나왕과 야쇼다라 태자비가 겪었던 쓰라린 아픔을 겪어야 하는 부모와 아내들이 뒤를 이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부처님에게는 아우가 한 사람 있었다. 그는 부처님을 키워 준 마하파자파티 왕비가 낳은 아들이다. 부처님이 카필라로 돌아왔을 때 장차 싯다르타 대신 왕위를 계승하게 될 아우 난다의 결혼식이 막 거행되려 하고 있었다. 신부는 미인으로 알려진 순다리였다. 부처님은 난다를 데리고 성밖에 있는 니그로다 정사로 가셨다. 니그로다 정사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위해 슛도다나왕이 마련한 정사였다.
그 정사에 도착한 부처님은 난다를 앞에 앉히고 천천히 말씀하셨다.
“난다야, 너는 지금 곧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라.”
난다에게는 너무도 뜻밖의 말이어서 선뜻 대답을 못하고 주저하는 빛을 보이자 부처님께서는 “난다, 너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있구나. 너는 내 말대로 곧 출가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하시면서 손수 난다의 머리를 깎아 출가하게 하였다.
형님인 부처님의 뜻을 어기지 못하고 출가하여 니그로보다 정사에 살게 되었지만 아리따운 순다리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난다는 괴로워했다. 이 괴로움은 난다가 출가한 뒤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출가한 난자가 두고 온 순다리를 잊지 못하면서 이따금 멍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시고, 부처님은 어느 날 난다를 데리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셨다.
거기에서 흉하게 생긴 암원숭이 한 마리를 난다에게 보이면 “이 암원숭이와 너의 순다리를 비교하면 어느 편이 더 아름다우냐?” 라고 물으셨다.
난다는 대답하였다.
“말할 것도 없이 순다리가 훨씬 아름답습니다.”
이번에는 신통력으로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선녀를 보이시며 물었다.
“이 선녀와 순다리를 비교하면 어떠냐?”
이번에는 난다도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못하였다. 총명한 난다는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후부터 난다는 출가 사문의 길만을 찾아 수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난다의 출가를 슬프게 여기는 사람은 순다리만이 아니었다. 싯다르타 태자가 떠난 다음 오직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로 믿고 있던 난다마저 출가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슛도다나왕은 또 한번 쓰라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제 남은 후계자는 손자인 라훌라밖에 없었다. 태자가 출가하기 직전에 태어난 라훌라는 어느것 열두 살이 되어 있었다.
라훌라는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왔다.
“저에게 물려줄 재산을 주십시오.” 하고 엉뚱한 말을 했다.
부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라훌라의 손목을 끌고 성밖에 있는 니그로보다 정사로 가셨다.
부처님께서 제자인 사리풋타에게 “이 아이를 출가시켜라.” 하고 일렀다.
마침내 라훌라도 아버지인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게 된 것이다. 물려줄 재산은 물질적인 재산이 아니라 법의 재산이었던 것이다. 나이 어린 손자까지 출가한 것을 본 왕의 비통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리하여 나중에 슛도다나왕은 부처님께, 이제부터 미성년자의 출가는 부모의 허락을 얻도록 하자고 제의했고, 부처님도 그 의견을 받아들이셨다. 부처님이 카필라에 계시는 동안 난다와 라훌라 외에도 오백명에 가까운 귀족 청년들이 출가하였다.
출가하는 청년들은 이발사인 우팔리에게 그들이 지니고 있던 패물을 내주었다. 오랫동안 신세진 갚음이었다. 그러나 이 우팔리도 받았던 패물을 내버리고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후세에 계율 지키기에 으뜸이라고 존경받는 우팔리 존자는 바로 이 카필라의 이발사였다.
이 무렵 또 두 형제가 출가하였다. 그들은 야쇼다라의 형제였다. 이 두 형제 가운데서 아난다는 일생을 바쳐 부처님을 공경하고 시봉하였으나, 다른 한 형제인 데바닷타는 부처님 교단에 반역하여 부처님을 괴롭혔다. 카필라와 이웃나라 콜리 사이에는 로히니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 콜리는 예전부터 카필라와의 국교가 매우 두터운 사이였다. 같은 사캬족인데다 싯다르타를 낳은 마야 왕비와 그를 길러 준 마하파자파티, 그리고 태자비 야쇼다라까지도 모두가 콜리 출신 이었다. 두 나라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업국이었으므로 농사철에는 물이 많이 필요했다.
그런데 어느 해 여름 가뭄이 몹시 들어 로히니 강물은 바닥이 나고 강변에 있는 저수지 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카필라와 콜리 사람들은 저수지 양쪽에서 서로 물을 끌어들이려다가 큰 싸움이 벌어졌다. 양편이 다들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살기가 등등하여 서로 맞붙어 싸우려고 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부처님은 급히 로히니강으로 나가셨다. 부처님을 보자 그들은 들었던 연장을 놓으며 합장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은 물과 사람, 이 둘 중에 어느 편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사람이 더 소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물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내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아마 몇 사람이 크게 다쳤을지도 모릅니다. 이 일은 싸움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셨다.
“옛날 깊은 산 속에 사자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자가 하루는 큰 나무 아래 누워 있을 때 바람이 불어 나무 열매가 사자의 얼굴에 떨어졌습니다. 사자는 잔뜩 화를 내며 꼭 혼을 내줘야지 하고 별렀습니다. 그런지 사흘째 되던 날 한 목수가 수레바퀴에 쓸 재목을 찾아 이 산으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사자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수레바퀴에 쓸 재목이라면 이 큰 나무를 베어 가시오’ 하고 목수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목수는 사자의 말대로 그 나무를 베었습니다. 그랬더니 넘어진 나무는 목수에게 ‘사자의 가죽을 바퀴에 쓰면 아주 질깁니다’ 라고 속삭였습니다. 목수는 마침내 곁에 있던 사자도 잡아 버렸습니다. 사자와 나무는 이와 같이 하찮은 일로 다투어 자기의 목숨까지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자 양쪽 사람들은 저마다 부끄러워하면서 뿔뿔이 흩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