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부처님의 생애
제1장 출가 이전
- 결혼
싯다르타가 열아홉 살이 되자 부왕은 서둘러 태자비를 물색하기로 했다. 태자는 결혼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부왕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한편 부왕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부왕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가문 좋고 아름답고 슬기로운 규수를 물색한 끝에 같은 사캬족 대신의 딸 야쇼다라를 태자비로 정했지만, 싯다르타에게는 결혼이라는 것이 전혀 남의 일 같아서 좀처럼 실감이 들지 않았다.
태자는 결혼한 다음에도 여전히 사색에 잠기건 침울한 생각에 빠질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슬기로운 야쇼다라는 보다 상냥하게 태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정성을 다했다. 그러나 행복해야만 할 싯다르타는 날이 갈수록 무엇엔가 마음을 잃은 듯 침울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잦았다. 수많은 궁녀들이 그의 둘레에 몰려들어 춤과 노래로 위로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 같이 자리잡은 생각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싯다르타 역시 쾌락의 재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쾌락 뒤의 공허를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고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행복하다면, 그도 역시 마음놓고 쾌락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자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의 덧없음을 몸소 겪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싯다르타의 눈을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로 돌리게 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살아있다고 하지만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죽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젊고 아름다운 사람을 볼 때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그가 늙었을 때의 추해진 모습이 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그런 생각을 잠재우려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 인생의 근원적인 병을 앓고 있었다. 아내인 야쇼다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가 뒷날 부처님이 되었을 때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병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앓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어서 피해 버린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앓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앓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병든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또 어리석은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늙은 사람을 보면 싫어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노인을 싫어하지 않는다.’
싯다르타는 그때 젊음 속에서도 늙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병들어 앓다가 죽어가는 모습도 보았다. 괴로움을 짊어지고 시시각각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깊은 사색 속에서 역력히 보았던 것이다. 태자의 기억 속에는 또다시 전에 성문 밖에서 만났던 사문의 모습이 떠올랐다. 문득 그 사문을 다시 만나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무렵 싯다르타는 야쇼다라가 곁에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주 명상에 잠겼었다. 결혼 생활도 태자의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싯다르타의 나이 스물아홉이 되었다. 야쇼다라와 결혼한 지도 벌써 십 년이 지났다.
어느 날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결혼 때문에 출가가 십 년이나 늦어졌구나. 이러다가는 몇 해가 더 늦어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지금 자꾸 늙으며 죽음으로 점점 가까이 가고 있는데…’
싯다르타의 마음은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살다 죽는다면 아무런 보람도 없으리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의 앞에는 하나의 길이 훤히 열렸다. 그 순간 싯다르타는 혼자서 외쳤다.
‘그렇다! 나도 출가 사문의 길을 찾아 나서자.’
마침내 싯다르타의 마음에 출가할 결심이 서게 되었다. 이제는 어느 누가 말린다 해도 자기는 출가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굳게 결심했다.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지금까지 괴로웠던 번민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 이미 출가를 결심한 싯다르타는 이제 남은 것은 시기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 자기가 떠나버린 뒤의 일들을 생각하니 한가닥 불안이 잇따랐다.
‘부왕의 실망이 얼마나 클 것인가. 다행히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게서 태어난 동생이 있으니 왕위를 계승하는 문제는 걱정이 없다. 그러나 내가 출가해 버린 걸 아신 부왕은 얼마나 애통해 할 것인가. 그리고 아내 야쇼다라는 또 얼마나 슬퍼할 것인가.’
이런 생각 때문에 싯다르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후일 부처님은 이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젊은 청년으로서 머리는 검고 청춘의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앞에는 영화로운 임금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영원한 진리를 찾아 부모와 아내가 눈물로써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인생의 봄을 등졌던 것이다. 나는 왕궁을 빠져나와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후 출가 사문의 길을 떠났었다.’
그때 싯다르타의 심경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한편 슛도다나왕은 아시타 선인의 예언이 다만 예언으로 끝나 주기를 바랐다. 자기의 왕위를 이어 받아 훌륭한 임금이 되어 주기만을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태자의 이름을,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싯다르타라고 지은 것도 그러한 왕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할 것을 결심한 태자는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부왕 앞에 나타났다.
“저는 아무래도 사문의 길을 가야겠습니다. 저에게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
이말을 듣는 순간 왕은 눈 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아들의 뜻을 돌려보려고 했다.
“사랑하는 태자야, 무슨 소원이든지 다 들어줄 터이니 제발 출가할 뜻만은 버려다오.”
“그러시다면 저에게 한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오, 그 소원이란 대체 무엇이냐?”
“이 소원만 이루어 주신다면 저는 출가의 뜻을 버리겠습니다.”
슛도다나왕의 얼굴에는 밝은 빛이 감돌았다.
“어서 그 소원을 말해 보아라.”
왕의 표정과는 달리 싯다르타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나직하면서도 힘있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제 소원은 죽음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늙고 죽어가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면 저는 이 자리에서 출가의 뜻을 버리겠습니다.”
이말에 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너무도 진지하고 슬픈 태자의 표정을 보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모든 소원을 다 들어 주겠다던 왕도 그러한 태자의 소원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국왕인 자신도 늙음과 죽음 앞에서만은 너무도 무력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 것이다.
마음의 준비도 굳게 되었고 왕에게도 출가의 결심을 알린 뒤라 싯다르타는 이제 왕궁을 떠날 기회만을 찾고 있었다. 태자는 아내 야쇼다라와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게는 출가의 결심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미리 알려 줌으로써 연약한 여인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이 무렵 궁전 안에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야쇼다라가 아들을 낳은 것이다. 슛도다나왕은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곧 분부를 내려 큰 잔치를 베풀고 왕손의 탄생을 축하하도록 했다. 그런데 정작 이 경사를 기뻐해야 할 싯다르타는 이날따라 그 자취가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릴 무렵에야 그는 궁전으로 돌아왔다. 그날도 숲속에 들어가 온종일 혼자 명상에 잠기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궁전 앞에 이르러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즐거워하는 광경을 보자 비로소 궁중에 경사가 일어난 줄을 알았다.
자기에게 아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싯다르타는 ‘오, 라훌라!’ 하고 탄식했다. 라훌라는 장애라는 뜻이다. 자기의 갈 길을 막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를 얽어 맬 인정이 또 하나 태어났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얼마나 괴로웠기에 자기 아들의 탄생을 보고 라훌라라고 했을까.
이때 태자가 탄식한 말은 그대로 어린아이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라훌라라고 탄식을 했지만 한편 이제야말로 기회가 왔다고 결심했다. 왜냐하면 그때 인도의 풍습으로는 대를 이을 후계자가 있어야 출가가 떳떳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