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

국보 제84호 다보탑

국보 제85호 석가탑

국보 제86호 사리탑

국보 제87호 연화교 칠보교

국보 제88호 청운교,백운교

국보 제89호 석굴

국보 제96호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제97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모두 여덟 개의 국보를 비롯하여 수많은 보물과 지방문화재, 중요문화재 등을 간직한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27년(540)에 처음 창건된 이래 진흥왕 36년(575)에 중창을 거치고 경덕왕10년(751)에 재상 김대성이 국가의 부흥과 부모의 행복을 위해 전당과 요사 70여 채를 짓고 석가탑,다보탑,청운교, 백운교 등 27개의 석조물을 세워 어엿한 대사람이 되었다.

2천여칸이 넘는 거대한 사찰이 된 것이다. 이 사찰은 신라의 장인들이 세운 게 아니고 아사달이라는 백제의 유명한 석공이 공사를 도맡아 했다. 아사달은 백제의 조정에서 보낸 사람이었다.

아사달은 아사녀라는 아내를 두고 있었으나 지엄한 왕명을 어길 수 없어 홀로 떠나와 불국사 중 창불사에 전력했다.

지아비를 떠나 보내고 홀로 남은 아사녀는 남장으로 변복하고 백제의 경계를 넘었다. 백제의 수도 공주에서 서라벌까지는 8백여 리나 되는 먼 길이었다. 그녀는 배고픔과 목마름도 잊었다. 오로지 남편인 아사달을 만난다는 꿈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보름 동안을 걸었지만 아직도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아사달을 만나 보지도 못하고 중도에서 죽는 것은 아닐까? 아니야, 그럴 순 없어. 절대로 중도에서 죽어서는 안돼. 어떻게든 아사달을 만나야 해.’ 아사녀는 다시걸음을 재촉했다.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냇물을 건너면서도 거기서 아사달을 보았고 녹음이 우거진 산길에서도 떠오르는 것은 아사달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아사달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었다.

아사달이 없는 세상은 어둠이었다. 그녀는 두 살위인 아사달에게 시집을 왔다. 시집온 지 석 달 만에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아직 신혼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정이 들 대로 들어 있었다.

아사녀는 그험한 길을 걸어 드디어 서라벌에 도착했다. 그녀는 아사달이 중창을 맡고 있다는 불국사 앞에 이르렀다. 울창한 소나무 숲 저편에 불국사가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더 다가갈 수가 없었다. 병사들이 창과 칼을 들고 잡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저 절에서 공사를 도맡아 하는 사람이 제 남편 아사달입니다. 지어미가 지아비를 만나고자 하는데 구태여 안 될 것은 무엇인가요?” 병사는 막무가내였다. “안 됩니다. 잡인을 금하라는 어명입니다.

여자는 더욱이 안 됩니다. 정 아사달을 보고 싶으면 이곳 연못에 비친 그림자를 보십시오. 당신의 남편 아사달이 석가탑을 세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게요.” 그녀는 연못가로 한걸음 다가갔다. 그러나 횐구름만 온 연못을 차지했을 뿐 석가탑도 아사달도 보이지 않았다.

“아사달이 보이지 않아요. 석가탑도 보이지 않구요.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의 흰 구름 그림자만 있을 뿐이에요. 제발 부탁입니다. 지아비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저는 천리길을 걸어 공주에서 예까지 왔습니다”

“다시 한번 들여다 보십시오. 반드시 석가탑과 그를 조선하는 아사달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댁이 아무리 사정을 해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딱한 사정도 이해해 주십시오” 오히려 병사쪽에서 애원을 해왔다. 아사녀는 연못가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병사는 오래 서있는 것도 지쳤는지 선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녀는 이때다 싶어 불국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아사달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아사녀는 아사달을 붙잡기 위해 난간 가까이로 다가갔다. 환영이었다. 그는 아사달이 아니라 불국사의 스님이었다.

“스님,저는 공주에서 온 아사녀라 합니다. 저의 지아비 아사달이 이곳 불국사에서 석가탑을 세우고 있습니다. 한 번만 만나게 주선해 주십시오.” 스님은 단주를 든 손을 합장하며 말했다. “나무 관세음보살. 아사녀,그대의 애끓는 심정을 왜 모르겠소. 하지만 아직은 때가 이르오이다.” “때가 이르다니요?스님.” “연못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보시오. 석가탑과 아사달의 일하는 모습이 분명 보일것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아사녀는 연못으로 뛰어갔다. 연못을 아무리 들여다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그때 스님이 난간에서 말했다.

“아사녀, 그대가 지아비 아사달을 만나려는 생각은 한낱 오욕에 불과하오. 오욕은 영원한 것이 못 됩니다.

진정 온갖 욕정을 모두 놓아버렸을 때 그대의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오. 그러니 자기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는 기도를 계속하도록 가피하셔서 말이오.” “관세음보살님이 가피?” “그렇소. 아사달은 마음을 텅 비우고 지금 석가탑을 쌓는데 온갖 정열을 다 기울이고 있소. 그대도 그대의 지아비 아사달을 따라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시면 가능할 것이오.” 그녀는 스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경건한 마음을 가졌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염주를 힘있게 잡았다. “관세음보살님, 제 남편 아사달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관세음보살님은 모든 중생의 고통을 지혜로 살피시고 자비로 어루만진다 하셨습니다.

이 가엾은 여인의 소원을 들어 주옵소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어둠이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다. 어둠은 먼 곳으로부터 오는게 아니라 아사녀의 주변에서부터 먼 곳으로 퍼져 나갔다.

아사녀의 주위는 어두웠지만 아직도 먼 하늘은 희끄부레 열려 있었다. 별들이 시커먼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그녀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불국사 경내에 울려 퍼지는 경건한 목탁소리는 소나무 숲에 부딪치면서도 깨지지 않은 상태로 아사녀의 주위를 맴돌다 사라지곤 했다. 그녀는 염불삼매에 깊이깊이 빠져 들었다.

관세음보살이 아사달이 되었다가 관세음보살이 되고 다시 아사달이 되었다.

그녀는 관세음보살을 염했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아사달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의식은 점점 아스라해졌다.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고 나면 아사녀는 어김없이 동구 밖으로 나가곤 했다. 아사달이 일터에서 돌아오는 것을 마중하기 위해서였다. 뒷산 절에서는 저녁 예불 범종소리가 들려왔다.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잘거리는 동네 꼬마들의 웃음소리도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송아지가 어미를 찾는 소리가 끼어들기도 했다. 어둑어둑한 저편에서 아사달이 뛰어왔다. 그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초저녁 어둠 속에서도 느낌으로 상대방을 알았다. “집에서 기다려도 될 텐데 왜 예까지 나왔소? 누가 당신을 납치하기라도 하면 어쩔려구?” “그럴 염려는 없어요,아사달.” “그걸 어떻게 장담하오?” “관음경을 읽어 보니까 그렇게 나와 있었어요. 관세음보살을 인념으로 부르는 사람은 도적들의 난도 피할 수 있고 어떠한 삼재팔난의 어려움 속에서도 구원이 된다고 했구요.” 아사녀는 염주를 들어 아사달에게 내보였다.

아사달은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어 아사녀를 꼭 껴안고 입맞춤을 했다. “아이,누가 보면 어떻게 해요.” “보긴 누가 보겠소? 이 어두운데. 또,보면 어떠하오. 우리는 부부가 아니오.” 아사녀는 아사달의 넓은 가슴이 좋았다. 그의 굵직한 팔이 그리고 억센 힘이 좋았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밤새도록, 아니 평생토록 그 자리에서 안겨 있고 싶었다. 차라리 돌이 되고 싶었다.

“집에서 기다리기가 너무 지루해요. 당신이 일터로 나가고 나면 그 순간부터 오직 당신을 기다리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당신은 모르실지도 몰라요. 세상의 모든 아내가 다 그렇겠지만 제가 아사달 당신을 기다리면서 하루를 넘기는 것이 얼마나 간절하고 소중한지를.” 둘은 팔짱을 끼고 걸었다. 그러다가 한쪽 팔로 허리를 두르고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이토록 신날 수 있으랴. 아사달도 아사녀가 동구 밖까지 마중을 나오는 게 여간 반갑지 않았다.

그는 부처님에게 감사했다. 이토록 아름답고 마음씨 고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준 데 대한 고마움이었다. “난 역시 복이 많은 놈이야. 아사녀를 아내로 맞이하다니, 하여간 장가 하나는 잘 간 거야.” 아사달은 멈춰 서서 다시 한번 으스러져라 아사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아사녀는 아사달의 그런 갑작스런 행동이 전혀 싫지가 않았다. “아사녀! 일이 곧 끝나고 나면 당신과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게 되오.” 그러나 아사달은 또 떠났다. 이번에는 신라의 수도 서라벌이었다. 아사달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사녀는 자신의 생애가 끝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아사달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그러나 손에 남아 있는 것은 백팔염주뿐이었다. “아사달!” “아사다알” “아사다아아아알!” 그녀의 애절한 외침은 어두운 숲속으로 퍼져나갔다. 메아리는 없었다.

아사녀는 자신의 외침이 되돌아오지 않는 데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그녀는 울리지 않는 메아리를 찾아 나섰다. 숲속을 헤치고 잿물을 건너고 바위를 기어 올랐다. 어디에도 메아리는 없었다.

그녀는 아사달을 부르며 정신없이 뛰었다. 돌다리를 건너니 파수 보는 병사가 창을 누이며 가로막았다. “어디를 가시오?” “지아비를 찾아 백제 땅 공주에서 온 아사녀라고 하옵니다. 제 남편 아사달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병사는 완강했다. “안 됩니다. 절이 완공되기 전에는 아무도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이는 지엄하신 어명이기 때문이오, 여자는 더더욱 안 됩니다.” 불국사 담을 끼고 돌며 아사달을 찾던 아사녀는 약간 허술한 곳을 발견했다.

그녀는 담을 넘었다.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주위를 살피며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아사녀는 석공들의 방이 즐비한 가건물로 발자국소리를 죽여 가며 걸음을 옮겼다. 불 켜진 방이 딱 하나 있었다. 아사녀는 발을 돋우고 창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순간 그녀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꿈에도 그리던 지아비 아사달이 거기 있었다.

아사달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가부좌를 맺은 것으로 보아 명상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방 한쪽 구석에는 아사녀의 초상화가 세워져 있었다. 백제땅을 떠날 때 유명한 화공에게 부탁하여 그린 것이었다. 초상화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사녀는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손등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자신의 초상화를 보았다. 거기에 눈물은 없었다. 인기척을 느낀 아사달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쩜 저렇게 멋있는 남자가 있을까. 아사달은 누가 뭐래도 참 멋진 남자야 어머나! 저 거동 좀 봐. 꼭 황소가 움직이는 것 같애.’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문이 열리고 아사달이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아사녀! 당신이 어떻게 이곳에… 난 정말 당신이 보고파 미칠 지경이었소. 아무튼 잘 왔소.” “아사달! 얼마나 찾아 해맸는지 몰라요. 당신을 찾아 오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아세요? 흐흑, 미워요!” 아사녀는 아사달의 품에 안기면서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콩닥콩닥 때렸다.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나라에 매여 있는 몸이니 어쩌겠소? 우선은 잊읍시다.” 둘은 오랜만에 뜨거운 포옹을 했다.

기쁨과 슬픔이 그들 사이를 끝없이 왕래했다. 아사녀는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은 두 사람을 위해 멈추지 않았다. 새벽이 열리고 있었다. 범종이 울었다.

새벽의 어둠을 찢고 밝음을 향해 멀리멀리 사라져 갔다. 종을 떠난 소리는 다시는 종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따르르르륵, 목탁이 울었다. 새벽을 깨우는 소리였다. 밤새 질탕하게 판을 벌이고 놀던 어둠들이 스멀스멀 기어 달아나고 있었다. 아사달의 얼굴에 불안이 얼핏 감돌았다.

아사달은 한숨을 쉬었다. 왕명만 아니라면 그대로 아사녀와 함께 돌아가고 싶었다. 백제 땅이든 신라 땅이든 아니면 중국이나 일본이라도 좋았다. 둘이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아사달! 뭔가 안색이 안 좋은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에요?” “아사녀, 나도 당신과 함께 있고 싶소. 그러나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하오. 곧 석가탑이 완성될거요. 나는 일하러 나가야 하오. 무엇보다 당신을 만난 것이 발각되면 당신도 나도 끝장이오. 그러니 사람들이 다 일어나기 전에 어서 이곳을 빠져 나가구려. 아사녀는 아사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다. 부처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아사달이 그녀를 떼어 내며 말했다. “아사녀, 나를 기다리기가 지루하고 견딜 수 없거든 절 앞에 있는 영지를 들여다 보시오. 불국사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비친다고 해서 영지라고 한다오. 내가 쌓아 올리는 석가탑도 보일 것이오.” 아사달의 모습은 점점 멀어져 갔다. 아무리 그녀가 잡으려 쫓아가도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사녀는 안간힘을 다해 아사달을 불렀다. “아사다아아알…” 꿈이었다.

이제까지 그녀는 염불삼매에 들어 관세음보살을 부르던 것이 아사달을 불러왔던 것이다. 그녀의 몸은 땀에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리고 이미 아침이었다. 연못은 그하얀 비늘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연못가로 다가갔다. 한 걸음 다가가 연못을 들여다 보았다.

다시 한 걸음 다가가 연못을 살펴보았다. 거기 불국사가 비치고 있었다. 다보탑도 보였고 아사달이 쌓아 올린다는 석가탑도 일부 기단이 비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사달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한 걸음 더 다가가 연못 둑에 섰다. 일렁거리는 수면 위로 그녀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그 얼굴은 금세 아사달의 얼굴로 변했다가 다시 아사녀의 얼굴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사달의 환한 얼굴이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아사녀도 두 팔을 벌리며 아사달을 불렀다. 그의 넓은 가슴과 억센 팔에 안기고 싶었다. 아사녀는 아사달의 품을 향해 달려들었다. “풍덩.” “아사다아아아알알알알!” 그녀의 외침이 한 번 수변 위로 올라오고는 다시는 없었다. 연못은 다시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는 다만 흰구름과 불국사가 비칠 뿐이었다.

아사녀의 그리움과 슬픔과 애절한 외침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석가탑은 완성 되었다. 바로 그 시각에. 아사녀의 죽음을 안 아사달도 연못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아사녀를 부르는 긴 외침이 불국사 경내 구석구석에 메아리쳤다.

그후 석가탑은 영지에 서서 귀를 기울이면 천2백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절한 외침이 들린다고 하는데, 단 사랑하는 부부가 함께 들을 때만 들린다고 한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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