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사와 십팔 나한

보문사와 십팔 나한

신라 진덕여왕(647–653 재위) 3년, 4월의 일이다.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에 사는 어부들은 새봄을 맞아 출어 준비를 끝내고 만선의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출어 준비를 마친 어부들은 풍어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다.

보문사에 올라가 고사기도를 마치고 그들은 바다로 나갔다. 4월의 미풍은 바다의 찝질하면서 풋풋한 내음을 싣고 와 머리카락을 흩날렸고 피부를 간지럽혔다. 고기잡이에 알맞게 출렁이는 물결은 봄햇살을 받아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그물만 넣으면 금방이라도 고기가 그득 담겨 올라올 것 같았다.

“오늘은 날씨가 이렇게 화창한 것을 보니 고기가 그런대로 잡힐 것 같군. 자네들은 기분이 어떤가?” “글쎄, 나도 오늘은 꼭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네.” “날씨가 참 좋군 그래.” “우리 한 번 멋지게 낚아 보자구.” 그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그물을 바다에 던졌다. “여보게 우리가 그물을 던지니, 바람 한점 없네.” “그러게 말이야. 하늘이 우릴 도우려는 건가 보군.” “대단히 큰 고기가 걸릴 거야.” 어부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그들은 다 함께 뱃노래를 불렀다.

달은 밝고 명랑한데 어야디야 고향 생각 절로난다.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어기야디야 에헤 에헤헤헤 에헤헤헤야 에헤에헤 에헤아어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넘실대는 파도 위에 어야디야 갈매기 떼 춤을 춘다.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어기야디야 에헤 에헤헤헤 에헤헤헤야 에헤에헤 에헤아어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순풍에다 돛을 달고 어야디야 원포귀범 떠들어온다.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어기야디야 에헤 에헤헤헤 에헤헤헤야 에헤에헤 에헤아어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노래소리는 바람에 실려 멀리 멀리 퍼져 나갔다. 그물이 묵직했다.

“아니, 그물이 왜 이렇게 묵직하지?” “아마 큰 고기가 걸렸나 보이.” “자, 어서 끌어올려 보세.” “아, 그것 참 신나는군 그래.” 어부들은 난생 처음 대어가 낚일 것을 기대하면서 그물을 천천히 끌어 올렸다. 그물이 물 위로 오르자 어부들의 얼굴에는 긴장의 빛이 감돌았다. 무게로 보아 큰 고기임에 틀림없었다. 이윽고 그물은 건져 올려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부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대어라고 기대했던 것이 큰 고기는 고사하고 펄쩍펄쩍 뒤는 멸치 한 마리 잡히지 않았다. 대신 거기에는 인형처럼 생긴 돌들이 가득했다. 모두 스물두 개나 되었다. 어부들은 낚아 올렸던 돌들을 모두 바닷속에 던져 버렸다. “재수 옴 붙었군 그래.” “예끼, 이 사람, 말이 좀 심하군.” 어부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농지거리를 하며 스스로 실망으로부터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그물을 던졌다. 이번에는 반드시 큰 고기가 잡힐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물은 또 무게를 지니고 손끝에 다가왔다. 아마도 큰 고기가 걸렸음에 틀림없었다. “혹시, 또 돌덩이가 아닐까?” 한 어부가 말하자, 다른 어부가 말을 받았다. “예끼, 이 사람, 재수 없는 소리 하지도 말게.” 다른 어부가 말했다. “아무튼 끌어올려 보세.” “그러세. 힘껏 당겨 보자구.” 어부들은 다시 힘을 다해 그물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단 한 개도 빠지지 않고 스물두 개의 돌 인형이 건져 올려진 것이다. 그들은 돌 인형들을 바다에 던지고 돌아가려 했다. 아무래도 고기잡이하는 날을 잘못 잡은 탓이라고들 생각했다. 그때 한 늙은 어부가 말했다. “삼세번이라 하지 않던가. 우리 한번 더 그물을 던져 보고 그때 만약 돌덩이가 또 걸려 오면 버리고 가세.” 어부들의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한녘에서는 그래도 한 번 더 낚아 보고 가자고 했다. 그들은 그물을 한 번 더 던져 보자는 의견으로 마침내 일치를 보았다. 그물을 던졌다. 앞의 두 번과 똑같은 무게를 느꼈다. 그렇지만 ‘이번에’하는 마음으로 그물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스물두 개의 돌 인형만 건져 올린 것이다. 이제 그들은 놀라지도 않았다. 당연한 일인 양 받아들였다. 그들은 다시 돌 인형을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뱃머리를 돌려 뭍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빈손으로 돌아온 어부들은 한결같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 하얀 수염을 흩날리는 노인이 나타나서는 그들을 꾸짖었다. “너희는 어찌하여 그 귀중한 것들을 세 번씩이나 바다에 다시 던졌느냐?” 어부들은 모두 똑같은 꿈을 꾸었기 때문에 각자 자기네 집에서 같은 시각에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귀중한 거라니요? 그냥 돌 인형일 뿐이던데.” 노인이 말했다. “하여간 내일 다시 그물을 치거라.

그때 그 돌 인형들이 건져지면 명산에 잘 봉안하고 공양하도록 하여라. 반드시 길한 일들이 있을 것이니라.” 다음날 아침 어부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한 어부가 꿈얘기를 하자 나머지 다른 어부들도 이상한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똑같은 꿈들을 꾸었다고 했다. 한 어부가 말했다. “이상하게도 꿈이 모두 동일한 걸 보니, 무슨 좋은 조짐이 있을 것 같네. 우리 그 노인의 지시대로 해 보세.” 다른 어부들이 합창하듯 말했다. “그렇게 하세.” 곧 그물을 던져, 돌 인형들을 끌어올렸다.

하나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는 스물두 개 그대로였다. 어부들은 노인이 일러준대로 그 돌 인형들을 싣고 마을로 돌아왔다. 그 마을에선 보문사가 있는 낙가산이 명산이었다. 그들은 그 돌 인형들을 낙가산에 봉안하기 위해 옮기기 시작했다. 보문사 앞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잠시 쉬어 가기로 하고 그 돌들을 내려놓았다. 한숨을 돌리고 일어서려는데 돌이 갑자기 무거워져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 중 누가 말했다. “참 이상도 하군. 아무래도 이곳이 신령스런 장소인가 보이. 우리 여기에다 이 돌 인형들을 모심이 어떻겠소?” 다른 어부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스물두 개의 돌 인형들이 석굴에 봉안되었다.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내려와 이곳 낙가산에 보문사를 창건하고 관음보살을 모신지 14년째 접어드는 해였다. 낙가산이란 이름도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보타낙가산에서 따다 지은 것이며, 보문사란 절 이름도 관세음보살의 보문시현에서 따다 지은 이름이었다.

어쨌든 이들 스물두 분의 돌 인형은 스물두 분의 나한상이 되었다. 인형이 나한이 된 게 아니라 본디 나한상으로 조각된 것이었다. 즉, 석굴법당의 3존을 비롯하여 한분의 나반존자와 열여덟 분의 나한상을 봉안한 것이다. 그후 이 석굴법당은 신통스런 영험이 많았다하여 ‘신통굴’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보문사 법당에는 옥등잔이 있었다. 기름을 준비한 한 사미가 석굴법당으로 옥등잔을 갖고 갔다. 안이 너무 어두웠기에 등잔이 필요했던 것이다. 등잔에 그름을 붓고 불을 켜 탁자에 올려 놓다가 그만 잘못하여 등잔이 깨지고 말았다. 사미는 당황했다. 뒷 수습을 할 생각도 없이 그냥 제 방으로 뛰어들어와 울고 있었다.

그 옥등잔은 사중의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다. 대중스님들이 그 연유를 물으니 사미는 울면서 옥등잔이 깨졌다고 했다. “뭐야? 옥등잔을 깼다고? 이것 큰일이군. 우리 절의 가장 소중한 보물을 깨 먹고 말았다니.” 다른 스님이 말했다. “그럴 게 아니라 우리 석굴법당으로 가 보세. 원 이거야 참.” 그들이 석굴법당에 도착해 보니 깨졌다던 옥등잔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금 하나 간 데가 없었다. 아주 멀쩡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보문사에 도둑이 든 적이 있었다.

도둑은 법당의 향로, 다기, 촛대 등 유기그릇 일체를 훔쳐 달아났다. 도둑은 무거운 유기그릇을 짊어지고 밤새 달아났다. 새벽녘이 가까울 무렵 도둑은 유기그릇을 내려놓고 혼자 중얼거렸다. ‘아무리 못 와도 70, 80리는 족히 왔을 터, 이젠 안심해도 되겠지.’ 마침 그 때 범종소리가 들렸다. 새벽 예불을 알리는 것이었다. 도둑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제 보니 여기도 절이구먼.” 그는 유기그릇을 짊어지려다 다시 보니 아직도 보문사 경내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고 또 한 번 놀랐다. 그때 누가 덜미를 덥썩 잡았다. 뒤돌아보니 보문사 스님이었다. “스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밤새도록 걸었는데 아직 보문사 도량도 벗어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게 다 우리 절 석굴법당에 계신 나한님들의 신통이지. 어서 그 유기그릇이나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으시게.” 도둑은 그 후 착한 불제자가 되었고 나한을 바다에서 건져올린 어부들은 모두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지방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천연동굴 법당은 세 개의 홍예문으로 되어 있는데 석실의 내부는 높이가 8자에 거의 백여 평에 달하는 넓이를 갖고 있다.

반월형 좌대를 설치하고 탱주(돌기둥)가 있으며 그 사이 스물한 개의 감실에 한 자 정도 크기의 석불과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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