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주암산에는 여러 성현들과 수도하는 스님들이많이 살고 있었다.
각국에서 이런 소식을 듣고 공양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느 날 어떤 장자가 많은 식구들을 거느리고 주암산 스님들에게 공양하러 가고 있었다.
이때 걸식하여 사는 여자 한 사람이 이들의 일행을 보고 ‘지금 저 많은 장자들이 공양하러 가는 것을 보면 반드시 큰 법회가 열릴 것이다.
거기 가서 걸식해야 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그들을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때가 되자 과연 많은 음식이 차려지고 산중의 스님들이 모여 공양을 하는 것이었다.
걸식하는 여자는 한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많은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장자들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전생에 복을 닦았기 때문에 지금 부귀한 생활을 누리는데, 지금도 공덕을 짓고 있으니 앞으로는 더욱 훌륭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전생에 복을 짓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걸식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만일 걸식한다고 해서 복을 짓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욱 빈궁하게 될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에게 비상용으로 간직한 돈 두 냥이 있다.
설마 하루 이틀 굶는다고 해도 죽지는 않겠지. 돈 두 냥이나마 스님들께 보시하여 공덕을 지어보자.’
그리하여 스님들의 공양이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가 돈 두 냥을 보시하였다.
신도가 보시를 하면 원래는 유나스님이 축원을 하게 되어 있는데, 이날 따라
주지스님이 직접 축원을 하는 것이었다.
여러 스님들이 의아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모두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수군거렸다.
“거지가 주는 돈 두 냥에 직접 나서 축원을 해주는것을 보면 평소에 돈에 대한 탐욕이 대단히 많았구나.”
축원이 끝나자 주지스님은 그 여자에게 많은 음식을 싸주었다.
그녀는 잔뜩 배불리 먹고 남은 음식을 머리에 이고 ‘보시를 하니 당장 좋은 과보를 받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기쁜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배가 고팠던 차에 음식을 많이 먹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산의 중턱쯤의 어느 나무에서 쉬다 그만 깊은 잠에 빠졌다.
마침 이때가 나라의 왕비가 죽은 지 7일이 괴는 날이라 왕은 나라안에 사자를 보내어 후궁이 될만한 사람을 찾고 있던 중이였다.
사자가 어느 관상가에게 후궁이 될만한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더니 관상가가 점을 치고 난 후 말했다.
“저쪽 황금빛 구름이 감도는 곳에 가면 반드시 좋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사자가 관상가와 함께 그곳을 찾아가 보았더니 큰 나무 밑에 한 여자가 잠을 자고 있었다.
관상가가 그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비록 옷차림은 남루하나 피부 빛이나 얼굴 모습에 복덕이 두루 갖추어져 있음을 알았다.
“바로 이 여자가 왕후가 될 복덕을 타고났습니다.”
사자는 그 여자를 데리고 와서 깨끗이 목욕을 시킨 다음 왕비의 옷으로 갈아 입혔다.
그리고 1천 대의 수레와 1만 명의 기병들이 좌우를 호위하는 속에 그녀를 데리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왕은 그녀를 보더니 매우 흡족한 마음으로 그녀를 맞아들였다.
이렇게 뜻밖에 왕비가 된 그녀는 마치 꿈만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는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을 한번 조용히 되돌아보았다.
‘내가 왕비에 오르게 된 것은 스님들의 은혜 때문이다.
스님들을 보자 돈 두 냥을 보시하고 싶었고, 또 스님들이 나를 위해 축원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에는 스님들의 은혜가 있었음을 알게 되자 즉시 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매우 빈천한 몸으로 지금은 왕비의 자리에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스님들의 은혜 때문이오니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왕비는 왕의 허락을 맡은 후 많은 음식과 보물을 수레에 싣고 주암산으로 가서 스님들께 공양하였다.
왕비가 베푸는 음식과 보물이라 많은 스님들이 모여 큰 법회가 벌어졌다.
이를 바라보는 왕비의 마음도 매우 기뻤다.
그런데 왕비가 이 많은 음식과 보물을 싣고 왔는데도 오늘의 축원은 주지스님이 하지 않고 유나스님이 나와 축원을 올렸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왕비가 주지스님께 불만스럽게 말했다.
“제가 전에 돈 두 냥을 보시했을 때에는 저를 위해 직접 축원을 해주셨는데, 오늘은 많은 보배를 가지고 왔는데도 왜 축원해 주지 않습니까?”
그 옆에서 젊은 스님들도 이상하다는 듯이 서로 수군거렸다.
“전에는 걸식하는 여자가 돈 두 냥을 보시했는데도 직접 축원을 하더니, 지금은 왕비께서 보물을 수레에 싣고 왔는데도 축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망령이 들었나봐.”
이때 주지스님이 왕비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전에 돈 두 냥에는 축원을 해주더니, 지금은 보물을 많이 갖고 왔는데도 제가 직접 축원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이 크신 모양입니다.
우리 부처님의 법에는 보물을 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착하고 깨끗한 마음을 으뜸으로 여깁니다.
왕비께서 전에 돈 두 냥을 보시할 때에는 깨끗하고 착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지금 많은 보물을 가지고 왔을 때에는 뽐내려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왕비를 위해 축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주지스님은 이어서 젊은 스님들을 향해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젊은 스님들도 남을 비방하거나 불평불만을 가지지 말고 출가해서 수행하고 있는 뜻을 깊이 깨닫고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시오.”
여러 스님들은 물론 왕비도 주지스님의 말을 듣고 깊이 뉘우침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잡보장경)
우리 불자들은 절에 가서 부처님에게나 스님들에게 잦은 보시를 행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보시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는 불자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설화는 무엇이 참된 보시며, 공덕이 되는가를 분명하게 일러주고 있다
우리 불자들도 깊이 음미하고 깨달아 참된 보시의 참된 공덕을 쌓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