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구담미국의 미음정사로 가서 설법을 하고 계실 때였다.

이 나라는 우전와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 왕은 절조가 있으며 마음이 매우 어질고 착한 큰부인을 사랑하고 있었다.

왕은 부처님이 자기 나라에 오셔서 교화하신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함께 수레를 타고 부처님께 갔다.

부처님은 국왕과 부인, 시녀들을 위하여 모든 것은 덧없고 괴로우며, 사람이 태어나는 원인과 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지는 괴로움이 있다는 것과, 미운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에 대해 말씀하시고 나중에는 복을 지으면 하늘에 태어나고 악을 지으면 지옥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국왕과 부인은 그 자리에서 기쁜 마음으로 오계를 받고 신자가 되었다.

그 당시 이 나라에 길성이라는 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는 16세되는 딸을 두고 있었다.

이 딸은 천하일색의 아름다움을 타고 났다.

아버지의 이 딸에 대한 자랑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딸의 미모에 대해서 천 냥의 금을 상금으로 걸었다.

만약 90일 안으로 자기 딸에게서 흠잡을 데를 발견하는 자에게는 이 상금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도응하는 사람이 없을 만큼 그녀의 미모는 완벽했다.

그 딸이 장성하자 아버지는 시집보낼 자리가 고민거리였다.

‘누구에게 시집을 보내야 하나, 내 딸만한 사람이 있어야지!’

아버지는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들으니 석가의 종족인 사문 고타마가 세상에 드물게 얼굴이 황금빛이라고 한다.

내 딸을 그와 짝짓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생각이 떠올라 딸을 데리고 부처님께 찾아갔다.

“제 딸은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움을 타고 났습니다.

이제 장성하여 시집을 보내려 하오니 세상에는 제 딸의 짝이 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고타마께서 제 딸의 짝이 될 것 같기에 일부러 멀리서 찾아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처님은 빙긋이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 딸의 아름다움은 그대 집에서나 좋아하는 것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런 아름다움이 아니오,

그대는 딸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그것은 마치 아름다운 화병 속에 대소변을 담아 놓은 것과 같은데 무엇이 그리 기특하며, 어디가 그리 좋다고 하는가?

눈. 귀. 코. 입은 육신의 큰 도적이니 얼굴의 아름다움은 바로 큰 근심거리일 뿐이오.

집을 망치고 친족을 멸하며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해치는 것은 다 여색 때문이오.

나는 사문으로서 혼자 사는 몸인데도 항상 위태로울까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도족의 재물을 받겠소.

그대는 딸을 어서 데리고 가시오. 나는 받을 수 없소.”

이 말을 듣고 바라문은 화를 내며 돌아갔다. 그는 부처님의 처소를 떠나 곧장 우전왕에게 가서 자기 딸에 대해 소상히 설명한 뒤 왕에게 아뢰었다.

“제 딸은 왕비가 될 만합니다.

이제 장성하였기에 대왕께 바치고자 합니다.”

왕은 즉석에서 흔쾌히 받아들여 둘째 좌부인으로 삼고, 바라문 길성에게 금은등의 보물을 하사하는 한편 정승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왕비의 지위를 얻은 그녀는 세월이 흐르자 점차 큰 부인을 질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미모로 왕의 마음을 홀린 뒤 큰 부인을 모함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왕은 도리어 나무랐다.

“너는 얼굴의 아름다움에 비해 말이 공손하지 않구나.

중전의 품행은 높이 살 만한데 도리어 모함하는구나.”

그러나 왕은 이 둘째부인의 끊임없는 설득과 모함과 시기에 그만 마음이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하여 둘째부인의 사특한 간계와 애교에 미혹되어 큰 부인을 쫓아내기로 하였다.

“좋다, 앞뒤를 잘 봐서 재계 할때를 기회로 삼자.”

그러자 둘째 부인은 즉시 왕에게 청하였다.

“오늘 연회를 베풀어 놓고 큰부인을 청하도록 하소서.”

왕은 두루 영을 내려 모두 보이게 하였다.

그러나 큰부인은 재계를 지키느라 연회석에 참석하지 않았다.

세 번이나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화가 잔끅 난 왕은 큰부인을 끌고 오라 해서 궁궐 앞에 묶어 놓고 활을 쏘아 줄이려 했다.

그러나 큰부인은 조금도 두려운 기색이 없이 오직 부처님만을 생각에 두고 있었다.

왕이 직접 활을 쏘았다. 그러나 화살은 도로 왕에게로 돌아왔다.

다시 쏘았으나 마찬가리였다.

왕은 두려움에 떨면서 손수 결박을 풀며 물었다.

“너는 무슨 도술이 있기에 이런 이변이 일어나는가?”

“오직 부처님만을 섬기고 삼보에 귀의하면서 아침부터 재계를 지키고 오후에는 단식했으며, 또 여덟 가지 계율을 행하고 몸에는 장식을 달지 않았습니다.

지금 일어난 일은 필시 부처님께서 저를 가엾이 여기셨기 때문에 그런 줄로 아옵니다.”

왕은 즉시 둘째부인을 끌어내어 집으로 쫒아버리고 큰부인으로 하여금 궁중의 법도를 다스리게 하였다.

왕은 큰부인과 궁녀들 그리고 태자와 함께 수레를 타고 부처님에게 갔다.

왕이 부처님께 그 동안의 일을 사실대로 아뢰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얼굴이 요염하여 사람을 호린은 여자에게는 여든네 가지의 나쁜 태도가 있고, 또 여덟 가지의 아주 나쁜 태도란 첫째 질투요, 둘째 망령되이 화를 내는 것이며, 셋째 욕설을 해대는 것이요, 넷째 저주하는 것이며, 다섯째 남을 눌러 제압하려는 것이요, 여섯째 인색하고 탐심이 많은 것이요. 일곱째 장식을 좋아하는 것이요. 여덟째 독을 품는 것이오. 이를 여덟 가지 매우 나쁜 태도라 하는 것이오.”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왕과 부인, 궁녀, 신하들은 모두 마음이 열렸다.

이 설화는 현대에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다. 딸의 미모를 왕에게 팔아 치부를 하고 대신의 자리에 오른 아버지의 비인륜적인 처사는 우리들 귀에도 그리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교양과 인품이 없는 민인들의 작태가 다 그러하듯이 이 설화의 미인 역시 질투와 모함을 일삼다가 쫒겨가는 모습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인상이다.

장자도 “아름다운 여인은 스스로 아름답다고 교만을 부리므로 아름답게 여겨지지 않으며, 못난 여인은 스스로 못났다고 겸손해 하므로 못났다고 여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구약성서에도 이런 말이 있다.

“아름다운 여인이 겸손하지 않으면 마치 돼지코에 금고리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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