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해서 수행하는 이유
옛날에 난타왕이 있었는데, 그는 총명하고 박식하며 모든 일에 두루 통달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에서 자기를 능가할 자가 없다는 자만심을 갖고 있었다.
하루는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지혜를 뽐냈다.
“혹 나와 문답을 해서 나를 이길 만한 사람이 있으면 데려오라.”
한 신하가 일찍부터 한 늙은 비구를 집에 모셔다가 극진히 공양하고 있었다.
그 비구는 계행은 잘 지켰으나 배움은 그리 많지 않았다.
비구는 그 신하의 말을 듣고 자기가 왕에게 가서 직접 문답을 해보겠다고 하여 왕 앞에 나왔다.
왕이 비구에 물었다.
“도를 닦으려면 집에서도 가능한가, 아니면 집을 떠나야 되는가?”
“집을 떠나든 떠나지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집을 떠나는가?”
이 말에 비구는 대답이 꽉 막히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난타왕은 더욱 교만해졌다.
왕은 그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사람을 시켜 그릇에 우유를 가득 채워 나가사나에게 보냈다.
왕은 그것을 보내 놓고 혼자 ‘내 지혜를 능가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병에 가득 찬 우유를 받은 나가사나는 즉시 왕의 뜻을 알아차리고 제자를 시켜 바늘 5백 개를 묶어 우유 그릇에 꽂게 했다.
그러나 우유는 넘치지 않았다. 그것을 그대로 왕에게 돌려보냈다.
왕은 바늘이 꽂힌 우유 그릇을 받자 즉시 그 뜻을 알아차리고 사자를 보내어 나가사나를 청하였다. 나가사나는 왕의 청을 받고 길을 떠났다.
나가사나는 키와 몸집이 매우 장대하여 어디를 가나 특출하게 뛰어났다.
왕은 호탕한 기질에다 교만한 마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사냥을 핑계삼아 들판에서 만나기로 했다. 왕은 멀리에서 나가사나의 장대한 모습을 보고는 문득 다른 생각이 나서 즉시 다른 길로 해서 급히 궁중으로 돌아왔다.
난타왕을 궁중에 앉아 나가사나가 들어오는 문을 아주 낮게 만들어 놓았다.
허리를 구부리고 엎드려 기어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가사나는 그것을 알고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절을 받고자 한 왕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왕은 나가사나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먼저 거친 음식을 몇 가지 내놓았다.
나가사나는 너댓 술을 뜨고는 숟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아, 배불리 먹었다.”
뒤이어 즉시 진수성찬이 나왔다. 나가사나는 아주 맛있게 먹어치웠다.
왕이 물었다.
“아까 배가 부르다더니 어떻게 그걸 다 먹을 수가 있습니까?”
“나는거친 음식에 배가 불렀지, 진수성찬에 배가 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은 다시 나가사나에게 물었다.
“도를 얻으려면 출가를 해야 합니까, 아니면 집에 있으면서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말을 듣자 나가사나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만약 3천 리의 길을 가는데, 젊고 건강한 사람이 양식을 싣고 말을 타고 간다면 빨리 도착할 수가 있겠습니까?”
“빨리 도착할 수가 있겠지요.”
“만약 노인이 양식도 없이 여윈 말을 타고 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양식이 있어도 도착하기 힘들 것인데 양식이 없다면 도착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 나가사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출가하여 도를 얻는 것은 마치 저 젊은이의 경우와 같고, 집에 있으면서 도를 얻는다는 것은 저 늙은이의 경우와 같습니다.”
왕은 다시 물었다.
“내 육신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이 육신은 영원한지, 무상한지, 그리고 육신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있습니까?”
나가사나는 이 말을 듣고 왕에게 반문했다.
“궁중에 있는 암바라 나무의 열매는 답니까, 씁니까?”
“이 궁중에는 그런 나무가 없는데 어째서 그런 것을 묻습니까?”
“그렇습니다. 왕의 물음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의 육신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잠시 인연에 의해 서로 가합된 것이므로 거기에는 참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 영원한지, 무상한지를 묻습니까?”
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다른 질문을 던졌다.
“하늘에 떠 있는 해는 하나인데, 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우며, 여름에
는 해가 길고, 겨울에는 해가 짧습니까? ”
“수미산에는 아래 위에 두 길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해가 윗길로 지나가기 때문에 길이 멀고 느리며, 금산을 비추기 때문에 해가 길고 또 덥습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해가 아랫길로 지나가기 때문에 길도 가깝고 바르며, 큰 바닷물을 비추기 때문에 해가 짧고 또 매우 춥습니다.”
<<잡보잡경>>
불교가 가르치고 있는 이상적인 세계는 역시 출세간적 깨달음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출가한 비구의 생활이건 재가신자의 일상생활이건 항상 진실(법)에 의지하여 스스로 법에 따르는 생활에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비록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하더라도 욕망을 버리지 못하면 출가자가 아니며, 비록 재가신자일지라도 법에 의징하여 모든 욕망을 끊어 버리면 그것이 곧 출가라고 했다.
이래서 불교는 승속불이, 즉 출가와 재가가 다른 것이 아니라는 대승 사상을 숭앙한다.
그러나 모든 욕망의 작용을 억제하는 생활에서 자신의 참모습이 발견된다면, 세속생활에서는 아무래도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를 세속적 인간적 굴레라 한다면, 출가는 바로 이러한 세속적 인간적 굴레를 멀리하기 위한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