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좋은 말의 함정
옛날 어떤 늙은 바라문이 젊은 여자에게 새 장가를 들었다.
그러나 아내는 늙은 남편에게 점점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정욕에 굶주린 아내는 젊은 바라문들을 보기만 해도 그 정욕을 못이겨 몸부림쳤다. 그래서 아내는 교활한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남편의 전처 아들이 실수로 불 속에 넘어지는 것을 보고도 아내는 붙들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남편이 멀리서 보고 달려와 나무랐다.
“아이가 불 속에 넘어졌는데 어째서 붙잡지도 않고 보고만 있느냐?”
“제가 지금까지 살을 맞댄 사람은 오직 당신뿐 어떤 남자와도 손 한번 잡아본적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남자 아이의 손을 잡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남편은 아내의 말이 옳다고 여겨 무조건 자기 아내를 신뢰하였다.
매사에 이런 식으로 남편을 속인 다음 젊은 아내는 집에서 연회를 베풀어 젊은 바라문들을 초대했다. 아내는 남편몰래 여러 바라문들과 마음껏 음행을 즐기며 놀아났다. 아내의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 남편은 땅을 치며 통곡 했지만 이미 정욕의 노예가 된 아내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보물만 가지고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집을 나와 얼마를 가다가 한 바라문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날이 저물어 함께 주막에 묵고 이튿날 아침 다시 길을 떠났다. 주막을 떠나 꽤 멀리 갔을 때였다. 그 바라문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늙은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막집에서 풀잎 하나가 제 옷에 묻어 왔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남의 물건에 손을 댄적이 없는데, 이렇게 풀잎이 붙어 왔으니 매우 부끄럽습니다.
곧 주인에게 돌려주고 오겠으니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요.”
늙은 바라문은 이 말에 감복하여 ‘세상에 저렇게 착한 사람도 다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바라문은 주인에게 돌려주러 가는 척하며 가다가 어느 개울가에서 한참을 쉰다음 돌아왔다.
둘은 다시 길을 떠났다. 늙은 바라문은 갑자기 대변이 보고 싶었다.
가지고 있던 보물을 그 바라문에게 맡기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대변을 본 후 나와보니 그 바라만은 보이지 않았다. 행여 하고 기다려 보았으나 그 바라문은 영영 나타나지 않있다.
그제야 도둑맞은 것을 알아차린 늙은 바라문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원망하며 땅을치고 통곡하였다.
그는 다시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어느 나무 밑에서 쉬고 있었다.
이때 황새 한 마리가 부리에 풀을 물고 다른 새들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는 서로 믿고 도와 가며 살아야 해. 저쪽에 내가 집을 짓고 있으니 도와주지 않겠니?”
이 말을 듣고 새들은 황새가 가리키는 쪽으로 날아갔다. 이때 황새는 얼른 새들의 둥우리로 가서 알을 쪼아 먹었다.
그리고는 새들이 올 때쯤되자 다시 풀잎을 물고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새들이 둥우리에 돌아와 이런 사실을 알자 황새를 보고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황새는 시치미를 뗐다.
“내가 그런 짓을 한 게 아니야. 내 입에는 아까 물고 있던 풀잎이 그대로 있잖니.”
그러나 새들은 이미 그 말이 거짓임을 알고는 모두 황새를 두고 떠나갔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출가를 한 어떤 외도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허름한 옷을 걸치고 늙은 바라문 앞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말했다.
“비켜라, 비켜라. 모든 벌레들아.”
늙은 바라문은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무엇 때문에 걸어가면서 비켜라, 비켜라 하고 외치는 거요?”
“나는 출가한 사람이므로 일체 중생을 가엾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벌레들이
발에 밟혀 죽을까봐 이렇게 외치고 있어요.”
이 외도의 말을 듣자 늙은 바라문은 그를 크게 신뢰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외도를 따라갔다.
외도의 집에 도착한 그날 밤 외도가 늙은 바라문에게 말했다.
“나는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당신은 저 바깥채에 가서 주무십시오.”
늙은 바라문은 마음을 닦는다는 말에 그가 더욱 우러러보였으며 좋은 사람들 만났다는 기쁨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바라문의 귀에 갑자기 악기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문은 이상하다 싶어 방을 나와 보니 노랫소리가 바로 마음을 닦는다고 하던 외도의 방에서 들려왔다.
늙은 바라문은 몰래 외도의 방안을 엿보았다.
외도의 방은 그 밑에 있는 지하실과 서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그 외도는 지하실에서 부인과 정사를 했다.
그리고 부인이 춤을 추면 외도는 악기를 타고, 외도가 춤을 추면 부인이 악기를 타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보고 늙은 바라문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인간이고 짐승이고 간에 믿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구나.”
그리고 다음과 같이 노래를 지어 읊었다.
딴 남자에게 손을 댈 수 없다 하고
풀잎을 주인에게 돌려준다 하고
황새는 속임수로 풀잎을 물고 있고,
외도는 벌레가 죽을까 두렵다 하더니
이렇듯 그럴싸한 말은 모두가 속임수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네.
<<잡보잡경>>
우리는 위의 설화에서 아첨과 교활, 그리고 거짓말쟁이의 한 전형을 보고 있다. 거짓말은 그 자체가 죄악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죄악으로 물들이는 나쁜 버릇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그 거짓말에 속아넘어가는 한 어리석은 사람의 표본을 만나게 된다.
남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마음이다.
그러나 참과 거짓을 분명하지 못하는 지혜의 결여에서 오는 어리석음은 스스로를 고통의 구렁 속으로 몰아간다.
인생은 가는 곳마다 허위와 허식과 거짓으로 짙게 화장되어 있다는 것을 직시할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