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를 사양하는 왕자들
먼 옛날에 십사(十사)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왕은 여러 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왕의 큰 부인에게는 나마(羅 )라는 아들이 있었고, 둘째 부
인에게는 나만(나만)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나마 태자는 용맹
스럽고 힘이 장사이므로 천하에 그를 대적할 이가 없었다. 그
리고 왕의 셋째 부인에게는 바라타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고,
넷짜 부인에게는 멸악원(멸악원)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왕은 어느 부인보다도 셋째 부인을 특별히 사랑하고 있었다.
어느 날 왕은 셋째 부인에게 말했다.
“내가 가진 모든 재산과 보물을 너에게 다 준다 해도 아깝지
가 않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말해 보라”
부인이 대답했다.
“저는 지금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훗날 바라는 것이 있게 되
면 그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 후, 왕이 병들어 매우 위독한 지경에 이르자, 큰부인의
아들 나마 태자를 왕위에 오르게 했다. 그런데 왕을 보살피고
간호하던 셋째 부인이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 왕의 병이 약한
회복되자 지금이야말로 뒤로 미루어 두었던 전날의 소원을 이
야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폐하는 전날에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
다.”
“여부가 있겠소.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원하옵건대 나마 태자를 왕위에 폐하고 제 아들을 왕으로
삼아 주소서.”
이 말을 들은 왕은 마치 목구멍에 무엇이 걸려 삼킬 수도 뱉
을 수도 없는 것과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다. 큰아들을 폐하자
니, 이미 왕으로 즉위한 몸이요, 왕위를 폐하지 않는다면 전날
에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기로 약속한 것이 거짓말이 되는 것
이다. 그러나 십사왕은 젊었을 때부터 약속을 어긴 일이 없었
으며, 또 왕의 몸으로 두 말이 있을 수 없으므로 셋째 부인과
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십사왕은 곧 나마를 폐하고 의복과
왕관을 빼앗아 버렸다.
이때 둘째 부인의 아들 나만이 매우 불만스러운 어투로 형에
게 말했다.
“형님은 천하에 당할 자가 없는 힘과 용기를 가졌는데, 그것
을 쓰지 않고 왜 치욕을 당합니까?”
“아버지의 뜻을 어기면 효자라 할 수 없다. 비록 나를 낳은
어머니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사랑하고 계시므로 나의 친어머
니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리고 아우 바라타는 매우 온순하
고 선량한데 내가 힘이 있다고 해서 부모와 아우에게 해를 끼
쳐서야 되겠는가.”
오히려 형 나마는 나만의 불만을 달랬다.
이리하여 십사왕은 나마, 나만 두 아들을 깊은 산속으로 유배
를 보내면서 12년이 지난 후에 돌아올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
나마와 나만은 조금도 원망함이 없이 부모의 명을 받들어 깊
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 무렵 바라타는 다른 나라에 있었는데 즉시 본국으로 불러
들여 왕위를 계승하도록 했다. 바라타가 귀국했을 때 이미 부
왕은 세상을 떠났고, 두 형은 귀양을 가고 없었다. 바라타는
평소에 귀양간 두 형을 매우 공경했으며, 두 형 역시 바라타를
사랑하며 서로 화목하게 지내왔는데, 알고 보니 이 모든 일이
자기 어머니의 소행이었다.
바라타는 자기 어머니를 향해 화가 나서 말했다.
“어머님은 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여 우리 집안을 망치
려 하십니까?”
바라타는 그 뒤 자신의 어머니는 외면해 버리고, 오히려 큰
어머니를 지극한 효심으로 받들었다.
바라타는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산속으로 달려갔다. 이때 아
구가 오는 것을 보고 나만은 형에게 말했다.
“형님은 전에 늘 바라타는 의리가 있고 겸손하다고 칭찬하셨
는데 지금 군사를 끌고 오는 것을 보면 우리 형제를 죽이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바라타가 가까이 오자 형 나마가 말했다.
“아우는 무슨 이유로 군사를 거느리고 왔는가?”
“예, 오는 도중에 혹시 도적을 만날까 두려워서 군사를 데리
고 왔을 뿐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형님은 곧 돌아가셔서
나라의 정사를 맡아 다스리시기 바랍니다.”
” 우리는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여기 왔는데 지금 어떻게 돌
아갈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어버이에
게 효도하는 도리가 아닐 것이다.”
바라타는 무릎을 꿇고 애절하게 간청했으나 형의 마음은
조금도 변합이 없었다. 바라타는 끝내 형의 마음을 돌릴 수 없
음을 알고는 형이 신던 가죽신 하나를 얻어가지고 슬피 울면
서 돌아왔다.
바라타는 그 가죽신을 항상 어좌에 올려 놓고, 형을 대하듯
이 아침 저녁으로 예배하고 문안을 드렸다. 그러면서도 바라타
는 틈틈이 형에게 사신을 보내어 돌아오도록 간청하는 것을
잊이 않았지만 두 형은 12년이 지난 후에 돌아오라는 아버지
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며 거절하였다.
마침내 12년의 햇수가 차고, 또 그 동안 수없이 사신을 보내
왔으며, 가지고 간 가죽신을 마치 자기를 대하듯이 한다는 말
을 전해 듣고는 아우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되어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두 형이 돌아오자 바라타는 나마 형에게 왕위를 돌려주려고
했으나 형은 사양했다.
“아버지가 먼저 아우레게 물려주었으니 우리는 그 자리에 오
를 수 없다.”
그러나 아우 역시 간곡하게 왕위를 사양하며 말했다.
“형님은 태자이십니다. 부왕의 자리는 형님이 이어받아야 마
땅합니다.”
이렇게 서로 왕위를 사양하다가 할 수 없이 형이 왕위를 물
려받게 되었다.
이처럼 왕위도 서로 사양할 만큼 형제간의 우의가 돈독하고
화목하였으니, 백성들은 그들의 교화에 감화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왕의 형제들이 보여준 충성과 효도는 백성들의 본보기
가 되어 온 나라는 미풍양속으로 가득 찼으며, 기후도 온화하
여 오곡이 풍성했으므로 백성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았다.
<<잡보장경>>
흐뭇한 인정이 넘쳐 흐르는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대하
는 듯하다. <<소학(小學)>>에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은
형제요, 구하기 쉬운 것은 재물이다. 설사 재물을 얻을지라도
형제의 마음을 잃는다면 무엇하리오.” 하였다.
권력과 이권이 개입되는 곳이면 형제간은 물론 부자지간에
도 원수지는 것을 마다 않는 오늘의 세태를 볼 때 이 설화가
주는 감동은 더욱 크다. 이 설화는 단지 고전적인 미담에 그치
는 것이 아니라 형제간의 화목과 부모에 대한 효도의 결과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왕위를 사양하는 왕자들
먼 옛날에 십사(十사)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왕은 여러 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왕의 큰 부인에게는 나마(羅 )라는 아들이 있었고, 둘째 부
인에게는 나만(나만)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나마 태자는 용맹
스럽고 힘이 장사이므로 천하에 그를 대적할 이가 없었다. 그
리고 왕의 셋째 부인에게는 바라타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고,
넷짜 부인에게는 멸악원(멸악원)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왕은 어느 부인보다도 셋째 부인을 특별히 사랑하고 있었다.
어느 날 왕은 셋째 부인에게 말했다.
“내가 가진 모든 재산과 보물을 너에게 다 준다 해도 아깝지
가 않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말해 보라”
부인이 대답했다.
“저는 지금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훗날 바라는 것이 있게 되
면 그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 후, 왕이 병들어 매우 위독한 지경에 이르자, 큰부인의
아들 나마 태자를 왕위에 오르게 했다. 그런데 왕을 보살피고
간호하던 셋째 부인이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 왕의 병이 약한
회복되자 지금이야말로 뒤로 미루어 두었던 전날의 소원을 이
야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폐하는 전날에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
다.”
“여부가 있겠소.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원하옵건대 나마 태자를 왕위에 폐하고 제 아들을 왕으로
삼아 주소서.”
이 말을 들은 왕은 마치 목구멍에 무엇이 걸려 삼킬 수도 뱉
을 수도 없는 것과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다. 큰아들을 폐하자
니, 이미 왕으로 즉위한 몸이요, 왕위를 폐하지 않는다면 전날
에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기로 약속한 것이 거짓말이 되는 것
이다. 그러나 십사왕은 젊었을 때부터 약속을 어긴 일이 없었
으며, 또 왕의 몸으로 두 말이 있을 수 없으므로 셋째 부인과
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십사왕은 곧 나마를 폐하고 의복과
왕관을 빼앗아 버렸다.
이때 둘째 부인의 아들 나만이 매우 불만스러운 어투로 형에
게 말했다.
“형님은 천하에 당할 자가 없는 힘과 용기를 가졌는데, 그것
을 쓰지 않고 왜 치욕을 당합니까?”
“아버지의 뜻을 어기면 효자라 할 수 없다. 비록 나를 낳은
어머니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사랑하고 계시므로 나의 친어머
니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리고 아우 바라타는 매우 온순하
고 선량한데 내가 힘이 있다고 해서 부모와 아우에게 해를 끼
쳐서야 되겠는가.”
오히려 형 나마는 나만의 불만을 달랬다.
이리하여 십사왕은 나마, 나만 두 아들을 깊은 산속으로 유배
를 보내면서 12년이 지난 후에 돌아올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
나마와 나만은 조금도 원망함이 없이 부모의 명을 받들어 깊
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 무렵 바라타는 다른 나라에 있었는데 즉시 본국으로 불러
들여 왕위를 계승하도록 했다. 바라타가 귀국했을 때 이미 부
왕은 세상을 떠났고, 두 형은 귀양을 가고 없었다. 바라타는
평소에 귀양간 두 형을 매우 공경했으며, 두 형 역시 바라타를
사랑하며 서로 화목하게 지내왔는데, 알고 보니 이 모든 일이
자기 어머니의 소행이었다.
바라타는 자기 어머니를 향해 화가 나서 말했다.
“어머님은 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여 우리 집안을 망치
려 하십니까?”
바라타는 그 뒤 자신의 어머니는 외면해 버리고, 오히려 큰
어머니를 지극한 효심으로 받들었다.
바라타는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산속으로 달려갔다. 이때 아
구가 오는 것을 보고 나만은 형에게 말했다.
“형님은 전에 늘 바라타는 의리가 있고 겸손하다고 칭찬하셨
는데 지금 군사를 끌고 오는 것을 보면 우리 형제를 죽이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바라타가 가까이 오자 형 나마가 말했다.
“아우는 무슨 이유로 군사를 거느리고 왔는가?”
“예, 오는 도중에 혹시 도적을 만날까 두려워서 군사를 데리
고 왔을 뿐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형님은 곧 돌아가셔서
나라의 정사를 맡아 다스리시기 바랍니다.”
” 우리는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여기 왔는데 지금 어떻게 돌
아갈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어버이에
게 효도하는 도리가 아닐 것이다.”
바라타는 무릎을 꿇고 애절하게 간청했으나 형의 마음은
조금도 변합이 없었다. 바라타는 끝내 형의 마음을 돌릴 수 없
음을 알고는 형이 신던 가죽신 하나를 얻어가지고 슬피 울면
서 돌아왔다.
바라타는 그 가죽신을 항상 어좌에 올려 놓고, 형을 대하듯
이 아침 저녁으로 예배하고 문안을 드렸다. 그러면서도 바라타
는 틈틈이 형에게 사신을 보내어 돌아오도록 간청하는 것을
잊이 않았지만 두 형은 12년이 지난 후에 돌아오라는 아버지
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며 거절하였다.
마침내 12년의 햇수가 차고, 또 그 동안 수없이 사신을 보내
왔으며, 가지고 간 가죽신을 마치 자기를 대하듯이 한다는 말
을 전해 듣고는 아우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되어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두 형이 돌아오자 바라타는 나마 형에게 왕위를 돌려주려고
했으나 형은 사양했다.
“아버지가 먼저 아우레게 물려주었으니 우리는 그 자리에 오
를 수 없다.”
그러나 아우 역시 간곡하게 왕위를 사양하며 말했다.
“형님은 태자이십니다. 부왕의 자리는 형님이 이어받아야 마
땅합니다.”
이렇게 서로 왕위를 사양하다가 할 수 없이 형이 왕위를 물
려받게 되었다.
이처럼 왕위도 서로 사양할 만큼 형제간의 우의가 돈독하고
화목하였으니, 백성들은 그들의 교화에 감화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왕의 형제들이 보여준 충성과 효도는 백성들의 본보기
가 되어 온 나라는 미풍양속으로 가득 찼으며, 기후도 온화하
여 오곡이 풍성했으므로 백성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았다.
<<잡보장경>>
흐뭇한 인정이 넘쳐 흐르는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대하
는 듯하다. <<소학(小學)>>에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은
형제요, 구하기 쉬운 것은 재물이다. 설사 재물을 얻을지라도
형제의 마음을 잃는다면 무엇하리오.” 하였다.
권력과 이권이 개입되는 곳이면 형제간은 물론 부자지간에
도 원수지는 것을 마다 않는 오늘의 세태를 볼 때 이 설화가
주는 감동은 더욱 크다. 이 설화는 단지 고전적인 미담에 그치
는 것이 아니라 형제간의 화목과 부모에 대한 효도의 결과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