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있고 재물이 있다 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으시대지만
이 목숨조차도 내 것이 아니니
어찌 자식이나 재물이 있다고 하겠느냐.
어리석고도 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고
미련하면서도 지혜롭다고 하면
이야말로 지극히 어리석은 자이다.
옛날 부처님께서는 비사리의 미후지 옆에 있는 높은 강당에 계셨다.
그 때에 그곳의 많은 소년들은 활 쏘는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화살 를 들고 다니면서 활 쏘는 기술에 있어서는 자신들이 제일이며,또한 고귀한 종족으로서 세상에 견줄 자가 없다고 자랑하였다.
“이 세상 안에는 우리를 따를 자가 없다.
혹 어떤 걱정이 있다 하더라도 세상에 견줄 자가 없거늘, 어찌 저 간사한 무리들이 우리를 속이거나 침략하겠는가?”
그 소년들은 다시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기술을 닦았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분명 뛰어나다.
그래서 각자 서로의 힘만을 의지하다가 결국 제도받지 못하니,죽음에 이르러르면 그들은 각기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온갖 질병에 걸린 친척들이나
친한 형제를 눈으로 보면서도
죽음의 사자에게 쫓기게 하고
해침을 받게 하니 물러설 수도 없다.
죽음의 사자는 여러 종류가 있으니
친족인들 어떻게 구할 것인가.
재물을 수없이 쌓아 두고도
마침내 도적의 침해를 받는다.
타오르는 불은 물로 끄고
번뇌는 저 광명으로 없애며
분노는 독한 약으로 없애고
주술로써 저 삿된 것을 없앤다.
사나운 코끼리는 갈고리로 끌고
방목하는 소는 채찍으로 끄니
이들 중생에게 즐거움은 있지만
모두 덧없어 보전하기 어렵다.
죽음은 세력이 크기 때문에
가히 의지할 데가 없다.
영원히 살 수 없어
죽게 되는 것임을 알아라.
모든 것은 사라져 없어지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서는 세상사에 망가지고
죽어서는 온갖 곳을 떠돈다.
이 때에 가유라월국의 여러 석씨 종족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자신들의 활 쏘는 기술이 있으니 아무 걸림이 없다고 생각하여서 유리왕(流離王)과 전쟁을 일으켰다.
여러 신하들이 앞으로 나와 석씨 종족들에게 충고하되, 계율을 받들어 닦음으로써 도의 과(果)를 얻으라고 하였다.
석씨들은 비록 활 쏘는 기술을 가졌지만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지는 못하였다.
유리왕이 차츰 앞으로 다가오자, 석씨들은 모두 뒤로 물러나 성문을 굳게 닫은 다음 사람을 보내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지금 유리왕의 공격을 받아 매우 위급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성문을 열면 큰 해가 있을 것이지만, 성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런 해가 없을 것이다.”
그는 돌아가 석씨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만일 성문을 열면 유리왕의 해침을 받을 것이지만,성문을 열지 않으면 그 화를 면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석씨들은 이 말을 듣고는 성문을 더욱 굳게 걸어 잠그고 지켰다.
그러자 유리왕이 성문 앞에 진을 치고 석씨들에게 말하였다.
“속히 성문을 열어라. 서로가 화해하면 손상이 없으리라.”
이 때에 석씨들 가운데 과거의 인연에 끌리는 사람들은 모두 문을 열자고 하였으며, 과거의 인연에 끌리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부처님의 분부를 받들어 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석씨 종족 가운데 사마(舍馬)라는 사람이, 과거에 성 밖에서 유리왕과 싸워 7만 명의 생명을 죽이고 코끼리의 어금니를 뽑는 등 무수한 중생을 살상하였다.
그는 유리왕에게 말하였다.
“우리집 노비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결코 물러가지 말아라.
내가 성 안에 들어가 다시 전쟁할 준비를 갖추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라.”
그 때에 성안의 석씨들은 석씨 사마가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듣고는, 곧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불러와서 몹시 꾸짖었다.
“석씨도 아니면서 석씨라 자칭하고, 우리 석씨 종족을 더럽혔다.
너는 이제 이미 명예를 훼손했으니, 이 성에 있지 말고 속히 이 나라를 떠나라. 지체없이 속히 떠나라.”
석씨 사마는 곧 성을 떠났다.
그 때에 유리왕은 다시 문을 열라고 재촉하였다.
과거의 인연에 끌리는 석씨들은 다른 석씨들에게 말하였다.
“속히 문을 열어라. 이 노비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어떻게 견디겠는가?”
그러나 과거의 인연에 끌리지 않는 석씨들은 다른 석씨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문을 열면 죽을 것이지만 문을 열지 않으면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유리왕은 다시 성문을 압박해 왔다.
그러자 석씨 마하남(摩訶男)이 유리왕에게 말하였다.
“한 가지 내 소원을 들어 주시오. 만일 허락한다면 곧 말하겠소.”
유리왕은 대답하였다.
“마음대로 말하여라. 나는 어기지 않으리라.”
마하남이 앞으로 나가 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물 속에 들어가 숨을 참는 동안만이라도 우리 석씨들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오.”
유리왕이 허락하자 마하남은 곧 물 속에 들어가 나무 뿌리에 자기의 머리털을 묶고서 물 밑에서 죽어 버렸다.
그 사이에 많은 석씨들은 모두 도망쳐 달아났다.
기다리던 유리왕은 사람을 보내어 물 속에 들어가 보게 하면서 말하였다.
“석씨 마하남은 물에 들어가 왜 이리 오래 있는가?”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말하였다.
“석씨 마하남은 이미 물 속에서 죽었습니다.”
그러자 유리왕은 석씨 종족 7만 명을 산 채로 땅에 묻고, 사나운 코끼리로 하여금 밟아 죽이게 하였다.
이와 같이 과거의 해묵은 인연이 닥치니, 그들은 의지할 데가 없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비사리의 여러 소년들에게 말씀하셨다.
“허공이 땅이 될 수 있고 땅이 허공이 될 수 있어도,묵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인연법으로써 그 처음과 끝을 살피신 다음 미래의 중생들을 위해 큰 광명을 보이시고,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아들이 있어도 의지할 수 없고
아비와 형일지라도 의지할 수 없으니
죽음에 쫓길 때에는
그 어떤 친족도 의지할 수 없느니.
그 때에 사부 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출요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