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못 생겼지만
석존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을 하고 계셨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인도에 샤라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의 왕에 아이가 없었으므로 국왕은 대단히 슬퍼하여 하루는, 왕비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여신(女神)에게 빌어서 아이를 낳는 방법을 배워오면 이 집에서 나가라고는 하지 않겠다.』
왕의 말을 듣고 왕비는 몹시 비탄(悲嘆)에 잠겨 왕궁을 하직하고 높고 험한 산에 올라가 목숨을 끊으려고 깊은 골짜기에 몸을 던졌다.
이 불쌍한 왕비의 각오를 안 제석천(帝釋天)은,
「왕비는 옛날 자기 누이로 태어난 적이 있었다. 대를 이을 왕자가 없으므로 그것을 고민하여 산골짜기에 몸을 던졌는데 어떻게라도 구해주지 않으면 안되겠다.」
라고 생각하여 골짜기에 내려가 왕비를 부축해 일으키고 하늘의 그릇에 진귀한 과일을 담아,
『이 과일을 잡수십시오. 이것은 천상의 묘약입니다. 반드시 아이를 낳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이 세상의 웅자(雄者)가 될 것입니다. 만일 왕이 의심하는 것 같거든, 이 그릇을 내어 보이면 의심이 풀릴 것입니다. 이 그릇은 이 세상에 없는 천상의 묘기(妙器)이니까요.』
왕비는 제석천의 가르침에 하늘을 우러러 보고 감사하면서 그 과일을 먹었다. 먹고서 둘러보니까 제석천은 이미 있지 않았는데 몸에 무언가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왕궁에 돌아와 자초지종을 왕에게 아뢰었다. 그리고는 왕과 더불어 신명(神明)의 도움을 기뻐했다. 얼마 후 달이 차서 포동포동 살찐 힘이 셀 것 같은 옥동자(玉童子)를 낳았으나 그 얼굴은 세상에도 드물게 못 생겼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총명 활달(聰明 豁達)하고 지모(智謀)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이 흘러나오고 힘은 코끼리도 쓰러뜨리며 달리면 하늘에 날으는 독수리라도 잡고 목소리는 사자의 울음과 같이 힘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은 원근에 울려 퍼지고 모두 칭찬 안 하는 사람이 없었다.
왕은 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이웃 나라 왕의 장녀인 월광(月光)공주를 맞이하여 비로 삼아주었다. 월광공주는 세상에 이름이 날린 절세의 미인으로 그 동생들 일곱 공주도 언니에게 지지않는 미인들이었다. 왕비는 월광공주가 태자가 못생긴 것을 보고 싫어하는 일이 있으면 안되겠다고 공주를 속여서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의 풍속은 부부는 밝은 곳에서 마주보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의의 제일이므로 공주도 결코 이것을 깨뜨리면 안 된다.』
태자는 공주의 방에 드나들어도 그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공주의 본국에는 七개국의 적이 있었는데 전쟁이 그칠 날이 없고 이 나라의 사람들은 평온한 마음으로 날을 보낼 수가 없었다. 이것을 안 태자는 항상 공주를 위해 걱정하고 있었는데 어떤 하나의 계략을 가지고 이 쟁란(爭亂)을 가라앉히려고 생각했다. 내 얼굴은 보기 싫다. 공주가 자기를 보면 싫어져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릴 것이다. 공주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던 계략을 가지고 적국과의 싸움을 그만두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생각한 왕자는 어머니인 왕비에게 말했다.
『저는 한번 아름다운 공주를 보고자 합니다.』
『네 얼굴은 보기 싫다. 만일 공주가 너를 보면 그 아름다운 천녀와 같은 공주는 도망쳐 돌아갈 것이다.』
라고 만류했으나 듣지 않고 재삼 간원(懇願)하였으므로 왕비도 무리가 아닌 소원이므로 생각하여 그 원을 들어주었다.
공주에게 양을 보였을 때 왕자는 양치기라고 속이고 양치기 차림을 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못생긴 양치기일까요?』
공주의 말을 듣고 왕비는,
『저것은 전부터의 양치기이다.』
라고 꾸며대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에 공주는 코끼리를 보았다. 그때에도 왕자는 공주 앞에 나타났다. 공주는 이 못난 양치기가 자기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는데 만약에 이것이 소문에 들은 보기 싫은 남편인 왕자가 아닌가라고 부쩍 의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왕비에게 청했다.
『저는 꼭 한번 제 남편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왕비는, 이것 큰일 났다고 생각했으나 어쩔 수 없어 삽시간에 왕자의 동생을 왕자로 꾸며 왕자의 신하를 이끌고 나가 위풍당당(威風堂堂)히 국내를 순행하게 하였다. 이것을 본 공주는 겨우 그 마음에 안도와 기쁨을 느꼈다.
한번은 공주가 안 뜰에서 놀고 있었다. 왕자는 한그루의 큰 나무에 올라가 장난으로 나무 열매를 따서 공주에게 내어던졌다. 그 친밀한 모습을 보고 공주는 이야말로 진짜 왕자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여 한밤에 왕자가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엿보고는 불을 켜서 그 모습을 비춰 보았다.
왕자의 보기 싫은 모습은 사정없이 불빛 아래 드러났다. 눈앞에 보기 싫은 왕자의 모습을 본 그녀는, 놀라움과 슬픔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여 그날 밤으로 자기 나라로 도망쳐 가버렸다. 공주가 가버린 궁전은 벌집을 쑤신 듯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왕비는 공주를 즉시로 되찾아 오라고 강경히 말했다.
그러나 일찍부터 하나의 계획을 가지고 있던 왕자는 이를 제지하며,
『공주가 본국에 돌아간 것은 마침 천하 분쟁이 가라앉을 기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그녀의 나라로 찾아가고자 합니다.』
허락을 받고 왕자는 공주의 나라로 들어가 옹기쟁이로 되어 훌륭한 그릇을 제작해 냈다. 주인은 이것을 국왕에게 바쳤으므로 국왕은 그 그릇을 제일 어린 공주에게 주었다.
그것이 자매들의 손을 거쳐 월광공주의 손에 들어왔다.
월광공주는 이것이 남편의 제작임을 알아차리고 이것을 연못 속에 내어던져 깨뜨려버렸다. 왕자는 또 성내로 들어가 직조(織造)집에 고용되어 희대(希代)의 비단 한필을 짰다. 주인은 그 묘기에 감복하여 이것을 국왕에게 바쳤다. 국왕은 기뻐하여 그것을 딸들에게 보였다. 월광공주는 이것도 왕자가 짠 것임을 알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왕자는 그 다음에 대신에게 고용되어 조교사(調敎師)로 되었다.
그의 말은 살이 찌고 기운이 좋게 되었다.
『너는 무엇이든지 잘 하는 모양인데 그중에서 장기는 무엇이냐? 』
라고 대신이 물었으므로 왕자는 이 기회에 공주에게 가까이 하고 왕에게도 접근하려고 생각하여,
『저는 요리가 장기입니다.』
『그럼 내가 임금님과 공주님들에게 맛있는 것을 차려드리고 싶으니 마음껏 솜씨를 내어 보여라.』
대신의 명을 받아 왕자는 찌개를 만들어 왕과 공주들에게 주고 일부러 찌개를 쏟아 몸에 뒤집어썼으므로 일곱 공주는 깜짝 놀라 왕자를 돌아봤다. 그런데도 월광공주는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때에, 하늘의 제석(帝釋)은 나라를 평안케 하려고 왕자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한 계책을 가지고 왕자를 구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국왕의 위서(僞書)를 만들어 일곱 적국(敵國)에 보내는데, 월광공주를 아내로 주겠다고 써 보냈다. 일곱 나라에서는 제각기 예를 두텁게 하여 서울로 월광공주를 맞이하러 왔다. 일곱 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나라만이 월광공주를 맞이하러 온 줄 알았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와 있음을 알고 모든 화를 내고 국왕을 공박했다.
『딸 하나를 미끼로 일곱 나라를 농낙하다니 이 무슨 일이냐? 우리나라는 병마(兵馬)는 충실하고 사기는 왕성하다. 언제든지 당신의 나라를 쳐부술 수가 있다. 단번에 이 나라를 망쳐 보여야 하겠는가. 』
국왕은, 이 일곱 나라의 힐문(詰問)에 부딪혀 겁을 내고 벌벌 떨었다.
『이 무슨 큰 잘못이냐? 이런 화(禍)를 입는다는 것은 나의 어떤 숙세(宿世)의 인연(因緣)때문인가? 이런 것도 일의 발단은 월광 너 때문이다. 비록 신랑이 바보이건 영리하건, 좋던 나쁘던, 잘생겼건 못생겼건 다 숙세의 인연 때문이니까 어느 누구인들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정숙하게 시중들고 남편을 섬기는 것이 여자의 도리이다. 그런데 남편을 싫어하고 본국으로 도망쳐 온 탓으로 이런 큰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다. 네 몸을 일곱 개로 나눠 일곱 적국으로 보내어 사과할 수밖에 없다.』
왕은 전에 없이 월광공주를 몹시 야단쳤으므로 공주는 울면서 아버지께 아뢰었다.
『제게 부디 한 시간의 목숨을 빌려 주십시오. 전국에서 지자(智者)를 불러, 이 화를 면할 방법을 듣고자 합니다.』
좋은 생각이라고 왕은 즉시로 표령을 내렸다.
『이 번의 화를 물리치는 사람에게는 월광을 아내로 주고 재보(財寶)를 상으로 주겠다.』
왕자는 즉시로 이에 응했다.
『급히 높은 전각을 만드십시오. 내가 반드시 이 화를 물리치겠습니다.』
이윽고 높은 전각이 세워졌다. 왕자는 아픈척하고 비틀비틀 땅에 쓰러졌다.
『공주여, 나를 업고 전각에 올라가 주시오. 그러면 적을 물리치겠소.』
공주는 갈기갈기 찢기어 죽는 것이 두려워 보기 싫은 왕자를 부축하여 높은 전각에 올랐다. 사자와 같이 크고 힘찬 목소리는 왕자의 입에서 분수처럼 흘러나왔다.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이끄는 데는 인의(仁義)의 도(道)를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일곱 나라 사람은 화를 내어 이 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는데 화를 내면 재앙은 붙어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는 그 몸을 망쳐버릴 것이다. 대체로 몸을 망치고 나라를 잃는 원인은 명리(名利)와 색욕(色欲)이다. 조심할 것은 욕심이다.』
왕자가 설파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명령과 같이 강령하게 일곱 나라 사람들에게 울려 퍼져 올바른 신념은 각자의 마음에 일깨워졌다. 모두가 싸움을 멈추고 제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래서 왕자는 일곱명의 왕녀를 일곱 개국의 아내로 삼으라고 권했으므로 왕도 사위가 될 일곱왕도 모두 기꺼이 구적(仇敵)의 생각을 버리고 부자(父子)의 예를 갖추고 거기에다 월광공주의 사위는 먼저 사위인 왕자임을 알고, 더 한층 기뻐하여 여덟 나라에 많은 무사를 시종으로 하여 왕녀와 함께 돌려보냈다.
이리하여 아홉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태평을 구가(謳歌)했다. 왕자는 월광과 함께 나라에 돌아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어 크게 불교를 일으켰으므로 그 나라는 더 한층 덕정(德政)이 베풀어졌다. 그리고 왕자의 병도 나아 지금까지 미웠던 얼굴은 새로 태어난 듯 예뻤다.
이렇게 두 사람의 운명이 이끌려 간 것도 또한 숙세의 인연에서였다. 과거 어떤 때 왕자들 부부는 역시 부부로 태어나 같이 밭을 갈고 있었다. 아내는 점심 준비로 집에 돌아가 밥통을 들고 남편에게 오려고 할 때 도중에서 한 사람의 승을 만나 같이 산그늘에 들어가 좀체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을 본 남편은 의심으로 가슴속이 이글거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화가나서 괭이를 들고 달려가 둘을 패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가 본즉, 아내는 자기의 밥을 승에게 공양하고 일곱 발자국을 떨어져 합장을 하여 식사를 하고 있는 승을 배례하고 있었다. 승은 식사를 마치고 그 바리를 허공에 내어 던지니 바리는 광명을 내며 멀리 사라져갔다. 남편은 회한(悔恨)의 정을 누를 길 없어 덕이 높은 아내를 의심한 자기는 이 무슨 어리석은 놈인가, 후세에는 반드시 이 화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너는 자기 밥을 공양해서 좋은 복을 쌓았다. 내 몫인 점심밥을 둘이 나눠먹고, 네 복을 내게 나누어 다오.』
둘은 즐겁게 남은 식사를 같이한 후, 열심히 밭을 갈았다.
이 복의 보답이 와서 왕가에 태어난 둘은 아내는 자비심의 덕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미인이었는데, 남편은 처음에는 화를 내고 나중에는 자비심을 일으킨 탓으로 처음에는 못나고, 나중에는 아름답게 되었던 것이다.
이 태자는 석존, 아내는 야쇼다라이다.
<六度集經第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