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까마귀
석존께서 왕사성 영취산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바라나시국에 소훗다라라는 한 마리의 까마귀가 八만 마리의 까마귀들과 함께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이 한 마리의 까마귀는 이 까마귀들의 왕인데, 그에게는 훗시츠리라는 아내가 있었다.
어느 날 임신한 아내는 남편에게,
『나는 사람 왕이 먹고 있는 향기로운 음식을 먹고 싶은데 어떻게 안되겠습니까?』
하고 금수(禽獸)의 신분도 잊어버린 욕심을 내었다.
『모처럼의 청이지만 그것은 안 될 말이요.』
하고 까마귀 왕은 아내를 타일렀다. 그러나, 아내는 어떻게 해서라도 먹고 싶다는 욕심과 그 괴로움 때문에 몸이 점점 쇠약해지기 시작하였다.
아내의 몸이 요즈음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우울한 얼굴빛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왕은 걱정이 되어 물었다.
『몸이 몹시 쇠약해진 것 같은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소. 아니면, 어디 편찮은 데라도 있소.』
『나는 임신한 뒤부터 무슨 까닭인지 사람 왕이 먹는 음식이 먹고 싶어 죽겠습니다. 그러나 암만해도 그것을 먹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런 소원은 무리요. 우리들의 신분으로서는 아무리 그것이 먹고 싶어도 사람 왕이 먹는 향기로운 맛있는 음식은 먹을 수가 없는 것이요. 내가 그 음식을 얻기 위하여 깊은 왕궁에 들어갈 수도 없거니와 설령, 들어갈 수가 있다손치더라도 궁안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살해될 것이 뻔해, 그런 위험한 그리고 불가능한 일을 바란다는 것부터가 무리라는 것이요. 그런 일은 진작 단념하는 것이 좋아.』
『그것은 열번 지당한 말씀이지만 그래도 저는 단념할 수가 없어요. 만일, 그것이 안되면 저는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되면 배안의 아기도 함께 죽이는 것이 됩니다. 저는 죽더라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죽이는 것은 가엾어요.』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 죽어 봤자 별 수가 없지 않아.』
까마귀 왕은 아내의 욕망이 사리에 벗어난 것이라는 것을 알아듣도록 깨우쳐 그 욕심을 버리게 하려고 힘썼으나 아내의 욕망은 쇠보다도 굳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왕은 할 수 없이 아내의 죽음을 기다리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로 말미암아 이번에는 왕 자신이 그 일로써 번민하게 되었다.
그때 부하 까마귀 하나가 왕의 얼굴빛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왕의 곁으로 가서,
『임금님께서는 요즈음 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계십니까?』
하고 물었다.
왕은 사실은 이러이러하다고 아내의 욕망과 그것을 이루어 줄 수가 없어 모자를 함께 죽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는 것을 자세히 이야기 하였다. 이 번민을 들은 까마귀는
『임금님, 그런 일이라면 무어 그다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제가 꼭 그 사람의 왕이 잡수시는 맛있는 음식을 구해다 드릴 터이니 안심하십시오.』
하고 갖은 위험과 곤란을 무릅쓰고 구해 올 것을 다짐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왕은,
『네가 우리들을 위하여 만난을 무릅쓰고 그것을 구해다 주겠단 말이냐. 참으로 고맙구나. 성공하면 상을 내려 은혜를 갚으리라. 그럼, 실수없이 잘 해 보아라.』
하고 부하에게 부탁을 하였다.
이 왕의 번민은 이 까마귀의 결사적 용기에 의하여 깨끗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검은 구름이 끼어 있던 왕의 얼굴은 활짝 밝아지게 되었다.
자기들의 우두머리인 왕을 위하여 몸을 바쳐 지극히 어려운 일을 결행하기로 결심한 부하 까마귀는 자기들의 왕이 살고 있는 나무에서 공중으로 날아 올라가 범덕궁(梵德宮)으로 갔다.
그리고 근처 나무 위에 앉아 사람왕의 부엌에 형편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것을 본 까마귀는 나무에서 날아 내려와 부엌으로 들어가 시녀의 머리위에 앉아 시녀의 코를 쪼았다. 이 느닷없는 습격해 시녀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밥상을 떨어 뜨려버렸다.
계략이 성공한 까마귀는 얼른 떨어진 음식을 주둥이에 들어 갈 수 있는 양껏 물고 자기의 왕이 있는 곳으로 빨리 날아 돌아왔다.
부하의 까마귀가 그렇게 굳은 결심을 하고 나가기는 했으나 과연 훌륭히 음식을 뺏아 가지고 올지 어떨지 걱정하고 있던 왕은 그가 음식을 가지고 온 것을 보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고 몹시 기다리고 있던 아내를 불러,
『당신이 먹고 싶어하던 사람 왕의 음식을 가져 왔소. 자, 어서 들어요.』
하면서 권하였다.
오랫동안 바라고 기다리던 음식이 왔으므로 부인도 매우 기뻐하면서 실컷 먹었다. 자기의 욕망이 마침내 이루어졌음으로 부인의 쇠약은 한꺼번에 회복되어 수월하게 아기도 낳을 수가 있었다.
그 뒤에도 부하 까마귀는 여러번 사람의 왕궁에 가서 같은 수단으로 왕의 음식을 빼앗아 그것을 자기 왕의 왕비에게 바치곤 하였다.
범덕왕은 까마귀 한 마리가 여러번 습격해 와서 자기의 음식을 더럽히고 또 빼앗아 간다는 소리를 듣고,
『이상한 일이다. 야릇한 일이다. 어째서 까마귀가 여러번이나 와서 나의 음식을 더럽히고 또 주둥이로 시녀에게 상처를 입히고 할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한번, 두 번 쯤은 불문에 붙였으나, 그 하는 짓이 너무도 끈덕지므로 사냥꾼을 불러,
『요즈음 왕궁에 까마귀가 몰려 들어와서 나의 음식을 더럽힌다고 한다. 너희들은 이로부터 그 까마귀 있는 곳에 가서 그물을 치고 사로 잡아 오너라.』
하고 호령하였다.
『예, 알았습니다.』
하고 왕명을 받은 사냥꾼들은 준비를 갖추어 가지고 그 까마귀가 살고 있는 숲에 가서 그물로 마침내 그 까마귀를 사로잡았다.
『임금님, 이놈이 궁중을 침범한 나쁜 까마귀입니다.』
하고 사냥꾼은 왕에게 끌고 왔다.
범덕왕은 까마귀를 보고,
『너는 무슨 일로 여러번 내 음식을 더럽히고 시녀를 쪼고 하였느냐?』
하고 문초하였다.
『그렇게 노여워하지 마시고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붙잡힌 까마귀는 사람의 말로 왕에게 인사를 하였다.
사람의 말을 할 줄 알다니 참으로 이상한 까마귀로구나하고 범덕왕은 호기심과 기쁨을 느껴,
『네가 그 까닭을 말해 보아라.』
하고 명령하였다. 그랬더니 그 까마귀는 범덕왕을 향하여,
『들으셔요 대왕님,
바라나시국 어느 산골에
八만 까마귀를 지배하는
한 마리의 까바귀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의 부인이 임신을 하고는
웬일인지 임금님께서 잡수시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고
엉뚱한 욕심을 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왕님도
그 부인도 몹시 번민을 했습니다.
마침내 부인은 병이 들어서
죽기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왕님의 번민을
없애 드리려고 소인은
죽을 각오로 대왕의
음식을 훔쳤습니다.
우리 왕을 위하여 한 것
마침내 잡힌 것도 그 때문이다.』
자비롭고 인자하신 대왕님
소인의 심정을 살피옵소서.
일찍이 한번도 나쁜 짓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소인도
우리 왕의 괴로움을 덜기 위하여
나쁜 줄을 알면서도 하였습니다.
이후로는 삼가고 주의하여
죽어도 다시는 않겠습니다.
제발 자비 베풀어 한번만은
용서하시옵기 바라옵니다.』
하고 애닲게 하소연하였다. 이 까마귀의 노래를 들은 범덕왕은,
『아아, 그랬었구나, 주군(主君)을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죽음을 각오하고 한 것, 참으로 갸륵한 일이로다. 사람들에도 좀처럼 없는 일이로다.』
하고 그 까마귀의 용감한 행위와 그 충성을 칭찬하고,
『만일, 내 신하들 중에도 이런 충신이 있으면 많은 녹봉을 주어 중용하리라. 이 용감한 까마귀와 같이 주군을 위하여 음식을 구하는데 목숨을 아끼지 않듯 하여라.』
하고 여러 신하들에게 훈계하고 다시 그 까마귀를 향하여,
『너는 금후로도 매일 와서 맛있는 음식을 가져 가거라. 만일, 그것을 방해하고 안 주는 자가 있으면 나에게 직접 알려라. 그 때에는 내가 친히 너에게 음식을 주리라.』
하고 자기의 맛있는 음식을 아낌없이 줄 것을 허락하였다. 그리고,
『주군을 충성스럽게 섬기고 까마귀야, 네 정성이 가상하여 내가 지금 가지고 있던 음식을 주리니, 어서 먹어라. 이 음식은 네가 먹어도 좋다. 네가 배가 부르도록 먹은 다음에는 네 왕에게 가지고 돌아가거라. 그리고 앞으로도 몸성히 주인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여라.』
하고 도둑질을 한 까마귀의 죄를 용서하고 놓아 주었다.
이 때의 까마귀왕의 소훗다라는 지금의 석가모니이시고, 까마귀 왕을 위하여 사람왕의 음식을 훔친 까마귀는 지금의 우다이다. 그리고 그 때의 사람왕 범덕왕은 곧 수두단왕(輸頭檀王)이다.
<佛本行集經第五十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