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장(火葬場)에서 태어난 화생동자(火生童子)의 이야기
석존께서 왕사성(王舍城)의 죽림정사에서 설법을 하고 계셨을 때의 일이다.
이 성내에 젠켄이라는 큰 부자가 있었다.
그는 노형외도(露形外道 또는 나형외도〓裸形外道)라는 사교(邪敎)에 골몰하고 있었는데 그 외도의 일언일구는 일의 선악을 가리지 않는 것이었으며 무슨 일에도 그 외도의 말대로 깊이 믿고 있는 외도 숭배자였다.
그가 아내를 맞이한 후 얼마 안되서 그의 아내는 임신을 했다. 그런데 이 아내의 임신이 뜻하지 않은 일대 참극을 빚어내게 되었다.
어느 날 오후 석존께서는 여느 때와 같이 쇠로 만든 그릇을 가지시고 왕사성으로 수행을 가셨다가 우연히도 젠켄의 집에 이르게 되어 시주를 청하셨다.
젠켄은 석존의 모습을 보더니 임신한 아내를 부르고 석존께 다가와서 이렇게 물었다.
『세존님, 저의 아내는 지금 임신 중이온데 태아는 사내아이겠습니까? 계집아이겠습니까?』
『모처럼 물으시니 대답을 하겠습니다. 아기는 남자아입니다. 그 아니는 천신을 닮아서 훌륭하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당신의 가문을 더욱 융성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고 또한 나의 가르침에 귀의해서 출가 수도를 하면 대성인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는 아기입니다. 산부를 잘 돌보아 주어서 순산하도록 하십시오.』
석존의 이 같은 예언을 들은 그는 매우 기뻐서 석존께 청정한 떡으로 공양을 바쳤다. 공양을 받으신 석존은,
『댁내의 평안을 원합니다.』
하시고 그의 집을 떠나시었다.
그런데 석존께 공양을 바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보고 있던 노형 외도의 행자(行者)는,
〈저 집은 나의 독실한 사자의 집으로 항상 공양을 받고 있는 집이다. 그런데 석존의 꼬임에 빠져서 그의 신자가 된다면 큰 일이다.〉
라고 석존에 대하여 시기와 증오감(憎惡感)을 품고 석존이 무어라고 말을 했는지 알고자 젠켄의 집으로 왔다.
『지금 석존이 다녀 갔었지?』
『네, 다녀 가셨습니다.』
『그 사람이 무어라고 하더냐?』
『실은 저의 아내가 임신을 하였으므로 석존께 남자인지 여자인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석존의 말씀이 「천신을 닮아서 훌륭한 용모를 하고 있으며 저의 집을 더욱 융성하게 하는 사내아이를 낳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불문에 귀의하여 출가를 하면 대성자가 된다고 하십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저으기 마음을 놓았습니다.』
『음, 그래?』
석존의 예언을 전해들은 외도는 자기도 음양역리(陰陽易理)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석존의 예언이 과연 맞는가를 알려고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짚어보니 석존의 말이 조금도 틀림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석존의 말이 모두 옳다고 하면 젠켄은 자기들 외도에 대한 신앙을 끊어 버리고 석존을 신봉(信奉)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자기들 교단(敎團)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이다.
어쨌든 석존의 예언이 맞지 않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여서 그를 우리 교단에 붙잡아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외도는 갑자기 손가락을 다시 짚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엇이 잘못 된 것입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젠켄은 외도의 태도가 마음에 걸려서 이렇게 물었다.
『내가 자세히 점을 쳐보니 석존의 말은 반은 정말이고 반은 거짓말이다.』
『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정말이고 무엇이 거짓말이란 말입니까?』
『사내아이를 낳는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또 가문을 광륭(光隆)하게 한다는 것도 광륭이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광륭이라는 것은 불의 별명이라는 것을 석존은 모르고 있다.
광륭을 점패로 보면 불을 의미하므로 태어나는 아이는 복덕이 적고 단명하여서 반드시 가족을 불태위 망해버리게 할 것이다.
그리고 천신의 얼굴을 닮았다고 하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으로 태어났으면서 천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나와 그대나 본 일이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은 모두 믿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불문(佛門)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것은 세상에 나온 후 박덕(薄德)하여서 가난하므로 옷이나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석존의 제자가 되어서 걸식(乞食)이나 해야 될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석존의 제자가 되어서 대성인이 된다는 말은 당치도 않은 말이다. 첫째 그렇게 말하는 석존 자신도 아직 도통이 안된 미완성 인간인 것이다.
그런 사람의 제자가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앞으로는 석존의 말 따위에 현혹 되어서는 못쓴다. 내가 하는 말만 믿고 있으면 틀림이 없는 것이다.』
『성자의 말씀과 석존의 말씀은 정 반대인데 대체 저는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할까요?』
『그렇게 망서려서는 안된다. 나는 그대도 알다시피 출가하여 계율을 엄하게 이행을 하고 있서 그것을 증명할 때까지 기다려 보는 수 밖에 없겠지, 어찌 되었든 태어나는 아이는 재악(災惡)을 몰고 오는 악인이므로 낳기 전에 없애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같이 말을 남기고 외도는 가버리고 말았다.
자기가 숭배하고 있는 외도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젠켄은 장님이 나쁜 사람의 손에 끌리어 시궁창에 빠지듯 이성(理性)의 판단을 잃고 외도의 말을 옳게 여기여 덮어놓고 외도의 말을 따르게 되었다.
그래서 젠켄은 아내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죽이려고 참혹하게도 아내가 모르게 낙태(落胎)의 구실을 하였는지 아내의 몸은 한층 더 건강한 것이었다.
예상(豫想)이 빗나간 것을 안 그는 이번에는 아내의 왼쪽 배를 발로 세게 밟고 몸을 좌우로 몹시 흔들어서 유산을 시키려고 장시간 애를 썼으나 태아에게는 아무런 이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또 실패를 한 그는 하는 수없이 몇 달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럭저럭 만삭(滿朔)이 되어 어느날 아내는 갑자기 진통이 와서,
『엉』
하며 큰 소리로 신음을 하기 시작하였다.
진통을 겪고 있는 아픔 소리를 들은 이웃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하고 몰려와서 젠켄에게 물었다.
『마나님께서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아닙니다. 산기(産氣)가 있어서 배가 아픈가 봅니다. 걱정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젠켄의 말을 들은 이웃 사람들은 아기를 낳는군 하고 돌아 갔다. 그들이 돌아간 후, 젠켄은 혼자 곰곰이 생각하기를
〈아기를 낳고나면 죽이기가 어렵다. 뱃속에 있을 때에 처치를 해야 되겠는데….. 그렇다. 아내를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죽여 버리면 뱃속에 있는 아기도 죽겠지.〉
이렇게 생각한 그는 진통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아내를 등에 엎고 깊은 산속으로 갔다. 그리고 참혹하게도 임신하고 있는 자기의 아내를 목졸라 죽였다. 그는 아내의 시체를 엎고 어둠을 틈타서 몰래 집으로 돌아온 다음 밤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시치미를 떼고 하인들을 깨워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젯밤 갑자기 안식구가 죽었으니 친척은 물론 인근 사람들에게 기별을 하고 오너라.』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에 하인들도 놀랐지만 지체하고 있을 수도 없어서 사방으로 부음(訃音)을 전하였다.
젠켄의 아내가 급사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일가친지들은 젠켄의 집으로 달려왔다.
친척 사람들은 젠켄의 행동과 대도를 수상히 여길 겨를도 없이 슬픔에 잠겨 오색의 병풍으로 죽은 사람을 둘러싸고 한림(寒林―왕사성 밖에 있는 묘지)에 있는 화장터로 갔다.
한편 노형 외도의 패거리들은 젠켄이 자기들의 말을 믿고 아내를 죽인 것을 알자 석존에게 복수를 했다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래서 깃발을 앞세우고 왕사성의 번화한 거리에 서서,
『여러분 들으시오. 요즈음 세상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석존은 젠켄의 아내가 임신한 것을 보고 태어날 아이는 남자고 그 아이는 가문을 융성하게 하며 천신를 닮아서 장래가 유망하다고 말하고 또 자기의 문하생(門下生)이 되어서 출가하면 대성자가 된다고 예언을 했다는데 그의 교만하고 건방진 예언은 보기좋게 빗나가서 젠켄의 아내는 몸을 풀기도 전에 죽어서 지금은 모자가 함께 싸늘한 시체가 되어서 화장터로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세상사에 능통하고 여러 가지 고민과 번뇌를 물리치는 재주가 있어서 걸핏하면 대자비심을 가지고 모든 생명 있는 것을 구제한다고 호언장담(好言壯談)을 하고 있는 대학자인 석존의 예언은 이와 같이 허무맹랑한 것이다. 그를 숭배하는 사람은 그의 말을 믿어 보시오. 그를 믿음으로 해서 과연 어떠한 복이 있을는지, 참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다.』
고 야유 섞인 악선전을 퍼부었다.
『해와 달의 모양이 달라지고
조수의 드나듦이 변하여도
부처의 구원은 어김이 없다.
사람을 불쌍히 여겨 이를 구하려는
부처의 넓은 자비심은
어미소가 송아지를 사랑하는 것과
같구나.』
외도들은 석존의 고덕을 비웃는 노래를 소리높게 부르며 성내를 돌아다니며 석존을 헐뜯었다.
이것을 저 멀리 죽림정사에서 듣고 계셨던 석존은 싱긋 미소를 띄우셨다.
그러니까 석존의 입에서 오색의 광명이 나오더니 천상계에서 지옥에 이르기까지 온 천지를 비추는 것이었다.
『아난, 한림으로 가봐야겠는데 따라오고 싶은 사람은 모두 준비를 하라고 일러라.』
아난은 석존의 명을 제자들에게 전했다. 진여(眞如), 마승(麻繩), 파사파(波沙波), 사리붓타(舍利弗), 목련(目蓮) 등의 제자를 비롯하여 많은 제자와 신도들이 곧 모여와서 석존을 모시고 한림으로 떠나게 되었다.
수백명의 사람을 거느리신 석존은 제켄의 아내의 시체가 있는 한림으로 향하셨다. 그 때 팔방에서 일시에 서늘하고 상쾌한 바람이 불어왔다.
왕사성에 크샤트리야족과 바라문족에 속하는 아이가 둘이 있었는데 마침 그 날 사이좋게 함께 놀고 있었던 크샤트리야족의 아이는 원래 신앙심이 매우 두터웠지만 바라문의 아이는 신앙심이 전연 없었다.
바라문의 아이는 크샤트리야의 아이를 보고,
『네가 존경하고 있는 석존은 제켄장자의 아내의 태아를 점쳐서 사내 아이고 집안을 융성하게 하는 훌륭한 인물이라고 말 했다던데 어때 그 아내는 아기를 낳기도 전에 죽어서 오늘 화장을 한다고 하는데 석존의 말도 엉터리로군.』
하고 갑자기 이렇게 비웃었다.
크샤트리야의 아이는 노래하여 답하기를,
『달님과 별님이 땅위에 떨어져도
연못의 물과 바다의 물이
한꺼번에 없어져도
부처님의 가르치심에는
절대로 거짓이 있을 수 없다.』
『네가 그렇게 신용을 안한다면 말보다 증거가 필요하다. 같이 한림으로 가서 사실 여부를 확인 하자꾸나.』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두 아이는 각기 다른 생각을 가슴에 품고 화장터로 바삐 달려갔다.
한편, 국왕 에이쇼오왕도 석존이 젠켄장자의 아내에 대하여 예언한 것이 사실과 틀려서 아내는 사망하여 한림에서 화장을 한다는 것과 석존과 여러 제자들과 일반 시민들까지도 화장터로 모여 들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석존이 한림까지 가신다는 것은 반드시 깊은 사연이 있는 것이다. 아마 젠켄 아내의 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무슨 행적을 남기시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나도 가서 구경을 해야겠다.>
왕은 즉시 왕비, 태자를 비롯하여 많은 신하를 대동하고 성문을 나섰다. 이때 크샤트리샤의 아이는 멀리서 왕의 행차를 보더니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아, 임금님께서는 지금 많은 신하를 데리시고 한림으로 가시는 모양인데, 이 사람들은 필경 훌륭한 은덕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일찍부터 한림에 모여든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석존이 오시는 길을 비켜서서 지켜보고 있노라니 석존은 온화한 웃음을 띠우시고 많은 제자들에 둘러 쌓여서 조용한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계셨다.
석존의 위풍 있는 당당한 모습을 한림에서 보고 있던 노형 외도의 무리들은,
<석존이 미소를 지으면서 군중속을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혹시 태내의 아기는 아직도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불안해진 그들은, 만약 태내에 아직도 아기가 살아있다면 지금까지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므로 어떻게든 태아를 처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젠켄장자, 저 태아는 복덕이 부족하여 아직도 죽지않고 있군요.』
하고 귓속말로 젠켄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리들은 그대가 알 듯이 도덕을 지키는 사람들이니 나쁜 생각은 추후도 없다.』
이렇게 말할 뿐 더 이상 어떻게 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중유골(言中有骨)로 그 말에는 그 어떤 암시(暗示)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젠켄은 자기가 죽인 아내의 시체를 장작더미위에 옮기고 기름을 부은 다음 불을 질렀다. 시체는 타오르는 불길에 지글지글 타들어갔다.
모여든 사람은 애처로운 생각에 눈물을 머금고 시체가 그슬려 살과 가죽이 점점 타 없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도 손도 발도 등도 이제는 모두 타서 백골만 남았는데 이상하게도 배의 일부분만은 약간 검게 되었을 뿐 조금도 타지를 않았다. 사람들은 하도 이상해서 기이한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다.
젠켄은 별안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몽둥이를 가지고 오더니 타지 않고 있는 배의 한쪽을 몇 번이고 힘껏 내리쳤다. 그랬더니 몽둥이로 맞아서 갈라진 배에 푸른 연꽃이 활짝 피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연꽃 한복판에는 미목(眉目)이 수려(秀麗)한 귀여운 아기가 엄연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것이다.
이 신기로운 사실을 눈앞에 본 많은 사람들은 일제히,
『앗!』
하고 경탄의 소리를 지르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자기들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남을 업신여긴 다른 사람의 의견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은 노형 외도의 패거리도 이 기적을 목격하고는 새삼 놀라는 동시에 부처님의 신통력이 너무나 위대함에 감탄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자기들의 간계가 보기좋게 실패로 돌아가고 지금까지 그들이 받고 있던 경의(敬意)라는 것이 남은 사람들 앞에서 여지없이 떨어짐을 느꼈다. 이제는 그렇게 교만하였던 자세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군중과 외도들이 신기한 눈초리로 불속의 연꽃에서 태어난 갓난아기를 보고 있을 때 석존께서는 젠켄에게,
『불속에 있는 아기를 안아 오시오.』
라고 말씀하셨다.
젠켄은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면서 귓속말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외도에게 의논하였다.
『불속으로 들어가면 당신은 타 죽을 것이다. 위험하니 그냥 두시오.』
젠켄은 타 죽는 것이 무서워서 석존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 모양을 보고 계시던 석존은 가까이 있던 지바카를 보시며,
『지바카, 네가 저 아기를 불속에서 꺼내 오너라.』
석존의 분부를 받은 지바카는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도 아랑곳 없이 불속으로 뛰어들어 아기를 구해냈다.
이 때 멀리 하늘 높은 곳에서 석존의 신통력을 찬탄하는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거룩한 석존
신통력을 가지시고
맹렬한 불길을 깨끗한 연못으로
변하게 하시어
사나운 불길에 들어
갓난아기를 구하심이라
아, 부처님의 무궁한 신통력
우러러 보라 모든 사람들아』
석존께서는 다시 젠켄을 향하여,
『이제는 불길도 뜨겁지 않으니 그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젠켄은 자비에 넘치는 석존의 이 말씀도 귀담아 듣지 않고 또 외도는 대답하기를,
『앞서도 말했지만 저 아기는 원래가 박덕하고 횡폭한 성질을 타고 났으므로 당신이 집으로 데리고 가면 반드시 집에 재난이 생겨서 당신의 목숨도 위험합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자기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것을 집으로 데리고 간단 말입니까?』
젠켄은 외도의 말을 쫓아서 아기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것을 보신 석존은 에이쇼오왕에게 말씀을 하시었다.
『왕께서 이 갓난아기를 데리고 가십시요.』
왕은 한편 놀라면서도 석존의 말씀대로 지바카로부터 아기를 받아 안으며,
『세존님, 이 아기의 이름을 무어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불속에서 태어난 인연으로 해서 화생(火生)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화생이라 부르기로 하고 궁중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에이쇼오왕은 석존께 예배하고 화생동자를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가서 곧 여덟 사람의 유모로 하여금 양육케 하였다.
젠켄과 외도는 마음 한 구석에 불안을 느끼면서 군중 속으로 숨어버렸다.
모였던 군중도 어느새 흩어져 버렸고 석존은 여러 제자들이 모시는 가운데 죽림정사로 환어(還御)하시었다.
한 때 그 많은 사람들로 들끓었던 한림 화장터는 다시 적막해졌고 타다 남은 불길이 작은 혓바닥 모양으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죽은 화생동자의 어머니에게 오빠가 하나 있었다.
그는 무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외국에 가있을 때가 많았는데 외지에서 자기의 누이동생이 임신은 해서 석존이 태아를 점쳐본 결과 남자라고 하시어 대단히 기쁘다는 편지를 받아서 자기의 일같이 좋아하고 있었다.
얼마 후 볼일을 다 마쳤으므로 오래간만에 귀국하여 곧 매부의 집으로 갔다. 그러나 누이동생이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슬퍼하면서 석존의 예언이 거짓이었음을 노엽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의 말로 누이동생이 병사하였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매부인 젠켄이 외도의 꼬임에 빠져서 누이동생을 죽였고 석존의 힘으로 아기가 불속에서 태어나서 지금은 왕이 데려다가 키우고 있다는 그간의 사정을 낱낱이 알게 되었다.
그는 머리끝까지 화가나서 매부에게 달려들며 소리 질렀다.
『이 나쁜 놈, 네가 내 누이를 죽였구나, 아기를 데려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가족회의를 열어서 너를 이 마을에서 쫓아내고 너의 악행을 폭로하겠다.』
『형님, 제발 용서하여 주십시오. 아기는 곧 데려오겠으니 화를 풀어 주시오.』
젠켄은 코가 땅에 닿도록 빌었다.
그리고 곧 왕궁으로 가서 왕께 자세한 말을 한 다음,
『임금님, 저를 살리시는 셈치시고 화생을 돌려 주십시오.』
하고 탄원을 했다.
『나는 너한테서 아기를 맡지는 않았다. 석존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이니 꼭 아기를 데려가고 싶거든 석존께 부탁을 해라.』
왕은 이렇게 잘라 말하고 화생을 돌려주지 않았다.
젠켄은 하는 수 없이 죽림정사로 석존을 찾아뵈옵고 예배한 다음 간청을 했다.
『세존님, 저는 지금 친족들로부터 무딘 고초를 받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화생을 저에게 돌려 주시옵소서.』
석존께서는,
<만약 아기를 돌려주지 않으면 이 사람은 피를 토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고 그의 곤경(困境)을 동정하시어 아난을 부르시고,
『에이쇼오왕한테 가서 화생동자를 젠켄에게 돌려주도록 부탁을 하라. 만약 안돌려 주면 그는 고민하는 나머지 피를 토하고 죽는다고 말하라.』
아난은 석존의 분부를 받고 곧 왕궁으로가서 석존의 말씀을 전했다. 왕은 석존의 말씀을 쾌히 승낙하셨다. 아난은 정사로 돌아와서 석존께 복명을 했다.
젠켄은 기뻐하면서 다시 왕궁으로 가서 왕께 사례하였다.
『젠켄, 나는 석존의 말씀을 좇아 이 아기를 키웠는데 아기란 참으로 귀여운 것이다. 지금 석존의 말씀대로 아기를 너에게 돌려주겠지만 어김없이 아기를 잘 보살피며 훌륭히 양육한다고 맹세해야만 돌려 주겠다. 맹세하겠느냐?』
하고 다짐을 주었다.
『네, 맹세합니다.』
젠켄은 왕 앞에서 굳게 맹세하였다.
그래서 왕은 화생의 유모를 불러서 아름다운 외복과 많은 패물을 하사(下賜)하시고 화생을 코끼리에 태워서 젠켄의 집으로 보내었다.
그러자 젠켄은 친족들의 빗발치는 항의도 가라앉고 큰 걱정거리가 해결이 되어서 마음의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니면 천벌을 받아서인지 얼마후에 그야말로 갑자기 죽어버리고 말았다.
세월이 흘렀다. 화생은 성장하여 가업(家業)을 계승(繼承)하는 동시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믿어서 아주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한 한림에다 정사를 건립하고 많은 수도승을 초빙하여 개당공양회(開當供養會)를 베풀고 어머니가 사망한 숲을 유복림(蹂腹林)이라고 이름 지었다.
아버지 시절에 거래를 하고 있던 상인들은 화생이 가업을 계승하였다는 말을 듣고 진귀한 보물을 많이 가지고 와서 화생을 축복하였다.
화생은 선물로 받은 보물들을 휘장을 높게 치고 그 위에 달아두고,
『누구든지 사다리를 쓰지 않고 저 위의 주발을 꺼내는 사람에게 보물을 주겠다.』
고 널리 말을 퍼뜨렸다.
다음날 아침, 목욕을 하러가던 외도들이 이것을 보고,
『장자, 저것이 무엇입니까?』
화생은 사유(事由)를 설명하였다.
이 설명을 듣자 외도들은,
『장자는 요즈음 석존의 가르침을 신봉하고 있다고 하니까 이 보물은 그들이 와서 가져가겠군.』
하고 핀잔을 주며 가버렸다.
곧이어 석존의 제자인 한 사람의 수도자가 그 곳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높은 곳에 달려 있는 주발 그릇이 눈에 띄어 화생에게 물었다.
화생은 먼저와 같이 설명을 하고
『어떠십니까? 신력(神力)으로 저 주발을 꺼내보시면.』
『아닙니다. 그만 두겠습니다. 자기의 선사능력(善事能力)은 감추고 자기가 저지른 악행을 밝히는 것이 출가한 사람의 몸가짐이니까요.』
하고 그곳을 떠나갔다.
그런데 잠시 후에 가섭(迦葉)이 그 곳을 지나가게 되어 역시 화생에게 물었다. 화생의 이야기를 들은 가엽이 손을 뻗치니 코끼리의 코 모양으로 팔이 죽 늘어나서 손이 주발에 닿았다. 이것을 본 화생은 약속대로 보물을 가엽에게 주었다.
진기한 보물이 생긴 가엽은 정사로 돌아와서 동료들에게 자랑삼아 이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을 아시게 된 석존은,
『그대들은 어떠한 일이 잇더라도 결코 속인(俗人)앞에서 속사(俗事)를 위하여 자기가 지니고 있는 신력을 행사(行使)하여서는 안된다. 위신력은 속사를 위하여 얻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금후로는 이 엄계(嚴戒)를 꼭 지키도록 하라.』
하고 제자들에게 엄히 타이르셨다.
그 후, 화생은 석존께서 예언하신대로 얼굴의 모습이 천신을 닮아갔다.
어느 날 에이쇼오왕이 높은 누각에 올라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런데 화생의 옷을 빨아서 줄에 널어 둔 옷이 바람에 날리어 우연히도 왕 앞에 떨어졌다.
왕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의복을 보고,
『이것은 천인들이 입는 옷인데 어떻게 여기에 떨어졌을까?』
하고 시종에게 물었다.
『대왕님, 전에 하늘이 금은 보배를 내린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마도 하늘에 계신 천신이 금은 보배를 내리실 징조인가 생각 됩니다.』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짐작하건대 요즈음 화생은 석존의 예언대로 제천의 얼굴 모습을 갖추었다하므로 화생이 입을 천의(天衣)가 여기에 떨어진 것일 것이다.』
왕은 언제건 화생이 오면 이 천의를 그에게 주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때마침 화생이 왕을 찾아왔다.
『그대는 석존의 말씀대로 천인의 얼굴 모습이 되었으니 지금 하늘에서 내려진 이천의를 입는 것이 좋겠다.』
하며 왕은 그 옷을 화생에게 주었다.
화생은 그 옷을 받아들고 보니 자기의 옷이었으므로 미소를 지으면서,
『대왕께선 이 더러운 옷에 손을 대지 마십시오. 이것은 천의가 아닙니다. 속인이 입은 헌 옷입니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실은 저의 옷과 너무 비슷해서 말씀입니다.』
『음, 그래?』
왕은 한참 동안이나 화생의 옷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왕은 한층 더 화생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드디어 국정도 돌보지 않고 자주 화생의 집을 방문하여 왕궁으로 돌아가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자인 미쇼옹은 국정을 돌보지 않는 부왕을 모셔오려고 화생장자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화생의 집에는 여러 가지 진귀한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태자는 불현 듯 탐이 나서 보물 한 개를 훔쳐가지고 몸종을 주면서 궁전으로 가져가게 했다.
몸종은 보물을 갔다두고 다시 화생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태자는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몸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까 네게 준 물건을 가져 오너라.』
『저는 그런 물건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무엇 이 놈이 거짓말을 하는구나, 도둑놈 같으니.』
태자는 벌컥 성을 내며 몸종을 몹시 때렸다.
화생은 보다 못해서,
『태자님은 어째서 몸종을 때리십니까?』
하고 태자에게 다그쳐 물었다.
『실은 조금 전에 내가 보물을 한 개 훔쳐서 그것을 이 놈에게 맡겼는데도 모른다고 딱 잡아떼니 이 놈은 큰 도둑이다. 이렇게 매질을 해서 버릇을 고쳐주어야 한다.』
태자는 또 몸종을 때리기 시작하였다.
『그만 때리십시오. 태자도 저 몸종도 결코 도둑이 아니올시다. 나의 보물은 전부가 태자의 것이므로 필요하시면 맘대로 가지고 가십시오.』
화생은 태자와 몸종에게 도둑이라는 오명(五明)을 받지 않도록 이와 같이 말했다.
태자는 부왕과 함께 왕궁으로 돌아갔는데 얼마 후 태자는 모반(謀反)을 일으키어 부왕을 살해하였다.
그런데 보물에 눈이 어두워진 태자는 화생의 집의 보물을 훔치는 일을 단념하지 못하고 이번에는 도둑질하는 상습자를 불러 놓고,
『화생의 집에 잇는 보물을 훔쳐 오너라.』
하고 일국의 태자로선 매우 파렴치(破廉恥)한 일을 명령하였다.
이 도둑은 태자의 명령인지라 야밤에 쇠줄을 담에 걸치고 숨어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화생의 집사람들이 발견하여,
『도둑이야, 도둑이야.』
하고 소리를 쳤으므로 화생도 침소(寢所)에서 뛰어나와 도둑이 도망가지 못하게 해버렸다.
도둑은 담위에 붙어서 꼼짝 달싹도 못하고 밤을 새웠다. 아침이 되니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너는 무엇하러 이곳에 왔느냐?』
하고 제각기 욕설을 하면서 캐물었다.
도둑은 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겨 마침내 고백을 했다.
『태자가 시켜서 보물을 훔치러 왔다.』
『무어라고? 태자가 시켰다고? 부왕을 죽이고 이제는 타인의 보물을 훔치게 하다니, 도대체 이런 태자가 어디 잇단 말인가! 나라꼴이 잘 되겠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태자의 무도함을 욕했다.
자기가 시킨 도둑이 발각이 되어 달아나지도 못하고 게다가 자기가 시켰다는 사실이 탄로가 나자 태자는 매우 난처해져서 곧 시종을 화생에게 보내어,
『제발 그 도둑을 한시바삐 놓아 주십시오.』
하고 부탁을 했다.
화생은 곧 도둑을 풀어주고,
『빨리 도망가거라.』
도둑은 화생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하여 난을 면했다. 사람들도 하나 둘씩 흩어져갔다.
화생의 집은 다시 조용해졌는데 화생은 자기방에서 생각에 잠겼다.
<물려받은 재산과 동업자가 선물로 준 보물이 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내가 보물이 없었던들 태자가 도둑질 할 마음은 안 먹었을 것이다.
조그마한 재물이 남에게 도둑심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거나 사람이 죄를 짓게하는 재물을 가지고 있는 내가 나쁜 것이다.
얼마되지 않는 재물 때문에 모두가 죄를 범한다면 이런 물건은 오히려 없느니만 못하다. 또 석존님의 예언에 의하면 나는 불문에 들어가서 수도하도록 운명을 타고 다고 하니 이 기회에 속세를 버리고 모든 재물을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고독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출가를 하자, 내가 갈 길, 내가 할 일은 오직 이것 뿐이다.>
이렇게 생각한 화생은 곧 사방에 포령(包領)을 내서 자기의 재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속세의 모든 것과 인연을 끊고 마음이 후련해진 화생은 친척, 친구, 친지에게 작별을 고하고 성자의 생활에 들어가기 위하여 집을 버리고 석존님이 계시는 죽림정사로 향하였다.
출가 입도한 화생은 석존께서 말씀하신대로 마침내 대성인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