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큰스님이 서산의 천장암에 계실 때의 일이다.
하루는 경허 큰스님의 형이신 천장암 주지 태허 스님이 인근에 사는 갈산 김씨네 49재를 올리기 위해
장을 크게 보아다가 온갖 떡과 과일을 푸짐하게 진설해 놓았다.
이 당시만 해도 백성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때라 동네에 큰 제사나 잔치가 있다고 하면
떡과 과일을 얻어먹기 위해 인근 마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드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천장암에서 아무날 아무시 갈산 김씨네 49재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인근 마을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천장암으로 모여들었다.
<산 사람에 공양물 보시>
법당 안에 차려진 온갖 떡과 과일,
동네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쓰다듬으며 군침부터 삼키고 있었다.
이윽고, 49재를 올리기 위해 태허 주지 스님이 법당으로 들어오고 경허 큰스님도 법당 안으로 들어섰다.
지극정성으로 49재를 올려 조상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갈산 김씨네 가족들도 엄숙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막 49재를 올리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법당 밖에 구름처럼 몰려와서
법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네 사람들을 한바퀴 둘러보고 난 경허 큰스님이
느닷없이 법상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시더니 아직 제사도 지내기 전에 떡과 과일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들고는
법당 밖에 서있던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닥치는 대로 나눠 주는게 아닌가.
주지 태허 스님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아직 제사도 지내기 전에 떡과 과일을 나눠줘 버리다니!.”
상주들도 어안이 벙벙해서 할말을 잃고 있었다.
이 때 경허 큰스님이 한 말씀하셨다.
“제사는 바로 이렇게 지내는 게 제대로 지내는 것입니다.
영가께서 극락 왕생하려면 좋은 일, 착한 일을 많이 베풀어야하는 법이거늘,
여기 모인 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떡과 과일을 보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이 공덕으로 영가께서는 반드시 극락왕생 하실 것이오.”
이 말씀을 듣고 난 상주들은 기쁜 마음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경허 큰스님께 합장 배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