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로 태어난 구렁이

아들로 태어난 구렁이

충남 부여군 임친면 가장굴이란 마을에 천석군 조씨가 살고 있었다.

재산이 많은데다 늘그막에 기다리던 아들을 보게 되 조부자 내외는 더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한 스님이 조부자 집 문간에 서서 염불을 하고 있었다.

마을 뒷편 재산 보광사에서 탁발하러 내려온 천수스님이었다.

「아이구 보광사 스님이시구먼요.」

「예 그렇습니다.」

천수스님은 합장한 채 공손히 인사를 했다.

「시주를 드릴터이니 염불은 그만하시고 어서 딴집으로 가보여유.」

조부자 아내는 몇 줌 안되는 쌀바가지를 내밀었다.

스님은 메고 있던 바랑에 쌀을 받으면서 말했다.

「염불을 좀더 해야겠습니다.」

조부자 아내는 내심 거추장스러웠지만 정중하게 인사했다.

「감사하오나 지금 저희 집 삼대독자가 안방에서 곤히 낮잠을 자고 있슈 하도 귀한아들이라 깰까 조심스러워 부탁드리는 거예유.」

스님은 좀 언짢았지만 조용히 대답을 했다.

「허나 소승이 염불을 더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귀한 아드님으로 인해 장차 이 집안에 일어날 액운을 소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원 별말씀 다하시네유. 애지중지하는 남의 집 아들 보고 액운 운운하시다니.」

「미리 막지 않으면 평화스런 귀댁에 화가 미칩니다.」

「화라구요.」

「화가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화의 근원이 무르익었습니다.」

「스님, 그렇게 뜸들이지 말고 무슨 곡절인지 속 시원히 알려 주셔유.」

아까와는 달리 조부자 아내는 스님에게 간곡히 사정했다.

「소승이 일러주는 대로 하시면 액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오늘밤으로 막걸리 50말을 장만하여 온 동네 사람들을 집 마당에 청해 술잔치를 베푸십시오.

단, 오는 사람마다 숯 한포씩을 가져오게 해 마당 가운데 숯불을 피우고 풍악을 울리십시오.

그럼 소승 이만 물러갑니다.」

조부자 아내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다 싶으면서도 천수스님의 말을 묵살할 수가 없었다.

도에 통달해서 영하기로 이름난 보광사 스님이 허튼말을 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조부자 아내는 스님이 일러준대로 막걸리 50말을 준비하고 술잔치를 열었다.

동네 사람들이 가져온 숯불이 벌겋게 달아올랐을 때였다.

방안에서 아들이 앙앙목을 놓고 우는 것이 아닌가.

조부자 아내는 풍악이 울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려 놀라서 그러는 줄 알고 어르고 달랬으나 막무가내였다. 오만상을 찡그리며 마구 울어대는 아들을 보자 아내는 울화가 치밀었다.

「뭔 놈의 액이 온다고 일러줘, 남의 귀한아들만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네.」

부인은 천수스님을 원망했다.

그때였다.

「보살님!」

천수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님이 나타나자 풍악이 멈추고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잠잠했다.

스님은 이상하게도 작은 관 하나를 어깨에 메고 왔다.

「아니 스님,그 관은 왜 들고 오셨슈?」

「예, 우선 그 아이를 이리 내려놓으세요.」

부인은 안고 있던 아들을 스님 앞에 내려놓았다.

아기는 더욱 소리 높여 울면서 쪼르르 엄마에게 달려가 치마 자락을 잡았다.

순간 천수스님은 일언반구도 없이 아기를 나꿔채더니 관속에 집어넣었다.

아기는 숨이 넘어 갈듯 울어 댔다.

그러자 부인은 마치 실성한 듯 스님의 장삼을 쥐어 잡아 뜯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스님은 태연하게 부인은 떼어놓고 관을 숯불 위에 내동댕이쳤다.

사태가 이쯤 되자 사랑방에 은인자중 앉아있던 조부자도 뛰어나왔다.

「여보, 칼 가져와 저놈의 배를 갈라 버리게.」

조부자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칼을 찾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 위에 던져진 관은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관의 형태가 완전히 사그러지자 마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칼을 찾던 조부자도 놀란 눈으로 관이 타버린 숯불더미 위의 광경을 바라보며 경약 했다.

응당 있어야 할 아들의 시신대신 큰 구렁이 한마리가 뜨거움에 못 견뎌 꿈틀거리고 있지 않는가

「아니, 우리 아들은 어디로 가고…」

조부자 네외는 천수스님을 바라보며 외쳤다.

「저게 댁의 아드님입니다.」

구렁이를 가리키며 조용히 말문을 연 천수스님은 이렇게 물었다.

「혹시 아기를 가질 무렵 구렁이를 죽이지 않으셨는지요?』

「글쎄요…아, 생각납니다. 토끼에게 풀을 먹이고 있는데 풀 속에서 구렁이가 나타나 토끼를 잡아먹으려 하길래 들고 있던 낫으로 찍어 죽인 일이 있어요.」

「낫을 가져와 보시지요.」

조부자가 부러진 낫을 가져오자 천수스님은 구렁이 뱃속에서 꺼낸 낫 끝을 맞추어 보았다.

신통하게도 꼭 들어맞았다.

보고 있던 동네사람들까지 어안이 벙벙했다.

「큰일날 뻔했습니다. 구렁이가 조금만 더 자라면 내외분 뿐 아니라 동네 분들까지 모두 화를 입었을 것입니다. 정말 천만 다행입니다.」

이때였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밀어닥치다니 천둥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리고 빗속에 들어오는 소리가 있었다.

「천수야 이놈, 내 철천지 원수를 못 갚게 방해한 널 그냥 두지 않을테다.」

소름이 끼칠 만큼 앙칼진 소리였다. 친수스님도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래, 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여러 사람 앞에서 원수를 갚을 것이다.」

「어림없이 수작 말고 썩 물러가거라.」

순간 구렁이는 독기를 내뿜었다. 스님은 재빨리 합장을 하고 염불로 대항했다.

구렁이의 독기는 스님의 염불 속에 그만 사그러지고 말았다.

「허, 고얀놈 같으니라고.」

천수스님은 옷깃을 가다듬으며 유유히 절로 돌아갔다.

<한국불교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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