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자식을 낳은 신도징
정원(貞元) 9년(793)의 일이다.
중국 당나라 신도징(申屠澄)이 야인(野人)으로서 한주 습방현위(漢州什方縣尉)에 임명되었었다.
진부헌(眞符縣)의 동쪽 10리가량 되는 곳에 갔을 때 눈보라와 심한 추위를 만나 말이 앞을 나가지 못했다.
길옆에 초가가 있는데 들어가니 그 속에 불이 피어 있어서 몹시 따뜻했다.
등불을 비추어 나아가 보니 늙은 부모와 처녀가 화로를 둘러싸고 앉아있었다.
그 처녀는 나이 겨우 14~15세쯤 되어 보였다.
비록 헝클어진 머리와 때묻은 옷을 입었으나 눈 같은 살결에 꽃 같은 얼굴로서 동작이 얌전했다.
그 부모는 신도징(申屠澄)이 온 것을 보자 급히 일어나서 말했다.
「손님은 차가운 눈을 무릅쓰고 오셨으니 앞에 와서 불을 쪼이시오.」
신도징이 한참 앉아 있으니 날은 이미 저물었는데 눈보라는 그치지 않았다.
신도징은 청했다.
「서쪽으로 현에 가려면 아직 멉니다. 부디 여기 좀 재워 주십시오.」
그 부모는 말했다.
「초가집을 누추하다고 여기지만 않으신다면 감히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신도징은 마침내 안장을 풀고 침구를 펴니 그 처녀는 손님이 유숙하는 것을 보자 얼굴을 밝고 곱게 단장해서 장막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한아(閑雅)한 자태가 오히려 처음보다 나았다.
신도징은 말했다.
「소랑자(小狼子)는 총명하고 슬기로움이 남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아직 미혼이면 감히 자기와 중매를 청하오니 어떻습니까?」
그 아버지는 말했다.
「뜻밖에 귀한 손님께서 거두어 주신다면 어찌 정한 연분이 아니겠습니까?」
신도징은 마침내 사위의 예를 행했다.
신도징은 타고 온 말에 처녀를 태워갔다.
이미 임지에 와 보니 봉록이 너무 적었으나 아내는 벌써 집안 살림살이를 돌보았으므로, 모두 마음에 즐거운 일 뿐이었다.
후에 임기가 차서 들어가려 할 때 벌써 1남1녀를 낳았는데 또한 매우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므로 신도징은 아내를 더욱 공경하고 사랑했다.
그는 일찍이 아내에게 주는 시를 지었는데 이러했다.
한 번 벼슬하니 매복(梅福)에게 부끄럽고
3년이 지나니, 맹광(孟光)에게 부끄럽다.
냇물 위에 원앙새가 있구나.
그러나 그의 아내는 종일 그 시를 읊으며 잠잠히 화답할 듯하면서도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신도징이 벼슬을 그만 두고 가족을 데리고 본집에 돌아가려 하니 그 아내는 문득 슬퍼하면서 신도징 에 게 말했다.
「전번에 주신 한편을 이어서 곧 화답한 것 이 있었습니다.」
이에 읊었다.
부부의 정도 중하기야 하지만,
산림에 뜻이 스스로 깊어졌소
시절이 변할 것을 늘 근심했소,
행여 백년해로 저버릴까 싶어서.
드디어 함께 그 여자의 집에 갔더니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그 아내는 사모함이 너무 심하여 종일 울고 있더니 문득 벽 모퉁이에 한 장의 호피(虎皮)가 있는 것을 보자 그녀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 물건이 아직도 여기 있구나.」
마침내 집어서 그것을 덮어 쓰니 곧 변하여 범이 되어 으르렁거리며 할퀴더니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신도징은 놀라 피했다가 두 아들을 데리고 그녀가 떠난 그 길을 찾아서 산림을 바라보고 며칠을 크게 울었으나 마침내 간 곳을 알지 못했다.
<三國遣事 感通第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