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사 바위
지금으로부터 6백년전 어느 봄날, 그림처럼 아름다운 남해바다에 돛단배 한척이 육지를 향해 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가 마치 요람에 든 아기 같구려.」
외로운 섬 생활을 청산하고 육지로 이사하는 노부부는 더없이 흡족했다.
그들이 이처럼 즐거워하는 것은 비단 배안의 아늑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식이 없어 적적하던 이 부부에게 뒤늦게나마 경사가 생긴 것이다.
「뱃속의 아기도 기분이 좋은가 봐요.」
「아 그래요!」
미처 아기 생각을 못했다는 듯 노인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웃었다.
육지에 오르면 집을 마련하고 아기를 낳아 단란한 가정을 이룰 꿈에 부풀며 얼마 쯤 왔을 때다.
「아니, 배가 왜 꿈쩍을 안할까.」
「아이구 영감, 잘 가던 배가 갑자기 웬일일까요.」
「그러게 말야.」
노인은 재빨리 노를 챙겨 저었다.
그러나 배는 조금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뿐인가. 찰랑대던 물결도 굳은 듯했다.
「여보 제 뱃속의 아기도 꼼짝을 안해요.」
「에엑! 아기도 놀지를 않는다구요?」
모처럼 희망을 안겨준 태아마저 움직이질 않는다니 그저 눈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으앙!」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죽음처럼 고요한 바다의 침묵을 깼다.
예기치 못했던 순간적인 해산이었다.
「아들이다!」
정신을 차린 듯 노인은 엉겁결에 소리쳤다.
학수고대하던 아들을 얻고도 공포와 불안에 잠긴 노부부는 탯줄을 끊어 바다에 던졌다.
그 순간 또다시 변이 생겼다.
「어, 배가 움직이네.」
탯줄이 바닷물에 닿자마자 배는 언제 멈췄느냐는 듯 항해를 계속했고 바닷물도 정겹게 출렁거렸다.
아기의 건강한 울음소리는 경쾌하게 바다에 울려 퍼졌다.
신기하게 태어난 그 아기는 참으로 비범하게 자랐다.
노인은 바다마저 숨죽이게 하고 태어난 아들 이름을 헤올이라 지었다.
커갈수록 재주가 뛰어나며, 책읽기를 즐기던 헤올은 10살 되던 해 입산의 뜻을 밝혔다.
「뭐, 입 산출가를 하겠다구?」
「네, 슬하를 떠나 도를 닦을까 하옵니다.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니. 네 나이 겨우 10살인데 도를 닦겠다니 알 수 없는 일이로구나.」
헤올의 부모는 펄쩍 뛰었다.
그러나 평범한 자식은 아닌 듯하여 다시금 허락을 내렸다.
헤올은 영성이 계시하는 대로 발길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지금의 통영군 광도면 안정리 상촌부락 뒤 벽방산음봉랄.
그 암자엔 고매한 도승이 한분 있었다.
스승을 만났으나 나름대로의 신념을 지닌 혜올은 도승의 가르침에 따르려하지 않았다.
「스님께서 절 어리다고 하심은 마치 제 부모님께서 출가를 걱정하시던 자애로운 정과 같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스님, 제가 암자 밖 저 큰 바위에서 10년간 도를 닦게 해주십시오.」
꾸지람도 해보고 달래도 보았으나 헤올의 뜻은 돌처럼 굳었다.
기어코 헤올은 거대한 바위에 도의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계절이 바뀌어 살을 에일 듯한 겨울 한파가 몰려 왔다.
「헤올아, 바람이 차다. 네 힘으론 이 추위를 이기지 못할테니 어서 암자로 가자.」
2년. 3년, 해가 거듭됨에 따라 헤올은 청년으로 변해갔다.
「아니옵니다. 꼭 이겨내겠습니다.」
「벌써 7년째다. 헤올아, 이러다간 입도하지도 못한 채 쓰러지겠다.」
도승은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괜찮사옵니다. 조금만 더 저를 지켜 봐주십시오.」
이렇게 10년이 되던 날, 도승은 더 이상 볼 수만 없어 잣죽을 끓여 가지고 헤올에게 갔다.
「그 자리에 앉은 지 벌써 10년. 네 힘이 어지간한 것을 이제 알겠으니 이 잣죽이나 먹고서 깨달음을 기다려라.」
헤올은 아무 응답이 없었다.
「아니 이 애가!」
도승은 헤올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직감했다.
노스님이 섬뜩 놀래는 순간 갑자기 뇌성벽력이 천지를 진동하면서 헤올이 앉은 거대한 바위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
그제야 잠자코 있던 헤올이 몸을 털고 일어났다.
「스님, 너무 오랫동안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옵니다.」
「과연 크게 깨쳤구나.」
「제 뒤로 저와 똑같이 스님을 찾아와 이곳에서 10년 공부를 할 젊은이가 있을 듯 하옵니다.」
「허 그래?」
노스님은 헤올이 신통했다.
그 후 종렬이란 젊은이가 이 바위에서 10년 정진 후 깨달음을 얻었다.
마을 사람들은 노스님과 헤올, 그리고 종렬 등 3도사가 깨달음을 얻은 이 바위를 삼도사 바위라 불렀다.
<한국지명연역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