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 전설
옛날 한 스님이 치악산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꿩 두 마리가 멀찌감치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그 스님은 그대로 자신의 길을 갔다.
그런데 꿩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더 이상 날아오르지를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스님은 꿩들이 떨어진 곳을 짐작해서 찾아가 보았다. 그랬더니 커다란 구렁이가 똬리를 튼 채 꿩을 향해 독을 내뿜고 있고, 꿩들은 그 독 기운데 맥을 못 추고 조금 있으면 구렁이에 먹힐 참이었다.
그 광경을 본 스님은 짚고 있던 석장을 들어 구렁이를 쫒아내 버리고 꿩을 구해 주었다.
그 날 밤 스님은 폐사가 되어 있던 구룡사(龜龍寺)에 도착하여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잠든 속에서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을 느껴 눈을 떠보니 구렁이가 자신의 몸을 칭칭 감은 채 금방이라도 삼킬 들이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구렁이는 오래 되어 말도 하였다.
“네가 내 먹을 밥을 살려주었으니 너라도 잡아먹으련다.”
“내가 네 먹이가 되어 네가 배 부른다면 이 몸이 아깝지 않다. 어서 먹어라.”
구렁이는 다소 주저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대가 승려가 아니라면 이미 먹고 말았을 것이다. 네가 살 수 있는 한 가지 방도를 알려주겠다.
만일 그대가 나를 위해 오늘 밤이 새기 전에 종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주면 나는 이고득락(離苦得樂)하여 환생할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스님은 일단 구렁이에게서 풀려났지만 너무나 막막하였다. 구룡사는 폐사되어 있었고, 주변에는 다른 절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산위로 30리 가면 상원사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 밤길을 간다 해도 날이 밝기 전에는 도저히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님은 모든 것은 인연에 따를 뿐이라는 생각으로 염불한 다음에 발길을 상원사로 향하였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새벽이 막 걷히기 직전 문득 먼 곳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뎅~뎅~”
종소리는 딱 두 번 울렸다. 그다지 큰 소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종소리였고, 그 소리를 들은 구렁이는 소원대로 그 자리에서 허물을 벗고 환생할 수 있게 되었다.
감격한 구렁이는 구렁이의 몸에서 벗어나면서, 자신의 몸뚱이를 화장해 줄 것을 부탁했다.
구렁이를 화장한 스님은 날이 밝자마자 상원사로 향했다. 어젯밤 종소리는 분명 상원사 쪽에서 났기 때문이다. 상원사에 간 즉시 종각으로 향한 스님은 종 앞에 떨어진 꿩 두 마리를 발견했고, 또한 종에 묻은 핏자국도 함께 보았다.
그제야 스님은 자신이 어제 낮에 구해준 꿩 두 마리가 종에 온 몸을 던져 소리를 냈던 것을 알았다.
스님은 너무나 감격하여 꿩들이 다음에는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기도하고 염불한 다음 산을 내려왔다.
이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사람들은 자신을 구해 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은 꿩을 기리는 뜻에서 상원사가 자리한 산을 꿩을 뜻하는 ‘雉(치)를 써서 치악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범종을 치기 전에 가볍게 두 번 치는 전통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이 전설에 나오는 스님은 바로 무착 대사였다고도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초 태조 이성계의 왕사로 유명했던 무학(無學) 대사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으면서 꿩과 무착 대사를 기렸다.
蛇沒雉岳兩鮮空 사몰치악양선공
뱀이 죽은 치악의 맑은 하늘가로
大小盤音四更中 대소반음사경중
크고 작은 종소리 사경에 울려
雉蛇兩寃半宵鮮 치사양원반소선
꿩과 뱀의 두 원혼이 한밤중에 풀렸으니
正知無着報酬鐘 정지무착보수종
무착 스님은 보은의 종소리임을 비로소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