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 창건설화

오세암 창건설화

조선시대 설정(雪淨) 스님은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암자에 데려다 키우고 있었다. 겨울이 막 시작된 10월의 어느 날, 스님의 월동준비 관계로 양양의 물치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네 살의 조카를 위하여 며칠 먹을 밥을 지어 놓고 스님은 신신당부하였다.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향하여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

이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난 스님이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 왔을 때, 밤새 내린 폭설로 길에는 사람의 키보다 더 높은 눈이 쌓여버렸다.

혼자 속을 태울 뿐 어찌할 수 없게 된 스님은 겨울을 지나 눈이 녹은 이듬해에 겨우 돌아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달려가 보니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안의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스님이 아이를 와락 끌어안고 그 까닭을 물었다.

“저 어머니가 언제나 찾아와서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같이 놀아도 주었어요.”

그 때 갑자기 한 젊은 백의여인이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성불(成佛)의 기별을 주고는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날아가 버렸다.

관세음보살의 가피에 감격한 설정 스님은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을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관음전 옆 마당에서 바라볼 때 뒷산이 관음조암(觀音鳥巖)으로, 전설에 나오는 관음보살의 응신이고, 반대편 백담사 쪽으로 바라볼 때 있는 바위가 관음보살이 오세 동자를 아들처럼 안고 있는 모습을 한 어머니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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