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02. 하권
후한 서역 삼장 축대력 강맹상 한역 김달진 번역
4. 유람하는 품[遊觀品]
이에 왕은 태자에게 말하기를, ‘다니면서 유람이나 하여라’ 하였는데, 태자는 생각하기를, ‘오랫동안 깊은 궁전에 있으면서 생각으로는 나가서 유람하고 싶었는데, 진실로 소원대로 되었구나.’라고 하였다. 왕은 나라에 칙명하여 태자가 나가게 되는 곳은 길거리를 엄히 정돈하되 뿌리고 쓸고 향을 사르며 비단 번기와 일산을 달고 아주 산뜻하고 깨끗하게 하였는지라, 태자는 인도하고 따르면서 수많은 수레와 말을 타고 동쪽 성문을 나가기 시작하였느니라.
이 때에 수타회천(首陀會天)의 난제화라(難提和羅)는 태자를 빨리 출가 시켜 시방을 구제하고 3독(毒)의 타는 불에 법의 비를 내려 독의 불을 끄게 하려고 늙은이로 변화하여 길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되, 머리는 희고 이는 빠졌으며 살갗은 느슨하고 얼굴은 주름지고 살도 없고 등은 앞으로 구부러졌으며, 뼈마디는 시들어서 굽고 눈물과 콧물과 침은 뒤섞여 흐르며 상기(上氣)가 되어 어깨로 숨을 쉬고 몸의 빛깔은 검으며, 머리와 손은 쓸데없이 흔들고 몸은 벌벌 떨며 오로(惡露)는 저절로 흐르는데 그 위에서 앉았다 누웠다 하였다.
태자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느니라. 천신이 종을 깨우쳐 주었으므로 종은 말하기를, ‘늙은이 입니다’라고 하는지라, ‘무엇을 늙음이라 하는가?’ 하고 물었다. 종이 대답하기를 ‘대저 늙음이란 나이가 많아서 감관이 완숙하고 모양이 변하고 빛깔이 쇠하며 기운이 미미하고 힘이 다하며 음식은 소화가 안 되고 뼈마디는 끊어지려 하며, 앉고 일어남에는 사람이 필요하며, 눈은 멀고 귀머거리가 되며, 문득 돌아서면 곧 말을 잊어버리고 갑자기 슬퍼지며,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늙음이라 하옵니다’라고 하였다. 태자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사람이 세상에 사는 데에 이런 늙음이란 근심이 있었구나. 어리석은 사람이야 탐내고 사랑하겠지마는 어찌 즐거워 할 수가 있겠느냐? 만물이 봄에 나서 가을과 겨울이면 시들고 마르며, 늙음이 번개처럼 닥쳐오거늘 몸에 만족하고 의지하겠느냐?’하고는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늙어지면 곧 빛깔이 쇠하고
병이 들면 광택이 없어지나니
살갗은 느슨하고 살이 쭈그러들며
죽음만이 가까이 닥치누나.
늙으면 모양이 변하여
마치 헌 수레와 같을 것이니
법(法)은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지라.
마땅히 힘써서 배워야 하리.
목숨은 밤낮으로 다하려 하므로
시기에 이르러서 부지런히 힘쓸지니
세간의 진리는 무상한지라
헷갈려서 어둠 속에 떨어지지 말지로다.
마땅히 배움에 뜻의 등불 켜야 하고
스스로 익히면서 지혜를 구하며
때를 떠나 더러움에 물들지 말 것이요
등불 잡고 도의 땅을 자세히 살피리라.
이에 태자는 곧 수레를 돌려 돌아왔으며, 일체에게 이런 큰 근심이 있음을불쌍히 여기며 근심하고 언짢아하였다.
왕은 그의 종에게, ‘태자가 나가 노닐다가 무엇 때문에 속히 돌아왔느냐?’하고 물었다. 그 종은 대답하기를, ‘길에서 늙은이를 만나 슬퍼하고 언짢아하더니, 궁중에 돌아와서도 근심을 하나이다’라고 하였느니라.
해가 바뀌자 조금 나아져서 다시 나가 유람하려 하므로, 왕은 나라 안에 칙명하여 태자가 나가게 되는 데에는 여러 더러운 것을 금하여 길옆에 있지 못하게 하였다. 이에 태자는 수레를 타고 성의 남쪽 문으로 나갔는데, 천인(天人)이 변화로 병든 사람이 되어 길옆에 있되, 몸은 파리하고 배는 크며 몸은 샛노랗게 되었으며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하며, 온갖 마디는 몹시 쑤시고 아홉 구멍에서는 썩은 물이 새며, 부정한 것이 저절로 흐르고 눈으로는 빛깔을 보지 못하며, 귀로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신음하면서 숨을 쉬며, 손발은 허공을 더듬으며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짖고 ‘아내야, 아들아’ 하며 슬퍼하고 그리워하는지라, 태자가 물었느니라.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라고 하자 그의 종은 대답하기를, ‘병든 사람이옵니다’라고 하므로, ‘어떤 것을 병(病)이라 하느냐?’고 물었다.
종이 대답하기를, ‘사람에게는 네 가지 요소[四大]인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이 있어서 하나의 요소에 101가지 병이 있으며, 차츰 서로가 모여서 404가지 병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데, 이 사람은 반드시 극도로 춥고 극도로 덥고 극도로 굶주리고 극도로 배부르고 극도로 마시고 극도로 목마르는 등, 때와 자리를 잃었고 눕고 일어나는 데 법도가 없기 때문에 이런 병이 걸리게 되었나이다’라고 하였다. 태자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나는 부귀한 곳에서 살고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음식으로 입을 상쾌하게 하고 마음을 놓아 제멋대로 하며 다섯 가지 욕심에 빠져서 스스로 깨달을 수가 없으므로 역시 이런 병이 있을 터인데, 저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이 몸이야말로 단단하지 않구나.
언제나 네 가지의 요소와 함께 하고
아홉 구멍에서는 부정한 것 흐르며
늙음이 있고 병환이 있도다.
하늘에 가서 남[生]도 모두가 무상하고
인간에는 늙음과 병듦의 근심이니
몸을 살피매 마치 비의 거품 같은지라
세간에서 무엇을 즐길 수 있겠느냐?
이에 태자는 수레를 돌려 궁중으로 돌아와서 일체에게 이런 큰 근심거리가 있음을 생각하였다.
왕은 그 종에게 묻기를, ‘태자가 나가서 노닐었는데, 이번에는 어떻더냐?’하자, 그 종은 대답하기를, ‘병든 사람을 만나보고서 이를 언짢아하옵니다’라고 하였느니라.
해가 바뀌자 조금 나아져서 다시 나가 유람하고자 하므로, 왕은 나라 안에 칙명하여 태자가 나가게 되는 데에는 평탄하게 다스리고 더러운 곳을 길 가까이에 없게 하였다.
서쪽 성문으로 나가자, 천인이 죽은 사람으로 변화하여 상여가 성을 나가고 집안 사람들이 상여를 따르면서 통곡하고 하늘을 부르되, ‘어째서 우리를 버리고 영원히 이별한단 말이오?’ 하였다. 태자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하고 물었다. 종이 말하기를, ‘죽은 사람이옵니다’라고 하므로, ‘어떤 것을 죽음이라 하는가?’라고 물었다. 종이 대답하기를, ‘죽음이란 다함이요, 정신이 떠나가는 것이옵니다. 네 가지 요소가 흩어지려 하면서 혼신(魂神)이 편안하지 못하며 바람 기운이 떠나가서 숨이 끊어지고 불기운이 스러져서 몸이 차가워지며, 바람이 먼저요 불이 다음으로 혼령(魂靈)이 떠나가나이다. 신체는 뻣뻣해지고 다시는 느끼는 것이 없어지며 10여 일 동안이면 살이 무너지고 피가 흐르며 띵띵 부풀고 문드러져 냄새나며, 취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몸 속에 있던 벌레가 도리어 그 살을 뜯어먹으며, 힘줄과 맥은 문드러져 다하고 뼈마디는 흩어져서 해골은 제 자리를 달리하며 척추ㆍ옆구리ㆍ어깨ㆍ팔ㆍ넓적다리ㆍ정강이와 발이며 손발가락은 저마다 제 자리에서 떨어지고 날짐승ㆍ길짐승은 다투어 와서 뜯어먹으며, 하늘과 용ㆍ귀신ㆍ제왕ㆍ인민 등,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간에 이 환난만은 멸한 이가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태자는 길게 탄식하면서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늙음ㆍ병듦ㆍ죽음을 자세히 살펴보고
나는 마음으로 길게 탄식하노라.
인생에는 무상함이 존재하므로
나의 몸도 당연히 그러하리라.
이 몸이 죽은 물건이 되면
정신은 형상이 없을 것이나
가령 죽었다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죄와 복은 흩어지지 아니하리라.
끝내 한 세상만이 아닌 것인데
어리석어 늘 애욕만 부리니
이로부터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으며
몸은 죽어도 정신만은 없어지지 않으리라.
공중도 아니요 바다 속도 아니며
산과 돌의 사이에 들어가도 안 되리니
죽음을 벗어나고 그치며 받지 않을
땅과 방소(方所)는 아무 데도 없으리라.
이에 태자는 수레를 돌려 궁중으로 돌아와서 중생들에게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과 큰 근심거리가 있음을 가엾이 여겨 근심하며 밥도 먹지 못하였다. 왕은 그 종에게 ‘태자가 나가 노닐면서 과연 즐거움 있었더냐?’ 하고 물었다. 종이 곧 왕에게 대답하기를, ‘죽은 사람을 만나고서 언짢아하고 있나이다’ 하였느니라.
해가 바뀌어 조금 나아져서 다시 유람을 하고자 하여 수레를 차리고 북쪽 성문으로 나갔다. 천인은 다시 사문으로 변화하여 법복을 입고 발우를 가졌는데, 걸음걸이는 차분하고 눈은 어긋나지 않았다. 태자는 ‘저 사람은 무엇 하는 사람인가?’ 하고 물었다. 그 종은 대답하기를, ‘사문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어떤 이를 사문이라 하느냐?’ 하고 묻자 종이 대답하기를 ‘듣기로 사문이란 도를 닦나이다. 집과 처자를 버리고 애욕을 버리며 6정(情)을 끊고 계율을 지켜 함이 없으며, 선정[一心]을 얻으면 곧 만 가지 삿됨이 스러지옵니다. 선정의 도는 아라한이라 하옵고, 아라한이란 진인(眞人)이옵니다. 소리와 빛깔이 더럽힐 수 없고 영화스런 지위가 굽힐 수가 없으며, 움직이기 어려움이 마치 땅과 같고 이미 근심과 고통을 면하였으며, 살고 죽음이 자재하다 하옵니다’라고 하였다.
태자는 말하기를, ‘장하도다. 이것만이 상쾌한 것이로구나’ 하고, 이어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애달프구나.
이러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 있으니
정신은 지은 죄에 도로 들어가
여러 고통들을 겪고 지나는구나.
이제는 마땅히 여러 고통 없애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없애며
다시는 사랑함과 만나지 않고
영원히 열반을 얻게 하리라.
이에 태자는 곧 수레를 돌려 돌아와서 근심하며 먹지도 못하였다.
왕은 그의 종에게 묻기를, ‘태자가 또 나가서는 그 마음이 즐거워하더냐?’라고 하자, 종은 대답하기를, ‘가다가 사문을 보고서 더욱 근심하며, 음식조차 먹으려 하지 않나이다’라고 하였다. 왕은 듣고 크게 성을 내며 손을 들어 내리치면서 ‘저번에 길을 닦으라 명령하였는데, 또 태자에게 상서롭지 못함을 번번이 보게 하였구나. 죄는 죽여 마땅하도다’라고 하였다. 곧 신하들을 불러 각자 건의하게 하면서, ‘어떠한 방술을 써야 장차 태자가 나가서 도를 닦지 않게 되겠소?’라고 하였다.
한 신하가, ‘태자에게 농사짓는 것을 감독하게 하면서, 그 뜻을 골몰하게 하여 도를 생각하지 않게 해야 하오리다’라고 하였므로 곧 농사짓는 기구인 쟁기와 소, 젊거나 나이 든 여러 종들을 딸려 밭에 올라가서 감독하는 일을 맡겼느니라.
태자는 염부수(閻浮樹) 아래 앉아서 밭갈이하는 것을 보았는데, 흙덩이가 부서지면서 벌레가 나왔다. 천인이 또 변화로 소에게 목으로 흙덩이를 후비적거려서 벌레가 아래로 뚝뚝 떨어지게 해두면 까마귀가 따르면서 쪼아 먹고, 또 개구리를 만들어서 꿈틀거리며 쫓아가서 지렁이를 잡아먹게 하며, 뱀이 구멍으로부터 나와 개구리를 잡아먹고, 공작이 날아 내려와서 그 뱀을 쪼아 먹고, 매가 있다가 내려와서 공작을 쳐서 잡고 독수리가 다시 와서 매를 움켜쥐며 잡아먹게 하였다.
보살은 이 중생들이 전전(展轉)하며 서로 잡아먹음을 보고서 인자한 마음으로 가엾이 여기면서 나무 아래서 제일선(第一禪)을 얻었는데, 햇빛이 쨍쨍 빛나는지라, 나무가 그를 위하여 가지를 굽혀 주어 그 몸을 따르면서 그늘이 지게 하였다.
왕은 생각하기를, ‘태자가 언제나 궁중에 있으면서 일찍이 고생한 일이 없었다’ 하고 곧 그의 종에게, ‘태자는 어떻더냐?’하고 물었다. 종이 대답하기를, ‘지금 염부수 아래 있으면서 한마음으로 선정에 드셨나이다’라고 하는지라, 왕은 말하기를, ‘나는 농사 감독을 시키면서 그의 뜻을 어지럽히려 한 것인데, 그런데도 선정을 한다면 집에 있음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하였다.
왕은 명을 내려 수레를 차리고 마중하러 가다가 멀리서 태자를 보았는데, 나뭇가지가 구부러져 그늘지게 하고 신령스럽게 빛남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모르는 결에 말에서 내려 그에게 예배하였느니라.
이 때에 곧 함께 돌아오는데, 아직 성문에 미치기 전에 무수한 사람들이 꽃과 향을 받들며 마중하고 상사(相師)들이 모두가 ‘수명이 무량하소서’라고 하였다.
왕이 무슨 일인가 하고 물으니 범지는 대답하기를, ‘내일 아침에 해가 돋으면 7보가 이르게 되리다’라고 하는지라,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반드시 전륜 성왕이 되겠구나’라고 하였느니라.
5. 출가품(出家品)
이 때 태자는 궁중으로 돌아와서 생각하기를, ‘도를 생각하며 깨끗하려면 집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 언제나 산과 숲에 살면서 힘써 연구하며 선정을 행하리라’ 하였다. 나이 열아홉 살의 4월 7일이 되자 맹세코 출가하려 하였는데, 한밤중이 넘고 샛별이 돋을 때가 되자 여러 천인들이 허공을 꽉 메우고서 태자가 떠날 것을 권하였느니라.
이 때에 구이는 다섯 가지의 꿈을 꾸고서 갑자기 놀라며 깨어났는데, 태자가, ‘무엇 때문에 놀라 깨었소?’하고 물었다. 구이가 대답하기를, ‘방금 꿈속에서 수미산이 무너지고, 달의 광명이 땅에 떨어지며 구슬의 빛이 갑자기 없어지고 머리의 상투가 땅에 떨어지며 사람들이 나의 일산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때문에 놀라 깨어났습니다’라고 하였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다섯 가지 꿈이야말로 나의 몸에 해당된 것이로다’ 하고, 출가할 것을 생각하면서 구이에게 말하기를, ‘수미산은 무너지지 않았고, 달의 광명도 계속 비치며, 구슬의 빛도 없어지지 않았고, 머리의 상투도 떨어지지 않았으며 일산도 지금 있습니다. 그러니 편안히 잠이나 주무시고 일산 잃을 것을 근심하지 마시오’라고 하였느니라.
이에 여러 천인들은 말하기를, ‘태자여, 떠나가셔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태자가 머물러 있을까 두려워하여 오소만(烏蘇慢)[한나라 이름으로는 염신(厭神)]을 불러서 궁중으로 들어오게 하여 나라 안이 잠에 빠져 있게 하였느니라.
이 때에 난제화라(難提和羅)는 여러 궁전을 변화하여 모두 무덤을 만들고 구이와 궁녀들은 모두 죽은 사람이 되게 하여 뼈마디가 흩어져 해골이 되고 다른 곳에서는 살이 띵띵 부어 문드러져 냄새나고 푸르뎅뎅한 피고름이 줄줄 뒤섞여서 흐르게 하였는데, 태자가 궁전을 살펴보자 모두가 무덤이요, 올빼미ㆍ수리부엉이ㆍ여우ㆍ삵쾡이ㆍ승냥이와 이리 등 새와 짐승들이 그 사이를 날고 뛰고 하였다. 태자는 온갖 있는 바가 마치 허깨비 같고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은 줄 자세히 살피고서, ‘모두가 공(空)으로 돌아가거늘, 어리석은 이들은 지키려고 하는구나’라고 하고, 즉시 차닉을 불러 급히 말을 차리게 하였다.
차닉이 말하기를, ‘날이 아직 새지도 않았사온데 말을 차려서 어디로 나가시겠나이까?’라고 하므로 태자는 차닉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이제 나는 세상이 즐겁지 아니하니
차닉아, 머뭇거리지 말아라.
나의 본래 서원을 이루게 되면
너의 3세(世) 고통을 없애 주리라.
이에 차닉은 곧 말을 차리러 갔더니 말이 갑자기 날뛰는지라 가까이 할 수가 없으므로, 돌아와서 태자에게 아뢰기를, ‘말을 차릴 수가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보살이 몸소 가서 말의 등을 어루만지며 두드리면서 이어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나고 죽음에 오랫동안 있다가
수레 타는 것을 이제야 끊으련다.
건특(騫特)아 나를 내 보내 다오.
도를 얻으면 너를 잊지 않으리라.
이에 말을 차리고 나자 건특은 생각하기를, ‘이제 발로써 땅을 밟으면 안팎의 사람들이 알아채리라’ 하였는데, 사천왕이 발을 들어서 다리가 땅에 닿지 않게 하였다. 다시 말은 울어서 소리가 멀고 가까운 데에 들리게 하려 하였더니, 천신들이 말의 소리를 흩어서 모두 허공으로 들어가게 하였느니라.
태자는 곧 말에 올라 성문을 나아가는데 여러 하늘ㆍ용ㆍ신ㆍ제석ㆍ범왕ㆍ사천왕들이 모두 즐거워하며 인도하고 따르면서 허공을 덮었느니라.
이 때에 성문신(城門神)이 사람으로 나타나서 머리 조아리며 말하기를,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은 천하에서 가장 중앙이어서 풍성하고 즐거우며 인민들이 편안하거늘, 무엇 때문에 버리고 떠나십니까?’라고 하므로 태자는 게송으로 대답하였느니라.
오랫동안 나고 죽으면서
정신은 5도(道)에서 지냈나니
내가 본래 서원을 이루도록
열반의 문을 열어야겠소.
이에 성문은 저절로 열렸으므로 문을 나가 날아서 떠나갔는데, 날이 새기까지 480리를 가서 아노마국(阿奴摩國)[한나라 말로 상만(常滿)]에 이르렀느니라.
태자는 말에서 내려 몸의 보배 옷과 영락이며 보배 관을 벗어서 모두 천특(闡特)에게 주며 말하기를, ‘너는 말을 끌고 돌아가서 위로 대왕과 나라 신하들에게 용서를 빌어라’라고 하였다.
천특은 말하기를, ‘이제 태자를 따르면서 필요한 것을 공급해야 하겠으며 혼자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말이나 놓아서 떠나가게 하소서. 산중에는 독충과 호랑이와 사자들이 많이 있는데 누가 음식과 물이며 침구 등을 공양하며, 누구로부터 얻을 것이옵니까? 반드시 따르면서 몸과 목숨을 같이 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건특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발을 핥고, 물을 보면서도 먹지 않고 풀이 있어도 먹지 않고서 울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떠나가지 않았으므로 태자는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몸이 강하여도 병이 들면 꺾이고
기운이 왕성해도 늙으면 쇠하며
죽으면 살아서 이별하거늘 어찌하여 세간을 즐기겠느냐?
이에 천특은 슬피 울며 발에 예배하고 말을 끌며 하직하고서 돌아가는데, 아직 성에 닿기도 전 40리 밖에서 백마가 슬피 울자 그 소리는 나라 안에 사무쳤다. 나라 안에서 모두가 말하기를, ‘태자가 돌아오는구나’ 하고, 온 나라 인민들이 끊이지 않고 마중을 나왔는데, 천특이 홀로 빈 말을 끌고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구이는 이를 보고서 스스로 궁전 아래로 몸을 던지듯 나아가 말의 목을 끌어안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지라 왕은 구이의 우는 것을 보고서 오장이 모두 끊어지는 듯하였지마는 자신은 억제하며 말하기를, ‘나의 아들은 자연(自然)을 배우느니라’ 하였다. 나라 안의 신하와 백성들은 왕과 구이가 흐느끼며 슬피 우는 것을 보고서 마음 아파하지 않는 이가 없었느니라.
구이가 밤낮으로 생각하는지라, 왕은 곧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나에게 태자가 하나 있다가 나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갔으니, 그대들은 지금 꼭 다섯 사람을 차출하여 같이 따르며 태자를 모시게 하오. 부디 중도에서 돌아오지 않게 하시오’라고 하였느니라.
태자는 세속을 떠나게 되었으므로 뛸 듯이 기뻐하며 편안하게 천천히 걸어가서 성으로 들어갔는데, 나라 사람들은 태자를 보고서 싫어함이 없었다. 태자는 은애(恩愛)를 떠나서 모든 괴로움의 근본을 멀리하였으므로 머리칼을 깎으려고 생각하였지마는 갑자기 도구가 없었는데, 제석이 칼을 가지고 왔으며 천신들이 머리칼을 받아서 떠나갔는지라, 마치고 다시 앞으로 갔더니 나라의 인민들이 따르면서 구경하였느니라.
이 나라를 벗어나서 조금 더 앞으로 가서 마갈국(摩竭國)에 이르러 오른편의 문으로부터 들어가서 왼편의 문으로 나오는데, 나라 안의 인민들 남자 여자, 아이나 어른 모두가 태자를 보고서, 어떤 이는 말하기를, ‘천인이다’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제석이거나 범왕이거나 천신이거나 용왕이라’고 하기도 하며, 기뻐서 뛰며 ‘어떤 신이신 줄 모르겠구나’라고 하였다.
태자는 그들의 생각들을 알아채고 곧 길을 내려가 나무 아래 앉았는데, 인민들이 에워싸고 기뻐하면서 살펴보았느니라.
이 때에 국왕 병사(甁沙)는 곧 신하들에게 묻기를 ‘나라 안이 어찌 이리도 고요하고 잠잠하냐?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는구나’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아침에 어떤 도사(道士)가 나라를 지나갔는데, 빛깔과 몸매며 위의가 세상에 있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나라의 인민들 모두가 따라가서 구경을 하느라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나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과 신하들은 도사를 찾아가 멀리서 보니 태자의 광명과 몸매가 특수하고 미묘하였는지라, 곧 태자에게 묻기를, ‘어느 신이시옵니까?’라고 하므로 태자는 대답하기를, ‘나는 신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만약 신이 아니시라면 어느 나라에서 오셨으며 어느 성족(姓族)이십니까?’라고 하자 태자는 대답하기를, ‘나의 출생지는 향산(香山)의 동쪽 설산(雪山)의 북쪽인 가유라위국이며, 아버지는 백정왕이요, 어머니는 마야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백정왕은 묻기를 ‘실달타가 아니십니까?’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므로 놀라 일어나서 발에 예배하며, ‘태자의 탄생에는 기이한 형상이 많았고 빛나는 일이 나타나셨습니다. 장차 4천하의 임금으로 전륜성왕이 되시며 4해(海)가 공경하고 신보(神寶)가 이를 것인데 어째서 하늘의 지위를 버리시고 스스로 산과 숲에 몸을 던지셨습니까? 반드시 뛰어난 견해(見解)가 있을 것이니 그 뜻을 들려주소서’라고 하였다. 태자는 대답하기를, ‘나의 견해란 하늘과 땅의 사람과 물건은 나면 죽음이 있고, 심한 고통이 세 가지가 있으니,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인데 떠날 수가 없습니다. 몸은 괴로움의 그릇이라 근심과 두려움이 한량없으며, 만약 지위가 높고 사랑을 받는다면 교만과 방자함이 있고, 욕심을 부려 마음대로 하려 한다면 천하가 근심을 당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산에 들어오고자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여러 장로(長老)들이 말하기를, ‘대저 늙고 병들고 죽음이란, 예로부터 세상의 변하지 않는 일이거늘 어찌하여 혼자만 미리 근심하신단 말씀입니까? 아름다운 이름을 버리고 숨어살며 그 몸을 괴롭히는 것 또한 근심이 아닙니까? 라고 하자 태자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사람이 태(胎) 안에 있을 때 더러움이 없게 하며
깨끗한 데 있을 때 더러워지지 않게 하며
괴로움이 수없이 많아지게 하지 않는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사람이 늙어 형상이 여러 가지로 변하지 않게 하며
선행을 하던 이가 악행을 하지 않게 하며
사랑하다가 이별하여도 고통이 되지 않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병들어 야위고 다시 큰 두려움이 없게 하며
후세에 모든 나쁜 과보가 없게 하며
지옥에 떨어져도 괴로움이 없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젊은 날의 형상이 변함없게 하며
옳지 않은 바를 마음에 집착하지 않게 하며
죽음이 다가와도 많은 두려움이 없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어리석어서 더욱더 미련해지지 않게 하며
성을 내며 억지로 원수를 짓지 않게 하며
다섯 가지 즐거운 마음으로 나쁜 것에 물들지 않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여러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이 살지 않게 하며
많은 어리석은 법들이 스스로 사람을 멀리 떠나게 하며
여러 어리석은 이들이 온갖 생각을 만들어내지 않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여러 악한 종류들이 무리 짓지 않게 하며
모든 악이 다하고 사라져 스스로 사람을 떠나게 하며
모든 악한 생각들은 생각함이 없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세간의 악들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게 하며
악한 행이 없어지고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며
여러 악한 행이 사라져 실체가 없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여러 하늘들의 음식과 복이 언제나 변동함이 없게 하고
세상 사람의 수명이 언제나 존재될 수 있게 하며
어디에 있건 나다니며 구하지 않아도 되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모든 음(蔭;蘊)과 덮임[蓋]이 원수가 되지 않게 하며
모든 여섯 감관에 괴로움이 없게 하며
온갖 세간을 괴로움이 아닌 것으로 되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이에 태자는 말하기를, ‘여러분의 말씀과 같아서 미리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내가 왕이 되게 하고서 늙음이 이르고 병이 미치며 또는 죽는 때에 당해서 당연 나를 대신하여 이 재앙을 받을 이가 있습니까? 만일 대신할 이가 없다면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천하에 인자한 아버지와 효자가 있어서 사랑이 골수에 사무쳤다 하더라도 죽을 때를 당해서는 서로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 거짓된 몸에 괴로움이 닥쳐오는 날이면 비록 높은 지위에 있고 6친(親)이 곁에 있다손 치더라도 마치 장님에게 등촉을 켜 줌과 같거니 눈 없는 이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나는, 변천하는 모든 법은 무상하여 모두가 허깨비요 진실이 아니며, 영화는 적고 괴로움이 많으며, 몸은 자기 소유가 아니요, 세간은 허무하여 오래 살아 있기 어려우며, 만물은 나면 죽음이 있고 일이 이루어지면 실패가 있으며, 편안하면 위태로움이 있고 얻으면 곧 없어짐이 있나니, 만물은 어수선하고 야단스러워서 모두가 당연히 공(空)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정신이 형상은 없되 조급하고 흐리고 밝지 못하면 죽고 나는 데의 재앙에 가서 이르나니, 다만 한 번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탐냄과 사랑만을 위하여 어리석음의 그물에 덮여 있으면 나고 죽음의 물에 빠지면서도 그를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산에 들어가려 합니다.
한마음으로 4공정(空淨)을 생각하여 물질[色]을 벗어나고 성냄을 없애며, 구함을 끊고 공을 생각하여 옳고 그름이 없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그 근원을 돌이켜 근본으로 돌아가 비로소 그 뿌리를 뽑게 될 것이니, 나의 서원과 같아야 비로소 크게 편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병사왕과 여러 장로들은 기뻐하며 이해하고선 ‘태자의 뜻은 미묘하여 세간에는 있기 어렵습니다. 반드시 부처님의 도를 얻으시리니, 먼저 저를 제도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으며 태자는 잠자코 떠나갔느니라.
또 나아가다가 생각하기를, ‘지금 나는 산에 들어왔는데, 보배 옷을 입어서야 되겠는가? 세간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모두 재물 때문에 재앙을 받는다’ 하고 문득 사냥꾼을 보았는데 사냥을 하는 이가 법의(法衣)를 입었는지라 태자는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이것이야말로 진인(眞人)의 옷이요, 세상을 건지는 자비의 옷이다. 사냥꾼은 무엇 때문에 입었을까?’ 하였다.
마음에 생각하기를 ‘맞바꾸자고 하면 나의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하면서, 곧 지니고 있는 금실로 짠 옷을 가지고 가서 법복과 바꾸자고 하자, 사냥꾼도 속으로 기뻐하였고 보살도 그러하였느니라.
태자가 법복을 입어보았더니 부드럽고 또한 고왔으며 승가리(僧伽梨)를 돌아보니 과거의 부처님과 차별이 없었다. 이에 드디어 산으로 들어갔으며, 보살은 법복을 얻어서 기뻐하였고 그 빛은 산과 숲에 비쳤느니라.
그 산에 머물던 여러 도사(道士) 중 아란(阿蘭)이란 이와 가란(迦蘭)이란 이는 오랜 세월을 배워 4선(禪)을 두루 갖추고 다섯 가지 신통을 얻은 자였는데, 광명을 보고 놀라 두려워하면서 ‘이것이 무슨 서응(瑞應)일까?’ 하 였다. 곧 함께 나가서 자세히 살펴보다가 멀리서 태자를 보고서야, ‘바로 실달(悉達)이로구나. 이제 출가하였구나’ 하면서 ‘잘 오셨습니다. 실달(悉達)이여, 이 걸상에 앉으셔서 이제 시원한 물과 맛있는 과일을 드십시오’ 하고는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해가 처음 돋아 오를 때에
산꼭대기 위에 있게 되나니
그 때문에 슬기로운 광명이
일체 중생들을 비추시리다.
어떤 이가 얼굴 모습 자세히 살핀다면
마침내 싫어할 줄 모를 것이니
그러므로 도덕이 으뜸이어서
짝이 없고 견줄 이 없으십니다.
이 때에 보살은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비록 4정의(定意)를 닦는다지만
위없는 지혜를 모르고 있나니
도란 마음을 바르게 함이 근본이요
삿된 귀신 섬기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속된 것을 행하면서 진리라 생각하며
오랫동안 범천(梵天)을 구했나니
그러므로 도(道)를 알지 못하며
바퀴 돌 듯하면서 생사에 떨어진다오.
이에 보살은 자애로운 마음[慈心]을 행하고 일으켜, 중생들이 늙도록 어리석기만 하여 질병과 죽어 없어짐의 고통을 면하지 못함을 두루 생각하고는해탈시키고자 그 뜻을 오로지 하였으며, 가엾이 여기는 마음[悲心]을 일으켜, 일체 모두에게 굶주림과 목마름과 추위와 더위와 이익과 손해와 허물 있고 어려움의 근심이 있음을 불쌍히 여기고는 안온하게 하고자 그 뜻을 오로지 하였으며, 기뻐하는 마음[喜心]을 일으켜, 모든 세간 어디건 근심과 고통이 있고 두려움이 닥치게 되는 근심이 있음을 생각하고는 맑고 깨끗하게 하고자 그 뜻을 오로지 하였으며, 보호하는 마음[護心]을 일으켜, 다섯 갈래와 여덟 가지 어려움에서 건져주려 하여도 중생들이 어리석고 어두워 바른 도를 보지 못하니 그들을 모두 제도하여 함이 없음[無爲]을 얻게 하고자 그 뜻을 오로지 하였으며, 좋음을 얻어서도 기뻐하지 아니하고 싫음을 만나서도 근심하지 아니하며 세상의 여덟 가지 일인 이익과 손해ㆍ비난과 명예ㆍ칭찬과 책망ㆍ괴로움과 즐거움을 버리고 치우치거나 동요하지 아니하여 2선(禪)의 행을 이루었느니라.
다시 나아가서 사나천(斯那川)에 이르렀는데 그 하천은 평평하고 바른지라 여러 과일나무가 많았고, 곳곳에 모두 흐르는 샘과 목욕하는 못이 있으며 그 가운데는 깨끗하여 벌레와 벌과 모기와 등에와 파리가 없었고, 하천 안에는 도사(道士) 사나(斯那)라는 이가 제자들 5백 인을 가르치며 그의 도술을 닦게 하고 있었느니라.
이에 보살은 사라수(娑羅樹) 아래 앉아서 일체를 위하여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고 있었는데, 여러 하늘들이 감로(甘露)를 바쳤지마는 보살은 하나도 받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맹세하고서 하루에 한 톨의 유마[麻]와 한 톨의 쌀만 먹으면서 정신과 기운을 잇고 있었느니라.
단정하게 6년 동안 앉아 몸은 파리해지고 살갗과 뼈는 서로가 맞붙었는데, 맑고 고요히 하고 잠잠하게 하여 한마음으로 안에서는 안반(安般)을 생각하였나니, 첫 번째는 (들숨 날숨을) 헤아리며[數], 두 번째는 (뜻이 안정되도록) 따르며[隨], 세 번째는 (산란한 생각을) 멈추며[止], 네 번째는 (도의 뜻을) 자세히 살피며[觀], 다섯 번째는 (열반으로) 돌아오며[還], 여섯 번째는 (있는 바가 없이) 깨끗이[淨] 하여 뜻을 4의지(意止)와 4의단(意斷)과 4신족(神足)의 세 가지에 노닐면서 열두 가지 문[十二門]을 벗어나 마음이 갈라지거나 흐트러지지 않게 하였으므로, 신통이 미묘하게 통달하고 욕심 과 악한 법을 버리며, 다시는 5개(蓋)가 없어지고 5욕(欲)을 느끼지 아니하며 여러 나쁜 것이 저절로 스러지고 생각과 헤아림이 분명해지며, 생각과 봄이 함이 없어서[無爲] 마치 건장한 사람이 원수를 이기게 된 것과 같아지며, 뜻이 깨끗해져 3선행을 이루게 되었느니라.
천제석이 ‘보살께서 나무 아래 앉아 계신 지 6년이 다 찼고 형체가 파리해졌으므로 이제는 세간 사람에게 전륜왕의 음식을 바치게 하여 6년 동안의 굶주림을 돕도록 하여야겠다’고 하였다. 사나(斯那)의 두 딸에게 감응하게 하여 꿈속에서 보게 하되, 천하가 다하여 물이 되면서 그 속에 한 송이 꽃이 7보로 빛나는 색이었다가 잠깐사이에 시들면서 그의 본색을 잃었으며, 또 다른 딸에게는 물을 그 위에 뿌리자 다시 살아나면서 예전과 같이 되었고 물 속에서는 여러 꽃들이 비로소 싹이 생기며 물 위로 솟아 나옴을 보게 하였다. 두 딸은 꿈에서 깨어나며 ‘일찍이 없었던 괴이한 일이다’ 하면서 곧 아버지에게 말하였으나 그 아버지도 알지 못하여 장로들에게 물었지만 모두가 해설하지 못하였느니라.
하늘 제석은 다시 내려와 변화로 범지가 되어 딸들에게 꿈을 풀이하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보았던 천하의 물 가운데 한 송이의 꽃이 난 것은 바로 백정왕의 태자가 처음 탄생할 때요, 지금 나무 아래서 6년 동안 계시면서 몸이 파리하고 형상이 야위었는데 이것은 꽃이 시들어진 때이며, 한 사람이 물을 뿌리자 다시 소생함을 본 것은 바로 음식을 바치게 되는 것이요, 작은 꽃들의 싹이 나오려 한 것은 바로 다섯 갈래[五道]에서 나고 죽는 사람들이니라’ 하였다. 이 때 하늘 제석은 곧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6년 동안 눕거나 기대는 일 없었고
굶주림과 추위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힘써 나아가며 집착한 바 없어서
몸이 말라 뼈와 가죽이 맞붙었느니라.
너희들은 공경하는 뜻을 닦아서
보살에게 받들어 올릴 것이니
현세에서 큰 복을 얻을뿐더러
이후 세상에서도 과보를 받으리라.
딸들은 말하기를, ‘음식을 드리는 그 법은 어떤 것입니까?’라고 하자 범지는 대답하기를, ‘5백 마리에서 우유를 짜다가 다시 차례차례로 먹여서는 한 마리의 소에 이르기까지 하고 그 한 마리 소에서 짠 젖을 가져다 죽을 쑬지니라’ 하였다. 우유죽이 끓어오르되 높이 일곱 길을 솟으면서 왼편에서 올라와 오른편으로 내려가고 오른편에서 올라와 왼편으로 내려가는 죽을 발우에 넣고 솥을 깨끗이 하고서는 두 딸들이 공손하고 엄숙하게 바쳤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먼저 목욕한 연후에 죽을 받으리라’ 하고서 흐르는 물로 나아가 몸을 씻고 씻은 뒤에 물을 나오려 하니, 천신이 나뭇가지를 당겨 주었고 두 딸들이 젖죽을 바치면서, ‘빛깔과 기력이 충만하게 되소서’라고 하였다. 보살은 복이 무량하기를 한량없이 주원(呪願) 하고 딸들을 3존(尊)께 귀의하게 하였다. 다 먹은 뒤에 손을 씻고 양치질하고 발우를 씻은 뒤에 도로 물 가운데 던지자 거슬러 흘러가서 아직 7리(里)에 닿기 전에 하늘이 금시조(金翅鳥)로 변화하여 날아와 발우와 머리털을 받들고 가서 한 군데에 탑을 일으켜 공양하였느니라.
보살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 니련선하(尼連禪河)를 건너려 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니련선하의 물을 건너며
온갖 사람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서
다섯 갈래[五道]와 3독(毒)의 때를
없애어 물과 같이 깨끗하게 하리라
보살은 이러한 생각을 일으키되
온갖 어리석은 이로서 어둠에 빠진 이들
여덟 가지 올바른 물[八道水]을 가져다
세 가지 독의 때를 씻어 없애리라 하였다.
이러면서 비로소 언덕에 오르자
푸른 공작 5백 마리가
날아 와서 보살을 에워싸더니
세 번 돌고 지저귀며 떠나갔느니라.
이에 다시 앞으로 가다가 눈 먼 용이 있는 못을 지나려 할 때에 용은 크게 기뻐하며 뛰어나와 보살을 뵈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좋군요, 실달(悉達)을 뵈옵게 되어서
찾아주심이 어찌 이리도 늦었나이까?
받들어 청하오니 일체 중생들에게
위없는 감로장(甘露漿)을 베푸소서.
걸음을 걸으시니 땅이 진동하고
여러 가지 음악이 저절로 울리니
바로 과거의 부처님과 똑같아서
저는 의심하지 아니하옵니다.
이제 위없는 지혜를 지니어
모든 악마들을 항복시키며
이제 부처님의 해를 비추어
중생들의 잠을 깨게 해야 하오리다.
이에 다시 앞으로 가다가 숲이 우거진 산을 바라보았더니, 그 땅은 평평하고 사방은 깨끗하며 풀은 부드럽고 단 샘이 넘쳐흐르며 꽃이 향기롭고 무성하면서 깨끗하였는데, 그 중에 어느 한 나무가 높고 맑고 기특하며 가지들 은 서로가 이어지고 잎들이 서로 더해지며 꽃과 빛깔이 짙어서 마치 하늘의 장식과 하늘의 번기[幡]가 나무 꼭대기에 있는 것 같았다.
‘이야말로 으뜸가는 상서로운 기운이요, 여러 나무 가운데서 왕이로구나’
라고 하고, 조금 더 나아갔더니 어떤 풀 베는 사람이 보였다. 보살이 묻기를,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오?’ 하자 ‘저의 이름은 길상(吉祥)입니다’라고 하였다. 보살이 ‘지금 길상초(吉祥草)를 베는데 이제 그대는 나에게 풀을 보시하시오. 시방이 모두 상서로우리다’라고 하였더니, 이 때에 길상은 곧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전륜성왕의 자리를 버리시고
칠보와 옥녀(玉女)와 아내도 버리시고
금은의 평상과 걸상도 버리시고
모포와 비단과 수놓은 이불도 버리시고
이제 거친 풀을 가지고 무엇에 쓰렵니까?
길상의 애련하고 즐거운 음성은
8부(部)의 참된 음향(音響)이어서
범천(梵天)을 초월하였네.
보살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느니라.
아승기겁 동안 원을 세워서
다섯 갈래 중생을 제도하였으며
이제 가서 본래 서원 채울 터인데
그 때문에 풀을 얻으려 하느니라.
그 사람이 준 헝클어진 풀을 한 손에 쥐고
가지고 큰 나무로 가
세간의 뜻이 모두 어지러운지라
나는 마땅히 그 뜻을 바로잡으리라.
곧 풀을 가지고 땅에다 깔며
가지런히 펴 말한 대로 하고서
보살이 곧 그 위에 앉자
일체가 그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살은 세 가지를 맹세하였으니
마음[心]과 앉음[坐]과 그 나무[樹]네
만약 내가 도를 얻지 못하면
마침내 셋의 맹세 여의지 않으리라.
말하자면 나의 살과 뼈가 마르더라도
움직이지 않고 마침내 이룰 것이니
과거의 부처님이 도를 얻을 때에
모두 다 한마음에서 나왔느니라.
이에 보살은 편안히 앉아 선정에 들어 괴로움과 즐거움의 뜻을 버리고 기쁨과 근심의 생각이 없었으며, 마음에 착함을 의지하지 않고 또한 나쁨에도 기대지 않으며, 바로 그 중간에 있는 것이 마치 사람이 목욕하여 깨끗이 하고 흰옷을 입으면 안팎이 모두 깨끗하여 겉과 속이 때가 없음과 같았고, 헐떡거림이 저절로 없어지며, 고요하여 변함이 없으면서 4선(禪)의 행을 이루었느니라.
이미 정의(定意)를 얻고 크게 가엾이 여김을 버리지 않으며, 지혜와 방편으로 요긴하고 미묘함을 깊이 통달하였으며, 37도품(道品)의 행을 통하였나니, 이른바 37도품이란 첫째가 4의지(意止)요, 둘째가 4의단(意斷)이요, 셋째가 4신족(神足)이요, 넷째가 5근(根)이요, 다섯째가 5력(力)이요, 여섯째가 7각의(覺意)요, 일곱째가 8직행(直行:正道)이니라.
다시 괴로움[苦]과 공(空)함과 영원하지 않음[非常]과 생각 없음[無想]과 원 없음[無願]을 되풀이하면서 ‘나는 세간의 탐냄과 애욕을 생각하여 나고 죽음의 고통에 떨어지면서도, 본래가 열두 가지 인연으로부터 일어난 것인 줄 조금도 스스로 깨달을 수가 없었구나’라고 하였느니라.
무엇이 열두 가지 근본이냐 하면, 어리석음[癡:無明]과 지어감[行]으로부터 곧 의식[識]이 있고, 의식으로 말미암아 곧 이름과 물질[名字:名色]이 있고, 이름과 물질로 말미암아 곧 여섯 감관[六入]이 있고, 여섯 감관으로 말미암아 곧 닿음[更樂:觸]이 있고, 닿음으로 말미암아 곧 느낌[痛;受]이 있고, 느낌으로 말미암아 곧 욕망[愛]이 있고, 욕망으로 말미암아 곧 받음[受:取]이 있고 받음으로 말미암아 곧 존재[有]가 있고, 존재로 말미암아 곧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곧 늙고 죽음[老死]과 근심[憂]ㆍ슬픔[悲]ㆍ괴로움[苦惱]과 마음이 시달리는 큰 근심이 있느니라.
정신을 갖추 지니어 이로부터 점차로 나고 죽음에 떨어지나니, 도를 얻으려 하는 이는 탐냄과 욕망을 끊어야 하고 정욕(情欲)을 없애며 함이 없고 [無爲]일어남이 없으며[無起] 그렇게 되면 어리석음이 스러지고 어리석음이 스러지면 지어감이 스러지고 지어감이 스러지면 의식이 스러지고 의식이 스러지면 이름과 물질이 스러지고 이름과 물질이 스러지면 여섯 감관이 스러지고 여섯 감관이 스러지면 닿음이 스러지고 닿음이 스러지면 느낌이 스러지고 느낌이 스러지면 욕망이 스러지고 욕망이 스러지면 받음이 스러지고 받음이 스러지면 존재가 스러지고 존재가 스러지면 남이 스러지고 남이 스러지면 늙고 죽음과 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마음이 시달리는 큰 근심이 모두 다 하나니, 이것이야말로 도를 얻은 것이니라.
보살은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이제 악마의 권속들을 항복시켜야겠구나’ 하고, 곧 눈썹 사이의 백호상(白毫相)에서 광명을 놓아 악마 궁전을 감동시키자, 악마는 크게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마음속이 편하지 않은지라 보살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나무 아래 있으면서 깨끗하여 욕심이 없고 힘써 생각하여 게으르지 않으므로, 마음속이 몹시 괴로워서 음식이 달지 않으며, 풍악도 잡히지 않고서 생각하기를, ‘이 도가 이루어지면 반드시 크게 나를 이기리라. 그가 아직 부처가 되기 전에 그 도의 뜻을 무너뜨려야겠다’ 하였다. 악마의 아들 수마제(須摩提)[한나라 말로 현의(賢意)]가 앞에 와서 아버지에게 간하기를, ‘보살은 그 행이 깨끗하여 삼계(三界)에서 견줄 이가 없고 저절로 신통을 얻으신 분이라 억 백이나 되는 뭇 범천과 천신들이 모두들 찾아가 예배하고 모십니다. 이는 천인이 허물어뜨리고 무너뜨릴 수 있는 분이 아니니, 악을 일으켜 스스로 그 복을 훼손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으나 악마왕은 듣지 않았느니라.
그러나 마왕의 세 딸은 첫째가 은애(恩愛)요, 둘째가 상락(常樂)이요, 셋째가 대락(大樂)인데, 스스로 자청하고선 ‘부왕이여, 근심 마십시오. 저희들이 가서 보살이 지닌 도의 뜻을 무너뜨리겠습니다. 부왕에게는 괴롭힐 거리가 안 되리니, 다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세 딸은 하늘옷을 잘 꾸며 입고 5백의 옥녀(玉女)들을 데리고 보살의 처소에 이르러서 거문고를 타고 노래 부르며 음욕스런 말씨로써 도의 뜻을 어지럽히려 하였다. 세 딸들은 말하기를, ‘어짊과 덕이 지극히 중하신지라 여러 하늘들에게 공경을 받나이다. 마땅히 공양이 있어야 하겠기에 일부러 하늘이 저희들을 바쳤사옵니다. 저희들이야말로 깨끗하고 나이가 한창인 때이오니,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주무시는 데에 좌우에서 이바지하고 모실 수 있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느니라.
보살은 대답하기를, ‘너희들은 전생에 복이 있어서 하늘의 몸을 받았는데, 무상한 줄 생각하지 않고서 요사스럽게 아양을 떠는구나. 몸은 비록 곱다 하더라도 마음이 단정하지 않은 것이 마치 그림 그린 병 속에 담긴 냄새나는 독과 같다. 장차 스스로 무너질 터인데 무슨 기특함이 있겠느냐? 복은 오래 있기 어려운데다 음탕하고 악하고 선하지 못한지라 저절로 그 근본이 망하리라. 복이 다하고 죄가 닥치면 세 가지 나쁜 길에 떨어져서 여섯 가지 짐승의 형상을 받으리니, 벗어나려 하여도 어렵게 되리라. 너희들은 사람의 도 뜻을 어지럽히고 무상한 줄도 헤아리지 못하므로 오랜 겁 동안 지나면서 다섯 갈래를 굴러다니리라. 이제 너희들은 아직 고통을 떠나지 못하였거니와 나는 세간의 곳곳에 태어나면서, 늙은이는 마치 어머니같이 보고 중간쯤 되는 이는 누님같이 여기고 작은 이들은 누이동생같이 여겼느니라. 여러 누이들아, 저마다 궁중으로 돌아갈 것이요, 다시는 이런 일을 짓지 말라’하였다. 세 딸들은 보살의 말에 문득 할미들이 되면서 머리가 희고 이가 빠졌으며 눈이 멀고 등이 구부러져서 지팡이를 짚고 서로가 붙잡으며 돌아갔느니라.
악마는 세 딸들이 도리어 모두가 할미들이 되었음을 보고서 더욱 크게 성을 내며 다시 귀신왕들을 부르자 합쳐서 18억이나 되었는데, 모두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보살을 36유순까지 에워싸고서 모두가 변화로 사자가 되고 곰ㆍ물소ㆍ범ㆍ코끼리ㆍ용ㆍ소ㆍ말ㆍ개와 돼지며, 원숭이의 형상이 되게 하였나니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었으며, 벌레 머리에 사람 몸이 되고 독사의 몸뚱이에 자라와 거북의 머리가 되면서, 여섯 개의 눈이 있기도 하고 혹은 하나의 목에 많은 머리와 이와 어금니며 손톱과 며느리발톱이 있기도 하며 산을 걸머지고 불을 뱉기도 하고 우레와 번개로 사방에서 둘러싸기도 하며 창을 잡고 있기도 하였으나, 보살은 인자한 마음으로 놀라거나 두려워하지도 않고 한 터럭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빛난 얼굴이 더욱 좋아졌는데, 귀신 병사들은 가까이할 수조차 없는지라, 악마왕은 곧 나아가서 게송으로 묻자 보살은 인자한 마음에서 묻는 바는 모두 대답하였느니라.
비구는 무엇을 구하려고 나무 아래 앉아서
숲의 독한 짐승 사이를 즐거워하는가?
구름 일어 무섭고 고요하여 침침하며
하늘 악마 에워쌌는데 놀라지 않는가?
예부터 참된 도는 부처님의 행하신 바라
담박하여 으뜸이요 불상사(不祥事)를 없애나니
그 성에는 가장 뛰어난 법이 가득히 감춰진지라
나는 이 자리에서 구하며 악마왕을 결단내리.
그대는 마땅히 금륜왕(金輪王)이 되어서
7보가 절로 와서 사방을 맡으며
받을 바 5욕(欲)은 가장 비할 데 없으리라.
이곳은 도(道)가 없으니 일어나 궁궐로 돌아가오.
나는 욕심의 왕성함을 뜨거운 구리 삼키는 것같이 보았기에
나라를 침 뱉듯 버리고 탐내는 바 없으며
왕이 되어도 늙음과 죽음의 근심이 있기에
이런 이익 없는 것 버렸으니 망령된 말 말아라.
나라와 재보와 지위를 버리고 한가함을 지키며
어째서 편안히 숲에 앉아 큰 소리를 치는가?
내가 일으킨 네 부류 병사들인
상병(象兵)ㆍ마병(馬兵)ㆍ보병(步兵)이 18억이나 됨을 못 보느냐?
이미 원숭이와 사자 얼굴 보았고
범ㆍ무소ㆍ독사ㆍ돼지와 귀신들 형상 보았으며
모두가 칼을 갖고 창도 잡고서
날뛰고 으르렁거리며 공중에 가득 찼다.
설령 억해(億姟)의 무용을 갖추고
악마 위해 너와 같이 여기로 모여 와서
화살과 칼날과 불로써 침공함이 빗발치듯하더라도
먼저 부처가 되지 않으면 끝내 일어나지 않으리라.
악마도 본래 원은 나의 물러남이겠지만
나도 또한 스스로 맹세코 헛되이 돌아가지 않으리라.
이제 너의 복 자리가 어찌 부처님과 같겠느냐?
이에 누가 이기게 될지 알 수 있으리라.
나는 일찍이 몸을 받으면서 보시를 쾌히 하여
그 때문에 6천(天)을 맡아서 악마왕이 됐나니
비구는 나의 전생의 복과 행을 알거니와
스스로 한량없다 하지만 누가 증명하리오.
옛날 나의 수행과 서원으로 정광(錠光)에게
부처 되어 석가문(釋迦文)이라 하리라 수기 받고
성내고 두려운 생각 다하였기 때문에 여기에 앉았나니
뜻이 안정되고 반드시 풀려 너의 군사 파괴하리.
내가 받들어 섬겼던 부처님들 많고
재보와 옷과 밥을 늘 남에게 보시하며
어진 계율과 쌓은 덕은 땅보다도 두텁나니
이로써 생각을 벗어나 환난이 없느니라.
보살은 곧 지혜의 힘으로써
손을 펴서 땅을 누르며 이것이 나를 알리라[知] 하자
그 때에 넓은 땅이 우렛소리 내며 크게 움직이니
악마와 그 권속들은 거꾸로 넘어졌네.
악마왕은 패하여 이익을 잃었음을 슬퍼하며
혼미(惽迷)하여 땅에 주저앉아
그 아들이 또 깨우쳐 준 마음을 비로소 깨닫고
즉시 스스로 돌아가서 앞의 허물 뉘우쳤네.
나는 병기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평등한 행과 인자한 맘으로 악마를 물리쳤나니
세상에선 병기를 써서 사람 마음 움직이나
나는 너의 중생들을 평등하게 여기니라.
코끼리와 말을 길들여 비록 길이 다 들었다 하더라도
그런 뒤에도 옛 모습이 반드시 또 생기며
만약 가장 잘 길들여진 부처님 같은 성품을 얻으면
이미 부처님같이 길들여져서 어질지 않음이 없으리라.
하늘들은 부처님이 악마들을 생포하며
참으시며 생각이 없는데도 원수가 스스로 항복함 보고
하늘들은 기뻐하며 꽃 받들고 나오는데
잘못된 법왕은 파괴되고 법왕은 승리했네.
본래 평등한 뜻과 지혜의 힘을 좇는지라
지혜는 즉시 불상사를 물리칠 수 있었으며
원수들을 제자로 삼게 될 수 있었나니
4등(等)의 도를 증득한 이께 예배해야 하였네.
얼굴은 마치 만월 같고 빛깔은 조용하며
이름은 시방에 들리고 덕은 산과 같으며
부처님 모습을 구하려 해도 얻거나 견주기 어렵나니
이 세상을 건지는 신선께 머리 조아려야 하네.
보살은 오랜 겁 동안 깨끗한 행과 지극히 유순한 큰사랑으로 저절로 도가 정해졌고, 참음의 힘[忍力]으로 악마를 항복시켜 귀신 병사들이 흩어져 물러갔는지라, 정의(定意)가 본래와 같아서 지혜를 쓰지 아니하여도 기뻐하거나 근심하는 생각이 없어졌으며, 그 날 이후 밤중에 3술사(術闍)[한나라 말로 3신만구족(神滿俱足)]를 얻어서 번뇌(煩惱)가 다하고 맺힘이 풀렸느니라.
본래 옛날부터 오랫동안 익혔던 행인 4신족념(神足念)과 정진정(精進定)ㆍ욕정(欲定)ㆍ의정(意定)ㆍ계정(戒定)을 저절로 알았고 변화하는 법을 얻어 하고 싶으면 뜻대로 하고 다시 마음을 쓰지 않았으며 몸으로 날아다닐 수 있고 하나의 몸이 백이 되고 천이 되고 억만이 되고 수없이도 될 수 있을 뿐더러 다시 합쳐서 하나로 되기도 하였으며 땅을 뚫고 들어갈 수도 있고 석벽도 모두 통과하였느니라.
한쪽에서부터 나타나 숨어 없어졌다가 불쑥 나오는 것이 마치 물결과 같고 몸 속에서 물과 불을 낼 수도 있으며 물을 밟기도 하고 허공에서 걷되 몸이 빠지거나 떨어지지 않았고, 공중에서 앉고 눕는 것이 마치 나는 새의 날개와 같을 수 있었으며, 서서 하늘에 미칠 수 있어서 손으로 해와 달을 만지고 몸을 곧게 세우려 하면 범천ㆍ자재천까지 이를 수 있었으며, 눈으로 사무쳐 보고 귀로 환히 듣고 뜻으로 미리 알았으며, 여러 하늘ㆍ사람ㆍ용과 귀신이며 기어다니고 꿈틀거리는 종류들까지 몸으로 행하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보고 듣고 알았느니라.
모든 탐내는 이와 탐냄이 없는 이, 성내는 이와 성냄이 없는 이, 어리석은 이와 어리석음이 없는 이, 애욕이 있는 이와 애욕이 없는 이, 큰 뜻과 행이 있는 이와 큰 뜻과 행이 없는 이, 안팎의 행이 있는 이와 안팎의 행이 없는 이, 선을 생각한 이와 선을 생각함이 없는 이, 한마음이 있는 이와 한마음이 없는 이, 해탈의 뜻이 있는 이와 해탈의 뜻이 없는 이 모두 다 알았느니라.
보살은 천상ㆍ인간ㆍ지옥ㆍ축생ㆍ귀신 따위 다섯 갈래에서 전생에 아버지와 어머니 형님과 아우 아내와 아들이며 안팎의 성자(姓字)들을 자세히 살펴서 낱낱이 분별하였으며, 1세(世)ㆍ10세와 백천억만의 무수한 세상의 일과 하늘과 땅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겁이 무너져서 텅 비어 황량한 때와 하나의 겁이 비로소 이루어지면서 사람과 물건이 처음 일어나는 것이며, 10겁ㆍ백 겁과 천만억 무수한 겁에 이르기까지 그동안의 안팎의 성자를 알 수 있었느니라.
옷과 밥ㆍ괴로움과 즐거움ㆍ수명의 길고 짧음이며 여기서 죽어서 저기서 나고 차츰차츰 나아가는 곳이며, 위의 머리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바뀌었던 몸과 나고 자라고 늙고 죽으며 모습의 예쁨과 미움이며 어질고 어리석고 괴로워하고 즐겼던 일체 삼계의 것을 모두 분별하여 알았느니라.
사람의 혼신을 저마다 따라가서 다섯 갈래에 아는 것을 보건대, 혹은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축생에 떨어지고도 하며, 혹은 귀신이 되기도 하고 혹은 하늘 위에 나기도 하며, 혹은 사람의 몸에 들어가되 뛰어나고 귀하고 부자요 즐거운 이의 집에 태어나는 이도 있고 비루하고 가난한 집에 태어나는 이도 있었느니라.
중생들이 혹은 5음(陰)에 스스로 피폐하여지는 것도 알았나니, 첫째는 색상(色像), 둘째는 이프고 가려운 느낌[痛痒], 셋째는 생각[思想], 넷째는 지어감[行作], 다섯째는 의식[魂識]이 모두 다섯 가지 욕심을 익혀 눈으로빛을 탐내고 귀로 소리를 탐내고 코로 냄새를 탐내고 혀로 맛을 탐내며, 몸으로 닿음[細滑]을 탐내어서 애욕에 끌렸고 혹은 재물과 색욕에 편안과 즐거움을 생각하고 바라기도 하였나니, 이로부터 모든 악의 근본이 생기고 악으로부터 고통이 이루어졌느니라.
애욕의 습기를 끊고 음탕한 마음을 따르지 아니하며 큰 것에서부터 아주 작은 것까지 8도(道)를 받아 행하면 뭇 고통이 스러져서 마치 땔나무가 없으면 역시 불도 없는 것과 같으리니, 이것을 함이 없이 세상을 건너는 도라고 말하느니라.
보살은 이미 악의 근본을 버리고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으며, 나고 죽음과 다섯 가지 쌓임의 여러 가지들이 모두 끊어지고 남은 재앙이 없으며 할 일을 다 이루고 지혜가 이미 환하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고 가장 바르게 깨달은 이[最正覺]가 되어 부처님의 18법(法)을 얻고 10신력(神力)과 4무소외(無所畏)를 지녔느니라.
18불공법(不共法)이란, 부처님이 되어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첫째 도를 잃음이 없고, 둘째 쓸 데 없는 말씀이 없고, 셋째 망령된 뜻이 없고, 넷째 뜻이 깨끗하지 아니함이 없고, 다섯째 여러 가지의 생각이 없고, 여섯째 살펴보지 않음이 없고, 일곱째 하고자 하는 뜻이 줄어짐이 없고, 여덟째 힘써 나아감이 줄어짐이 없고, 아홉째 정의(定意)가 줄어짐이 없고, 열째 지혜가 줄어짐이 없고, 열한째 해탈이 줄어짐이 없고, 열두째 교화하는 지견[度知見]이 줄어짐이 없고, 열셋째 지나간 세상의 일을 모두 알고 보며, 열 넷째 장차 오는 세상의 일을 모두 알고 보며, 열다섯째 지금 세상의 일을 모두 알고 보며, 열다섯째 지금 세상의 일을 모두 알고 보며, 열여섯째 뭇 몸의 행[身行]을 가지고 교환하여 비로소 알게 하며, 열일곱째 뭇 말의 행[言行]을 가지고 교화하여 비로소 알게 하며, 열여덟째 뭇 뜻의 행[意行]을 가지고 교화하여 비로소 알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18불공법이라 하느니라.
10신력(神力)이라 함은, 모든 부처님은 깊고 미묘하고 은밀하고 아득하게 옳은 것과 그른 것[是處非處]에 밝고 자세함이 마치 존재하는 것과 같이 모두 보고 아나니 첫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은 장차 오는 세상과 지금의 세상과 지나간 세상에 짓고 행하는 땅과 그 과보를 받는 처소를 모두 밝게 아나 니 두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은 천상과 인간의 중생들이 저마다 지니는 다른 생각은 모두 분명하나니 세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은 중생들의 여러 가지 종류의 말과 세상을 교화하는 말을 아나니 네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은 세간의 여러 가지 한량없는 뜻과 모양을 모두 아나니 다섯 번째의 힘이니라.
부처님은 선정과 해탈과 정의(定意)의 행을 나타내어 여러 가지 수고로움과 다툼을 제거할 수 있나니 여섯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은 욕심의 속박을 알고 욕심의 해탈을 알아서 반드시 있는 데서 마땅하게 행하나니 일곱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의 지혜는 마치 바다와 같고 좋은 말씀은 한량없으며 온갖 전생에 바뀌었던 바를 생각하여 아나니 여덟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의 천안(天眼)은 깨끗하여 사람과 만물이 죽으면 정신이 가서 나며 선과 악과 재앙과 복이 따라 가서 과보 받는 것을 보나니 아홉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은 번뇌가 이미 다하고 다시는 얽매임과 집착이 없으며, 신령하고 참되고 밝은 지혜로써 스스로 보고 증득하며, 도의 행을 궁구하고 펴서 행하여야 할 것은 행하고 나고 죽음에 남은 것이 없으며 그 지혜는 밝고 자세하나니, 이것이 부처님의 열 가지 거룩한 힘이니라.
4무소외(無所畏)란, 부처님은 신령한 지혜로 바르게 깨달았는지라 모르는 바가 없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헷갈려서 말하기를, ‘부처님은 아직 다 모른다’라고 하지마는 범천과 악마며 뭇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부처님의 지혜는 논할 수조차 없기 때문에 홀로 우뚝하여 두려워하지 않나니 첫 번째 두려움이 없음이요, 부처님은 번뇌가 다하여 모두가 그쳤거늘 어리석은 이는 헷갈려서 서로 말하기를, ‘부처님의 번뇌는 아직 다하지 못했다’라고 하지마는, 범천과 악마며 뭇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뜻은 논할 수조차 없기 때문에 홀로 우뚝하여 두려워하지 않나니, 두 번째 두려움이 없는 것이니라.
부처님이 말씀한 경전과 계율을 천하에서 외우고 읽거늘 어리석은 이는 헷갈려서 서로 말하기를, ‘부처님의 경전은 막을 수 있다’라고 하지마는, 범천과 악마며 뭇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바른 경전을 논하여 훼손할 수 없기 때문에 홀로 우뚝하여 두려워하지 않나니 세 번째 두려움이 없음이요, 부처님은 도의 이치를 나타내되 말씀이 진실이면서 긴요하여 괴로움과 재앙을 제도할 수 있거늘 어리석은 이는 헷갈려서 서로 말하기를, ‘괴로움을 제도할 수 없다’라고 하지마는, 범천과 악마며 뭇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바른 도는 논할 수조차 없기 때문에 두루 다니며 두려워하지 않나니 네 번째 두려움이 없는 것이니라.
부처님은 이런 뜻을 얻고 온갖 것을 알고 보셨으므로 앉아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는 진실로 미묘하고 알기도 어렵고 밝히기도 어려우며 매우 얻기도 어렵구나. 높아서 위가 없고 넓어서 끝이 없으며 으슥해서 밑이 없고 깊어서 측량할 수 없으며 커서 하늘과 땅을 감쌌고 가늘어서 사이가 없는 데까지 들었구나’ 하였다.
또 ‘중생들을 기르되 마치 갓난아이 보살피듯 하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겨서 쌓은 덕이 한량없으며 오랜 겁 동안 애쓰며 고행하였는지라, 그 공이 없어지지 않아서 이제야 모두 얻게 되었구나’라고 기뻐하면서 스스로 게송을 읊었느니라.
지은 복의 과보가 장쾌한지라
뭇 서원을 모두 다 이루게 되었도다.
빨리 여러 가지의 고요함에 들어서
모두를 열반까지 이를 수 있게 하리.
이제 깨친지라 부처님은 극히 높아
음심 버리고 깨끗하여 번뇌 없으며
일체를 거느리고 인도할 수 있나니
따르는 이는 반드시 기뻐하리라.
이 때 부처님은 마가다 지경의 선승도량(善勝道場) 패다수(貝多樹) 아래 있으면서 덕의 힘으로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의 지혜는 거룩하고 고요하여 3달지(達智)가 걸림이 없었으며, 두 상인(商人) 제위(提謂)와 파리(波利)를 제도하며 3자귀(自歸)와 5계(戒)를 수여하여 청신사(淸信士)를 만들었으며, 생각하기를 ‘옛날 정광부처님께서 나에게 부처가 되리라고 수기하시면서, 〈너는 이후 백 겁만에 당연히 부처님이 되어, 명호가 석가문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 불 세존(佛世尊)이리니,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함이 지금의 나와 같으리라〉고 하셨다. 나는 이로부터 오면서 넓은 서원을 세우고 6바라밀[度]ㆍ4등(等)ㆍ4은(恩)과 37도품(道品)을 받들어 행하며 좋은 방편은 때를 따르고 온갖 법을 오랜 동안 쌓으면서 게으르지 아니하여 높은 행이 특이하였으며 괴로움을 참음이 한량없었더니, 공의 과보가 누락됨이 없어서 큰 서원을 성취하였구나’라고 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