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을 일고 비를 내린 혜원스님
스님 혜원(漂遠)의 속성은 박씨(朴氏)인데 경조(京兆) 사람이다. 나이 겨우 열 살에 길장법사(吉藏法師)에게 가서 출가하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부터, 널리 듣고 많이 배워서 법화경을 강설하였는데, 늘그막에는 인연(人煙)을 떠나 남곡(藍谷)으로 가서 한가로이 도를 즐겼다.
정관(貞觀) 19년(서기 645)에 절에서 여름안거(夏安居)를 하는데, 이 때 마침 날이 몹시 가물어, 스님이법화경을 강설하여 단비를 비니, 사방에서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두 늙은이가 늘 강설하는 때를 맞추어 와서 강설을 들었는데,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혜원스님은 늘 마음에 두고 한 번 물어보리라 생각하면서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강설이 약초유품(藥草喩品)에 이르자 큰 비가 흡족하게 내리니, 그 두 노인이 사흘 동안을 오지 않다가 나중에 두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면서 왔다.
혜원스님이 괴이하게 여겨 까닭을 물으니까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저희들은 용입니다. 저희들이 직접 법사께서 비유품을 펴시어 방편의 문을 여심을 듣고, 법사님의 덕에 보답하고자 갑자기 비를 내 마음대로 내렸기 때문에 용왕님께 매를 맞았습니다. 」
하고는 금시에 간 곳이 없어졌다. 스님은 타고난 성품이 겸손하여, 비록 사미(沙彌)를 만나더라도 반드시 탈것에서 내려 문안을 하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스님은
「옛날 덕이 높은 보살들도 중생을 차별 없이 공경하고 정각을 이루었는데, 나 같은 사람이 어찌 감히 쫓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혜원스님은 언제나 법화경을 외워 자주영감이 있었는데, 어떤 때는 등잔에 기름을 붓지 않아도 며칠 동안 그대로 불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