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불사를 하고 남편을 제도한 청신녀

가사불사를 하고 남편을 제도한 청신녀

지금으로부터 154년 전 황해도 안악군 안악면 고령산 연등사(燃燈寺)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절에는 몇년만큼씩 큰 불사를 하는데 이번에는 가사불사(架裟佛事)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스님들은 각기 연고 있는 신도 집을 찾아다니면서 시주를 거두는데, 어떤 집에서는 기포(가사를 만드는 비단)를 시주하는 이도 있고 또 어떤 집에서는 쌀도 내고 돈도 내고 하였다. 그래서 무려 80여 바탕이나 되는 가사를 제작하게 되었다.

절에서 하루는 두 번씩 설법을 하는데 불공을 올리고 재를 지내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 마치 절 입구가 저자와 같이 붐볐다.

그런데 그 절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연곡마을 이춘화(李春和)의 집에서도 가사기포를 시주하였으므로 그의 부인이 그 불사에 참여코자 절간에 왕래하기를 수 십번 하였다. 춘화는 원래 포수로서 활과 총을 쓰는 재주가 비상하였다. 항상 험준한 산령을 오르고 내려 기질이 튼튼하고 성질이 거칠어서 무엇이고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다.

그런데 절에서 시주를 걷으러 와 자손창성과 부귀길창을 위해 가사깃폭을 시주하기는 하였으나 젊은 마누라가 절에 자주 가는 것은 매우 마음에 마땅치가 않았다.

그런데 부인이 절에 갔다 오더니 하는 말이,

「 오늘 법사스님이 그러시는데<살생을 많이 하는 사람은 단명횡사의 보를 받고, 또자식을 기르기가 힘들다. > 하였습니다. 그리고 <살생을 좋아하는 사람은 죽어 지옥에 떨어진다.> 하니 우리도 이제 직업을 바꾸어 농사라도 지으며 살도록 함이 어떠할까요?」

이 말을 들은 춘화는 비위가 울컥 상하는 듯,

「천생만민(千生萬民)이 각기 직업을 가지고 사는데 수렵을 그만 두면 당장 밥을 어떻게 먹고 산단 말이오. 호랑이 한 마리만 잡으면 3년 먹을 것이 일시에 나오는데 그까짓 농사를 지어 어느 하가에 입에 풀칠이나 하겠소, 그런 소리 말고 그만 절에나 작작 다니지 마시오.」

하고 나가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절에 갔다가 스님이 법문하는 소리가 너무 재미있어 그만 밤이 늦어 그 곳에서 자게 되었다. 물론 동네 사람들도 여럿이 같이 잤지만 매우 마음이 불안했다. 사냥 나간춘화가 돌아와 보니 밥그릇에 식은 밥만 담겨 있고 부인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년이 또 절에를 갔구나 -」

화가 상투 끝까지 치밀어 당장에 절로 뛰어가고 싶은 생각이 났으나 참고 견디었다. 그러나 밤이 깊어서도 부인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으흥, 요년이 바람이 났구나. 어떤 중놈을 붙어 먹느라 육신이 팽팽한 남편을 놓아두고 집을 나가 밤을 샌단 말인가?」

하고 오기만 오면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손이 떨고 있었다. 이윽고 날이 밝자 부인은 미안함을 금치 못하며,

「법문을 듣다 너무 늦어 절에서 갔습니다. 」

그러나 춘화는 대꾸가 없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평상시 그의 과격한 성미를 아는지라 부인은 상냥한 말씨로 두 번 이렇게 사죄하고 물동이를 이고 우물로 나갔다. 춘화는 시기심이 일어나 견딜 수가 없었다.

「저런 년을 내가 데리고 살다가는 또 무슨 꼴을 볼런지 모른다. 오늘 당장 죽여 없애 버려 야지 -」 하고 그는 총을 들었다. 그러나 총은 소리가 나는지라 다시 활을 들고 창구멍 사이로 살을 겨눴다. 부인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동이에 물을 가득 이고 사립문 밖으로 돌았다.

「하나 둘 셋」

춘화는 겨웠던 화살을 당겼으나 부인은 여전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

「잘못 쏘았을까? 먼 산의 노루도 한 살이면 그만인데 -」

하고 그는 다시 살을 겨눠 쏘았다. 그러나 역시 여자는 태연 자약 물동이를 이고 들어와 부엌에 내려놓고 밥을 지었다. 밥을 먹고 난 춘화는 한편 미안하면서도 이상스럽게 생각하면서,

「오늘부턴 다시 절에 가면 안돼 」

하고 못 박았다.

그리고 나자 자기가 쏜 화살이 사람의 살에 박히지 않았으니 분명주위에 있을 것을 예상하고 이리저리 찾고 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화살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날은 가사불사가 끝나는 날이라 부인은 좀이 쑤실 정도로 마음이 서성거렸다. 절에서는 회향을 하고 각기 자기가 시주한 가사를 봉지에 넣어 받아 입을 스님에게 증정하였다.

그런데 이춘화네 집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으므로 연등사 스님이 직접 가지고 집으로 와,

「시주한 가사를 보이기나 하고 입으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

하였다. 춘화는 매우 못마땅한 얼굴로스님을 대하며 가사를 보았다. 그런데 스님이 봉지에서 가사를 꺼내는데 이상하게도 자기가 아침에 쏘았던 화살촉 2개가 가사사이에서 뚝 떨어졌다. 스님은 놀라,

「이것이 웬일일까 ? 」하고 얼굴빛이 변하였다.

춘화부인도 그 화살촉이 떨어진 가사 가운데 두 군데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보고,

「내가 회향에 참석치 않아 신장님들이 벌을 준 것이나 아닐까요? 」

하고 걱정했다. 그 때 춘화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부처님의 신통은 일구난설(一口難說)입니다. 내가 이 같은 신통을 믿지 않으므로 부처님께서 나를 교화하기 위해 베푸신 방편인가 합니다. 」

하고 아침에 있었던 일을 소상히 말하였다 이로 인해 그 가사 뚫어진 구멍을 메꾸는데 무엇인가 알맞은게 없어 뒷구멍에는 해를 상징하여 일(日)을 수 놓고(그 원 속에는 금 까마귀가 그려져 있음) 아랫구멍에는 달을 상징하여 월(月)을 수 놓으니(그 원 속에는 토끼가 방아 찧는 것이 수 놓아짐) 이것이 이른바 일월광(日月光)인 것이다.

이로부터 춘화는 개심하여 부인의 말과 같이 사냥도 가지 않고 또 불도를 부지런히 닦아 훌륭한 불자가 되었던 것이다.

<曹溪寺刊 靈驗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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