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공덕으로 구라마집 삼장의 혀가 타지 않다

역경공덕으로 구라마집 삼장의 혀가 타지 않다

법사 구마라집(鳩滅什)은 동수(童壽)라는 뜻이다.

동수가 월지국(月支國)으로 갔을 때, 한 아라한이 그를 보고,

「이 사미(沙彌)는 35세가 되면 크게 불교를 펴서 수 많은 사람을 제도할 것입니다. 」

하였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아들에게 말했다.

「뜻이 길은 방등(方等)의 가르치심을 진단(眞丹一震旦,동방의 나라)에 크게 밝히는 일은 오직 너의 힘 에 달려 있다. 」

이 때 전진(前溱)의 임금 부견(符堅)이 관중에 웅거하고 있었는데 태사가 말했다.

「상서로운 별이 외국 쪽에 나타났으니 아마도 머지않아 훌륭한 사람이 와서 중국을 도아 줄 것 같습 니다. 」

그때 부견이 말했다.

「내가 들으니 서역(西域)에 나집(羅什)이라는 이가 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아니겠는가.」

하고, 곧 장군 여광(呂光)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자국을 치게 했다. 여광이 구자국을 토벌하고 나집을 데리고 돌아오는데, 양주(凉州)에 이르렀을 때 부견이 요장(姚萇)에게 살해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그는 궁밖에 웅거하여 따로 나라를 세우고 후량(後凉)이라 하였다. 요장이 죽고 아들 흥(興)이 뒤를 이었는데, 문득 대궐 뜰에 연리수(連理樹)가 나고, 소요원(逍遙圖)에서는 파가 갑자기 이초(異草)로 변하였다.

요흥은 상서로운 일이라 하여 마침내 여광(呂光)을 처서 구마라 집을 장안(長安)으로 맞아들여 국사의. 예로 대우하였다.

요흥은 소요원에 나아가 여러 스님들과 함께 구마라 집의 강설을 들었다. 구마라 집은 중국 한문에 통달하여 전이 번역된 경전과 호본(胡本)에 잘못이 많음을 보고 홍시(弘始) 8년 초당사(草堂寺)에서 스님 약 8백여 명과 사방의 의학(義學=佛敎) 사문(沙門) 2천여 명을 모아 구경(舊讀)을 대조 교정해서 새로 묘법연화경(妙注蓮華經) 1부 7권(혹은 8권)을 번역하였다. 그는 말했다.

「내가 번역한 이 법화경을 여러분이 다같이 널리 펴기 바란다. 만약 이 번역에 잘못이 없다면 내가 죽은 뒤에 몸을 불태워도 혀는 타지 않을 것이다. 」

말을 마치고 곧 입적하였으므로 다비(茶毘)를 하니 과연 혀만은 타지 않았다. 양승전(梁僧傳)과 남산감통전(南山感通傳)에 자세히 보이는데 위천인(韋天人)이 말했다.

「구마라집은 총명하여 대승을 잘 해득하였으므로 칠불(七佛) 이래로 법을 전하여 법왕이 깨쳐놓으신 것을 올바르게 얻었다. 세속에서 함계(陷戒)로써 그를 말하는 이가 있으나, 이는 의심할 것이 못된다. 구마라 집은 삼현(三賢 ․ 十住 · 十行 · 十廻向의 보살의 지위)의 지위에 이르렀으니 예사 분이 아니다.」

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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