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기도로 원혼귀를 천도한 묘찬스님
지금으로부터 150(서기 1819)년전의 일이다.
경북 김천(지금의 금릉군)에 직지사(直持寺)라는 절이 있었다.
이 절에는 묘찬(妙燦)이라는 대사가 있었다.
그는 어떤 객승(客僧)으로부터 함경북도 회령등지에 재가승(在家僧) 촌락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때에 남방사찰에는 재가승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거나 볼 수 없는 일이요, 이름조차 처음 듣는 일이라 묘찬대사는 그것들이 어떠한 존재인가 한번 가 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는 경기도와 강원도를 경유하여 함경북도로 들어갔다 그 때는 교통이 불편하던 때라 도보로 한 달 이상을 걸어서 들어갔다.
그 곳의 재가승이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라 나라를 귀찮게 굴다가 정복을 당하여 가지도 오지도 못한 여진족(女眞族)들이 귀화하여 함북 육진(六眞) 등지에 집단적으로 산재하여 살고 있게 되었는데, 그들은 대개 불교신자로서 5~6호의부락이 있는 가운데는 불당(佛堂)하나를 공동으로 지어서 불상을 모시고 한 달에 몇 번씩 모여서 불공과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불당을 지키는 봉향승(奉香憎)만은 남방에서 들어간 스님네를 청하여 담당하였다. 그런데 이 묘찬대사도 이러한 제도를 가진 불교촌락이 있다는 말을 듣고 구경삼아 들어간 것이다.
이 스님께서는 잠깐 동안 구경만 하고 되돌아오려고 갔지만 어떻게 어름거리다가 봉향승으로 붙들려 있게 되었다.
그래서 한겨울을 지나는 동안에 재가승들과 친하여졌다.
그 재가승 가운데는 과년에 찬 딸을 하나 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처녀는 독신자인 봉향승 묘찬대사를 흠모하고 남편으로 삼겠다고 부모에게 졸라대고 자신도 이 스님을 사랑하고 유혹하기를 마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부모도 이 봉향승에게 장가들기를 권하기 시작했다. 묘찬대사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리둥절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청춘의 행락이 마음에 싫지는 않으나고승이 되려면 목적과 소원이 깨어져 달아나는 것 같아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승낙을 해요. 사람이라는 것은 젊어서 한때인데 독신으로 늙어 고부라지면 누가 상을 줄 것인가요. 남쪽 스님네가 들어오기도 많이 들어오지만 늙은 노장님네를 내놓고는 다 그럭저럭 이곳에서장가 들어서 아들 낳고 딸 낳고 재미를 보는 이가 많습니다.
유독 스님만이 아니니 쾌히 승낙을 하시오. 승낙만 하면 곧 혼인잔치준비를 하겠소.」
한다. 묘찬은 옆에 앉아 있는 처녀를 힐끔 바라다보며,
「좀 기다려 주시오. 생각을 해봐서 승낙을 하오리다. 」
하였더니,
「응, 아주 마음에 없는 것은 아니로군. 기다리고 할 것 없이 곧 대례를 드리도록 합시다. 」
이렇게 규수 아버지는 말을 한다. 묘찬은 하도 어이가 없는 일이라,
「혼인이라는 것은 인륜의 대사인데 그렇게 빨리 해 버리면 되겠습니까? 좀 생각을 해봅시다. 」
「한 겨울 동안을 동네에서 같이 살아 왔으니까 그만하면 알아볼 것은 다 알아보았을 텐데 생각은 무슨 생각이오.」
규수아버지는 이렇게 쏘아 부치더니 딸을 보고,
「이제 내 할 일은 다 했으니 그 다음 일은 네 수단에 달렸다. 알아서 해라.」
하고 휙 나가버리고 만다. 이 때다. 처녀는 왈칵 덤벼들어 묘찬의 목을 얼싸안고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스님이 끝끝내 저와 혼인하기를 거절하신다면 저는 죽고 말테예요.」
하며 애원하는 것이다 묘찬대사도 젊은 남자이라 피가 끓어오르고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경솔히 하지 마시오. 나도 남자요. 당신의 마음을 저버리지는 아니할 것이니 진정하시오. 누가 볼까봐 두렵소.」
묘찬은 이렇게 간신히 달래서 규수의 마음을 가라 앉히었다. 그리고 곧 혼인하기를 승낙할 것이라고 하였다. 처녀는 매우 좋아서 애교를 부리며,
「지금 승낙한 것인데 승낙할 것이란 것은 또 무슨 말입니까? 남방스님들은 말도 할줄 모른단 말야. 」하고 흉을 보았다. 묘찬은,
「이곳에 오래 있다가는 나의 신세를 버리겠구나.」
생각하고 그 날 밤에 도주하여 남방으로 내려와서 직지사의 선실로 들어가서 참선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처녀는 그 뒤에 묘찬을 원망하다가 자결하더니 원귀가 되었다. 그래서 묘찬에게 원수를 갚기 위하여 직지사를 찾아왔으나, 천왕문(天王門)에 이르러서는 무서워서 들어가지를 못하고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마침 어떤 남자스님이 나오다 보니까 웬 낯선 처녀가 말하되
「함경도에서 나온 묘찬스님이 이 절에 와있지 않습니까? 」
고 물으며, 그 스님을 빨리 내보내서 만나게 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스님이 지금 절 안에 있으니 들어가서 보시오.」
한 즉,
「나는 사람이 아니고 귀신인데 저 천왕님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
한다. 그래서 그 스님은 이상하게 여기고 들어가서 묘찬에게 이 말을 전하였더니, 묘찬은 [저를 버리고 가면 자살을 하겠다고 하더니 참말로 자살을 해서 귀신이 되어가지고 왔구나.] 생각하고 가슴속에 공포심을 품고천왕문에 나와서 사천왕(四天王)에게 절을 하고 축원하되,
「원귀를 7일만 꼭 붙잡아 두시고 발동하지 못하게 하시옵소서.」
하고 간곡히 축원하고 다시 절에 들어가서 7일간을 정하고 지장보살께 기도를 하고 천도재를 하여 주었더니, 묘찬의 꿈에 그 원귀가 나타나서,
「나는 지장보살의 가피력으로 스님과 원수를 풀고 가오니 그리 아시오 」
하고 현몽을 하였다. 그 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한다.
<曺溪寺刊靈驗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