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불화(朴不化)의 불심(佛心)
「아-」
기씨(奇氏)는 비단 이불을 걷어치우고 일어나 앉았다. 황제가 이곳 침소에서 물러나간 후, 다시 늦잠에 들었던 자신임을 깨달았다. 하품과 기지개를 함께 켜며,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젖가슴을 자기 손으로 어루만져 보았다.
「역시 고려녀(高麗女)가 아니고서야 이만큼 희고 복스러운 살결을 가진 여인이 원나라는 고사하고 세상천지에 또 있을라구-」
또 속옷, 허리띠도 풀어진 채 사뭇 드러나 배꽃같이 하얗고 곱다란 살결과 구비진 곡선들을 살피보며, 자신 있는 말을 하였다. 기씨 황후는 원래 고려국 행주고을 기자오(奇子敖)의 딸이다. 자오가 고려 조정에서 산원(散員)벼슬을 하다가 물러나,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큰 아들 철(轍)과 5남 1녀를 데리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다행히 막내딸 기녀 하나만이 시골살림에 재미를 붙여 부모의 말을 들을 뿐, 다른 다섯 아들들은 모두 서울살림을 동경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5형제가 똑같이 서울에 가서 놈팽이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오직 기녀만이 이웃집 박불화 소년과 함께 들에 나가 밭도 매고, 나물도 캐고 하여 노약한 아버지의 생활을 돕고 있었다.
나이 7~8세부터 20이 가깝도록 형제처럼 들에도 가고, 산에도 가고, 강에도 가서 일을 하다 보니 이젠 정이들대로 들어서 깊숙한 산골에 가면 아무도 없는 숲 속에 도란도란 앉아서 옛이야기도 주고받고 풀잎 싸움도 해보고 두 살을 맞대며 사랑의 눈짓도 오고 갔다.
정이 들 대로 들어서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자는 말까지 났다.
호박찌개니, 버섯지짐이니, 매운탕 같은 것을 하면 반드시 두 집이 서로 나누어 한집처럼 생활하였고, 박불화도 늙은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기생원 집으로 아주 와서 사위노릇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 오빠들에게서 급한 전보가 왔다.
「기녀 급상경.」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가 하여 부라부라 서울로 올라와서 보니, 딴은 문제가 다른데 있었다.
「원나라 황실에서 직접 황제의 어공(御供)을 받들 만한 궁녀감을 고려에 구해 왔는데 우리가 너를 추천했으니 가도록 하라.」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네가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우리들은 모두 거짓말한 죄로 잡혀갈 것이고, 아버지는 임금님의 명령을 거스른 죄로 구속될 것이다. 」
생각해서 대답할 틈도 없이 연속한다.
「만일 네가 말을 잘 들어 준다면, 우리 5형제가 함께 출세하게 되고, 아버지 말년도 풍족하게 될 것이다. 」
좋기는 좋으나 하필이면 내가 만리타국에 가서 시공를 드려야 한다는 말인가. 기구한 운명을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났다.
오빠들이 재촉했다.
「자, 여기서 이렇게 하고 있을 틈이 없다. 」
하고 곧 가마에 태워서 궁중으로 들여보냈다. 원나라 사신은 잘 꾸며진 기녀를 보고 만족 해 하였다. 「이만하면 우리 황제를 능히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리하여 기녀는 사랑하는 애인도, 늙게 쓸쓸히 계시는 아버님도, 지금 한창 무르익어 가는 밤·대추도 볼 수 없이 그만 국경을 떠나야 했다. 중국에 들어가니, 몽고, 서창, 인도로부터 수많은 궁녀들이 와 있었고, 이미 한국에서도 많은 시녀들이 들어가서 꽃방석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기녀가 처음 궁중에 들어가 황제를 뵙자 그 훤출하고 부리부리한 눈빛과 희고 맵시 있는 기녀의 모습을 보고첫눈에 반했다.
「네가 고려에서 온 기녀냐?」
「예.」
「넌 오늘부터 주방에 있지 말고, 후궁으로 가 있거라.」
이리하여 채 열흘도 고생해 보지 않고 기녀는 바로 황제의 후궁이 되고 말았다. 좋기는 좋은 세상이었다. 주방에서 시자로 있을 때에는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던 사람들이 후궁에 들어오자, 곧 천자의 대접을 하게 되었고, 세상에 무엇이고 말만 하면 입에 혀처럼 열을 지어 들어왔다. 호화로우면 호화로울수록 소담한 것이 그리워졌다. 으례히 여자가 남자를 맞이하고 보면 그저 그러한 것이 인생살이라고 하지만, 하필이면이국땅에서 이방사람의 냄새 풍기는 그 엄청나고 육중한 육체 밑에서 애틋한 정을 느끼기란 어려웠고, 더욱이 그 위에 있는 사람이 만승천자임을 생각할 때, 이상하게 강박관념이 들어 더더욱 재미가 적었다.
그래서 그는 그날도 구름같이 흩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리며 고향에서 늘 가슴에 서리고 어린, 그 사람 박불화를 생각하였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깍지끼고 내달아 지내던 모습, 그 소박하고 담담한 애인이만일 이 자리에서 나와 같이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인들이 아침 문안을 드리고 금침을 정돈하는 사이에 기씨는 의상을 모두 고쳐 입고 주름을 치켰다. 옥창을 열어 젖히고 문밖으로 나가 산호 난간에 팔을 없고 호수 같은 눈으로 흥성궁(興盛官)의 봄빛 자진전(紫辰殿)의 푸른 기와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아-저 하늘 끝 저 산 아래‥‥ 내 아버지와 오빠들과 애인이 살고 있다. 흥성궁 대궐이 아무리 넓다 해도 내 한 몸을 붙이기는 이방 하나면 족하다. 무엇이 부족해서 내가여기 이렇게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매일같이 대하는 기름진 대접 음식도 무김치에 된장찌개, 보리밥만 못하였고, 금은 보화의 귀한 맛도 고향에서 바가지에 두둑 떠담던 밤 ·대추만 못하였다.
「아아-」
기씨는 또 한번 한 숨을 쉬고, 난간에서 손을 떼었다. 그런데 그때, 하마터면 기씨부인은 전각 마루위에서 넘어질 정도로 놀라는 일이 있었다.
「앗 ! 저것이 사실인가? 」
눈을 부비고 다시 보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부터 한 나절까지 그리고 생각하던 그 애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기씨는 염치 불구하고 전각 마루 위를 내려와서 큰 기침을 하였다.
두어 명의 궁노를 거느리고 화원의 손질을 지시하던 사람이 고개를 돌리고 이리로 걸어오면서 말했다. 「소인이올시다. 」
기씨는 주위에 사람이 있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외치듯이 불렀다.
「불화씨 ! 」
「예, 전중감(殿中監) 박불화올시다. 」
「어떻게 된 일이오?」
「3 · 4일 후면 덜 바쁘게 될 것이오니,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
불화는 기씨를 잃고 심화로 병이 생겨 꼼짝달싹 못하고 누워 있다가, 기씨와 함께 나물 캐러가 예매드렸던 그 부처님을 찾아갔다.
부처님 앞에서 사랑을 맹세하고 변치 말 것을 다짐하였기 때문이다. 부처님께 가서 호소하였다.
「부처님 너무하십니다. 나의 애인을 빼앗아 남의 나라에 보내시다니요. 너무하십니다. 」
하고 큰 소리를 내어 울었다. 울다가 지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 가운데서 부처님이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
「불화야, 걱정 말라. 내가 네 애인을 만나게 해 줄 터이니 네 애인이 가정을 구하기 위하여 원나라에 가 있다마는 이제 너는 나라를 살리는 사람이 될거다. 연꽃과 같이 물에 젖지 말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라.」
하였다. ‘ 꿈속에서이지만 얼마나 즐겁던지 싱글생글 웃으면서,
「고맙습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부처님.」
하고 매어보니, 일장춘몽이었다. 씁쓸하기도 하고 희한하기도 하며, 걸음을 재촉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과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막 집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기자오씨의 부하가 찾아왔다
「어딜 갔다 오십니까. 아까부터 찾았는데.」
「날 뭘 하게 찾습니까? 」
「서울서 철대감이 찾아왔습니다. 」
철대감이란 기씨의 큰 오빠이다. 누이동생이 황후가 된 까닭에 일약 대감이 되고 말았다. 5형제가 층층히 벼슬을 하여 그의 아버지는 왕후 정상 부럽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박불화가 나비처럼 날아 서울에 오니
「우리 누이가 너무 외로울 터이니, 이 손님들을 따라 원나라에 가라.」
고 분부한다. 이 손님들이란 원나라에서 온 사신들이었다. 불화는 원나라에 들어와서, 전중감이 되어 궁궐내의 정원을 감독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했던 사람들이 서로 만났으나 주위의 눈 때문에 인사만 겨우 나누고 헤어졌으니 찰나만년(刹那萬年)이었다.
3일을 뜬 눈으로 새다시피 하여 만나니, 기황후는 자기의 침실에까지 박불화를 불러 머리를 그의 무릎에 파묻고 울기 시작하였다.
손을 만지고 발을 만지고 마치 집안의 강아지를 쓰다듬 듯 사랑의 회포를 주저 없이 풀어놓았다. 그러나 불화의 마음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황후마마,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제 황후마마는 중국의 모든 어머니인 동시에 고려를 대표한 여인이 아닙니까? 」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불화씨, 궁중생활이 이처럼 외로워서야 살겠습니까? 오빠들이 원망스럽습니다. 」
「그거야 나라 일인데 오빠들인들 어찌합니까? 그래서 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지밀하신 곳, 감히 외간남자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니, 전 이제 황후를 뵙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떠나겠습니다. 」
몇 가지 다과를 준비해 놓았으나, 너무나도 흥분한 중이라서 한 가지도 맛보지 못하고 나왔다.
그 후 불화는 깊이깊이 생각하였다. 자제하기 어려운 충격이 올 때마다 집도 처자도 다 버리고 중생교화를 위해 나셨던 부처님을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기씨도 이 시대 이 궁궐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교화하는 보살이 되어야겠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다음날은 열녀전(列女傳) 한 권을 가지고 가서 말했다.
「아씨, 이것은 고향에서 가지고 온 책입니다. 지금 우리의 주위에는 켜켜로 죽음의운명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죽음의 운명을 잘 벗겨주는 것만이 우리들의 참된 사람이 됩니다. 」
「‥‥‥」
「이 큰 사량을 지키기 위해서 사소한 사랑을 죽이고, 중생을 교화하는 거룩한 보살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고맙습니다.」
정신을 차린 황후가 눈물을 씻으며, 책을 받았다. 무료했던 시간이 재미있어지고, 그 책을 보니 고향의 부모님의 냄새가 나는듯하여 큰 위로를 받았다. 궁
박불화는 그곳에 갈 적마다 역대궁중행실전(歷代宮中行實傳) · 사서삼경(四書三經) · 사기(史記) · 열전(列傳) 등의 책들을 구해다가 주며 말했다.
「고국이 그립거든 이 책을 보시오. 사랑이 그립거든 이 책을 보십시오.」
기씨는 비로소 용기를 얻었다 그로부터 기씨는 글 보고, 글 쓰는 데 신경을 써서 일체의 잠념을 버리고 얼마가지 않아서 여류문장이 되었다. 임금님께서 그 많은 황후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행사를 하게 되면, 워낙 행실과 품위가 가을 하늘의 기러기처럼 돋아나므로 마침내 황후 다나실(多那失)을 뒤로 물리고 기씨를 제 2 황후로 삼았다가 얼마 안되어 정궁(正宮)자리에 앉히니 천하 제일가는 황후가 된 것이다. 오직 이것은 옛 애인 박불화의 공로였었다.
그런데도 고려에서는 그의 오빠들이 너무도 극성을 부려 공민왕게 미움을 사서 기씨 5형제가 모두 박살을 당하는 일이 생겼다.
황후는 이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공민왕을 폐쇄하고 원나라에 들어와 있는 왕씨 종실인 덕흥군(德興君)을 왕으로 삼으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자 이 일에 대해서 극구 반대한 문익점(文益漸)이가 있자, 그를 멀리 교지(交趾)로 귀양을 보내고 공민왕을 토벌하는 군대까지 보내려 하였다.
이 때, 박불화가 나서서 말렸다.
「우리가 옛 향토지국(鄕土祉國)을 등지고나오기는 하였을지라도 나라의 어진 학자까지 죽여서야 되겠소. 깊이 생각하여 주십시오.」
기황후는 박불화의 말을 듣고 귀양간 문익점을 풀어주니, 문익점은 그의 대통 속에 면화씨를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에 면화를 전한 거룩한 계기가 되었다.
한편 기황후는 그 후로 아들 넷을 낳아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여 원나라 역대 황후 가운데서는 제일 현명한 황후가 되였고, 그의 넷째 아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됨으로써 송광사 제 9세 담당국사가 되기도 하였다.
사랑이란 지극히 숭고하고도 더러운 것이다.
만일 불화가 불륜의 관계 속에서 더러운 사랑을 했다면 고국의 명예도 더럽히고 결국 성과 없는 인생이 되었으련만, 연꽃처럼 맑고 깨끗한 사랑을 통하여 이소대의(以小大義) 함으로써 사람과 국가를 함께 살리는 조어사(調御師)가 된 것이다.
박불화는 오직 이것이 집도 가정도 국가도 다 버리고 중생을 위해 나선 부처님의 위대한 원력에서 본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高麗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