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신념으로 병마를 이겨낸 정재은여사
정 여사는 일찍이 기독교적인 가정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기독교를 믿다가 시집갔다.
그런데 시집은 공교롭게도 불교신도라, 전도자적인 굳은 신념으로 가정을 교화해 볼 생각을 가졌으나 그것이 잘 되지 아니 하였다. 시집은 전통적으로 불교를 믿을 뿐 아니라 유교적인 관념이 굳게 박혀 있어서 쉽게 돌아설 수 없는 집이었다.
하루는 시어머님께서 말했다.
「오늘은 나와 같이 절에 가야겠다. 」
정 여사의 마음은 매우 불안하였다.
「내가 마귀의 집을 가다니-」
그렇지만 누구의 명령이라고, 거역할 수가 없었다. 쌀자루를 챙기고 과일 돈을 닦아놓고 목욕재계하고 길을 따라 나섰다.
절은 그리 멀지 않은 교통 좋은 서울 시내에 있었다. 전통적인 사찰도 아니고 아이들이 득실거리는 대처승 절이었다. 법당도 컴컴한데 부처님이나 탱화가 마치 귀신처럼 보였다.
어머니 뒤를 따라 그저 하라는 대로 절을 하고 있는데 스님들이 뒤에서 경을 읽었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사바하」
귀신을 부르는 주문이었다. 아무런 의미도 모르고 그저 절만 하다가 왔다.
그런데 그 뒤에 얼마 있다가 남편의 직위가 올라갔고 가정도 평안해졌다. 집안 식구들은 모두 부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감사하였다.
그런데 집은 좋아졌는데도 자기에게는 이상이 생겼다. 온 얼굴에 두드러기 같은 것이 생기더니 머리 속에서 무슨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증세가 생겼다. 창피스러워서 얼굴을 내놓고 다닐 수도 없지만 발 뒤꿈치까지 간질거리는 증세가 생기면온 몸에 전율이 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병원엘 가서 진찰해 보아도 특별한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점점 심해지면서 뇌에 일종의 벌레가 생겨서 갉아먹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수술하는 길밖에 없다고 하였으나 수술을 하면 겨우 7,8개월 살면 많이 살 것이라는 것이었다. 고민이었다. 정 여사는 생각해 보았다.
「이것은 필시 하느님의 벌이리라. 아무 죄도 없는 내가 어떻게 하여 이런 병이 걸린다는 말인가? 」 신부나 목사를 찾아가 볼까 하고 있을 때 절에서 법회를 한다고 소식이 왔다. 불교를 믿으면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법회라니, 단체로 모아서 굿을 하는 것인가 하고 호기심에 끌려 나가 보았다.
그런데 그 법회라는 것은 옛날 불공드릴 때와는 달리 삼귀의, 찬불가, 사홍서원, 산회가 같은 노래도 불렀고 발원문도 우리말로 외우는데 교회 예배와 별로 다른 것이 없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다면 병사님 법문이 신을 의지하고 부처를 핑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것이니 자기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으며 특히 본 마음에는 병이 없는 것인데 사람들이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일으키고 거만한 마음을 갖고 상대방을 업신여기므로서 분별 시비가 일어나 만가지 병이 생긴다는 것 이었다.
또 이 세상은 죽으면 그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허물을 벗듯 몸만 바뀌는데 자기가 지은 업을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당, 아수라의 세계로 윤회한다는 것이었다.
천당도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니고 28개가 있는데 기독교의 천당은 제 7천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누가 가본 일이 있느냐? 」
물으니,
「정 여사는 갔다 왔기 때문에 여호와의 세계를 믿습니까? 이것은 먼저 다 깨달은 사람들이 말씀하여 놓은 경전에 있으니 능엄경을 보십시오. 」
하였다. 그래 그는 그길로 내려와서 능엄경을 보니 좀 어렵기는 하여도 이 세계와 인생이 만들어졌다가 부서졌다가 하는 것이며, 우리들의 생각이 한 가지 세계를 창조하여 내는 도리가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크게 감명을 받았다.
더군다나 법사님은 『정구업진언』을 해설하는데 『수리』는 『깨끗하다』는 말이고 『마하』는 크다는 말인데 이것은 깨끗하고 더럽고, 크고 작은 상대적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적 세계가 끊어진 본래 우리 마음의 깨끗하고 큰 것을 표현한 것인데, 그것을 등지고 상대적 세계를 보는 마음을 일으키므로 인해서 온갖 중생의 병이 생긴다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절대적인, 크고 깨끗한 마음은 진짜 좋은 것이므로 『좋다.』는 말이라 하였다.
또 『사바하』는 『성취한다.』는 말이니 결국 그 좋은 것은 마땅히 성취되어야할 것이고 성취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라 하였다.
그러니까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수수리 사바하』 하면 『깨끗하고 깨끗하고 아주 깨끗해서 좋은 본래 우리의 마음을 성취하겠다.』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성취될 때 과거의 죄업도 현재의 죄업도 모두 소멸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기도는 의지 귀탁(歸托)으로 선처를 바라는 것이었지만 불교의 법회는 그대로 본래의 마음을 깨우는 것이었다.
그래 그는 그 자리에서
「이미 내가 이 집에 이렇게 시집와서 이런 생활을 하면서 이런 병을 앓는 것이 모두 우연이 아니고 전생에 지은 업보로구나-이미 이것이 전생의 일이라면 내생에 받을 새 업은 정구업진언과 같이 지어야겠구나. 세상은 오래 산다고만 잘사는 것이 아니다 조문도석사가(朝楣夕死可)라 하였으니 나는 이제 오늘 죽어도 한이 없다.」
생각하고 그길로 집에 와서 열심히 염불하고 독경하였다.
그런데 수술을 하지 아니하면 곧 죽고, 하면 7 · 8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던 그 의병은 3 · 4개월 사이에 씻은 듯이 가시고 지금은 누구보다도 건강한 몸으로 가정에서는 주부로서 문단에서는 수필가로서 열심히 일하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