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달스님이 감옥에서 벗어나다

초달스님이 감옥에서 벗어나다

북위(北魏) 때의 초달 스님은 조군(趙郡)사람이다.

당시(아마 太武帝 때 424~452의 일인 듯 하다)북위에서는 도참(圖懺)에 관한 것을 엄금하고 있었다.

그때 초달스님은 그 법에 저촉되어 영양(榮陽)의 옥에 갇히게 되었다.

대단한 허물도 없이 잡혀 옥에 갇힌 초달스님은 당시 재상이던 박릉공(搏陵公, 崔皓381-450일 것임)의 직접 심문을 받았다.

그 심문에 초달스님의 대답이 분노를 불러일으켜, 크게 노한 박릉공으로부터 중죄인으로서 처벌을 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수레바퀴에 목이 끓인 채 경비가 삼엄한 옥에 갇혔다.

초달스님은 죽음을 면할 수가 없음을 알고 오직 관세음보살만을 칭념하였다.

그날 밤이 깊어서 그의 목을 비끄러매었던 수레바퀴가 없어졌다.

동시에 그의 몸은 쇠사슬에서 풀려났다.

또한, 삼엄하게 지키던 경비병들이 모두 잠에 곯아 떨어져 있었다.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곳에서 탈출하였다.

날이 밝자, 그가 탈출한 것을 알게 된 관부에서는 기병을 사방으로 풀어 그의 행방을 추적하였다.

뒤를 쫓는 무리가 있는 것을 눈치 챈 초달스님은 달아나던 길을 단념하고 풀숲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말을 탄 추적자들이 그가 숨은 곳 가까이까지 와서 풀숲을 짓밟으며 샅샅이 뒤졌으나, 끝내 그를 곁에 두고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하루 낮을 풀숲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어 추적자들이 철수한 뒤에 그는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할 수가 있었다.

<繫觀世音應驗記, 唐高僧傳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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