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에게 선위(禪位)를 받은 박생

염라대왕에게 선위(禪位)를 받은 박생

성화년간(成化年間) 경주(慶州)에 박생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박생은 유학(儒學)으로서 대성할 것을 기약하여 힘쓰던 중 태학관(太學館)에 보결생으로 천거 되었으나 시험에 급제하지 못하여 항상 앙앙불락(仰仰不樂-우울하여서 불쾌한 마음)이었다. 그는 뜻이 매우 높아 웬만한 세력에 붙쫓지 않을 뿐 아니라 굽히지도 아니하였다.

그러한 그의 성질을 보고 남들은 거만한 위인이라고 했으나 그가 남들과 교제할 때마다 태도가 대단히 온순하고 후하였으므로 여러 사람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는 일적이 불교, 무당, 귀신 등 모든 것에 대하여 의심을 품는 한편 이에 중용(中庸)과 주역(周易)을 읽은 뒤 더욱 자신을 얻게 되었다.

그의 성격이 순진하였으므로 불교신자들과도 친밀히 지니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한 스님과 불교에 대한 문답을 전개하게 되었는데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천당과 지옥이란 것에 대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야 천지는 음양(陰陽)일 것인데 어찌 천지 밖에 또 그런 세계가 있을 것이요 ? 」

하고, 말하자 스님도 또한 능히 결단하여 말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스님은 말했다.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소이다마는 악인악보 선인선과의 화복(禍福)이야 어찌하리오. 」

그러나 박생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일이론(-理論)이란 책을 만들어 스스로의 경책을 삼았다. 그리하여 불교의 이단적(異端的)인 데에 빠지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가 저술한 책의 내용은 대개 이러하였다.

<일찍 옛말을 들으매 천하의 이치는 오직한 가지가 있을 뿐이라 하였으니 한 가지란 말은 둘이 아니라는 말이요, 이치란 것은 천성을 말함이라. 하늘이 음양과 오행으로 만물을 낳을새, 기운(氣運)이 형상을 이룩하고 이(理)도 첨가된 것이다.

이치란 것은 일용(日用)과 사물(事物)의 사이에 각각 조리(條理)가 있어서 부자(父子)에는 친(親)을 다 할 것이며 군신(君臣)에는 의를 다할 것이며 부부와 장유(長幼)에도 마땅히 행할 길이 있을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도(道)라는 것이다. 이 이치가 우리의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 이치를 물으면 어디로 가나 합당하여 편안치 아니함이 없고, 그 이치를 거스르면 성품을 떨치는 것이 되리니 곧 재앙이 미칠 것이다. 이치를 궁구하고 성품을 연찬하는 것이 곧 이것을 궁구함이다.

어떤 사물이라도 거침없이 연구하여 자신의 지식을 넓힐 것이다. 대개인간으로 데어나서 이 마음 없는 이가 드물 것이매 또한 이 성품 갖추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또한 천하의 물건이 이치가 갖추어 있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니, 마음의 허령(虛靈)함으로써 성품의 그러한 것을 &#51922;는 것이 사물에 파고들어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다.

사물을 인하여 그 근원을 추궁하고 그리하여 그의 궁극의 길을 탐구하는데 이르는 것이 곧 천하의 이치이니, 이것이 사물에는 나타나 있지 아니함이 없으며 이치의 지극한 자가 방촌(方寸)의 안에 들지 아니함이 없으리라.

이로써 추측컨대 천하 국가를 포괄치 않음이 없고 끌어안아 합하지 않음이 없으매, 여러 하늘에 참예하여 위반함이 없으매 귀신에 물어봐도 혹(惑)하지 않으리니 고금의 역사에 떨어지지 아니함이 유가(懦家)의 일이니 이에 그칠 따름이다. 천하에 어찌 두 가지 이치가 있으리오.

저를 스님들의 허무적멸(虛無寂滅)을 위주로 한 이단(異端)의 이야기는 내 족이 믿을 바 아니다.>

박생이 이러한 책을 저술한 뒤에 하루는 자기 방에 앉아서 등불을 돋우고 책을 읽고 있다가 잠깐 졸고 있더니 문득 한 나라에 이르르니 창망한 바다 가운데의 한 섬이 있었다.

그 곳에는 초목도 모래도 없고, 밟고 가는 것이 구리쇠가 아니면 철(鐵)이었다.

대낮에는 불길이 하늘을 뚫을 지경이어서 대지가 다 녹아 없어지는 듯하고 밤이면 처참한 바람이 서쪽으로부터 불어 와서 사람의 살과 뼈를 에이는 듯하였다.

박생은 크게 놀라 주저하는데 문지기가 부르는지라 당황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수문장은 창을 세우고 박생에게 일렀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요? 」

박생은 떨면서 또한 대답하였다.

「아무 나라의 아무 땅에 사는 한낱 유생(儒生)이 올시다. 영관(靈官)께서는 널리 용서하여 주소서.」

하고, 엎드려 절하며 두 번 세 번 빌었다. 수문장은 말하였다.

「유생이란 본시 마땅히 위엄 앞에서는 굴하지 않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굽힘이 이와 같으뇨?

우리들은 이치를 아는 유생을 만나고자 한지 오래였으며 우리의 국왕께서도 그대와 같은 사람을 만나 할말을 동방에 선전하고자 하던 터였소. 조금만 기다리고 앉아 계시오.

내 국왕께 장차 고하여 뵙게 해 드리리다. 」

말이 끝나자 어디로 들어가더니 얼마 후에 나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국왕께옵서 당신을 편전(便殿-임금이 휴식하고 연회를 여는 別殿(별전))에서 맞이하려하오니 당신은 마땅히 위엄에 공포를 느끼지 말고 정직한 말로 대답하되, 이 나라 백성으로 하여금 옮은 길을 걷도록 하여 주시기 바라오. 」

말이 끝나자 흑의(黑衣)와 백의(白衣)를 입은 두 동자가 손에 두 권의 문권을 가지고 왔는데, 한 책에는 횐 종이에 푸른 글씨를 썼고 한 책에는 흰 종이에 붉은 글씨로 쓴 것이 있다.

동자가 그 책을 박생의 좌우에 펴놓아 보이는데 그의 성명은 붉은 글자로 적혀져 있었다.

「현재 아무 나라의 박아무개는 전생에 죄가 없으니 이 나라의 백성 됨에 마땅치 않다. 박생이 글을 읽고 동자에게 물었다.

「나에게 이 문권을 보이는 것은 어떠한 이유이뇨?」

동자가 대 답하였다.

「그것은 경은 문권은 악질의 명부이고 흰문권은 착한 이의 명부이오. 좋은 명부에 실린 분은 국왕께서 예법으로 맞이하시고 악한 명부에 실린 이는 노예로서 대우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당신께 알려드립니다.

왕께서 만일 알현을 허가할 때에는 마땅히 예로써 진퇴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하시오.」

하고, 말을 마치자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잠깐 사이에 빨리 구르는 보배수레 위에 연좌(蓮座-연꽃을 그린 佛座)를 설치하고 어여쁜 아이들이 파리채(拂子-말꼬리, 얼룩소 꼬리, 털을 묶고 자루를 단것 번뇌 장애를 물리치는 표시로 씀)와 일산(日傘)을 가지고 무사와 나졸들이 창을 휘두르면서 오는데 그 호령이 추상같았다.

박생은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앞에 철성(鐵域)이 세 겹으로 되어 있는 궁궐이 드높기 한이 없는데 금산(金山)의 아래에 있으며 불꽃이 충천하여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길옆에 다니는 사람들을 살펴보니 그 불꽃 가운데서 구리쇠와 쇠를 밟고 다니되 마치 진흙을 디디고 다니는 것과 흡사 하였다.

그러나 박생의 앞 수 십 보 쯤 되는 곳에 평탄한 길이 있어 인간 세상이나 다름없으니 아마 신력(神力)으로 이루어 진 것 같았다.

그 나라의 왕성에 이르니 네 문이 활짝 열리어 있고 못과 다락과 대(臺)가 한결같이 인간 세계와 조금도 다를 것 없는데 두 사람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와 절하며 손을 맞잡아 인도하여 들어가니 왕이 통천관(通天貫-古代 임금이 거동 때 쓰는 冠(관))을 쓰고 문옥대(文玉帶-임금이 매는 띠이름)를 띠고 뜰아래에 내려와 맞이하니 박생은 황급히 엎드려 능히 왕을 쳐다보지도 못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국토가 달라 서로 통성치 못하는 터에 이치를 아는 선비를 어찌 가히 위력으로 굴복하랴.」

하고는 곧 박생의 소매를 잡아 대궐에 오르게 하여 편전 위에 따로 앉을 자리를 마련하니 곧 옥으로 난간을 만든 금상(金床)이었다.

좌정하니 왕이 시종을 명하여 차를 드리게 하니 박생이 보매 차도 구리쇠와 같고 과실인즉 철환(鐵丸)과 다름이 없었다.

박생은 또한 놀라고 또한 두려워하나 능히 피할 곳이 없으며 그들이 하는 것을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과를 드리매 향내가 온방에 차왔다.

차 마시기를 마친 다음

「선비는 여기가 어딘지 모르실 것이오. 이 곳은 속세에서 말하는 염부주(閻浮洲)요.

대궐 북쪽산의 이름은 옥초산(玉焦山)인데 이 땅의 남쪽에 있으므로 이름하여 남염부주라 하오.

염부(閻浮)라는 이름은 염화(炎火)가 혁혁하여 항상 허공중에 떠 있는 관계로 그렇게 칭하게 되었소.

나의 이름은 염마(焰摩)라고 부르니 불꽃이 나의육신을 마찰하는 까닭이오. 내가 이 곳의 왕이 된 지 이미 만 일년이 된지라 오래 살다보니 내 스스로 영험스러워서 마음 가는바에 신통변화를 부리지 못할 일이 없으며 뜻의 하고자 하는 일에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없오.

창힐(蓄&#38945;-皇帝때 史官이름)이 글자를 만들매 나의 백성을 보내어 울게 하였고, 구담(翟曇-成道하기 전의 석가모니의 狼)이 부처가 되매 나의 부하를 보내어 보호해 드렸소. 삼황(三皇-澾人.伐義. 神農)과 오제(五帝)와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에 이르러서는 곧 스스로의 도를 지키니 내 어찌 할 수 없어 아무런 관계도 없었던 것이오.」

박생은 물었다.

「주공 구담은 어떠한 인물이옵니까?」

「주공(周公)은 중화인물(中華人物)의 성인이요, 구담은 서역(西域) 간흉(姦兇) 가운데서의 성인이라, 문물에 비록 밝으나 성품이 무잡하고도 순수하여 주공 공자께서 이것을 통솔하였으며, 간흉한 민족이 비록 몽매하기는 하나 기운이 이둔(利鈍)함이 있어 구담이 이를 경책하셨고, 주공의 가르침은 바름으로써 사(邪)를 버리게 함이니

「그렇다면 세상에서 일종의 사귀(邪鬼)의요물이 있어 실지로 사람을 해친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귀신이라고 이름 하는 그것일까요 ? 」

「귀란 것은 굴(屈)을 의미하고 신이란 것은 펴(伸)는 것을 말함이니, 굴하여 신(伸)하는 것은 조화의 신을 말함이고 굴(屈)하고 신(伸)치 못하는 것은 이것이 울결(鬱結-억울하게 맺혀서 풀리지 않는 것)의 요귀(妖鬼)를 가르침이라 조화에 합치는 고로음양 시종으로 더불어 자취가 없으며 울결인 체 하는 연고로 인물과 혼돈되어 산에 있는 것은 초라 하고 물레 있는 것은 역이라 하여 수석(水石)의 요물은 용망상(龍罔象)이요, 목석(木石)의 요물은 기망양(夔罔&#39758;)이오.

물건을 해치는 요귀는 여(勵)라 하고 남을 괴롭게 하는 것은 마(魔)라 하며 물건에 의지하는 요귀를 여(勵)라하며 물건을 혹(惑)하게 하는 것은 매(魅)라 하니, 이는 모두 귀(鬼)라 할 것이며 음양불측의 신을 신이라 이름이니라. 신이란 묘용(妙用)을 말함이오. 천인(天人)이 이치가 같고 현미(顯微)에 사이가 없이 그 근본에 돌아감이 정(精)이오. 천명을 회복함을 상(常)이라 하여 조화종시를 같이하되, 조화의 자취를 알 수 없음을 도(道)라 함이나 그러므로 귀신의 덕이 크다고 한 것이니라.」

박생이 또 다시 묻기를

「제가 일찍이 들으니 스님들이 말하기를 하늘 위에 천당이란 쾌락처가 있고 지하에는 지옥 고초 당하는 곳이 있다는데 명부(冥府) 시왕(十王 -(순나)馴羅,(지장)地藏등 十王이 있다는 佛家의 말)을 배치하여 십팔옥(十八獄 -땅 밑에 十八개의 지옥이 있다함)의 죄인을 다스린다 하오니, 이것이 사실인지 말이 정직하며 석가의 법은 정도(正道)로써 사도를 물리쳤으므로 그 말이 황란(荒誕-言行이 허황함)함이 있으나 정직한 고로 군자가 쫓는 것이며 황탄한 고로 소인이 믿는 것이니 이것이 양가의 극치라 할 것이다. 곧 군자 소인으로 하여금 마침내 정리(正理)에 들어가게 함이니 후세 부언하여 이도(異道)를 제창하고 세상을 속이고자 함이 아닌 줄로 아오. 」

박생은 다시 물었다

「귀신이란 어떤 것입니까 ? 」

「귀란 음(陰)의 영(靈)이오. 신(神)이란 양(陽)의 영이니 대개 조화의 자취이다 곧 이기(二氣)의 양능(良能-배우지 않아도 능한 것)이라 하고 살았을 때는 인물이라 하며 죽으면 귀신이라 하나 그 이치야 다를 것이 있사오리오. 」

「세상에는 귀신에게 제사하는 예가 있는데 제사의 귀신과 조화의 귀신과는 어떻게 다른 것이옵니까?」

「다를 것이 없소. 선비는 어찌 보지 못하였소.

선유(先懦)가 말하되 귀신이란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물건의 시종(始終)이 모양의 합산(合散)에 따르는 것이오. 또 친지에 제사함은 음양의 조화를 존경하는 것이고, 산천에 제사함은 기화(氣化)의 승강(昇緯)을 보답하는 것이며, 조상께 제사함은 근본을 보답하려는 것이며, 육신(六神-風伯, 雨師(우사), 靈星(영성), 先農(선농), 社裡(사리))에 제사함은 화를 면코자 함이니, 다 사람 사람으로 하여금 그 공경함을 다하게 하고자 함이오. 형질(形質)이 뚜렷이 있어 망령되이 인간에게. 화목을 더하게 하는 것이 아니오.

생각하는 것 뿐이라오, 그러므로 공자는 귀신을 공경하여 별리 하라 하였으니 아마 이런 이치를 말함일 것이오. 」

사람이 죽은지 칠일 후에 부처님께 재를 올리어 그 영혼을 천도하옵고 대왕께 지전(紙錢)을 바치어 그 죄악을 청산한다 하오니, 간악한 인간이라도 대왕께서는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왕이 크게 노해 말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오 금시초문이오. 고인이 이르기를 일음(一陰) 일양(一陽)을 도(道)라 이름이니 한 번 열리고 한 번 닫김을 변(變)이라 하고 생생(生生)함을 역(易)이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어찌 하늘과 땅밖에 다시금 하늘과 땅이 있으며 천지 밖에 또 다른 천지가 있으리오.

그리고 왕이라 함은 만인이 귀의(歸依)함을 이름이니 옛적삼대(代-夏, 繼, 周의 세 나라)이상 억조의 임금이 다 왕이라 일컬을 것이오, 달리 불리울 것이 없으나 부자(夫子)와 같은 이는 춘추(春秋)에 백왕(百王)이 바뀌지 아니하는 대법을 세운다 하였으며, 주실(周室)을 존중하는 천왕(天王)이라 한 것은 곧 임금의 이름이지 더 무엇을 보탠 것은 아니오.

그런데 진(泰)이 육국(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의 禁(금), 齋(재), 燕(연), 韓(한), 魏(위) 趙(조) 여섯 나라)을 멸하여 자기의 덕은 삼황(三皇)을 겸하고 공훈은 오제(五帝)보다 높다 하여 왕을 황제로 고친 다음 참람히 왕이라 칭한 왕자의 명분이 어지러워졌음은 다시 말할 것도 없겠고 문무성강(文武聖康)의 존후가 이에 권위가 없어졌죠.

또 세상이 무지하여 인간의 실정은 이야기 하지 않고 신도(神道)만 엄숙하각 하니 어찌 한 개의 지역 안에 왕이라 일컬음이 이러 많을 것이겠소.

그대는 어찌 듣지 못하였소.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나라에 두 왕이 없을 것이라 하였으니 그 말은 가히 믿을 수 있으리오. 재를 지내 영혼을 천도한다든지 지전을 사르어 제사지낸다든지 함에 이르러서는 나는 그 소이를 알 수가 없고. 그대는 아는 대로 얘기하여 주구료.

박생은 자리에 물러가 옷깃을 펴며 말했다.

「세상에서는 부모가 가신 지 사십구일 만에 양반이거나 상인이거나 장사지내는 일을 돌보지 아니 하고 오로지 영혼천도를 위주하오나 돈 많은 이는 부의(賻儀)를 많이 내어 큰 재를 울리고 가난뱅이도 논밭과 집을 팔아 전곡을 마련하고 종이를 오려 번개(幡蓋)를 삼으며 비단을 끊어 꽃을 만들어 여러 스님들을 불러 복전(福田 -佛家의 말에 敬田(경전), 恩田(은전), 悲田(비전)이 있음)을 닦고 불상을 뫼셔 주문을 외우되 새와 쥐가 지절거리는 것과 흡사히 하니 아무런 뜻이 있을리 없으며 상주가 처자권속을 모아 남녀가 혼잡하와 대소변이 낭자하오며 극락 정토(淨土-佛보살이 살고 있는 곳)를 더럽히고 또 시왕을 초대한다 하여 주찬을 갖추어 제사하는데 지전을 사르어 속죄한다 하오니 시왕을 위한다는 자들이 이렇듯 예의를 돌보지 아니하고 탐욕을 내어 받으리오. 또 법을 따라 중벌에 처할 수 있으리까? 이에 대하여 저는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옵니다. 」

「슬플진저‥‥‥인간이 이 세상에 나매 천명으로써 성(性)을 삼고 땅이 곡식을 길러주시며 임금은 법으로써 다스려 주시며 스승은 도(道)로써 가르쳐 주시고 어버이는 은혜로써 키워 주시니, 이로 말미암아 오전(五典-父義(부의), 母慈(모자), 兄友(형우), 弟恭(제공), 子孝(자효))이 차례가 있고 삼강(三綱-君臣(군신), 父子(부자), 夫婦(부부))이 문란치 많으니 이를 쫓으면 성스럽고 이를 거슬리면 재앙이 있으리니 그것은 사람이 지어 받은 것이요, 사람이 죽으면 정신과 기운이 이미 흩어져 오르락 내리락 하며 근본으로 돌아갈 뿐이라, 어찌 다시금 캄캄한 속에 있으리오.

다만 일종의 원통한 혼백과 비명(非命)에 쓰려진 원귀들이 억울한 죽음으로 기운을 펴지 못하여 혹은 쓸쓸한 싸움의 벌판에 울기도 하며, 혹은 원한에 맺힌 가정에 나타나기도 하려니와 또는 무당에 의탁하여 뜻을 발표하며 혹은 사람에 의지하여 슬픔에 하소연하는 것은 비록 정신은 흩어지지 않더라도 결국 아무것도 없는 귀일(歸一)함이라, 어찌 형체를 저승에 빌려서 지옥의 고통을 받으리까?

이것은 물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짐작할 바요, 부처에 재드리고 시왕에 제사함은 더욱 황탄할 일이오. 또 재를 지낸다함은 정결함을 뜻함이니 지를 지내고 지내지 아니함은 그 정성에 있음이지 별 뜻이 없는 것이오. 부처란 청정(淸淨)하다는 뜻이오, 왕이란 존엄하다는 뜻이니, 수레로 금을 구함은 춘추에서 편한 바요, 돈으로써 비단을 삼은 것은 한위(寒魏)에서 비롯하였음이라.

어찌 청정의 신으로써 세속의 공양을 맛보며 왕의 존엄함으로 죄인의 뇌물을 받을 수 있으며 명멸(冥滅)의 귀(鬼)로서 세상의 형벌을 용서할 수 있으리오. 이것이 또한 이치를 추구하는 선비의 마땅히 생각 할 바 아니겠소.」

「그러면 윤회(輪廻)의 설에 대하여는 어떻게 보아야 하겠나이까?」

「정신이 흩어지지 않았을 때 마치 윤회의 길이 있을 듯 하나 오래되면 소멸되고 마는 것이겠지요.」

박생은 물었다.

「왕께서는 어떤 연고로 이런 세상에 살고 계시어서 임금이 되셨나이까? 」

「내가 세상에 있을 때에 왕께 충성을 다하여 발분하여 도적을 없애며 맹서하기를 죽어서라도 마땅히 여귀(&#21236;鬼)가 되어 도적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그 나머지 원이 다하지 아니하고 충성이 없어지지 아니하여 그런 까닭으로 이런 나쁜 나라에 의탁하여 군장이 되었소.

이제 여기 살면서 나를 우러러 쫓는 자는 다 전세(前世) 인간에서 흉악의 무리가 여기에 태어나 나의 절제함을 받게 된 것이오. 그릇된 마음을 고치고저 함인데, 그러므로 내 정직을 지키며 사리사욕을 청산하지 못하고는 아무도 이 땅의 군주가 되지 못할 것이오.

내 일찍 들으매 선생의 정직 불굴하는 성격은 천고의 달인(達人 – 사리에 도통(道通)한 사람)이라, 그러나 선생의 높은 뜻은 세상에 편 바 없으니만치 형산(荊山)의 백옥이 티끌에 묻혀 있고 밝은 달이 깊은 못에 빠진 것 같아 만일 슬기 있는 공장(工匠)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 지극한 보배임을 알아 주겠소. 어찌 아깝지 아니하랴. 내 또한 이제 시운이 다하여 이 자리를 떠나야 할 판이오.

선생도 명수(命數)가 끝난 것 같으니 아 나라의 백성을 맡아 주실 분은 선생이 아니고 누구라 하겠소.」

염마는 말을 마치자 크게 잔치를 베풀어 즐겁게 삼한흥망(三韓興亡)의 잔치를 열기도 하거늘 박생이 일일이 얘기하다가 고려의 전군에 얘기가 미치매 염마는 수차 감탄하여 마치 아니하였다.

그러면서 다시 말하였다.

「나라를 맡은 이 폭력으로써 백성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며 덕이 없이 지위를 차지할 수 없을 것이라. 하늘이 비록 묵묵하여 영원히 말은 없을지라도 그 명령은 엄한 것이오. 명이란 하늘이 명하오니 천명이 가 버리고 민심이 떠나면 비록 몸을 보전코자 한들 어찌 할 수 있겠소?」

박생은 다시 역대 제왕의 이도(異道)를 믿다가 재앙을 입은 얘기를 하매 염왕은 문득 눈살을 찌푸리면서 「백성들이 기쁘게 노래를 부르되 수재와 한재가 이르는 것은 하늘이 임금으로 하여금 일에 삼가 할 것을 암시함이오, 인민이 원망하되 상서가 나타남은 임금으로 하여금 더욱 교만하게 방종케 함이니, 역대 제왕을 입을 때 그 인물들은 안락하였소? 원망하였소?」

「그것은 간신이 벌떼처럼 봉기하여 큰 난리가 일어나되 임금은 인민을 눌러 정치를 하게 되었으니 인민은 어찌 안락할 수가 있었으리까? 」

「아마 선생의 말씀이 옳소이다. 」

문답이 끝난 뒤 염마는 잔치를 거두고 박생에게 왕위를 전코자하여 곧 손수 선위문(禪位文-王位(왕위)를 禪讓(선양)하는 宣言文(선언문))을 지어 박생에게 내려 주는 것이었다.

그 선위문에 하였으되

<염주(炎洲)의 땅은 실로 야만의 나라이라 옛날의 하우(夏禹)의 발자취 이르지 못하였고 주목왕(周穆王)의 말굽이 미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붉은 구름이 햇빛을 덮고 추한 안개가 공중을 막아 목이 마를 때는 녹은 구리 쇠물을 마시며 배가 주리면 뜨거운 쇠끝을 먹고 야차(夜叉-事物의 가장 추악한 종류)와 나찰(羅刹-사람을 잡아 먹는 포악한 귀물)이 아니면 그 발붙일 곳이 없고 이매망양(繼謎&#39757;&#39758;-온갖 도깨비 귀신)이 아니면 능히 그 기운을 펼 수가 없는 것이다.

화성(火城)이 천리요 철산(鐵山)이 만첩(萬疊)이라, 민속이 한악(悍惡-성질이 사납고 악함)하니 정직하지 아니하여 그 간사함을 판단할 수 없고 지세(地勢)가 험악하니 신성한 위엄이 없으면 그 조화를 베풀기 어렵도다.

이제 동국(東國)에 사는 박 아무개로 말하면 정직 무사하여 강의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문장에 대한 재질이 크며 발몽의 재주가 있어 모든 인민의 기대에 어그러짐이 없을지니, 경(卿)은 마땅히 도덕과 예법으로써 인민을 지도할 것이며 온 누리를 태평하게 해 주시오.

내 이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요순(堯舜)의 옛일을 본받아 이 자리를 사양하노니, 아아, 경은 삼가 이 자리를 받을 지어다.> 박생은 선위문을 받들어 예식을 마치고두 번 절하고 물러 나왔다.

염마는 다시금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축하를 드리게 하였고 박생은 고국으로 잠깐 돌려 보낼새 거듭 칙령을 내리었다.

「머지않아 이 곳에 돌아올 것이니 나와함께 문답한 전말을 인간에 퍼뜨리어 황당한 전설을 남게 하지 마시오.」

박생은 또한 다시 절하며 치사하여 말하였다.

「감히 명령을 어길 길이 있사오리까? 」

하고, 대궐문을 나와서 수레에 탔다. 말굽이 진흙에 붙자 수레를 잡아 뜨리었다.

박생이 깜짝 놀라 일어나 깨니 그것은 한갓 허무한 꿈이었다. 눈을 뜨고 주위를 보니 책들은 상에 던져 있고 등불은 깜박거리고 있었다.

박생은 마음이 산란하였고 스스로 생각하되,

「이제 죽을 날이 머지 많았다.」

하고 날로 집안일을 처리할 것이 걱정이었다. 며칠 후에 병이 들어 누었는데

「이제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의원과 무당들을 다 물리치고 고요히 죽어갔다. 그가 가던 날 저녁 꿈에 신인(神人)이 이웃에 고하여 말하였다.

「그대가 이웃의 아무개가 장차 염라왕이 될 것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금오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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