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부부의 정사

어느부부의 정사

석존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서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그 당시에 많은 재산을 지닌 어느 백만장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부부는 단지 이제 나이 겨우 열세살 밖에 되지 않는 외아들을 남겨놓고 훌쩍 이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남겨진 하나의 유족이자 어린 외아들은 그 많은 재산을 관리할 줄도 몰랐을 뿐 아니라 또한 중간에 이런저런 꼬임수에 빠져 모르는 사이에 살림과 재산은 탕진되고, 마침내 그 자신도 거지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죽은 그 부친의 친구에 한 장자가 있었다. 그 사람의 재산은 더욱 많아 누구도 엄청난 그의 재산을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그런 큰 부호였다. 그는 어느 날 거지가 된 친구의 아들의 불쌍한 꼴과 사연을 듣자 너무나 측은하고 애처로워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하여 아내와 가족들에게 인사시키고 인정을 다해 키웠다. 거지아이가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자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딸을 그에게 주어 사위를 삼고 재산을 많이 나누어주었다. 또한 하인 비복들까지 나누어주고, 화려한 수레와 말 등도 주었으며 굉장히 넓고 큰 저택마저 세워주는 등 한 살림을 톡톡히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도 그 죽은 친구의 아들이자 사위가 된 사람은 위인이 본시 게으르고 무능해서 스스로 자활할 줄 모르고 그저 준 재산만 야금야금 파먹었다. 얼마 안가서 또다시 곤궁한 신세가 되어 날마다 탄식하는 것으로 일삼았다.

이 꼴을 본 장인인 장자는 화가 치밀었지만 딸을 사랑하는 부정의 탓으로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이 또 한바탕 재산을 분양해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얼마가지 않아서 또 빈 털털이가 되었고 생활고에 시달려 허겁지겁 하는 판국이었다.

장자는 화가 났다. 아무리 나누어 주어도 밑 없는 솥에 물 붓기였다. 저런 위인으로서는 백년 가봐야 뾰족한 수가 날 턱이 없다고 단념한 그는 단연코 자기 딸을 되찾아 오려고 결심했다. 친족 회의를 열고 모두에게 양해를 얻어 여기서 그렇게 단행할 것으로 결정이 내리고 말았다. 그의 딸이 이것을 염탐해 듣고 너무나 놀라워서 그의 남편에게 알렸다.

그는 아내의 말을 듣고 이제 와서 후회하고 참회하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자신의 무능함을 스스로 자탄했다.

(지금 아내와 이별하게 되면 나는 또다시 거리를 헤매는 거지가 될 것이다. 은혜도 갚지 못하고 부부의 도리도 다 못했으며, 생활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된 형편에, 살아서 이별하는 슬픔을 맛보기 보다가는 차라리 아내도 죽이고 나도 죽어버리자.)

이렇게 생각한 그는 마침 아내가 방안에 들어오자 별안간 덤벼들어 칼로 배를 찔러 죽여 버렸다. 그 피 묻은 칼로 돌아서서 자신도 함께 배를 찔러 죽어버렸다.

하인들이 발칵 뒤집혀 울며불며 장자에게 이런 변고를 고했다. 그 온 집안 친족들이 모두 황황히 달려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무런 도리가 있을 수 없었다. 울면서 이 무참한 죽임을 장사지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장자는 딸에 대한 애석한 정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장자의 가족들은 석존에게 가서 가르침을 청했다. 석존께서 말씀하시는 무상천멸(無常遷滅)의 설법을 듣고서야 비로소 겨우 그 비탄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法句譬喩經第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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