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왕문경(奮迅王問經) 02. 하권
이 때 분신왕보살이 부처님께 고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법이 있다면 법을 보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법을 보는 일이 있다면 여래도 볼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다. 왜냐 하면 분신왕아, 색(色)의 상(相)은 나지 않으니 본래 성품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색을 본다면 여래를 볼 것이다. 이와 같이 수 ·상·행·식의 상도 다 나지 않으니, 본래 성품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식(識)을 본다면 여래를 본다.
계(戒)는 유위(有爲)의 모양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무위이다. 이와 같이 계(戒)를 본다면 여래를 볼 것이다. 삼매는 평등하여 맑고 깨끗하게 보는 것이니, 이와 같이 나도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맑고 깨끗하게 보는 것을 얻었다. 내가 저 부처님에게서 인연을 보았고, 인연을 보았기 때문에 법을 보았으며, 법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를 보았다.”
분신왕보살이 부처님께 고하였다.
“세존이시여, 연등부처님께서 오셨다는 것은 여래께서 계시다는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분신왕아, 다 색의 모양으로 분별하여 보는데, 법신(法身)을 본 것은 아니다. 분신왕아, 내가 너를 위하여 말하리니, 너는 이제 알아야 한다. 내가 처음 보리심을 내고부터 연등불 말고는 다시는 부처님을 보지 않았다. 왜냐 하면 색상(色相)을 본 것이 아니라 청정하게 여래를 보았기 때문이다. 분신왕아, 이와 같이 부처를 보고자 하는 보살은 내가 연등여래를 보는 것과 같이 해야 하니, 하나의 법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나의 법이라 하는가? 나의 몸과 같이 저 연등의 몸도 이와 같으며, 연등의 몸과 같이 나의 몸도 그러하여 한 몸이며 한 법이다. 둘이 아님을 깨달아 분별 없이 증득하면 그것이 인연지(因緣智)이다. 인연을 본다면 그는 법을 보는 것이며, 법을 보기 때문에 여래를 본다.
만일 마음이 생겨나는 모든 곳에서 다 멸함을 증득하여 열반에도 들지 않고 생사도 하지 않으며 방편의 지혜로 법을 설한다면 그것을 분신(奮迅)이라 한다. 저 실제지(實諦智)란 어떠한 것인가? 성문을 닦는 사람은 실다운 경우라면 무엇이든 부딪쳐 해탈한다. 보살도 이와 같은 실다운 경우를 얻지만 부딪치지 않고 해탈하니, 이것이 분신이다.
연각을 닦는 사람은 실다운 경우라면 무엇이든 부딪쳐 해탈한다. 보살도 이와 같은 실다운 경우를 얻지만 부딪치지 않고 해탈하니, 이것이 분신이다. 실제지(實諦智)라는 것은, 괴로움이란 것이 진실이 아니며 실제가 아님을 아는 것이다. 무엇을 지혜라 하는가? 실제가 아님을 아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끝없는 전도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괴로움이란 것이 생겨나지 않음을 알고, 필경에 나지 않음을 안다. 이와 같이 괴로움이란 것이 나지 않음을 알면 이것을 괴로움을 아는 지혜[苦智]라 한다.
무엇을 괴로움의 덩어리를 끊는다[斷集]고 하는가? 저와 같은 괴로움이 덩어리가 된 법을 이와 같이 끊는다. 무엇을 덩어리라 하는가? 모였기 때문에 덩어리라 하니, 평등으로 그 덩어리를 끊어야 한다. 미래의 덩어리는 미래에 끊는다. 이 법은 원래 그러하여 생겨나거나 끊어지는 법이라곤 조금도 없다. 사랑의 번뇌[愛使]가 괴로움의 덩어리를 있게 하는데, 사랑의 번뇌를 끊기 때문에 사랑을 끊었다고 한다.
어떤 것이 괴로움이 멸함[苦滅]인가? 괴로움과 괴로움의 덩어리란, 그 특성이 본래 멸해 있는 것이라서 유실되고 멸할 법이 따로 없다. 그러므로 멸함이라 이름한다. 반연하는 모양을 전부 멸한 자는 의(義)와 상응하지 않는데, 생겨날 법이 어디 있겠으며, 멸할 법이 어디 있겠는가?
어떠한 것을 도(道)라 하는가? 도가 있다 함은 착함·착하지 않음·번뇌·번뇌 없음·더러움·더러움 없음·함이 있음·함이 없음을 전혀 세울 수 없는데, 이것을 도라 한다.
평등을 도라 하니, 일체 법은 다 진실하기 때문이다. 고요하고 깨끗함을 도라 하니 일체 뜨거움을 다 여의었기 때문이다. 안온함을 도라 하니 일체 훌륭한 방편을 여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번뇌 없음을 도라 하니 모든 번뇌가 다했기 때문이다. 행하지 않음을 도라 하니 분별로 보는 사람은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하기 쉬운 것을 도라 하니 바르게 수행하는 자는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리지 않음을 도라 하니 과거의 여래께서 버리시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모양을 여읜 것을 도라 하니 모든 의심을 끊어 제거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 도에 있어서 둘에 들어가지 않는 자가 있다면 이것을 도라 이름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진실한 가르침의 뜻을 이해한다면 그것을 실제지(實諦智)라 한다.
만일 이 네 가지 진실한 가르침에서 성문승의 원력과 연각승의 원력, 즉 2승(乘)의 원력에 희망을 내지 않는다면 이것을 실제지의 분신(奮迅)이라 한다. 또한 분신왕아, 지혜의 분신[智奮迅]이란 성문승을 알아도 취하지 않고 머물지 않으며, 연각승을 알아도 취하지 않고 머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의 분신이다.
또한 분신왕아, 지혜의 분신이란 한마음으로 일체 중생의 마음을 알며, 한마음의 체(體)로써 일체 중생의 심체(心體)를 알더라도 마음과 지혜에 두 마음을 굴리지 않나니, 이것이 지혜의 분신이다.
또한 분신왕아, 지혜의 분신이란 과거를 보고 아는 데 막힘 없고 걸림이 없다. 그렇다고 과거에 마음이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미래를 보고 아는 데 막힘 없고 걸림이 없으나 미래와 과거에 마음이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를 보고 아는 데도 막힘 없고 걸림이 없으나 과거·미래·현재에 마음이 분별[戱論]을 내지 않는다. 이것이 지혜의 분신이다.
또한 분신왕아, 지혜의 분신이란 진지(盡智)로 알았을 경우에도 선근으로 행할 바가 다함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무생지로 알았을 경우에도 괴로움의 원인을 알았다는 사실 역시 아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의 분신이다.
또한 분신왕아, 지혜의 분신이란 일체 법이 필경 적멸하여 다른 인연이 아님을 알면서도 지혜의 힘 때문에 모든 중생을 성숙시키고자 열반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살이 성취한 지혜의 분신이다.
이와 같이 분신왕아, 이 지혜의 분신으로 분신을 하고자 하는 보살은 지어 마땅한 지혜를 잘 짓고, 교만한 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것이 교만한 업인가? 의(意)에서 나오는 모든 행이 교만한 업이며, 식(識)에서 나오는 모든 행이 교만한 업이며, 심(心)에서 나오는 모든 행이 교만한 업이다. 선행을 즐겨 견해에 떨어진 채로 하는 모든 보시가 교만한 업이다. 상(想)에 떨어진 채 지키는 모든 계가 교만한 업이다. 자기와 상대방을 남겨둔 채 행하는 모든 인욕이 다 교만한 업이며, 마음에 분별을 일으키는 채로 하는 모든 정진이 다 교만한 업이며, 몸을 분별하는 반야도 마찬가지로 교만한 업이다.
아만을 일으키는 것이 다 교만한 업이다. ‘나는 보살이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교만한 업이며, ‘나는 보살의 위치에 머문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교만한 업이며, ‘나는 부처의 종자·법의 종자·승려의 종자를 끊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이 교만한 업이다. ‘나는 중생에게 이익을 줄 행동을 한다’고 하면 그것이 교만한 업이며, ‘제도 받지 못한 중생을 내가 제도하며, 해탈하지 못한 자를 내가 해탈하게 하며, 편안히 위로 받지 못한 중생을 내가 편안히 위로 받게 하며, 열반하지 못한 자를 내가 열반하게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교만한 업이다.
‘나는 보시를 행하며, 나는 계율을 지니며, 나는 인욕하며, 나는 정진을 하며, 나는 선정에 들며, 나는 지혜롭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교만한 업이며, ‘나는 자애로운 마음을 행하며, 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행하며, 나는 기뻐하는 마음을 행하며, 나는 버리는 마음을 행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교만한 업이다. ‘나는 욕심을 줄이며, 나는 만족할 줄 알며, 나는 욕심을 멀리 떠났으며, 나는 물들지 않는 행을 닦는다’고 한다면 그것이 교만한 업이며, ‘나는 두타(頭陀)를 행하여 한적한 빈터에서 바르게 수행하며, 바르게 기억하고 분별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교만한 업이다.
‘나는 공행(空行)을 닦으며, 나는 모양 없음[無相]을 행하며, 나는 원함 없음[無願]을 행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교만한 업이며, ‘나는 실제를 말하며, 나는 진실을 말하며, 나는 설한대로 행하고 기억하며 생각하고 분별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교만한 행이다.
‘나는 마군의 업을 지나왔으며, 네 마군의 올가미를 지나왔으며, 모든 견해를 끊었으며, 나는 인욕을 수행하여 기억하고 생각하며 분별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마음과 의식[心意]의 업이다. 이와 비슷한 종류들은 여기서는 생략한다. ‘나는 보리를 깨달았으며, 나는 법륜을 굴렸으며, 나는 중생들에게 해탈을 얻게 한 후에 남음이 없는 열반에 들게 하였다’고 기억하고 분별하면 그것이 마음과 의식의 업이다. 분신왕아, 마음에 지향하는 바가 있어서 마음을 일으켜 말을 한다면, 그 모든 것이 다 교만한 업이다.
분신왕아, 어떤 것이 지혜의 업인가? 이와 같은 처소에서 심의(心意)나 의식(意識)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지혜의 업이다. 보살은 이렇게 항상 지혜의 업을 짓는다. 보살이 어떻게 항상 지혜의 업을 짓는가? 보살은 항상 두 가지 업을 짓는다. 두 가지란, 이른바 중생을 성숙시키는 것과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중생을 성숙시킨다 하는가? 자기의 지혜로 중생을 성숙시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자기의 지혜로 안다는 것은 스스로 교만을 여읜 데에 머문다는 것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교만을 여읜 곳에 머무는 줄을 스스로 아는데, 그것은 의(意)나 식(識)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의도 식도 아닌 것으로 그렇게 중생을 성숙시킨다.
무엇을 보살이 바른 법을 거두어들인다[攝取正法]고 하는가? 보살이 일체 모든 법에 포섭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두고 보살이 바른 법을 거두어들인다고 한다. 색에 포섭되지 않는 이것이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며, 이와 같이 수(受)에 포섭되지 않고, 상(想)에 포섭되지 않고, 행(行)에 포섭되지 않고, 식(識)에 포섭되지 않는 이것이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차례로 계(界)에 포섭되지 않는 이것이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며, 포섭에 들어가지 않는 이것이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착한 법이나 착하지 않는 법에 포섭되지 않는 이것이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깨끗한 법이나 깨끗하지 않은 법, 번뇌가 있는 법이나 번뇌가 없는 법이나, 함이 있는 법이나 함이 없는 법이나, 세간의 법이나 세간을 벗어나는 법, 이와 같은 데 포섭되지 않는 이것을 바른 법을 거두어들인다고 한다.
보시한다는 관념[相]에 포섭되지 않는 이것이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며, 계(戒)를 지닌다거나 인욕을 행한다거나 정진을 한다거나 선정을 닦는다는 관념에 포섭되지 않는 이것이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왜냐 하면 반연에서 생긴 모든 것은 다 상(相)이 있어 생기는 것이어서 법이 아니며, 율이 아니며,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가? 상(相)이 없고 걸림 없는 여래의 바른 깨달음은 상으로 반연하여서는 얻을 수 없다. 상이란 반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와 같은 업을 안다면 이것을 지혜라 하겠지만, 만일 이 지혜로써 하는 바에 대하여 지혜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극진한 지혜라 할 수 없다.
분신왕아, 어떤 것이 혜분신(慧奮迅)인가? 법이 나뉜 대로 글귀로써 분석하여 네 가지 걸림 없음[四無礙]을 얻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뜻에 걸림 없음이고, 둘째는 법에 걸림 없음이고, 셋째는 말이 걸림 없음이고, 넷째는 설하기를 즐겨 하여 걸림 없음이다.
뜻에 걸림 없다[義無礙] 함은 모든 글자에서 오직 뜻만 취할 뿐, 글자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뜻이라 말한 이유는 일체 모든 법의 뜻을 바로 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뜻이란 말로는 할 수 없는 뜻을 가리킨다. 갖가지 글자에 대해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앞소리와 뒷소리를 알면 이것을 두고 뜻이라 한다.
말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뜻을 따를 수 있으니, 만일 이렇게 말과 뜻에서 평등할 수 있다면 뜻을 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안다면 그것을 두고 뜻에 걸림이 없다고 한다. 그 모든 뜻에 걸림이 없기 때문에 의무애(義無礙)라 하는 것이다.
법에 걸림 없다[法無礙] 함은 법을 따르고 법이 아닌 것은 따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법을 따른다는 것은 법이 아닌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저 일체 법은 이름과 글자의 지혜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법에 걸림이 없다는 것은 가르침의 갈래[乘]든 법이든 다른 법을 설하지 않는 것이며, 법계의 모양에 처하여도 법계를 파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왜냐 하면 법계는 하나의 모양, 즉 모양 없는 모양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무엇을 가지고 법과 언어를 설하겠는가?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는 메아리와 소리가 평등함을 순순히 믿고 이해한다. 법을 설하는 말을 믿고, 법계가 평등하여 세속의 상식을 따르되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상의 갖가지 뜻에서 법무애라 한다.
말에 걸림 없다[辭無礙] 함은 글자와 말을 아는 것이다. 즉 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등 사람인 듯 하면서 사람 아닌 존재 등이 쓰는 모든 글자와 말과 지혜, 그리고 석제환인과 범천세계의 임금이 쓰는 모든 글자와 말과 지혜, 그리고 한 마디와 많은 말, 간략한 말과 자세한 말, 여자의 말과 남자의 말, 내관(內管)의 말, 그리고 과거의 말과 미래의 말과 현재의 말 일체를 다 법대로 글자대로 말대로 아는 것이다.
글자와 말을 가지고 다른 중생에게 자기 뜻을 알리고 이해시키는 경우, 이와 같이 말을 해도 이쪽 자신의 말과 저쪽 타인의 말이 서로 장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집착하지도 않는다. 왜냐 하면 일체 법에 글자와 말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한다.
‘어떤 것이 글자와 말이며, 설한다면 어떤 법을 설한단 말인가? 그러한 저 법은 글자와 말에는 없다. 그러므로 법을 얻지 못하며 설할 수도 없다. 한편 저 글자와 말 또한 법 가운데는 없다. 그러므로 글자와 말을 얻지 못하며 설할 수도 없다. 만일 글자와 말을 설한다 해도 글자와 말은 소리가 없으며, 사실상 이런 언사가 있다 해도 착한 법을 나타내는 언사와 악한 법을 나타내는 언사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말이란 것이 법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에 걸림이 없다 함은 그 어떤 법에도 걸리지 않으며, 그 어떤 법에 대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 하면 법은 행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체 모든 법은 필경에 행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알고 나서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 주어 그들이 알게 하기 때문에 사무애(辭無礙)라 한다.
어떤 것을 설하기를 즐겨 하여 걸림 없음[樂說無礙]이라 하는가? 모든 말 설하기를 다 즐기는 것이고, 모든 소리 설하기를 다 즐겨 하는 것이고, 모든 명칭 설하기를 다 즐겨 하는 것이다. 무엇을 두고 설하기를 즐겨 한다 하는가? 뜻을 즐겨 설하며·법을 즐겨 설하며·참을 즐겨 설하며·실제를 즐겨 설하는 것이다.
수다라〔修多羅 : 계경(契經)〕의 말소리를 믿고 이해하는 중생이 있다면 저 중생을 위하여 수다라의 음향을 즐겨 설하며, 기야〔祇夜 : 응송(應頌), 중송(重頌)〕의 말소리를 믿고 이해한다면 기야의 음향을 즐겨 설한다. 이와 같이 가타화가라나〔伽他和伽羅那 : 게(偈), 고기송(孤起頌)〕와 우타나〔憂陀那 :자설 (自說)〕와 니타나〔尼陀那 :인연( 因緣)〕와 아파타나〔阿波陀那 :비유 (譬喩)〕와 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 : 본사(本事)〕와 사다가〔闍多伽 : 본생(本生)〕와 배불략〔裵不略 : 방광(方廣)〕과 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 : 미증유법(未曾有法)〕의 말소리를 믿고 이해한다면 배불략과 아부타달마의 음향으로 즐겨 설하며, 만일 선배의 말소리를 믿고 이해한다면 선배의 음향을 즐겨 설한다.
일체 중생의 모든 근기에 따라 즐겨 설하니, 믿는 자에게는 믿음의 근기를 즐겨 설하며, 정진하는 자에게는 정진의 근기를 즐겨 설하며, 염(念)을 행하는 자에게는 염의 근기를 즐겨 설하며, 선정을 닦는 자에게는 선정의 근기를 즐겨 설하며, 지혜가 있는 자에게는 지혜의 근기를 즐겨 설한다. 이와 같이 2만 1천 가지나 되는 모든 근기를 보살은 즐겨 설한다.
욕심을 행하는 근기들을 8만 4천 여래께서는 다 아신다. 그리고 저 일체 근기를 여래께서 즐겨 설하시듯, 보살도 그에 따라 비슷하게 저 2만 1천 가지 모든 근기를 즐겨 설한다. 성냄을 행하는 근기들을 8만 4천 여래께서는 다 아신다. 그리고 저 일체 근기를 여래께서 즐겨 설하시듯, 보살도 그에 따라 비슷하게 저 2만 1천 가지 모든 근기를 즐겨 설한다. 어리석음을 행하는 근기들을 8만 4천 여래께서는 다 아신다. 그리고 저 일체 근기를 여래께서 즐겨 설하시듯, 보살도 그에 따라 비슷하게 저 2만 1천 가지 모든 근기를 즐겨 설한다. 평등을 행하는 근기들을 8만 4천 여래께서는 다 아신다. 그리고 저 일체 근기를 여래께서 즐겨 설하시듯, 보살도 그에 따라 비슷하게 저 2만 1천 가지 모든 근기를 즐겨 설한다. 이런 것들을 설하기를 즐겨 하여 걸림 없음[樂說無礙]이라 한다.
분신왕아, 저 뜻에 걸림 없음·법에 걸림 없음·말에 걸림 없음·설하기를 즐겨하여 걸림 없음은 다 지혜[慧]를 근본으로 삼고, 지혜를 의지하여 머물고, 지혜를 따라 행한다. 보살은 지혜를 의지하여 이런 것들과 갖가지 분신으로 다 분신을 한다.
그런데 분신왕아, 지혜는 무엇이 근본이 되며, 지혜는 무엇을 의지하여 머물며, 지혜는 무엇을 따라 행하는가? 분신왕아, 듣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 된다. 지혜는 듣는 것을 의지하여 머물며, 지혜는 듣는 것을 따라 행한다.
그렇다면 분신왕아, 듣는 것은 무엇이 근본이 되며, 듣는 것은 무엇을 의지하여 머물며, 듣는 것은 무엇을 따라 행하는가? 분신왕아, 선지식이 듣는 것의 근본이 된다. 듣는 것은 선지식을 의지해서 머물고, 듣는 것은 선지식을 따라 행한다. 그렇다면 분신왕아, 저 선지식은 무엇이 근본이 되며, 무엇을 의지하여 머물며, 무엇을 따라 행하는가? 분신왕아, 저 선지식은 공경과 존중으로 근본을 삼으며, 공경과 존중을 의지하여 머물며, 공경과 존중을 따라 행한다.
그렇다면 분신왕아, 이와 같은 공경과 존중은 무엇이 근본이 되며, 무엇을 의지하여 머물며, 무엇을 따라 행하는가? 분신왕아, 이와 같은 공경과 존중은 깊은 마음이 근본이 되며, 깊은 마음을 의지하여 머물며, 깊은 마음을 따라서 행한다. 그렇다면 분신왕아, 이와 같은 깊은 마음은 무엇이 근본이 되며, 무엇을 의지하여 머물며, 무엇을 따라 행하는가? 분신왕아, 이와 같은 깊은 마음은 아첨하지 않는 것이 근본이 되며, 아첨하지 않음을 의지하여 머물며, 아첨하지 않음을 따라서 행한다.
그렇다면 분신왕아, 이와 같이 아첨하지 않음은 무엇이 근본이 되며, 무엇을 의지하여 머물며, 무엇을 따라 행하는가? 분신왕아, 이와 같이 아첨하지 않는 것은 대비로 근본을 삼으며, 대비를 의지하여 머물며, 대비를 따라서 행한다.
그렇다면 분신왕아, 이와 같은 대비는 무엇이 근본이 되며, 무엇을 의지하여 머물며, 무엇을 따라 행하는가? 분신왕아, 일체 중생이 대비의 근본이니, 일체 중생을 의지하여 머물며, 일체 중생을 따라 행한다. 왜냐 하면 분신왕아, 보살이 일체 중생에게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해 대비와 일체 지혜의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분신왕아, 이것이 지혜의 분신[慧奮迅]이다.
보살이 이 한 법문을 일으키고 나서는 1겁, 혹은 나머지 겁에 다르게 법을 설해도 법에는 장애될 것이 없다. 보살이 중생에게 그의 몸을 보지 못하게 한 채 법을 설하고자 한다면 뜻대로 그렇게 할 수 있으며, 자신의 몸에 있는 모든 털구멍마다 다 법을 설하는 소리를 내고자 한다면 뜻대로 그렇게 할 수 있다. 만일 깊은 마음으로 수행한 저 중생에게 훌륭한 말솜씨로 법을 즐겨 설하게 하고자 하면, 보살은 저 중생의 형상으로 나타나서 법을 설하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싸움을 걸어도 파괴되지 않는다.
모든 외도가 다섯 가지 신통으로 아는 것, 즉 주독(呪讀)으로 아는 지식과 비타(鞞陀 : 베다)에 관한 지식과 갖가지 어학과 논리, 그리고 달·해·별을 아는 지식과 음양에 관한 지식, 꿈을 해몽하는 지식, 때에 맞춰 땅이 움직이는 것을 아는 지식과 타비라주(陀毘羅呪)의 갖가지 방법과 오어(烏語) 등과 주술의 힘으로 사슴 등을 무리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 그리고 용·야차·건달바 등에게 주술을 거는 방법, 혹은 사슴이나 그밖에 사람의 모양을 살찌게 보이게 하거나 마르게 보이게 하는 방법, 별이 이리저리 운행하는 모양 등을 보살은 다 안다. 뿐만 아니라 글씨 쓰는 법·도장 새기는 법·수를 세는 법·셈을 하는 법 등 세간의 갖가지 기능들을 다 알며 노랫소리·풍악 소리·방울 치는 소리 등에서 끊어지고 이어지는 곳을 다 안다.
저 바라문이나 외도를 닦는 사람은 이와 같은 일체 하열한 종성(種姓)을 설하지 못하나 저 보살은 이와 같은 일체를 나타낸다. 지혜 있는 보살은 이 일체 법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으며, 이런 모든 것을 다 잘 이해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주술과 독물을 알며, 주술과 독물을 쓰는 방법을 알며, 갖가지 학술을 안다. 보살은 이런 모든 것들을 다 알면서도 모든 중생들이 이런 것들을 바른 길이라고 믿지 않도록 그들을 뇌란하지는 않는다.
분신왕아, 보살은 이와 같이 지혜의 분신을 가지고 천, 만의 범천과 함께 앉아서 말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 쳐다보기도 한다. 갖가지 색깔로 보여 주기도 하며 갖가지 말로 보여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이 보살의 푸른색 등 모든 색깔과 위엄스럽고 덕스러운 광명이 저 모든 범천보다 우수하므로, 보살은 저 범천이 사는 하늘에 처하여도 마음에 바랄 것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범천이 보살의 처소에 와서는 속으로 존경심을 낸다. 이와 같이 모든 하늘 궁전에 자유롭게 모습을 나타내 보이지만 보살은 거기에 희망을 내지 않고 탐내거나 즐기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덧없다는 생각, 괴롭다는 생각, 내가 없다는 생각을 낸다. 보살은 이와 같이 일체 중생을 따라 주면서 해탈한다. 분신왕아, 이것이 지혜의 분신이다.
분신왕아, 또 저 보살이 지혜의 분신으로 마군의 세계에 변화술로 궁전을 지으면 저 마군의 궁전보다 백천 배나 우수하여 저 모든 마군들이 우수한 궁전을 희망하고 탐착하게 한다. 탐착하는 마음이 생기면 교만한 마음은 떠난다. 교만함을 떠나고 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한 후에 이어서 덧없다는 법을 설한다.
분신왕아, 저 지혜로운 보살이 어디서든지 이렇게 행하는 것은 이 지혜를 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시하는 것·받는 것·원을 발하는 것 등 모두가 이 지혜를 쓰기 때문임을 꼭 알아야 한다. 자신이 계를 지니고 다른 사람에게도 계를 지니게 하는 경우, 이 계를 지님으로써 깨달음을 얻고자 원하는 것이니, 이 지혜를 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인욕을 닦고 다른 사람에게도 인욕을 닦게 하는 경우, 이 인욕을 닦음으로써 깨달음을 얻고자 원하는 것이니, 이 지혜를 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정진하고 다른 사람도 정진하게 하는 경우, 이 정진으로써 깨달음을 얻고자 원하는 것이니, 이 지혜를 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선삼마발제(禪三摩跋提)에 들어가고 다른 사람도 선삼마발제에 들어가게 하는 경우, 이 선삼마발제에 들어가는 것으로써 깨달음을 얻고자 원하는 것이니, 이 지혜를 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법을 섭취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들은 대로 관찰한 대로 설하는 경우 이 지혜를 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껏 해온 모든 행동, 위엄스러운 모든 거동, 놓아 버린 모든 것도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지혜 있는 보살은 지혜의 힘 때문에 모든 착한 힘을 갖출 수 있으며, 지혜 있는 보살은 지혜가 자재하기 때문에 모든 재산을 얻을 수 있으며, 지혜 있는 보살은 지혜의 분신 때문에 일체 법에 있어서 수승한 분신을 얻을 수 있다. 지혜 있는 보살은 지혜의 힘을 잡기 때문에 부처님의 상호와 비슷한 장엄으로 장엄할 수 있으며, 지혜 있는 보살은 일체 법에 순순히 따라 행하면서 일부러 힘을 들이는 일이 없다. 분신왕아, 예컨대 세상 사람이 위를 향해 화살을 쏘면 그 힘이 뻗어 나가다가 자연히 아래를 향하고 결국 땅에 이르면 힘의 작용이 없는 것과 같다. 분신왕아, 지혜 있는 보살도 이와 같이 지혜의 힘으로 원(願)의 화살을 쏘지만 그러나 힘을 들이지 않고 자연히 이와 같이 모든 착한 법의 땅에 떨어져 있게 된다. 즉 도량의 땅에 지혜의 힘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또 어떤 힘이 있겠는가? 지혜의 힘 때문에 오른손으로 항하사 등 모든 부처님세계를 움직일 수 있으며, 지혜의 힘 때문에 마군의 권속을 이길 수 있으며, 마군의 장엄을 이길 수 있으며……(중략)……보리에 포함되는 여래의 열 가지 힘을 얻을 수 있다.
어떤 것을 힘이라 하는가? 다른 사람이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른바 하늘·인간·아수라 등 일체 세간이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분신왕아, 이것이 계에 통한 지혜의 분신[戒通智慧奮迅]이다. 분신왕아, 이와 같은 계에 통한 지혜의 분신의 분신은 선근을 심지 않은 중생이면 들을 수조차 없다. 분신왕아, 이 법을 듣고 나서 기쁜 마음을 내는 자는 이 분신에 있어서 바로 분신할 수 있다. 왜 그러한가? 모든 성문과 연각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분신왕보살의 질문에 대해 세존께서 설법을 다 하시고 나자 분신왕이 듣고 기쁜 마음을 내어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우러러보며 눈을 잠시도 떼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다.
“일체 중생이 이와 같은 등의 네 종류 분신으로 분신을 한다면 마치 여래·응(應)·정변지(正遍知)께서 분신한 바와 같겠나이다.”
이 때 세존께서 분신왕의 면전에 갖가지 색깔과 미묘한 색깔의 꽃과 갖가지 묘한 향기를 내는 잎 모양이 성대한 꽃을 나타내셨다. 그러자 보살이 바로 저 꽃을 가져다 여래와 여러 대중 가운데 일체 보살에게 뿌렸다. 다 뿌리고 나니 저 대중 가운데 꽃이 닿은 자들은 모두 금빛 모양으로 장엄이 되어 모든대중들이 다 보게 되었다. 허공 가운데 백천 모든 하늘 신들이 이런 것을 보고 나서 다 같은 소리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와 같은 분신을 믿고 이해하며, 믿고 이해하고 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는 마음을 낼 수 있는 자라면, 그런 사람은 부처님의 장엄으로써 자신을 장엄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런 모든 분신은 다 일체 지혜의 마음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시 세존이시여, 아직 보리심을 내지 않은 자가 있다면, 그들은 어디서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분신법문을 들을 수 있습니까?”
이 때 세존께서 저 허공 가운데 모든 천자의 말을 찬탄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훌륭함을 찬탄하시고 나서 분신왕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분신왕아, 내가 과거를 생각해 보니 연등여래의 차례 이전에 다시 일곱 번째 여래께서 계셨다. 이름은 보무구정광명왕(普無垢淨光明王)이라 하였는데, 저 부처님 여래께서 이와 같은 분신법문을 자세히 설하셨다. 그 때 구경계(具境界)라는 보살이 있었는데, 이 법문으로 저 여래께 질문을 하였다. 여래께서 이 법문을 설해 마치시니 8천 중생이 분신을 얻었고, 다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으며, 법회에 있던 3만 2천 중생이 모두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는 마음을 냈었다.
내가 이 때 이 분신을 얻었으며, 그 뒤에 이어서 다시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깨달음을 원만히 성취하였다. 그렇다, 분신왕아. 내가 열반하고 나서 만일 이 법문을 듣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보리심을 취했기 때문에 반드시 속히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을 것이다.”
이 분신법문을 설할 때 법회에 있던 중생 3만 2천 모든 하늘 신과 사람들이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는 마음을 냈다. 저 모든 천자들이 갖가지 꽃비를 내리고 백천의 하늘 나라 음악으로 여래께 공양하였는데 부처님의 신통한 힘 때문에 저 음악소리 가운데서 미묘한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믿고 이해하는 수승한 마음으로 모든 근(根)이 맹렬하고 날카로워 부처님 법을 믿고 이해하며 지혜의 행을 성취한 중생이 있다면, 그는 선지식이 숙세에 심은 선근을 섭취하여 대비로 일체 중생을 불쌍히 여겨 이와 같은 법문을 듣게 된 것이니, 듣고 나서는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녀 독송해야 할 것이다.”
이 때 분신왕보살이 부처님께 고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열 가지 힘[十力], 네 가지 두려울 바 없음[四無所畏],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四無礙智],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열여덟 가지 부처님법[十八不共佛法]은 세존께서 소유하신 바입니다. 이와 같은 열 가지 힘은 보살에게도 있습니까, 이 네 가지 두려울 바 없음은 보살에게도 있습니까, 이와 같은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열여덟 가지 부처님 법은 보살에게도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 있다. 분신왕아, 모든 보살은 여덟 번째 지위 가운데서 업을 지어 성취해야만 아홉 번째 지위를 얻는데, 말솜씨를 갖추고, 물러나지 않는 법인(法忍)을 얻으며, 훌륭한 방편과 지혜의 바라밀을 섭취하는 것을 말한다. 분신왕아, 보살이 이와 같이 열 가지 힘, 네 가지 두려울 바 없음을 구족하고,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열여덟 가지 법을 성취해야만 아홉 번째 지위를 얻는다.
분신왕아, 어떤 것이 보살이 갖는 열 가지 보살의 힘인가? 첫째는 일체 지혜의 마음을 일으켜 견고하고 깊은 마음으로 큰사랑을 완성하여 모든 중생을 버리지 않는 힘이다. 둘째는 일체 재물·이익·공양·명예를 구하지 않고, 일체 세간의 희유한 일을 탐하거나 즐기지 않는 힘이다. 셋째는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완성하여 일체 불법을 청정하게 믿고 이해하여 법을 끝까지 궁구하는 힘이다. 넷째는 부지런한 마음으로 게으름을 내지 않고 더더욱 정진하여 기억과 생각을 떠나지 않고 위엄스러운 거동으로 행동하는 힘이다. 다섯째는 삼매에 안주하여 요동하지 않고 양쪽에 치우침을 멀리 떠나 인연법에 순종하고, 모든 견해와 행동을 다 고요[寂靜]히 하는 힘이다.
여섯째는 보살이 분별하든 분별하지 않든, 모든 희론과 그물 같은 의심을 모조리 멸하여 반야바라밀을 완성하는 힘이다. 일곱째는 일체 중생을 성숙시키되 한량없는 생사에서 그들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했다면 세간의 일체 선근을 섭취하며, 세간의 생사를 꿈과 같다고 믿고 이해하여 생사에 처해서도 피로하거나 권태를 느끼지 않는 힘이다. 여덟째는 법의 본성이란 없으며, 중생의 본성에는 명(命)도 없고 부가라(富伽羅)도 없음을 관찰하고, 모든 법은 생겨나지 않고 벗어나지 않음을 믿고 이해하여 윤회하는 법에서 생겨나지 않음을 믿고 이해하며, 일체 윤회법은 생겨나지 않음을 아는 힘이다. 아홉째는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에 들어가 해탈의 문을 관찰하여 성문승이나 연각승에 있어서 해탈의 지혜와 견해로 해탈의 문에 들어가는 힘이다. 열째는 보살이 매우 깊은 법에 처하여 깊은 법을 스스로 알고 일체 중생의 마음 행하는 것을 걸림 없이 관찰하여 그런 능력을 완성하는 힘이다. 분신왕아, 이것이 보살이 갖는 열 가지 보살의 힘이다.
분신왕아, 무엇을 보살의 네 가지 두려울 바 없음이라 하는가? 첫째는 보살이 일체를 듣고 지니며, 다라니를 얻어 잊지 않고 기억하여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고 법을 설하는 것이다. 둘째는 보살이 모든 법을 믿고 이해하여 아는 힘을 얻으면 생겨나지 않고 벗어나지 않는 법을 믿고 이해하여 무생인을 얻게 되며, 무생법인을 얻은 뒤에는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의 법에 들어가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고 법을 설하는 것이다. 셋째는 보살이 성문승에서 관찰한 해탈문과 벽지불승에서 믿고 이해한 지견에 있어서 들어가는 길을 믿고, 또한 해탈을 믿게 함이 마치 모든 중생의 병에 필요한 대로 약을 구하는 것과 같이 한다. 이와 같이 일체 중생의 모든 근기가 성숙한 정도를 알며, 이렇게 알고 그에 맞게 법을 설한다. 보살이 이와 같이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고 법을 설하는 것을 말한다. 넷째는 보살이 대중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떠나는 것이다. 이 때 보살은 무심이 되어 동·서·남·북에서 어떤 사람이 와서 따지고 질문한 것에 대해 대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두려운 생각을 내지 않는다. 보살은 이와 같이 질문하고 따져 들어오는 중생이 있더라도 다 대답할 수 있다. 그가 질문하고 따지는 대로, 그에 맞춰 두려울 바 없이 대답하여 중생의 모든 의심을 끊어주며,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고 법을 설하는 것이다. 분신왕아, 이것이 보살의 네 가지 두려울 바 없음이다.
분신왕아, 어떤 것이 보살의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열여덟 가지 법인가? 분신왕아, 보살은 다른 사람의 가르침이 없어도 재물을 희사하여 보시한다. 또한 처음 태어나서부터 재물을 희사하여 보시할 마음을 일으킨다. 또한마왕이 부처님의 몸을 하고 와서 ‘보시를 하면 그 사람은 지옥에 빠질 것이다’고 말해도 저 보살은 아끼거나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또한 보살은 자신의 물건을 다 사용하여 보시하므로 보시하려는 마음이 더욱 강해지니, 이와 같이 보시한다. 이것이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데, 보살은 과보를 바라지 않고 다 일체 중생에게 되돌려 주기를 원한다. 분신왕아, 이것이 첫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은 다른 사람의 가르침이 없어도, 여래께서 아직 출현하시지 않아 계를 받을 곳이 없어도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 계(戒)〕를 바르게 실천하고 배우기를 희망하여 버리지 않는다. 이 두 번째 공유하지 않는 법을, 보살은 집에 있을 때도 설한대로 계를 지킨다. 비록 출가하지 않고 가르치는 자가 없다 해도 바라제목차에 설한대로 배우며, 생명을 잃는 인연을 만나도 계를 배우기를 버리지 않는다. 모든 계를 배워서 보리를 순순히 따라 일체 중생이 계를 파괴하는 것을 끊기를 원한다. 분신왕아, 이것이 두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은 일체 중생들이 욕하고 꾸짖고 훼손하고 욕을 보이며 그의 몸을 잘라낸다 해도 화를 내지 않는다. 빈궁한 사람·전다라(旃茶羅)·핍가바(逼迦婆)·공작사(工作師 : 기술자)가 갖가지로 꾸짖고 욕을 한다 할지라도 보살은 화를 내지 않고 저 중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널리 덮어 주며 큰 힘이 있어 그들에게 나쁜 짓을 할 수 있다 해도 악을 짓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보살은 법을 따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중생이 곧 보살의 불법 인연이 된다. 이와 같이 보살은 저 중생들의 마음을 고요히 안정시키기 위하여 그들에게 이익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인욕이라는 갑옷을 입고 용맹한 힘을 일으킨다. 분신왕아, 이것이 세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은 설사 많이 쇠약하고 흔들린다 할지라도 부지런히 정진하여 두타행(頭陀行)을 버리지 않고 하열한 마음을 내지 않는다. 성문승이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태어나고 죽는 괴로움을 보면 마음으로 성문의 열반을 구하지 않는다. 연각승이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태어나고 죽는 괴로움을 보면 연각의 열반을 구하지 않는다.
보살은 세존께서 일체의 뜻으로 모든 불법을 성취하고 하실 일을 다 끝내시고 열반에 드시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는 아직 힘이 없고 모든 중생이 불법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지만 열등한 마음을 갖지 않고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켜 ‘나도 부처님처럼 열반에 들겠다’고 한다. 분신왕아, 이것이 네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은 전륜왕이나 제석왕이나 마왕이나 자재천의 여자들이 에워싸고 하늘 노래 등 묘한 음악을 다 구족하였다 해도 그 가운데서 선정에 들어가 한량없이 닦고 익히며, 마음에 욕심 여의는 법을 즐겨 다른 말에 끄달려 가지 않는다. 나고 죽는 일에 대해 매우 두려워하며, 음욕의 법에 대해서는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을 내며, 모든 음〔陰 : 5음(陰)〕에 대해서는 원수라는 생각을 내며, 모든 계〔界 :18계 (界)〕에 대해서는 독사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입(入 :12입 (入)에 대해서는 빈 것이 모였다는 생각을 내며, 자기의 권속에 대해서는 죽는다는 생각을 내며, 여자에 대해서는 무덤이라는 생각을 낸다.
마음으로 항상 바른 법 섭취하기를 즐겨 구하며, 부처님을 뵙고 가까이하며 공양하기를 희망한다. 또한 항상 일체 중생을 해치지 않고 기예를 펼치고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가운데서 선(禪)의 소리를 내게 한다. 마군이 듣고 나서 막으면 소리가 멸하는데, 저 보살이 과거에 닦은 선근의 힘으로 즉시 허공에 부처님 소리·법의 소리·스님의 소리를 낸다. 뿐만 아니라 저 보살은 국토에서 누릴 수 있는 부와 쾌락과 권력을 버리고 산림으로 들어간다. 분신왕아, 이것이 다섯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은 일체 세간의 모든 선정에 대해 견고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지혜의 행이 있으면 사견(使見)을 멀리 떠나 뜻을 취하고 법을 취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꿈속에서도 자기라는 견해를 내지 않으며, 남이라는 견해를 내지 않으며, 법이라는 견해를 내지 않는다. 이것이 공유하지 않는 법이다. 자기라는 견해가 있다면 사견(使見)이 있겠지만, 자기라는 견해가 없다면 의심의 그물을 여읜다. 마왕 파순(波旬)도 그를 의심의 그물에 빠뜨릴 수 없다. 만일 의심스러운 견해가 있다면 법을 떠나는 것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성숙시키고 중생에게 이익을 주며, 자신의 번뇌를 돌보지 않고 의심이 없다. 분신왕아, 이것이 여섯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은 생겨나게 하는 모든 것을 여의고 힘을 들여 하는 작용이 없다. 몸의 업이 청정하여 산목숨 죽이는 일을 멀리 떠났으며, 일체 중생에게 두려움을 없애는 보시를 베풀며, 손이나 흙덩이나 몽둥이나 칼을 중생에게 가하지 않으며, 칼이나 지팡이를 멀리 여의고 손에 잡지 않는다. 자신의 재산에 만족할 줄 알고 남의 소유는 한 움큼의 풀이라도 주지 않으면 취하지 않는다. 설사 보배가 땅에 가득하다 하더라도 탐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차라리 몸과 목숨을 잃을지언정 자기가 살아가기 위해 결코 재물, 이익, 의복, 음식을 취하지 않는다. 항상 범행(梵行)을 닦으며……(중략)……먹고 싶어하는 마음도 내지 않는다. 보살은 이와 같이 욕심을 떠나 갖가지 번뇌와 싸우며 음욕의 인연이나 악법을 행하지 않는다. 저 보살은 불공법을 닦는 처소에서 먼저 사량을 하고 나서 몸의 업을 성취한다. 분신왕아, 이것이 일곱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은 입의 업을 청정하게 하여 실다운 말, 참된 말을 하며, 말한 대로 행동한다. 여래나 천신·용·야차를 속이지 않으며, 건달바·아수라·사람·사람 아닌 존재의 처소에서 입으로 악한 말을 하지 않는다. 권속을 파괴하지 않고 자기 권속을 사랑하며,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고 사랑하는 말과 부드러운 말을 한다. 거칠고 사나운 말을 하지 않고, 서로 마음에 맞는 말을 하며, 이익 되는 말을 하며, 항상 먼저 말하고 웃는 낯으로 말을 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악한 말·악한 입으로 하는 말·다른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말·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는 말은 일체 하지 않는다. 마음에 어기는 말을 하지 않고, 없으면 없다 말하고 있으면 있다 말한다. 이와 같이 깨끗하게 말한다.
깊은 마음과 깨끗한 믿음으로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법을 얻어 어디서 태어나든지 항상 법답게 법에 맞는 말을 한다. 이와 같은 말로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청정함을 얻게 하며, 마음이 청정한 자에게는 공양을 한다. 그렇게 하면 그가 깊은 마음과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법 때문에 항상 실다운 말을 얻으며, 말하는 모든 것이 말과 같이 되며, 그가 말한 대로 일체가 그렇게 된다. 분신왕아, 이것이 여덟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은 자신의 마음이 자재하여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바른 견해를 가져 삿되지 않다. 이와 같이 보살은 보리심과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마음을 잊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는다. 아첨하는 마음·굽은 마음·탁한 마음·어지러운 마음을 모두 멀리 여의고, 밤낮으로 항상 청정한 자비의 마음을 실천한다. 분신왕아, 이것이 아홉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은 태어나는 즉시 세간의 지혜를 완전히 갖춘다. 주술을 거는 법·외우는 법·의술·약 짓는 법·글 쓰는 법·도장 새기는 법·숫자 세는 법·셈하는 법 등 일체를 다 알며, 모든 분야의 기술자들이 쓰는 방법을 다 환히 안다. 모든 기능이나 모든 논법을 잘 알며, 세간 법이나 출세간 법을 다른 사람의 지식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지혜로 성취하며, 다른 사람의 얼굴을 관찰하지 않고도 일체 하늘과 인간을 관찰한다. 보살에게 이와 같은 마음이 있으므로 보살이 설하는 것을 내가 듣고 배울 수 있다. 분신왕아, 이것이 열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은 갖가지로 중생에게 이익을 준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병환을 치료해 주면서도 재물·이익·공양·명예·칭찬을 구하지 않는다. 대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세간의 병을 치료한 후에 출세간의 법에 안주하게 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이런 악한 세계에서 고뇌에 시달리는 중생들을 언제, 어떤 방편, 어떤 법을 가지고 해탈을 얻게 할 것인가를 마음속에 항상 기억하고 생각한다. 해탈을 얻게 하고 나서는 결국에는 모든 번뇌를 단멸하니, 이른바 일체 고뇌를 끊어 제거하고 열반의 궁극적인 즐거움에 안주하게 한다는 것이다. 분신왕아, 이것이 열한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은 마음속으로 제석천왕을 원하지 않더라도 범천왕이나 전륜왕이 통솔하는 국토가 얻어진다. 저 보살이 이와 같이 제석천왕·범세계처·전륜성왕이 통솔하는 국토를 구하지 않고 희망하지 않는다 해도 자연히 얻어진다. 또한 저 보살은 색 때문에 범행을 구하지 않는다. 몸의 외형을 구하지 않으며, 국토를 구하지 않으며, 권속을 구하지 않으며, 재물의 부를 구하지 않으며, 명예와 소문을 구하지 않으며, 색상(色相)을 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범행을 하면 비록 희망하지 않는다 해도 구족하게 얻어진다. 분신왕아, 이것이 열두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이 부와 쾌락을 누리는 좋은 국토에 안주하여 부처님을 생각할 줄 모르면, 부처를 본 적이 있는 모든 천신이 그에게 가르쳐서 기억하게 한다. 먼저 꾸짖고 나서는 이와 같이 가르쳐 준다.
‘이 법은 꼭 해야 하며, 이 법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업을 짓는다면 깨달음을 얻게 되리니, 이와 같이 발원해야 한다. 그대가 이와 같이 짓고, 이와 같이 실천하여 모든 근(根)을 조복하고 나면 미래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될 것이다.’
저 천신이 이와 같이 가르쳐 기억하게 하면 보리도를 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분신왕아, 이것이 열세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악한 마음이 많고 화를 잘 내며 마음이 더러워진 중생이 있는데, 어떤 악인이라 할지라도 보살의 처소에서는 악을 가하지 못하며, 보살도 그런 이들에게 악으로 갚아 주지 않는다. 매우 악한 사람이나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몸과 입과 마음의 악함으로 보살을 본다면 마음이 바로 청정해진다. 왜냐 하면 보살이 그에게 악을 되돌려 주지 않고, 저 악한 사람을 바른 법 가운데 안주하게 하여 마음을 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가 비록 악을 짓는다 해도 보살의 힘 때문에 악한 길에 들어가지 않는다. 왜 그런가? 저 보살이 본래 이와 같은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법으로 청정한 계를 완성하여 다음과 같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만일 중생이 몸의 업·입의 업·뜻의 업으로 나에게 악함을 일으킨다 해도 저 중생이 악한 길에 들어가게 하지 마소서.’
이런 계가 있었기 때문에 원을 따라서 성취한 것이다. 분신왕아, 이것이 열네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어떤 중생은 신심이 없고 인색하고 탐욕이 많으며, 삿된 견해를 갖고 게으름을 피운다. 그들은 업보를 믿지 않고 불법승을 떠나서 사문이나 바라문에게도 청정한 마음을 내지 않고 보아도 예배하거나 공양하지 않으며,존경심을 내지 않으며, 희유하다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이런 중생이 만일 보살을 본다면 즉시 몸가짐을 가다듬고, 보살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청정해져서 일어나 맞이하고 예배·공양하며 존경심과 희유하다는 마음을 낸다. 그것은 저 보살이 가진 힘 때문이다. 분신왕아, 이것이 열다섯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하늘 신·용·야차·건달바·선인·바라문들도 보살의 처소에서는 보살을 스승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세간에서 으뜸가는 스승이 된 자들도 다 보살을 스승으로 삼는다. 보살에게는 신통한 힘이 있기 때문에 세간·하늘 신·용·야차·건달바·모든 선인·바라문으로 하여금 다 와서 귀의하고 공경하게 한다. 그들이 오고 나서는 보살의 말에 귀의하고, 보살에게 예배하고 공양하고 공경하는데, 이 무리들이 다 가장 먼저 귀의하는 자들이 된다. 보살을 보고 나서는 바로 예배하고 공경하고 존중한 뒤에 존귀하고 수승하다는 생각을 내며, 깊이 공경하고 믿음을 낸다. 분신왕아, 이것이 열여섯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은 어느 처소에 태어나든, 어느 종족의 성으로 태어나든, 가령 촌이나 성이나 혹은 사람이 모인 처소의 중생들은 착한 법이 늘어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끊어진다. 보살은 중생을 성숙시키고 바른 법을 취하여 바른 견해를 갖는 집에 태어나며, 그의 부모는 바로 믿고 바르게 실천하고 바르게 깨달아 들어간다. 어디서 태어나든,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나든, 보살이 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스승이 되며, 저곳 중생들이 공양하고 공경하여 악한 길에 들어가는 중생이 하나도 없다. 저와 같이 보살의 선근에 섭취되어 저곳 중생들이 죽으면 사람 가운데 태어나듯 하늘에 태어난다. 분신왕아, 이것이 열일곱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보살은 도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법에 순순히 따르기 때문에 우수한 신통을 완성한다. 그러므로 어떤 마군도 그에게서 틈을 엿보지 못한다. 분신왕아, 이것이 열여덟 번째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보살의 법이다.
분신왕아, 다른 자와 공유하지 않는 법은 무엇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모든 부처님 법을 따라 바르게 실천한다는 점에서 공유하지 않는다고 한 다. 이 때 분신왕보살이 부처님께 고하였다.
“세존이시여,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모든 보살에게 큰 법의 광명을 주시며 한량없는 수승한 광명을 지으십니다.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과 그 뜻을 이해하기로는, 만일 보살이 이 법문을 듣고 한번 귀에 스치기만 해도 청정한 마음을 얻을 것입니다만 나머지 수다라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듣고 나서 마음에 새기고, 읽고 외운다면 저 사람은 모든 불법을 거두어들이게 될 것입니다. 이 법문에서 바르게 관찰해 내는 이가 있다면 이미 모든 불법을 닦은 자일 것입니다. 또 이 법문에서 법에 관한 확실한 앎을 얻었거나 법을 따르는 확신을 얻었다면, 이 법문을 이렇게 행할 수 있는 자라면 모든 불법을 이미 닦은 자입니다. 그렇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이 법문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는 통함을 얻을 것입니다. 이런 보살은 이미 통함을 얻고 나서 도량에 안주하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분신왕아, 네가 말한 대로 어떤 사람이 이 법문을 떠나지 않는다면 저 사람은 통함을 얻을 것이다. 이런 보살은 통함을 얻고 나서 도량에 안주하게 된다.
분신왕아, 과거 지나간 세상 연등여래보다 더 오래 전에 파다파나(波多婆那)라는 부처님께서 계셨다. 그리고 그 전에 제사(提沙)라는 여래께서 계셨고, 그 전에 다시 비사(弗沙)라는 여래께서 계셨고, 그 전에 파제대(波除大)라는 여래께서 계셨다. 이렇게 하여 천왕(天王)여래라는 부처님 세존께서 세상에 출현하게 되었다.
그 때 저 천왕여래 부처님의 세계는 모든 것이 충족되어 안온하고 풍부하고 즐거웠다. 하늘 신과 인간들이 매우 번성하였고, 땅은 손바닥같이 평탄하였으며, 비유리(毘琉璃)·염부단금(閻浮檀金)·발두마화(伐摩華)가 갖가지로 사이에 뒤섞였다. 그 땅은 부드럽고 연하여 감촉이 마치 가자린제(迦遮隣提 : 새 이름)와 같았으며, 인민은 도솔타천(兜率陀天)에서와 같이 안락하였으며, 구하는 음식은 생각만 하면 즉시 이르렀다. 몸과 형상과 즐기는 처소와 모든 궁전은 하늘 나라와 다르지 않았으나 오직 하늘과 사람이라는 두 이름만 같지 않았다. 저 삼천세계(三千世界)에 다른 왕은 없고 여래만 계셨기 때문에 천왕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마치 전륜성왕이 풍요로운 좌석에 앉아 법으로 세상을 다스리되 그른 법으로 다스리지 않듯이, 천왕여래께서도 이와 같이 사자좌라는 법석에 앉아 모든 하늘 신과 인간을 위하여 그들에 맞게 법을 설하셨다.
법을 설하고자 하실 때 동서남북 가로세로로 8만 4천 유순(由旬)이나 되는 곳에 대중이 꽉 들어찼었다. 이 때 여래께서 법을 설하시는 음성이 삼천세계에 가득 차자 저 모든 하늘 신과 인간이 공양하고 공경하며 여래께 예배하고 여래를 존중하였으니, 이른바 위없는 부처님 법에 공양한다는 것이었다. 저들 중에는 믿음과 이해가 하열한 중생이 없었고, 오직 부처님 법만 믿었다. 이와 같이 저곳에는 성문과 연각이라는 이름도 없는데, 어찌 성문과 연각으로 가는 가르침[乘]이 있겠으며, 더구나 성문과 연각이 닦는 행이 있겠는가? 오직 청정한 대보살 무리가 세존을 에워쌌을 뿐이다. 저곳은 청정하여 여인이 없으므로 애초부터 욕행(欲行)이라는 이름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 저 모든 중생들은 다 가부좌를 맺은 채 연꽃 속에 변화로 태어나는데, 이와 같이 변화로 태어난 저 모든 사람과 하늘 신은 세 가지 즐거움을 받는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여래를 보는 즐거움·법을 듣는 즐거움·바른 법을 관찰하고 욕심을 떠나는 즐거움이다.
저 모든 하늘 신과 사람들은 마음이 나태하지 않고, 풍부한 재물을 구족하며, 번갈아 가며 서로 법을 설하여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며, 수명은 한량없고 셀 수 없이 길다. 업이 다하여 물러날 때에는 다른 길에 태어나지 않고 부처님의 세계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보살이 물러나고자 할 순간에는 위로 다라(多羅)나무 일곱 그루만큼 높이 올라가 큰 소리로 ‘내가 지금 이 부처님의 세계에서 물러난다’고 외친다. 한량없는 보살이 저 소리를 듣고 나서 다 함께 와서 모여 저 보살이 법인(法忍) 보이는 것을 관찰하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법에서 물러나며, 어떤 법에 태어나는가?’
저 물러나는 보살이 모여든 보살 대중 가운데서 이렇게 말한다.
‘큰 선인이여, 알아야 한다. 물러나거나 태어나는 법이란 조금도 없다. 여래께서 깨달으신 모든 법은 다 물러남이 없으며 태어남도 없다. 색(色)에 물러남과 태어남이 있는 것이 아니며, 수(受)·상(想)·행(行)·식(識)에 물러남과 태어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제일의(第一義) 가운데는 나[我]·명(命)·중생·부가라(富伽羅 : 보특가라)·사람인 듯 아닌 듯한 존재가 물러나거나 태어나는 일이 없다. 세존의 바른 깨달음에는 일체 법이 공하고, 모양이 없고, 원함도 없다. 공하고 모양 없고 원함 없는 저 법 가운데는 물러남도 없고 태어남도 없다.
여래 세존께서는 욕심을 여의는 곳을 증득하셨으며, 함이 없는 곳을 증득하셨으며, 태어나지 않는 곳을 증득하셨다. 태어나지 않는 곳에는 물러남과 태어남이 있지 않다. 물러나는 인연이 없기 때문에 물러나지 않으며, 태어나는 인연이 없기 때문에 서로 화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태어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인연에는 화합하는 일이 없으므로 물러남이 없고, 태어남이 없다.’
보살이 보살 대중을 위하여 이 법을 설하고 난 후에 곧 물러났다. 저 물러난 보살은 이와 같이 물러나고 나서는 몸도 없고 가죽도 없고 몸뚱이도 없었으므로 그를 보거나 알 수 없었다. 물러나고 나서는 다른 부처님세계에 가서 면전에서 여래를 뵈온다. 천왕여래와 모든 권속은 가사를 입지 않고 모두 깨끗하고 묘하고 좋은 하늘 옷을 입는다. 저들은 계율을 배우지 않아도 모두 조복되고 순일하며 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으므로 보살 대중을 위하여 자세히 법을 설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저 대중들은 모두 근기가 날카로워서 조금만 들어도 많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만일 저 여래께서 모든 보살 대중을 위하여 법을 설하시는 경우, 법을 다 설하고 나면 곳곳마다, 그리고 저 부처님세계에 있는 사람이나 하늘 신들까지 모두 다 안다. 그 중에는 법인(法忍)을 얻은 중생도 있고, 혹은 다라니를 얻은 중생도 있으며, 혹은 변재를 얻거나 삼매를 얻은 중생도 있다. 그 때 저 여래의 명성이 시방세계에 퍼진다.
분신왕아, 천왕여래께서 모든 하늘 신과 사람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법문을 자세히 연설하고 분별하시니, 수기(授記)를 얻은 보살이 7만 2천이나 되었다. 그 중에 무구청정광명(無垢淸淨光明)이라는 보살이 있었는데, 수기를 얻지 못하자 이렇게 생각하였다.
‘위엄스러운 모습·걸림 없는 마음·기억력·의지·실천·지혜·신통·다라니와 삼매를 얻은 면에서 저 보살들이 나보다 우수하지 못한데도 다 수기를 얻었다. 저들도 수기를 얻었는데 나는 무슨 인연으로 수기를 얻지 못했을까?’
천왕여래께서 저 보살의 속마음을 알고 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미래세에 수기를 얻게 될 것이다. 선남자야, 미래세에 연등 여래·응·정변지께서 너를 위하여 수기하실 것이다.’
무구청정광명보살이 이 말을 듣고 나서는 기뻐하며 허공에 올라가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겁을 지낸 미래 세상에 연등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면 내가 그 때 가서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얻을 것이다. 여래께서는 참되게 말씀하시며, 여래께서는 실제를 말씀하시며,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분신왕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때의 무구청정광명대보살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다르게 보지 말아라. 왜냐 하면 내가 그 때의 무구청정광명대보살이기 때문이다.
분신왕아, 그 다음은 파제대(波除大)라는 여래셨는데, 내가 그 때 저 부처님께 공양하였더니, 저 부처님께서 나를 위하여 이 법문을 설해 주셨다. 내가 듣고 나서 마음에 새기고 읽고 외우자 이 때 광인삼매(光印三昧)를 얻었다. 그 다음은 비사(弗沙)라는 여래셨는데, 내가 그 때 저 부처님께 공양하여 이 법문을 듣고 나서 마음에 새기고 독송하여 이 때 광명삼매를 얻었다. 다음으로 제사여래께 공양하고 이 법문을 듣고 수지독송하여 다시 비로자나삼매를 얻었다. 다음으로 파다반나(波多般那)여래 세존께 공양하여 이 법문을 듣고 수지독송하여 유순인(柔順忍)을 얻었다. 그 다음으로 연등여래께 공양하여 이 때 내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내가 이 때 네 가지 분신을 얻었으니, 계분신(戒奮迅)통분신(通奮迅), 지분신(智奮迅), 혜분신(慧奮迅)을 말한다.
분신왕아, 이 법문을 이렇게 잘 알아야 한다. 선남자든 선여인이든 어떤 사람이든 현재 나의 처소에서 보살행을 실천하여 이 법문을 듣고 수지독송한 다면 일체에 통함을 빨리 얻을 것이다. 이 분신을 얻은 보살은 분신을 얻고 나서는 큰 법륜을 굴려 이 위없는 광명법 가운데서 지혜의 광명을 얻을 것이다.”
여래께서 이 법문을 설하실 때 법회에 있던 1만 6천 보살 모두가 법인(法忍)을 얻었으며, 1만 2천 중생이 보리심을 내었으며, 삼천대천세계가 진동하였다. 백천의 모든 하늘 신들이 모두 이렇게 찬탄하였다.
이 법문이 있는 곳에
부처님께서 계시다네.
선근을 깊이 심은 중생만
이런 법문 들을 수 있으리.
이 때 혜명(慧命) 아난타가 부처님께 고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에 무슨 이름을 붙여야 되며, 이런 법문을 어떻게 받아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법문을 사분신신통법문(四奮迅神通法門)이라 이름하리니 그렇게 받아 지니도록 하라.”
세존께서 말씀을 끝내시니, 분신왕보살과 혜명 아난타와 천신들·사람·건달바·아수라 등이 모두 여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찬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