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4~1729) 조선 스님. 호는 환성(喚醒), 속성은 정(鄭)씨. 춘주 사람. 15세에 미지산 용문사에서 출가, 상봉정원(霜峰淨源)에게 구족계를 받고, 17세에 월담 설제(月潭雪霽)의 법을 잇다. 경전을 힘써 연구. 27세에 모운(慕雲)이 직지사에서 법회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자, 모운은 수백 명의 학인을 스님께 맡기고 다른 곳으로 갔다. 스님이 대중을 거느리고 종풍을 떨치니 많은 학인들이 모여들다. 스님의 강연하는 뜻이 깊고 묘하여 일찍이 듣지 못하던 것이므로 의심을 품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으나, 그 뒤에 경 · 논을 많이 실은 빈 배가 우리나라에 와서 그 경전이 낙안 징광사에 옮겨졌는데, 육조(六祖) 이후의 여러 가지 주해가 있어 그것이 스님의 말한 것과 다르지 않으므로 모두 탄복하다. 스님이 명산을 다니다가 지리산에 머물렀는데 어느날 어떤 도인이 와서 “스님은 빨리 다른 데로 가라, 얼마 뒤에 재난이 있으리라” 하니, 수일 후에 그 절이 불에 탔다. 또 금강산 정양사에 있다가 큰 비가 한창 쏟아지는데 행장을 꾸려가지고 떠나가다가 어떤 부잣집에서 자고 가라는 것도 듣지 않고, 어느 오막살이 집에서 잤는데, 그날 밤 정양사와 그 부잣집이 물에 잠겼다고 함. 1725년 금산사에서 화엄 대법회를 베푸니, 모인 학인이 1천 4백인에 달함. 1729년 어떤 사람이 이번 법회에서 음모를 꾸몄다고 모함하여 지리산에 체포, 호남의 옥에 갇혀 있다가, 마침내 제주도로 귀양을 가서 7일만에 세상을 떠남. 나이 66세, 법랍 50세. 저서로는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 · 『환성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