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91) 조선 스님. 호는 설파(雪坡). 속성은 이(李). 무장(茂長) 사람. 어려서 어버이를 잃고, 1725년(영조1년) 19세에 고창 선운사 희섬(希暹)에게 승려가 됨. 호암(虎巖)의 법을 잇고, 33세에 용추사 판전(板殿)에서 개강함. 5교(敎) 3승(乘)에 다 능통했지만, 그 중에서 화엄학을 더욱 잘하여 청량(淸凉)의 『화엄초』에 소과(疏科)가 드러나지 않은 것을 찾아서 그림으로 표시하고, 또 해인사에 있으면서 『초(?)』 가운데 인문(引文)을 교정함. 금강산 · 묘향산 · 두류산으로 다니면서 좌선에 정진. 1770년 징광사가 불타서 화엄경판본(華嚴經板本)이 불타매, 시주의 연(緣)을 모아 다시 새겨 영각사에 장경각을 짓고 봉안하고, 그 절에 있다가 하루는 사주(寺主)에게 말하기를 “절을 옮기지 않으면 수재(水災)에 무너지게 되리라” 하니, 얼마 뒤에 홍수가 나서 절이 무너지다. 만년(晩年)에 영원사에서 10여 년 동안 염불로 정업(淨業)을 닦다가 일생을 마치다. 나이 85세, 법랍 66년으로 입적. 저서는 『구현기(鉤玄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