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스님. 또는 혜초(惠超). 20세쯤 당나라에 가서 금강지 삼장(金剛智三藏)을 섬기다. 남해(南海)로부터 바다로 하여 인도에 이르러 부처님의 유적을 찾아 참배. 5천축을 두루 돌아 다니다. 북서로는 가습미라 · 대발률 · 소발률 · 건타라 · 오장 · 구위 · 람파 · 계빈 · 시율 · 범인 · 토화라 등 여러 지방을 다니고, 서쪽으로 파사국 · 대식국 · 불림국 등에 갔다가, 다시 동쪽으로 와서 안국 · 조국 · 사국 · 서라국 · 미국 · 강국 · 발하나국 · 골돌국 · 호밀국 · 시니국 등을 지나고, 총령(?嶺)을 넘어서, 소륵국 · 구자국 · 우전국을 돌아서 10년만인 727(당 개원 15) 11월에 안서(安西)로 돌아왔다가, 다시 언기로부터 동쪽의 여러나라를 거쳐서 장안에 돌아오다. 이 10년 동안의 여행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여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3권을 지었으나 전하지 않고, 다만 『일체경음의』의 제100권에 그 음의가 실려 있어 책 이름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910년 불란서의 동양학자인 펠리오가 감숙성 돈황의 천불동 석굴에서 앞뒤가 떨어진 책 한 권을 발견하여, 그 대강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원본의 3권을 1권으로 내용을 줄인 책. 법현(法顯)의 『불국기(佛國記)』는 육지로 갔다가 바다로 돌아온 여정이고, 현장(玄?)의 『서역기(西域記)』는 육지로 갔다가 육지로 돌아온 여정이며 의정(義淨)의 『남해기귀전(南海寄歸傳)』은 바다로 갔다가 바다로 돌아온 여정인 것에 비해, 이 『왕오천축국전』은 바다로 갔다가 육지로 돌아온 것이 특색. 사학계의 좋은 연구 자료가 되다. 당나라에 돌아와서는 54년 동안 오대산에 있었고, 금강지 삼장 · 불공 삼장(不空三藏)의 역장(譯場)에서 필수(筆授)를 많이 맡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