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스님. 중국의 오월왕(吳越王) 숙(?)이 『영가집(永嘉集)』을 읽다가 동제 사주(同除四住)라는 말을 알 수 없어서, 천태종 의적(의적)에게 물으니, 의적이 “이것은 『법화현의(法華玄義)』에 있는 말인데, 천태 삼대부(三大部)가 회창(會昌)과 오대(五代)의 난리 때에 외국으로 흩어지고, 중국에서는 지금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였다. 왕이 사신과 50종의 보물을 고려에 보내어 천태교의 서적을 구하매 960년(광종 11) 광종이 체관으로 하여금 천태교의 논소 등을 가지고 송나라에 가서 의적을 만나게 함, 10년 동안 그 문하에 있다가 죽음. 전하는 바에는 이 스님이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 1권을 지었으나, 생전에 발표하지 않고 죽은 뒤에 상자에서 광명이 나므로 열어보니, 이 책이 나왔다 함. 『천태사교의』는 훌륭한 저서로서 각지에 많이 유포되었으며 일본에도 전해져 지금도 천태교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참고서가 되어 있음. 스님이 천태종의 서적을 중국에 전하므로 천태교가 다시 중국에는 유전되었으나, 본국에 돌아오지 못하여 고려 천태종의 전맥(傳脈)이 끊어지게 됨. 이에 의천(義天)이 중국에 가서 지자대사탑(智者大師塔)에 서원하되 “옛날 체관이 교관(敎觀)을 전하였으나, 지금 대를 이을 이 끊어지게 되어 제가 법을 위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찾아와서 대도(大道)를 구하나이다” 하며 기원하고, 천태교를 배우고 고려에 돌아와서 천태종을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