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법좌(法座)
“세존이시여, 나는 크샤트리아(무사) 출신의 왕이어서, 죽여야 될 사람은 죽이고, 재산을 몰수해야 될 사람은 몰수하고, 추방해야 될 사람은 추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재판에 임했을 때, 흔히 내 이야기를 방해하는 이가 있습니다. 내가 재판에 임했을 때에는 내 이야기를 방해하든지 지장을 주든지 하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건만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세존의 제자들을 보옵건대, 세존께서 몇 백이라는 대중을 상대로 법을 설하실 때, 세존의 제자들은 기침 소리 하나 내지 않습니다. 언젠가 세존께서 수백 명의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실 때, 한 비구가 기침 소리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다른 비구가 무릎으로 그 비구를 건드리면서 말했습니다.
‘고요히 해. 소리 내지마라. 우리 스승께서 이제 법을 설하시니.’ 세존이시여, 그 모양을 보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희유한 일이다. 도장(刀杖)을 쓰지 않는데도 대중이 이렇게 통제될 수 있다니!’
세존이시여, 나는 이런 대중을 본 적이 없습니다.” ([中部經典] 89 法莊嚴經. 漢譯同本, [中阿含經] 213 法莊嚴經)
붓다와 그 제자들의 일상생활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여기에 인용한 일절은 [중부 경전] 89 ‘법장엄경’에 나타나 있는 코사라 국왕 파세나디의 술회의 일부분이다. 어느 날 성 밖에 나가 아름다운 교외의 풍경을 즐기고 있던 이 왕은 갑자기 붓다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신하들에게 물었더니, 붓다는 지금 메다룬바라는 사캬족의 마을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달려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한 왕은 곧 마차에 올랐다.
그러나 왕이 그 마을에 도착한 때는 모두 문들을 닫아 건 밤중이었다. 왕이 기침을 하면서 정사의 문을 두드렸더니, 붓다가 친히 나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왕은 엎드려 그 발밑에 절하면서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코사라의 파세나디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파세나디입니다.”
붓다도 물론 반가워하면서 뜻하지 않은 이 손님을 방으로 안내 했다. 이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 것은 붓다가 전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의 일이다. 그 때 붓다의 나이는 아마도 37살이나 38살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경전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파세나디는 붓다와 동갑이었다고 하니까, 젊은 두 사람의 대면은 날카로운 문답으로 시종되었을 것이 예상된다.
“고타마여, 그대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자처한단 말인가?” 아닌 게 아니라 왕은 사뭇 힐문하는 어조로 나왔고, 붓다는 붓다대로 “이 세상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나요.”라고 하며 맞섰다. 그러나 파세나디는 자기와 동갑인 젊은이가 그런 성자라는 것을 좀처럼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는 저명한 사상가의 이름들을 열거하면서, 그들도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고는 말하지 않았음을 들어
“고타마여, 그대는 나이도 어리고 출가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 않은가?” 라고 반박했을 때, 붓다는 불과 뱀과 왕과 성자는 나이로 말미암아 경시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백 년을 내려온 불이나 오늘 난 불이나 무엇을 태우는 위력은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도(道)와 나이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도 어느 덧 40년. 붓다에게 귀의하는 왕의 심정은 해가 거듭될수록 깊어졌거니와, 그 날 밤 왕은 그러한 마음을 붓다 앞에 털어놓고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었다. 그것들은 모두가 왕 자신이 친히 듣고 본 이야기들이었으므로, 붓다와 그 제자들의 생활을 엿보는 데는 더 없이 귀중한 자료가 되는 줄 안다. 이를 테면 그 중의 한 이야기는 이러했다.
그것은 다른 경에도 이름이 전해 오는 두 명의 목수, 이시다타와 푸라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두 사람은 궁중의 목수였다.
“나는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었고, 그들은 내 덕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들입니다만…..”
파세나디 왕은 눈을 껌벅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도 그들이 나에게 보이는 존경은 붓다를 존경하는 데 비긴다면 멀리 못 미친단 말씀입니다.”
그것은 불평이 아니라 왕에게는 그쪽이 더 기쁜 듯하였다. 그는 그 증거로서 이런 보기를 들었다.
“언젠가 나는 전쟁에 나갔다가, 그들을 데리고 어느 조그만 민가에서 함께 잔 일이 있습니다. 그 때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붓다의 법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잘 때가 되자 붓다가 계신 방향을 확인한 다음에 그쪽으로 머리를 두고 나 있는 쪽으로 발을 뻤고 잤습니다.
‘이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그들은 나에게 의지해 생계를 이어 가고 있는데, 나를 존경하기보다는 세존을 훨씬 더 존경하는구나. 이것은 필시 그들이 세존으로부터 더 없이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장(章)의 첫머리에 인용한 일절도 마찬가지로, 파세나디 왕이 자기가 세존을 더욱 존경하게 된 이유의 하나로서 그 날 밤 이야기한 내용이다. 코사라의 왕권은 당시의 인도에서 가장 강대했으며, 그것과 어깨를 겨룰 만한 나라는 오직 마가다국이 있었을 뿐이다. 그 강국의 왕인 파세나디가 직접 재판하는 마당에서도 흔히 시끄럽게 굴어서 발언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 파세나디 왕은 그런 체험을 들어 붓다의 법좌(法座)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재판하는 자리의 광경을 설법하는 자리(法座)에 비긴다는 것은 애당초 온당치 못한 점도 없지는 않으려니와, 거기에는 체험과 견문이 뒷받침되어 있기에 도리어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겠다.
왕이 보았다는 것은 어느 날 붓다가 설법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아마 사바티 남쪽인 기원 정사였든지, 아니면 그 동쪽 교외에 있는 미가라마타 정사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하튼 그 날도 역시 몇 백 명의 비구들이 모여들어 붓다의 설법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고요한 그 자리에서 어느 비구가 기침을 했다. 그랬더니 다른 비구가 무릎으로 그 비구를 건드리면서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리하여 모든 청중들이 기침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오직 긴장한 속에서 붓다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파세나디 왕은 참으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고백이 또한 파세나디답게 소박하다.
“참으로 희유한 일이었습니다. 도장(刀杖)을 안 쓰고도 대중이 이렇게 통제된다는 것은!”
‘도장’이란 칼과 곤장이다. 왕은 그것으로써 신하들을 단속하고 백성들을 통치한다. 그 생사여탈의 힘, 그것이야말로 왕의 권세일시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무력으로도 침묵시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더구나 마음으로부터 복종케 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거기에 집권자들의 고민이 있다. 그런데 붓다의 법좌의 광경은 어떤가? 거기서는 무력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건만, 이렇게도 완전히 통제되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왕의 권력보다도 더한 것이 붓다에게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나는 세존 앞에 이와 같이 최고의 존경을 바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왕이 그 체험을 통해 고백한 내용이었다.
그런 감명의 토로를 경전 안에 남기고 있는 것은 물론 파세나디 왕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앞에도 등장한 비구 시인 반기사(婆嗜沙)가 이야기한 것은 이러했다.
그것은 기원정사, 즉 제타의 정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 붓다의 법좌에 모인 비구는 1,25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 날 붓다의 설법은 열반, 즉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절대적 평화의 경지에 관한 것이었다. 많은 비구들이 모두 마음을 기울여 듣고 있는 정경이 그날 또한 이 시인의 시심을 자극했던 모양인지, 붓다의 설법이 끝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붓다 앞에 나아가서 홍조 띤 얼굴로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떠오른 것이 있나이다. 선서(善逝 ; 붓다의 명칭의 하나)여, 제 마음에 시상이 떠올랐나이다.”
“반기사야, 그것을 읊어 보려무나,”
이 비구 시인은 가끔 이런 짓을 했고, 또 그것을 동료 비구들도 좋아했던 모양이다. [상응부 경전] 제8에는 ‘반기사장로 상응’이라고 해서, 그가 이런 식으로 발표했던 시편이 열 두 권이나 되는 경속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가 이때에 읊은 것은 다음과 같은 시였다.
청정할 손 티끌을 멀리 떠난
두려움 없는 열반을 설하시기에
이제 여기에 천도 넘는 비구들은
정각자(正覺者)에게 예하여 뵈옵노라.
정각자가 설하심은 티 없는 진리
그를 비구들은 귀 기울려 들으셔라.
숱한 비구들에게 에워싸이어
아으, 정각자는 빛도 찬란하셔라.
세존께선 참으로 용상(龍象)이시며
이 세상 살아 계신 성자이셔라.
줄줄이 내리는 빗발처럼
제자들을 고루고루 적셔 주시다.
이 스승 뵈옵고자 그 한마음에
한낮의 정좌(日住)에서 달려 나와
제자의 한 사람인 반기사는
세존의 두 발에 머리 조아리노라.
이것은 [상응부 경전] 8 ‘천이상’이라는 경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