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스님. 이름은 중헐(中歇). 명민하고 변재가 있었다. 묘향산에 들어가 불법을 배웠다. 청나라가 일어나면서 명나라와 싸울 적에 명나라 도독 심세괴가 강동을 지켰다. 이때 독보가 바다를 건너가서 만났고, 심세괴가 죽은 뒤에는 강남으로 가서 좌도독 홍승주에게 있었다. 청나라 군대가 북경에 들어가려 하매, 홍승주가 가서 호위하면서 독보를 봉천에 보내어 정탐케 하였다. 압록강에서 우리나라 군대에게 붙들려 절도사 임경업에게 가게 되고, 임경업은 또 최명길에게 보냈다. 마침 명군에 보낼 사람을 구하던 때라 독보를 홍승주에게 다시 보내어 서울이 청병에게 함락된 기별을 전하였다 [이 때는 1039년(조선 인조 17)]. 명나라 임금이 여충(麗忠)이란 호를 주었다. 2년만에 본국에 돌아오매, 많은 상품을 주고 다시 홍승주에게 보냈다. 홍승주가 청나라에 항복한 뒤에 독보는 임경업에게 갔다. 중국 등주(登州)에 왕래하면서 연락하였고, 명나라가 망한 뒤에는 임경업과 함께 북경에 잡혀가서 옥주에서 고생하였다. 나중에 본국에 돌아왔으나 간신의 모함으로 울산에 귀양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