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주인이 따로 있을까 진리에 주인이 따로 있을까

진리에 주인이 따로 있을까 진리에 주인이 따로 있을까

옛날에 도둑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는 나라의 창고에서 몰래 숨어들어서 아주 귀한 물건들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왕은 그를 잡기 위해 사방으로 병사를 풀었습니다.

도둑은 금세 붙잡혀 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왕은 도둑을 심문하였습니다.

“자, 말해라. 그 귀한 물건들을 훔쳐간 자가 바로 네 놈이렷다!” 그러자 도둑은 시치미를 떼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왕은 도둑이 입고 있는 옷을 보았습니다.

그 옷은 신분이 아주 높은 사람들이 입는 옷이어서 입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습니다.

여러 겹으로 되어 있었고, 위아래도 비슷하였으며, 격식에 맞춰 입지 않으면 팔과 다리를 꿰지도 못할 옷이었습니다.

왕은 도둑의 옷 입은 품새를 살핀 뒤 캐물었습니다.

“훔치지 않았다고? 거짓말하지 마라! 그럼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어디서 난 것인가?” “이 옷은 우리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입던 옷을 제가 물려받은 것이지요.” “그래? 그렇다면 좋다.

” 왕은 병사들을 시켜 그가 입고 있는 옷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도둑에게 명했습니다.

“자, 할아버지 때부터 전해 내려왔다면 그 옷을 어떻게 입는지 잘 알고 있겠지? 어디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입어 보거라.” 도둑은 옷을 집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소매인 것 같아서 팔을 꿰어 넣으려니 너무 길었고, 바짓부리인 것 같아서 다리를 집어넣으니 영 불편하였습니다.

접어서 입어야 할지, 활짝 펼쳐서 입어야 할지, 머리에 쓰는 부분과 허리에 묶어야 할 부분이 헷갈렸습니다.

왕은 도둑이 옷을 들고 쩔쩔매는 꼴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만일 그 옷이 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것이라면 입을 줄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훔치지 않았다면 어찌 위아래조차 찾지 못하느냐! 네놈은 도둑이 맞다.

”(백유경 8번째 이야기) 붓다의 가르침을 만났다면 열심히 수행해 붓다 되어야 이 이야기에서 왕은 부처님이고, 도둑당한 물건은 법(진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보물을 훔친 도둑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훔쳐 들고 제 것이라 생각하는 외도들을 비유합니다.

보물창고에서 귀하디귀한 옷을 훔쳐내어 제 것이라고 우기다가 제대로 입어내지 못한 까닭에 스스로 ‘나는 도둑이오’라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봅시다.

진리에 주인이 따로 있을까요? 인과법, 인연법, 연기법, 공, 중도… 이와 같은 진리가 어느 한 개인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도 당신이 붓다가 되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진리는 존재해 있다고 말씀하셨고, 과거에도 깨달은 분이 계셨고, 먼 미래에도 깨달아 붓다가 될 이가 분명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과 세상이 어떤 원리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법칙으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환히 깨달으면, 깨닫는 순간 그는 진리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아니, 그는 바로 진리 그 자체요, 진리의 또 다른 이름인 붓다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 진리(법)의 주인은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창고에서 법을 훔쳐낸 도둑이라니, 이건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사람들 앞에서 으스대어 이양을 챙기고자 하여 어쩌다 전해들은 붓다의 몇 마디 말을 자기가 깨달은 진리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켜 부처님 창고에서 법을 훔친 도둑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법에 대해 물어보면 횡설수설하며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 뻔합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붓다의 가르침을 만났다면 열심히 수행하여 붓다가 되어야하건만 몇 마디 말만 외웠다가 사람들의 환심을 살 생각만 한다면 그가 바로 애써 왕의 옷을 손에 넣었으면서도 그만 옷 입는 방법을 몰라 도둑이라 자인한 딱한 사내가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불교신문 2755호/ 10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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