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법인을 가훈과 좌우명으로 삼으십시오.
* 삼법인이란 무엇인가요? 요즈음은 신용카드, 증명서와 자격증 시대입니다.
어떤 사람이 승려인지, 포교사인지, 어떤 종파의 승려, 포교사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승복 등의 외형을 보는 방법 외에, 승려와 포교사를 알기 위해서는 증명서인 승려증과 포교사증을 보아야 합니다.
또한 신도를 인정하는 것을 신도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불교에서도 불교의 교설로 인가하는 증명서가 있는데 이 세 가지를 삼법인이라고 합니다.
신용카드를 결재할 때에 서명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이 이 세 가지를 부처님께서 서명하시고 증명하신 법인(法印)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는 삼법인이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도 하며, 유위법무상인, 일체법무아인, 열반적정인이라고 합니다.
또한 간략히 무상인, 무아인, 열반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형태로 일체행무상, 일체행고, 일체법무아로 열반적정 대신 일체행고, 일체개고라고도 하는데 또한 삼법인에 일체행고를 첨가하여 사법인이라고 부릅니다.
일체세간의 유위법은 모두 무상한데 중생들은 집착하여 그 법들이 항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상인은 그 항상함에 집착하는 것을 파괴하는 가르침입니다.
일체세간의 유위와 무위의 제법은 무아이지만 중생들이 집착하여 그 법에 대해 주재자를 세우고 그것을 아라고 생각합니다.
무아인은 그 아에 집착하는 것을 파괴하는 가르침입니다.
일체중생은 생사의 고를 알지 못하고 업을 지어 삼계에 유전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중생에게 생사의 고를 벗어나 적멸의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증일아함경》에 따르면 ” 죽음을 면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네 가지 법의 근본을 생각하라. 무엇이 네 가지인가? 일체의 행은 무상하다.
이것이 첫 번째 법의 근본이니 잘 생각하여 수행하라. 일체의 행은 괴로움이다.
이것이 두 번째 법의 근본이니 다 함께 수행하라. 일체의 법은 나가 없다.
이것은 세 번째 법의 근본이니 다 함께 수행하라. 적정은 열반이다.
이것이 네 번째 법의 근본이니 다 함께 생각하라.” 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고통을 벗어나 죽지 않은 불사의 감로수를 마시고 싶은 사람은 먼저 이 자격증을 획득하십시오. 또한 《잡아함경》에 따르면 “만일 물질을 싫어하고 욕심을 멸하고 모든 번뇌가 다한 적정한 법을 설명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법사라 하며, 만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싫어하고 욕심을 멸하고 번뇌가 다한 적정한 법을 설명하면 이 사람을 법사라고 이름한다.
” 라고 하여 삼법인을 알고 바르게 설명하는 사람을 법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다시 이곳에 와서 불자님들에게 설법을 하시더라도 삼법인을 의지하고 세상을 살아가라고 삼법인을 관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삼법인을 우리 가족의 가훈으로, 나의 좌우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진정한 불제자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처님을 진정으로 모시고 신앙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삼법인을 항상 생각하십시오. 마라의 군대를 물리치는 무기는 바로 이 삼법인이라는 증명서입니다.
두려움과 공포, 슬픔과 불행이 밀려오면 삼법인의 증명서를 보여주고 그 증명서를 보십시오. 그것이 부처님이 인가하신 불제자의 수행자격증입니다.
* 제행무상인이라는 밧줄을 잡으십시오. 제행무상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모든 만들어진 것은 항상(恒常)하는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존재는 변화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변화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음식은 소화되지 않을 것이고, 태어남과 죽음도 없게 되겠지요. 그리고 현재의 상태대로 고정된 모든 것이 그대로 있어야 한다면 불행한 사람은 항상 불행해야 하고, 행복한 사람은 항상 행복한 사람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중생은 항상 중생이어야 하고, 중생은 결코 부처가 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은 항상 하느님으로 남아있고, 목자는 목자로 남아있고, 교인은 교인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변화에서는 그러한 고정된 것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교인이 불자가 되기도 하고 불자가 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불교에서는 무상하기 때문에 승려가 되기도 하고 속퇴하기도 합니다.
당신이 여기 이 자리에서 설할 수 있고 반대로 스님과 법사가 들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은 무상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무상하다는 것은 허무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변화에 속하고 변화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는 부자로, 부자는 가난한 사람으로, 아이들은 청소년을 거쳐서 어른으로, 그리고 늙은 사람으로 말입니다.
인생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인생은 변화를 벗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좋은 벗이 되든지 나쁜 벗이 되는지 함께 가야할 벗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무상하다는 것을 삶의 긍정적인 의미에서 보면 고정된 것이 없으므로 변화의 가능성에서 현재의 모습을 보다 좋은 모습으로 바꿀 수 있음을 말합니다.
몸과 입과 뜻이 악하면 그 악함을 보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선하게 만들고 그것을 더욱 증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잊을 수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잊혀지는 물건과 존재 그리고 기억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식을 잃고, 부모를 잃고, 아내와 남편을 잃어도 다시 살아갈 수 있으며, 또 살아가야 합니다.
‘나에게만 왜 불행이 다가오는가’라고 반문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물질(色)은 항상됨이 없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이니라. 바르게 관찰하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즐겨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즐겨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마음의 해탈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항상됨이 없다고 관찰하라.” 《잡아함경》<1. 무상경>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모든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분모에서 당신이 그것에 대해 좀 더 강하게 느끼고 슬퍼하고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재산과 명예를 보고 그것에 집착하고 자신의 길을 잃어버리면 결국 그것이 최상이고 항상하는 것이라고 집착하여 자신을 망치게 될 뿐만 아니라, 설령 재산과 명예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잃어버리게 되면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원래 나에게 70, 80년 동안 인연으로 주어져 잠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본래 자신도 본래 무상한 존재이고 물건과 명예도 무상한 것이므로 무상한 것끼리 인연되어 있는데 왜 집착하여 괴로움을 키웁니까?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면 따뜻한 물을 오래두면 서서히 찬물이 되는 것처럼 자신의 고통과 불행을 집착하지 말고 가만히 두십시오. 고통이나 불행의 수렁에 빠지지 마십시오. 만일 빠지더라도 무상이라는 밧줄을 잡고 빠져 나오십시오. 부처님께서 던진 그 밧줄을 잡기만 하면 됩니다.
빨리 그 밧줄을 잡으십시오. * 제법무아인이라는 수술을 받으십시오. 제법무아라는 것을 무엇일까요? 항상하지 않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화고 바뀌는 법이며, 형상,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나라고 나에게 속하는 것이라고 나는 그곳에 속한다고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하지 않고 괴로운 모든 존재는 무아라고 합니다.
지난해 11월에 불교대학을 다닌 한 거사가 자동차를 사서 오천 킬로 정도 사용하고 주차해 놓았는데 누가 불을 질러 주위의 차 다섯 대와 함께 불에 탔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보험에 들지 않은 상태여서 자동차를 완전히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거사는 자신이 어릴 때 남의 것들을 불태우고 불장난을 하던 일이 생각났고 그 과보를 받았다고 생각하니 분함이 사라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불자님, 이와 같은 일을 당신이 당하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것이라고 집착하고, 그런 불행에 계속 집착하면 자신의 고통은 점차 커지고 증오와 분노가 자라 마침내 자신을 병들게 하고 말겠지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전생에 저축해 놓은 것을 현생에 잠시 받아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 것이라고 집착하지 마십시오. 하물며 내 몸도 잠시 빌린 것인데 다른 물건과 재산이 내 것일 수 있겠습니까? 차분히 깊이 삼보를 생각하고 제법무아를 되새겨 보십시오. 생각이 싫으시면 제법무아인을 불러 보십시오. “세존이시여, 물질은 나의 소유가 아닙니다.
마땅히 빨리 끊어 버려야 하나이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저의 소유가 아닙니다.
마땅히 빨리 끊어 버려야 하나이다.
그래서 바른 이치가 더하고 넉넉하여 긴 밤 동안에 안락하게 될 것입니다.
” 《잡아함경》<17. 비아경>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마음에 나라는 집착이 생기면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읽어보십시오. 편안하고 안락하게 되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스며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을 매일 체험하고 살아가십시오. 그것은 건강을 위해 매일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의 마음의 건강을 위해 나와 내 것이 없다는 ‘무아 관찰 운동’을 매일 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의 평안과 안락이 찾아들 것입니다.
내가 병이 들고 내 가정이 불행에 빠지는 것은 무아라는 수술도구가 나를 수술하고 내 가정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수술과정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불자님, 수술을 받아서 낫고 싶습니까? 아니면 병을 그대로 놓아 두어 마침내 죽고 말겠습니까? 《잡아함경》에 말하기를 “물질이 <나>가 아니다.
만일 물질이 나라면 응당 물질에게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또한 물질을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 것이다.
물질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물질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있어 생기는 것이며, 또한 물질을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니,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또한 이와 같다.
” 《잡아함경》<33. 비아경>라고 하셨습니다.
불자님, 무아의 수술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나라는 생각, 내 것이라는 생각을 도려내십시오. 그것을 빨리 버리고, 병과 고통이 생기면 그것이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무아의 수술임을 아십시오. 불자님의 마음과 생각의 건강을 위해 무집착의 수술, 무아의 수술을 받으십시오. 심한 병과 절망적인 고통이라도 고맙게 받아야 합니다.
스님들이 주는 염주와 같이 빨리 감사히 받아야 합니다.
* 열반적정인이란 즐거움을 맛보십시오 불자님, 고통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누구나 고통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전쟁 중에 시아버님과 남편을 먹이다 보니 첫 아들을 굶주리게 한 한 아이의 어머니, 봉고를 타고 가다 일가족은 다 죽고 혼자 살아남은 열살 아이, 기형아를 낳아 평생 가슴 졸이며 살아가는 일가족 등 모든 불행의 극단에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렇지 않아도 주위에 사는 가까운 친척과 이웃에서 이런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고통이 깊은 자들은 조그마한 행복에도 만족하고 즐거워합니다.
고통이 깊으면 깊을수록 열반, 고통의 멸을 갈망하게 됩니다.
불행한 가정이 행복한 가정을 갈망하는 것처럼, 배고픈 사람이 먹을 것을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불자님, 나와 세상에 대해 싫어하고 욕심을 멸하고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바로 해탈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비구가 법을 보아 열반을 얻은 것이라 합니다.
이러한 열반은 바로 고통이 깊은 사람이 맛볼 수 있는 맛입니다.
그 즐거움을 맛보시지 않으시렵니까? “번뇌가 아주 다하여 남음이 없기 때문에 욕심내거나 집착하는 뜻이 없고 언제나 편안히 쉬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것이다.
나고 사라지는 생각이 없이 제일의 이치를 성취하여 욕심이 없는 즐거움, 번뇌가 다한 즐거움, 모두가 사라진 즐거움이기 때문에 「이 적멸이 즐거움이다」고 말한 것이다.
” 《출요경》<제1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통의 적멸을 맛보십시오. 추운 겨울에 직업을 잃고 거리를 헤매던 걸인들이 따뜻한 봄에 햇살을 맛보듯 한번 맛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러한 적멸의 즐거움을 맛보시려면 바로 열반적정을 믿으시고 열반적정에 이른 불보살님과 스님들을 믿고 그분을 생각하고 공경하십시오. 저울질 한 후에 물건의 무겁고 가벼움을 알며, 재어본 후에 길고 짧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상, 무아, 적정을 안 뒤에야 고통에서 벗어나 적정한 열락의 맛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의 물질도 덧없거늘 하물며 현재의 물질이겠느냐.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과거의 물질은 돌아보지 않고, 미래의 물질은 기뻐하지 않으며, 현재의 물질은 싫어해 떠나고 욕심을 멸하여 완전히 고요해지나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잡아함경》<79. 생경> 과거, 현재, 미래의 욕심을 빨리 버리고 완전히 고요해진 즐거움을 맛보십시오. 그 즐거움을 맛본 분을 공경하고 그 가르침을 고요히 되새겨 보십시오. 이 맛을 음미하는 사람은 고통을 삼키어 행복을 내뱉는 이 시대의 구원자, 이 시대의 모범자입니다.
불자님, 그러한 사람이 되어보십시오. 죽기 전에 직접 맛볼 수 있도록 이 맛에 대해 묻고 이 맛에 대해 많이 듣고 이해하고 그 맛을 아는 열반락의 미식가가 되십시오. * 삼법인을 관하며, 삼법인 보험에 가입하고, 가입하게 하십시오. 불자님은 할 수 있습니다.
여기 불자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남이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불자님, 살아가는 동안 내가 항상하지 않고, 무아이고 고라는 것을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물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일어남과 멸함, 맛과 그 근심을 바르게 알지 못하며 그것에 집착하다가 무너지고 달라지면 고통과 번민이 생기게 되고 두려움에 쌓이며, 마음이 막히어 근심하여 잊지 못하게 됩니다.
그 고통은 원래 자신의 고통이 아닙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 된다고 내가 그 고통을 계속 느껴야 한다고 고집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그 고통을 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고통의 주인이 아니었으므로 인연에 따라 사라지게 놓아두어야 합니다.
긴 밤 뒷골에 피가 치솟아 오르는 것같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이제는 놓아야 합니다.
고요히 그 밤이 흘러가고 있음을 관찰하십시오.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관찰하십시오. 눈이 감기는 새벽이 오고 아침 햇살이 비추게 됩니다.
이러한 무상의 위대함을 살펴보십시오. 가장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을 잃을 때 이것이 항상하지 않다는 깊은 의미이구나 하고 새겨보십시오. 그런 것을 잃어도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니므로 잃은 것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마음을 편안히 하게 해 줄 뿐입니다.
나의 것이란 무엇입니다.
내 것이라는 것은 내가 먼저 항상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소유한 모든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는 생각에 집착한 것입니다.
그 집착을 버려보십시오. 그리고 삼법인을 관찰해 보십시오. * 고통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 불자님 가운데 보험에 드신 분이 계십니까? 무슨 보험에 가입했습니까? 무엇 때문에 가입했습니까? 건강보험, 국민연금, 자동차보험, 교육보험, 상해보험, 생명보험 등 무수한 보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막이라고 믿기 때문에 점점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경우 그 보답을 받기 위해 생명보험에 들게 됩니다.
그것도 또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겠지요. 이와 같이 자신을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이러한 부처님께서 주신 보험하나 들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삼법인입니다.
이 세간에 항상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모든 존재가 무아인 것을 알고 고를 여윈 적정열반을 알면 바로 현실에 어떠한 고통과 집착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사후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삼법인을 아는 자는 사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보험에는 보험금이 필요하듯이 삼법인 보험에 드는 것도 보험금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삼법인을 믿고, 삼법인을 배우고, 이해하고 매일 삼법인을 관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보험금은 돈이나 명예, 자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믿음과 정진력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불자님 그 보험료는 죽어서 보답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서 보답받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이 삼법인 보험에 가입하십시오. 매일 실천하고 좋으시면 이것을 타인에게 전해보십시오. 자식을 잃었거나, 사업에 실패했거나, 성공하여 거만한 자, 명예를 탐내는 자일수록 이 보험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달려가 이 보험을 소개하십시오.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삼법인 보험가입서를 가지고 가까운 벗들에게 지금 달려가보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