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세상에 도움주겠다 생각말고 자기생활에 충실하라

세상에 도움주겠다 생각말고 자기생활에 충실하라 –

법륜스님

즉문즉설 – ▒ 문 저는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다음에 죽는 순간에 후회를 남기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살고 싶은데 그에 대한 답을 잘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생각도 하고 경험도 하고 종교생활도 해봤는데 정작 끝나고 나면 항상 마음이 공허하고..

소중한 걸 찾지 못했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 답 자기가 다람쥐보다 나아요? 못해요? (비슷합니다) 다람쥐는 죽을 때 뭔가 후회하고 죽을까? 그냥 죽을까? (후회 안 할 거 같습니다) 살면서 지나간 일 후회할까? 아까 그 높은 나무 올라갔다 왔는데 너무 힘들다고..

‘어떤 놈이 나무를 이리 크게 만들었나?’ 이런 생각하거나,도토리를 모아 놓았더니 나중에 보니 없어져 버렸어..

그렇다고 옆에 돌에 화풀이 할까? 아니면 그냥 뭐..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일까? (크게 상관 안 할 거 같습니다) 그래..

다람쥐도 그 정도인데, 자기가 다람쥐보다 낫다면 더 나아야 되고 비슷하다면 비슷하면 되지..

(대중 웃음) (그러면 꿈을 가지고 뭔가 이루려고 열심히 하는 것이나, 그냥 굴러다니며 아무것도 안하고 사는 것이나..) 왜 아무것도 안 해? 다람쥐도 열심히 해.

그런데 내가 세상을 위해서 뭔가 헌신하겠다는 것은..

사실은 별로 좋지는 않아요.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 중에, 세상을 위해서 뭔가 하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더 어지럽혀지는 경우가 많아요.

(ㅎㅎ 맞습니다) 다람쥐 같으면 절대로 세상 안 어지럽혀요.

다람쥐는 세상을 위해서 산다는 생각을 안 하는데도 결과적으론 어때요? 세상에 도움이 돼요.

큰 나무는 자기가 살지만 뭇생명들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땅속에 있는 지렁이도 자기가 혼자 열심히 살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생명에게 좋은 도움을 주죠? 새들도 나무 열매를 먹고 멀리 가서 똥을 누기 때문에 새가 나무 열매를 해친 게 아니라 새 때문에 나무가 멀리멀리 씨앗을 퍼뜨릴 수 있는 겁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네 삶도 자신의 삶에 충실한 것이 세상에도 이익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네 가지를 하면 세상에 손해가 돼요.

그리고 세상에 손해가 돼도 나랑 관계없으면 괜찮은데 인간세상은 마치 울타리가 처져 있는 것 같아서, 거기에 받쳐서 나한테로 되돌아와요.

그걸 ‘인연과보’라고 해요.

공을 바람벽에 던지면 멀리 날아가지 않고 받쳐서 되돌아오는 것처럼 그래요.

그래서 복을 지으면 복을 받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게 돼요.

과보가 따라요.

첫째 남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 남을 해치면 나도 해침을 받게 돼요.

둘째 남의 것을 훔치거나 뺏으면, 손해를 끼치면 나도 나중에 그런 과보가 따라요.

우리 사회가 막 남에게 손해 끼치는 분위기로 되면, 나도 손해될 확률이 높아요 낮아요? (높죠) 셋째 성추행 하거나 성폭행 하거나 해서 남을 괴롭히는 것, 그리고 남을 속이는 것..

요 네 가지만 안 하면 굳이 남을 위해서 뭘 한다고 그렇게 머리 안 써도 돼요.

이 네 가지만 안 하면, 어지간하면 사람에게 자유를 줘야 해요.

사는 걸 자유롭게 놔둬야 해요.

나도 자유롭게 살고, 남도 자유롭게 살도록..

우리는 지금 이 기본적인 자연 생태윤리, 기본윤리가 안 돼 있어요.

아이들이 남의 물건을 뺏거나 남을 괴롭히는 건 자기 자식이라고 대충 넘어가고 공부 안 하는 건 아무런 나쁜 짓이 아닌데 야단을 치니까, 아이들이 가치관에 혼란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청소년들 나쁜 문제가 뺏는 거, 때리는 거, 성추행 하는 거, 속이는 거..

그거잖아요? 수업시간에 떠드는 건 남에게 피해를 주니까 야단을 쳐야 하지만 수업시간에 자는 건 남에게 피해 주는 게 아니니까 야단을 치면 안 돼요.

담요를 덮어 줘야 돼요.

부모도 그렇고 선생님도 이 기본윤리를 중요시 해야 돼요.

이 네 가지를 빼고는 가급적 자유롭게 살게 해야 합니다.

아이가 공부 안 하는 것은 야단칠 문제가 아니라 대화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남에게 피해는 안 줬지만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나쁜 건 아니지만 어리석은 겁니다.

그래서 깨우쳐 줘야 할 문제입니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그런데 대학은 갈래?’ ‘예..’ 그러면 이제 아이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대학을 가려면 공부를 해야 할 수밖에 없으니까 대학을 가려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죠.

인생이란 건 하기 싫어도 이익이 되는 건 해야 하고 하고 싶어도 손해가 되는 건 안 해야 돼요.

지나가는 아가씨 종아리 만지고 싶은데요..

그럼 만져! 대신에 감옥 3년 가면 돼.

그런데 그렇게 감옥살이 하는 건 나한테 손해니까, 아무리 만지고 싶어도 안 만져야 돼.

이런 것들을 아이들에게 깨우쳐 가는 것과 나쁜짓 하고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이런 걸 혼동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너무 세상에 이롭게 해 주겠다..

이런 생각 말고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안 주겠다..

손해만 안 준다면 내가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세상에 이익입니다.

내가 열심히 직장생활 하고, 그 돈으로 가정생활 잘 하는 게 세상에 도움을 주는 겁니다.

꼭 저축을 해서 그 돈을 누구에게 줘야 도움을 주는 게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공장을 운영하면서 폐수처리를 제대로 안 하고 비 올 때 무단방류해서 물고기들을 떼죽음을 시켜놓고, 그렇게 아낀 돈으로 절에 와서 방생한다고 물고기 천마리 보시를 하면..

형식적으로 보면 보시를 한 거지만 전체로 볼 때 이것은 보시가 아닙니다.

절에 가 보시를 안 해도 정화시설을 잘 하는 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너무 ‘내가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어요.

길을 가다가 할머니를 봐도, 그 짐을 들어 주는 게 내 마음이 편하니까 들어 주는 것이지 꼭 ‘할머니를 위해서’ 라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그게 자기에게도 도움이 되고 세상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좀 가볍게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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