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본다는 것 쌍계사 승가대학 강사/
월호스님
형상에 끄달리지 말고 줏대 세워 살아라 우리의 한생각 분별심이 귀신 해탈해 鬼벗고 神으로 진입을 간혹 귀신을 보거나 저승사자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신과 대화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귀신과 대화를 나누거나 남의 운명을 점쳐주는 것과 번뇌를 끊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예컨대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아나율 존자는 천안제일(天眼第一)이었다.
앉아서 온갖 천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는 본시 잠이 많은 편이었는데, 어느 날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 졸고 있었다.
이를 본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나무랐다고 한다.
“저 남쪽 큰 바다에 사는 조개가 있는데, 그 조개는 한번 잠이 들면 삼천년씩이나 잠든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부처님이 오고가는 것도 모르고 있지.
너는 그 조개 같은 녀석이로구나.” 이러한 꾸중을 들은 아나율은 마침내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하다가 결국 실명하기에 이르렀지만 천안통을 얻게 되었다.
아나율은 천안을 얻었음에도 번뇌를 끊지 못하였음을 사리불에게 고백하였다.
“나는 천안청정, 하늘의 세계를 보는 일도 할 수 있는데, 선정을 열심히 닦아보아도 해탈을 할 수 없습니다.” 사리불은 아나율에게 가르쳤다.
“아나율이여, ‘천안으로 하늘의 세계를 본다.’는 네 마음에는 자만심이 있다.
또한 ‘노력해서 선정을 닦는다.’는 마음에는 교만심이 있다.
그것들을 떠나지 않으면 깨달음은 얻을 수 없다.” 이 가르침에 아나율은 비로소 번뇌를 끊었다고 한다.
자만심이나 교만심이야말로 ‘내’가 있다고 하는 집착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있다고 집착하는 한, 번뇌가 없을 수 없다.
‘내’가 사라진 곳에 번뇌가 붙을 자리가 없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간혹 귀신을 보았을 때 너무 겁을 먹거나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 신들린 사람이나 정신이상자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다.
사실 우리의 한 생각 분별심이 바로 귀신이다.
유령은 이를테면 몸뚱이 없는 귀신이요, 인간은 몸뚱이 가진 귀신일 뿐이다.
해탈하기 전에는 모두 귀(鬼)이거나 혹은 신(神)의 존재로 남게 된다.
어떤 사람이 밤중에 공부를 하는데, 자정쯤 되어 갑자기 배 없는 귀신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배가 없는 녀석이니 배 아플 걱정은 없겠군.” 그냥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던 공부를 계속할 뿐이었다.
그는 평소 배가 자주 아팠던 것이다.
그러자 귀신은 사라졌다.
다시 얼마가 지났을까.
이번에는 머리 없는 귀신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그는 정신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이 귀신은 머리가 없어서 머리 아플 일은 없겠군” 하며 그저 하던 공부를 계속하니, 어느 틈엔지 머리 없는 귀신도 없어졌다.
귀신이 나타났다고 해서 겁을 잔뜩 먹어 놀라거나 도망치면, 그게 재미있어서 오히려 더욱 자주 나타난다.
이런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의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의연하게 대처하여야 스스로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참선을 할 때마다 커다란 거미가 나타나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하루는 붓을 준비해 두었다가 거미의 배에 원을 그렸는데, 방선을 해서 보니 자신의 배에 원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요컨대 외부에 나타나는 귀신의 형상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줏대를 세워 자신을 중심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