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롭게 가을 정기법회
법정스님
올 가을에는 전국적으로 가뭄이 들어 모든 것이 말라있습니다.
산에 살다보니 제 몸도 자연의 생태를 닮아 조금 말랐습니다.
그러나 건강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오늘은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수행자가 농사를 짓지 않고 얻어먹는 처지였습니다.
「숫타니파타」를 보면 농사에 대하여 부처님과 바라문의 대화가 나옵니다.
부처님이 걸식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그 모습을 본 바라문이 아니꼬운 마음이 들어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사문이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당신도 밭을 가십시오.
그리고 씨를 뿌리십시오.
갈고 뿌린 다음 먹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은 대답했습니다.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 바라문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쟁기나 호미, 작대기나 소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라고 하십니까? 당신은 농부라고 자처하지만 우리는 일찍이 밭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밭을 간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알아듣도록 말씀해주십시오.” 부처님이 다시 대답했습니다.
“나에게 믿음은 씨앗이요,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쟁기와 호미, 부끄러움은 호미자루, 의지는 쟁기를 매는 줄, 생각은 호미날과 작대기입니다.
몸을 근신하고 말을 조심하며, 음식을 절제하며 과식하지 않습니다.
나는 진실을 김매는 일로 삼고 있습니다.
부드러움과 온화함이 내 소를 쟁기에서 떼어놓습니다.” 인도에서 수행자는 걸식하는 자를 말합니다.
「유교경」에서는 수행자에게 밭을 갈지 말라고 했는데, 「비구」라는 말을 우리말로 하면「거지」란 뜻으로 빌어서 먹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만 수행자가 일반 거지와 다른 것은 안으로 법을 빌어서 밖으로 이웃에게 이로움을 전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전통이 중국과 우리나라에 와서 수행자의 걸식이 보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중국의 백장선사로부터 시작된 수도원의 지침은 “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시퍼런 생활 규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찰 방장이었던 백장 선사는 손수 농사를 지어가며 가르침을 실천했는데 노스님의 이런 모습을 안타까워하던 제자가 쟁기를 감춰 일을 못하게 되자, 그는 공양을 받지 않고 참선에만 몰입했습니다.
제자들이 그 이유를 묻자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겠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유명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스스로 갈고 뿌린 다음에 먹어야 곡식 낱알 하나도 아깝게 여길 줄 압니다.
그래서 옛 스님들은 시주물을 무섭게 여겼습니다.
현재 한국 불교에서 눈 밝은 수행자가 나올 수 없는 것은 농사일을 통한 공동체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한말 내장산에 학명스님이란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반선반농(半禪半農)」의 가르침을 폈습니다.
반은 참선 반은 농사짓는 것을 수행으로 삼고 「농사가 곧 참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고 생산을 위한 노동이 곧 창조적인 수행이다.”면서 오전에는 간경(看經), 오후에는 농사, 밤에는 좌선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수행은 스스로 행하듯이, 자신의 먹을 것을 자신이 마련하라.”는 뜻으로 동안거는 좌선을 중심으로, 하안거는 간경을 위주로 했습니다.
“농사짓는 일이 진짜 참선이다.”고 외친 것은 오늘의 현실을 되돌아 보게 합니다.
경전만 보고 기도와 참선에만 열중하면, ‘시주물’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절의 울력은 일차적으로는 생산적인 노동인 동시에, 이차적으로는 그것을 통해 대중이 일체감을 갖게 합니다.
농사는 흙이 지닌 덕(德)과 질서를 알게 합니다.
흙을 가까이 하며 생명이 움트고 자라는 자연의 질서와 이웃과 서로 돕는 상생의 의미를 배웁니다.
농업은 기초산업이자 생명산업입니다.
농업은 결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대지의 은혜입니다.
사람은 땅에서 나는 곡식과 채소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컴퓨터, 휴대전화, 자동차만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요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농업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한·미 FTA는 말로는 ‘자유무역’을 하자는 것이지만 실상은 철저히 미국의 기업과 투자자를 보호하고자하는 ‘강자의 보호주의’입니다.
‘한국은 무조건 개방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대외무역의존도가 70%를 넘었습니다.
미국은 20%를 개방했고, 일본은 22%를 개방했는데 우리나라의 대외무역의존도는 이들 나라의 3배가 넘습니다.
우리 경제가 취약한 것은 내수가 약하기 때문인데, 대외무역의존도가 높은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외부의 영향으로 충격을 더 많이 받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이 “한미 FTA로 농민들이 피해를 보면 농민들에게 생활보조비를 줘 먹여 살리면 된다.”고 말했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나라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농업은 단순한 하나의 산업이 아닙니다.
농업은 서로 돕고 의지하는 상생 관계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데, 상생과는 거리가 먼 美國의 기업농을 위한 FTA체결은 ‘한국의 농업은 없다.’고 치고 시작하는 사회전환프로그램입니다.
‘미국의 온 세계 시장화’입니다.
이 시대 농업을 말살하려는 한·미 FTA협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FTA의 체결은 고급 공무원, 재벌언론사 등 몇몇은 이익을 보겠지만 대다수의 서민들, 특히 삶을 토지에 기반해 살아가는 농민들은 큰 어려움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경제 기반산업인 농민과 농업이 소멸되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우리나라 국토 가운데 산지가 64%, 농지가 20%입니다.
전체 면적 중 84%가 사실상 농민들이 관리하는 땅인데 농업이 죽어버리면 이 생태계를 관리하는 사람이 사라지게 됩니다.
한ㆍ미 FTA에는 생태계를 보전하는 농민들을 위한 장치가 없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았습니다.
그 내용에 자국 국민을 위한 보호장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연례보고서」에 의하면 FTA에는 미국형과 유럽(EU)형이 있는데 미국형이 가장 잔인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농민은 전체 인구의 7%인 350만 명으로 그나마 거의 60세 이상의 노인들입니다.
농촌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는데 이것은 미래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농촌의 인구는 10년 안에 인구 통계에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농업과 농촌은 우리의 존재의 터전이자 영혼의 고향입니다.
농업문제를 농민에게만 맡길 수없는 절박한 상태에 있습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숙제 하나를 내드리겠습니다.
우석훈 교수가 녹색평론에서 펴낸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를 꼭 읽어보십시오.
제 인격을 걸고 추천합니다.
그 책에 의하면 ‘FTA가 체결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1년에 수입이 6천만원 미만인 사람은 빨리 이민을 가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5년 단임의 대통령제는 너무 막강한 권한이 있어 문제가 많습니다.
1987년 독재정권을 견제하기 위해 개헌하면서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해 국회도 손을 쓸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그런 정치적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밖에서 뙤약볕에 법문 듣는 분도 있어 이만 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