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법은 향상의 법문
-혜국스님-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녹야원에서 최초로 인연법을 설하시어
5비구를 제도하셨습니다.
이 5비구 가운데 한 사람인 마승존자는 천성이 점잖을 뿐 아니라
길을 갈 때는 마치 코끼리의 왕처럼 앞만 보고 갈 뿐
이리저리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존자의 걸음걸이는 적정 그 자체였습니다.
뒷날 부처님의 가장 큰 제자가 된 사리불 존자가
출가를 하기 전의 어느 날,사리불은 마승존자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크게 느낀 바가 있어 물었습니다.
“존자께서는 어떠한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나의 스승은 카필라국의 왕자로서 출가하여 정각을 이루신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그분께 어떠한 것을 배웠습니까?”
‘모든 것은 인연을 좇아 생겼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노라.
어느 누구든지 이 인연법을 깨달으면 그는 곧
참된 도를 얻게 되느니라.’
마승존자는 이 게송을 들려 준 다음 말했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이와 같은 법을 설하십니다.”
사리불은 마승존자의 이 한마디 게송에 반하여 친구인
목련과 제자 250명을 데리고
죽림정사로 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자연법과 인연 법이 이야기에서처럼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생겨나고 인연에 의해 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도 인연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인연에 의해서 파괴됩니다.
모든 것은 인연의 기운에 의해 돌고 있으며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 대 자연의 법칙을 인연법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 우주 대자연의 인연법칙을 알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나’를 알아야 합니다.
인연법칙이라는 것도 자연법칙이라는 것도 결국
‘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를 알아야 하고 ‘나’ 쪽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곧 인연법칙과 자연법칙의 중심에 ‘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 ‘나’를 알고 참 ‘나’를 바로 보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의 두 눈을 가지고는 우주 생성원리와 대자연의 법칙과
인연의 법칙을 알 수 없습니다.
‘나’의 두 눈으로는 내가 왜 저와 같은 남편을 만나게 되었으며,
왜 저와 같은 부인을 만나게 되었는지 왜 이 땅에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두 눈으로는 모양 있는 것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눈으로 모양있는 것만 보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모양 없는 것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두 눈에 시계의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만
시침이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시침이 너무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한 송이 꽃이 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피는 모습은 보이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꽃이 너무 느리게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총알이 날아오는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눈에 보이면 다 피하지 왜 맞아 죽습니까?
총알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세계 또한 우리
두 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는
칠판이 전체라고 하면 칠판에 찍은
점 하나를 보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볼 때는 다릅니다.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이러한 느린 움직임의 벽과
빠른 움직임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이 벽들이 무너지면 곧 바로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눈으로만 보면 현재만 보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과거와 미래가 다 갖추어져 보입니다.
실로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라는 것이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이를 마음이라고 합니다.
불교의 우주관에 입각하여 보면 이 우주에는
부처님의 세계가 있고, 천인.
아수라.
인간의 세계가 있고,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가 있습니다.
부처의 세계는 100% 광명의 세계이고,
지옥은 100% 어둠의 세계입니다.
저는 법문 중에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신경질 나고 짜증날 때 비닐봉지 안에 입김을 불어 모아놓고
그 색깔을 보십시오.
반드시 새카만 색이 나옵니다.
반대로 마음이 안정되고 남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이 우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가질 때
입김을 불어 색깔을 보십시오.
아주 안정된 사람은 백색이 나올 것이고
조금 덜 안정된 사람은 회색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 인간 세계는 50%는 백색이고 50%는 흑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의지하여 살고 있는 땅덩어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낮이 반이요 밤이 반이며, 기쁨이 반이요 슬픔이 반이며,
남자가 반이요 여자가 반입니다.
여기 지남철이 하나 있다고 해봅시다.
지남철의 한쪽 끝은 N극이고 다른 한쪽 끝은 S극입니다.
이 지남철을 잘드는 쇠톱으로 정확하게
중간되는 지점을 끊어보십시오.
두 동강 난 지남철이 서로 붙어 있어야 할텐데,
어느 사이에 두 조각이 N극과 S극을 각각 형성하여
반은 튕기고 반은 붙게 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지구의 법칙이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남철이 먼지가 되어도
반은 튕기고 반은 붙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주 자연법칙과 돌아가는 기운이 그렇게 되어 있으며,
우리 인간도 이 법칙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50%는 백색이요, 50%는 흑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심성도 50%는 인격으로, 50%는 감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백색을 흑색위로 65%쯤 올라가게 하는 것을
곧 우리의 인격을 65%쯤 되게 하고 감정을
35%쯤 되게 하여 인격이 감정 위로 올라서도록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올라가는 것(向上)이라고 하셨습니다.
“올라가라, 인연의 법칙을 알고 싶으면 올라가라” 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이 맑아지고 맑아지면
과거.
현재.
미래를 다 갖추어 볼 수 있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앞에서 저는 ‘우주의 생성원리를 알려면
나 쪽으로 돌아 오라’ 고 하였습니다.
내가 생긴 원리를 알면 우주가 생긴 원리를 알 수 있고,
우주의 원리를 알면 곧 나를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이 ‘나’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우리 육체의 구성요소를 지.
수.
화.
풍의
네 가지로 설명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의 살은 흙에서 빌어왔기 때문에
죽어서 썩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눈물과 콧물과 피와 소변 등은 물에서 빌어왔습니다.
죽는 날 까지 얼마만큼 빌어 쓰다가 죽으면
다시 물로 돌아갑니다.
몸의 따뜻한 기운은 불에서 빌어왔고
움직이는 기운은 바람에서 빌어왔습니다.
죽어 불기운이 다하면 몸이 싸늘해지고
바람 기운이 빠져나가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럼 이 지.
수.
화.
풍의 네 가지 기운은 누가 빌어온 것인가?
바로 ‘마음’이라고 하는 주인공이 빌어온 것이며,
‘마음’ 이라는 주인공이 현재의 모양으로
만든 것이 나의 몸뚱이입니다.
이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게 지.
수.
화.
풍의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허공이 있는데
이 허공을 인간에 대비시켜 불교에서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간과 세계의 원리는 일맥상통합니다.
나를 알면 이 세계가 생긴 원리를 알게 됩니다.
그럼 인연법칙이란 무엇인가?
지.
수.
화.
풍의 네 가지를 마음이라고 하는 주인공이
모양을 만들어 돌아가게 하는 것!
곧 삶이 인연법칙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