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일어나는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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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암 스님 – 불교에서는 모든 잘못을 행하고 고통 속에 사는 그 근본 원인을 탐욕(貪), 성냄(瞋), 어리석음(癡) 이렇게 세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몸과 마음을 해치는 독약과 같다고 하여 삼독(三毒)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탐욕(욕심)이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을 말하고, 성냄이란 좋아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반감이나 혐오 등을 말하며, 어리석음이란 바른 도리에 대한 무지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가 불길이 되어 수많은 고통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고통과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런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그 원인이 무엇인가 살펴보고, 나름대로 판단하여 처신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때 좀더 일찍 내가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크게 확대되지는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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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때 욕심만 부리지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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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좀 참았더라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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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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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한 순간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더 큰 화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좀더 사정을 잘 알았다면, 욕심만 더 부리지 않았다면, 좀더 참았다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을 해결하기 힘겨운 상태로 만든 경우가 많습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독을 들이마시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점점 감당하기 힘든 수많은 잘못을 짓게 됩니다.
물론 이 이외에도 많은 번뇌가 우리의 삶을 어지럽게 하지만,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모든 번뇌가 일어나고 모든 고통과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근본이 되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열거하여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강물이 원래 조그마한 샘물에서 시작하여 끊이지 않고 흐르면 시내를 이루고 마침내는 만경 창파를 이루게 되지만, 어떤 사람이 그 물줄기의 근원을 끊으면 모든 흐름이 다 쉬게 되는 것처럼 모든 악의 근본이 되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다스리면 그 모든 악이 그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일상 생활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살펴보더라도, 그 대부분이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그 원인으로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부처님이 남기신 말씀을 들어 봅시다.
“여러 비구들이여,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함이 많기 때문에 번뇌도 많지만,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함이 없어 근심 걱정도 없다.
욕심을 적게 하기 위해서라도 힘써 닦아야 할 텐데, 하물며 그것이 온갖 공덕을 낳게 함에 있어서랴.
욕심이 적은 사람은 남의 마음을 사기 위해 굽혀 아첨하지 않고 모든 감관에 이끌리지 않는다.
또 욕심을 없애려는 사람은 마음이 편안해서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고, 하는 일에 여유가 있어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열반의 경지에 들게 되는 이것을 가리켜 욕심이 적음(少欲)이라 한다.
만약 모든 고뇌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넉넉함을 아는 것은 부유하고 즐거우며 안온하다.
그런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설사 천상에 있을지라도 그 뜻에 흡족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한 듯하지만 사실은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한 듯하지만 사실은 부유하다.
만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오욕에 이끌려 만족을 아는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긴다.
이것을 가리켜 지족(知足)이라 한다.
이상의 말씀은 ((유고경))에 나오는 말씀 입니다.
모욕을 당하고 화내지 않기 어려우며 “참을 인(忍)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부딪쳐 오는 좋지 않은 상황에 대하여 잠시 여유를 가지고 그 것을 지켜본다면 합리적인 방법이 있을 것인데, 우리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상대방에게 좋지 못한 말과 모습을 보여 결국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때가 많습니다.
뒤에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고, 그 원인조차도 사소한 것인데, 그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여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험이 여러분도 있을 것입니다.
가령 부부 싸움의 경우 어떤 일을 계기로 사건이 일어나면, 잠시 그 상황을 피하여 동네 한 바퀴 돌거나 하루 이틀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때문에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는가 봅니다.
만약 쌍방에 서로 성을 내고 그 상황이 지속되면 이성을 잃어버리고 올바른 판단을 못한 채 감정으로 대하여 끝내 해서는 안될 말까지 해 버리게 됩니다.
그것에다 자존심이 자리잡게 되면 심각한 상황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닙니다.
일상 생활의 일이 모두 그렇습니다.
자신에게 닥쳐오는 일에 감정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잠시 여유를 가지고 한 발짝 물러나면 새로운 방법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모욕을 당하고나도 화내지 않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화를 내는 것도 생각해 보면, 자신을 알게 모르게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즉, “나” “나의 것”이라는 견해를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먼저 성을 내고 더욱이 자존심을 내세운다면 일을 해결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부딪치는 상황에 대해 성을 내지 않고 마음을 차분히 하여 그 모든 상황을 해결하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바로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의 수행 과정이자 수행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성낼 대상도 없고 성낼 주체도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우리는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번뇌 가운데 근본은 어리석음 입니다.
탐욕과 성냄으로 인하여 그 어리석음이 증폭되어 나타나고, 그 어리석음 때문에 탐욕과 성냄을 제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욕심을 내고 성을 냅니다.
이처럼 탐욕, 성냄, 어리석음 세 가지는 어떤 독(毒)이 다른 독의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도와주는 경우처럼 서로 활발하게 일으켜 줍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음, 즉 무명(無明)을 근본번뇌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지혜를 얻는 것은 바로 모든 번뇌를 없애는 길인 것입니다.
번뇌를 없애고 지혜를 얻는데 대해서 부처님께선 이 렇게 말씀 하셨읍니다.
“지혜가 있으면 탐착이 없어질 것이니, 항상 자세히 살피어 그것을 잃지 않도록 하여라.
이것은 우리 법 가운데서 능히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수행자도 아니요 세속 사람도 아니므로 무엇이라 이름할 것이 없는 것이다.
참 지혜는 생로병사의 바다를 건너는 튼튼한 배이고, 무명 속의 밝은 등불이며, 모든 병든 자의 좋은 약이고, 번뇌의 나무를 찍는 날이 선 도끼이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 들은 잘 듣고 생각하고, 지혜로써 더욱 자신을 길러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지혜의 빛을 가졌다면, 그는 세상의 무엇이든지 육신으로 밝게 볼 수 있다.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도 결국 모든 번뇌를 끊고 평온한 상태에 이르고자 함 입니다.
부처님 법을 배우는 불자로서 욕심을 내고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한 채 일을 꾸민다면, 그것은 활활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꼴입니다